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

거경대학에서 금곡서원을 찾아서

오토산 2017. 9. 25. 23:22

사진이 잘 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10810

 

 

거경대학에서 예천 금곡서원을 찾아서

 

 

 

초간정을 조금 내려와 금당실 솔숲 동쪽에 위치한 금곡서원을 찾았으며 

이 곳에서는 후손 두분이 나오셔서 금곡서원의 유래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다.

 

金谷書院은 용문면상금곡리에 소재하고 함양박씨 치암 박충좌, 행정 박눌,

남야 박손경 3인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는 서원으로 서원입구에는 세분의

유허비가 서 있었고 進道門을 들어서니 정면에 강당(尙敎堂)은 양면 협실과

중앙 마루로 되어 있고 동재(讀易齋)와 서재(格致齋)가 있고 그외 묘우와

전사청, 장판각, 신문, 주사등이 있다고 한다.

 

금곡서원은 치암 박충좌선생이 배향되었던 안동의 易東書院이 1568년

창건되어 1868년 훼철된지 100년후 향리의 유림 공론으로 1984년에

창건하면서  치암선생을 주향으로 그 후손 행정. 남야선생을 배향하였다.

 

恥菴 朴忠佐(1287~1347)선생은 고려후기 문신으로 백이정이 원나라에서

주자학을 배우고 돌아왔을때 이제현과 함께 제일 먼저 가르침을 받았고

고려 충숙왕때 문과급제하고 1332년 전라도 안렴사(도지사)를 시작으로

과거시험관인 지공거, 정2품 찬성사를 지내 純誠輔德協贊攻臣을 받았다.

 

杏亭 朴訥(1448~1528)선생은 치암선생의 7대손으로 보백당의 사위이며

중종 23년에 등과하여 昌樂道察訪을 지냈으며 은퇴후 고향 함창에 돌아와

 후진양성을 하였다.

 

南野 朴孫慶(1713~1782)선생은 치암선생의 16대손, 행정의 9대손으로

금당실에서 태어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일평생 부모를 극진히 모시며

 학문에 힘써 대산 이상정과 백불암 최흥원과 함게 嶺南三老로 추앙받았다.

 

금곡서당에서 문중의 유래를 설명듣고 나서 주차장에서

65세 의병대장 남천 박주상 의병대장 추원비에 대한 설명을 들은후

서원과 추원비에서 상세한 설명을 하여주신 후손분들께 감사드리고

우리는 춘우재고택을 찾아갔다.

 

세상사 한마디

倭敵들의 간악함이 宮城까지 짓밟으니 痛憤한 선비들이 倡義하여 일어섰네

천만년의 宗廟사직 무궁할것 믿었더니 한스럽다 나라형편 만백성이 痛歎한다

富國强兵 못갖추니 列强들이 넘보누나 五千年의 긴긴역사 우리들이 지키리라

南泉 朴周庠義兵大將이 남긴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