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

내앞종가의 온주법(낙여)

오토산 2017. 10. 28. 21:03

 

 

내앞(川前) 종가의 온주법(蘊酒法)

  •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콘텐츠학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콘텐츠학

차례(茶禮)라는 단어는 우리말에 남아 있지만 실체는 사라졌다.

그 구체적인 예법은 일본에 남아 있었다.

고대문화 가운데 중심부에서는 사라졌지만 주변부에 잘 보존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차례가 그렇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차(茶) 선생을 지냈던

일본 다도(茶道)의 종장 센리큐(千利休·1522~1591).

그의 15대 후손인 센겐시츠(千玄室)를 엊그제 베이징

다도 행사에서 만날 기회가 있었다.

우리 나이로 95세인데도 외국 행사를 주관하고 있었다.

'우라센케(裏千家)'의 살아 있는 전설이자 동양의 귀족문화를 대표한다.

평생 다도로 단련된 절제와 품격이 몸에 배어 있으면서도

이야기할 때는 소탈한 표정으로 하였다.

 

 크림처럼 농축된 흰 빛을 띠는 이화주 모습.

    조선일보 DB

 

일본의 차례를 보면서 '조선은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례(酒禮)였다는 생각이 든다. 고려불교가 차를 중시하였다면

조선조에 들어와 유교가 흥하면서 차 대신에 술을 제사에 사용했다.

의성 김씨 안동 내앞(川前) 대종가에 전해져 오는 '온주법(蘊酒法)'

문건이 바로 그러한 전통을 대변한다.

1700년대 후반, 이 집안의 종부(진주 강씨 할머니)가 그 내용을 한글로 기록해 놓은 것이다.

57가지 종류의 술 만드는 법을 기록해 놓았다.

이화주, 감점주, 삼해주, 백자주, 정향극렬주, 서왕모유옥경장주 등이다.

'온주법'을 연구하고 있는 이 집안 후손 김명균(金明鈞·63)은 양반가의

두 가지 업무가 '봉제사(奉祭祀) 접빈객(接賓客)'인데,

두 업무에서 빠질 수 없는 게 바로 술이었다고 대답한다.

온주법의 서문에는 '술은 신명을 감동시키고, 빈객을 화창하게 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양반 집안에서 술을 빚는 이유는 조상의 신명을 감동시키고,

내 집을 찾아오는 손님들을 즐겁게 대접하기 위해서였다.

불교가 차였다면, 유교는 술이었다.
내앞
대종가는 대저택이었다고 한다.

손님들이 사랑채 마루에 앉아서 낚싯대를 드리워 고기를 낚을 수 있는 구조였다.

사랑채 바로 앞에 연못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신난(戊申亂·1728년 이인좌의 난)이 일어났을 때

안동 지방의 가담 여부를 조사하러 온 안핵사 박문수는

'이 집의 규모가 너무 과하다.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하여서 사랑채를 헐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