지역문화

거경대학에서 초간정 원림을 찾아서

오토산 2017. 9. 25. 16:20

 

사진이 잘 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10809

 

 

거경대학에서 초간정원림을 찾아서

 

 

초간종택 탐방을 마치고 출렁다리를 건너서 수차례방문때 찾았던 초간정 앞을 지나

뒷편의 개울을 건너 초간정원림을 찾아갔느데

출렁다리앞에는 박갑로님이 열심히 회원님들의 사진을 찍고 있었다.

 

草澗亭원림은 초간정 북쪽 소나무숲과 초간선생의 신도비가 서있는 명승지로

초간이란 당나라 시인 위응물이 읊은 주서간(서(滁州西澗)이란 시에서

'그윽할 손 가련한 한 떨기 풀 물가에 자라나고(獨憐幽草澗邊生)'에서 따왔으며

초건선생은 초간정을 짓기전부터 자신의 호를 초간으로 사용하였다고 하고

사적과 기문에서는 '송나라 주돈이가 창 앞에 자라나는 풀들을 뽑지 않고 그대로

두고 보며 천지의 기운이 생동하는 모습을 관찰한 뜻과 같다'고도 했다.

 

초간정은 초간선생이 최초의 백과사전인 '大東韻府群玉'을 마무리한 사적이고

아들 竹所公 權鼈이 부친에 이어 최초의 인명사전인 海東雜錄을 집필한 곳으로

초간정 주위를 백번을 돌면 과거에 합격한다는 전설로 한 선비가 99번을 돈 뒤

현기증으로 난간 밖으로 떨어져 죽게되자 그 장모가 도끼를 들고와

기둥을 찍었다는 흔적이 지금도 남아있다고도 하고

대동운부군옥과 해동잡록의 제목을 두고 임진왜란 전후의

우리나라의 표기방법(대동과 해동)을 비교하기도 한다.

 

草澗 權文海(1534~1591)선생은 1552년(명종 7) 진사시에 합격하고

1556년(명종11) 한서암으로 퇴계를 찾아 학문을 사사받았고 이때 학봉과 서애.

동강을 만나고 교우했고 1560년(명종15) 별시문과병과 급제로 성균관유학에

 임명되면서 30년간 관직생활로 동부승지,좌부승지,춘추관수찬관등을 지냈다.

 

초간정원림에서 권중섭님으로 부터 카렌더에 자주 등장하는 초간정에 대하여

상세한 설명을 들을수 있었고 암벽에 새겨진 초간정 각자등 수차례 방문하면서

 초간정 루마루에서 보던것과는 또 다른 풍광을 볼수있었으며

설명을 하여주신분께 감사를 드리며 우리는 금곡서원을 찾았다.

 

세상사 한마디

당나라 시인 위응물이 읊은 시 저주서간(滁州西澗)

獨憐幽草澗邊生(독련유초간변생) 그윽할손 가련한 한떨기 풀 물가에 자라나고

上有黃深樹鳴(상유황리심수명)         깊은 숲속 나무위에 꾀꼬리가 지저귀네

春潮帶雨晩來急(춘조대우만래급)           봄비 속에 물때는 저녁 되지 빨라지네

野渡無人舟自橫(야도무인주자횡)           사람 없는 나루터엔 빈 배만 비껴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