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

안동역 연리지에 얽힌사연(회곡作)

오토산 2017. 11. 12. 23:35

 

 

安東驛 연리지(連理枝)에 얽힌 사연

 

 




 

안동역사(安東驛舍) 옆에는 작은 공터가 있는데, 거기에는 신라시대에 세워진

오층전탑(五層塼塔)과 당간지주(唐干支柱), 그리고 오래된 벚나무가 있다.

해방이 되기 이태 전쯤, 안동역 에는 한 젊은 역무원이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겨울 밤 열차를 보러 나갔다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정신을 잃고 플랫폼에

쓰러지는 한 처녀를 발견하고는 역무실로 업고와 정성스럽게 간호에 주고 집 까지

데려다 주었다. 서울에서 공부를 하다가 건강이 좋지 않아 요양차 귀향을 하던

처녀였다. 며칠 뒤 처녀는 감사의 인사를 전하러 그 역무원을 찾아 왔었고 그렇게

두 사람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당시 역 주변에는 두 사람이 만나서 시간을 보낼만한 이렇다 할 장소도 없고 해서

둘은 늘 오층전탑 주위를 거닐거나 당간지주에 기대앉아 사랑을 나누곤 했다.

그리고 서로의 사랑을 약속하며 벚나무 두 그루를 같이 심었다.

그러다 이년쯤 뒤 역무원은 갑자기 일본 고등계 형사들에게 쫓기는 몸이 되었다.

사실 그는 비밀 독립운동단체인 조선독립단의 단원이었는데 일본 육군기념일을 기해

안동경찰서를 기습 공격하려는 계획을 세웠다가 사전에 정보가 새는 바람에 그렇게 된

것이다. 그는 이왕 쫓길 바에야 만주로 건너가 제대로 독립운동을 해볼 생각이었지만

워낙 화급하게 쫓기는 몸이라 처녀를 만나 자신의 뜻을 전할 경황이 없었다.


그래서 동료에게 처녀가 걱정할 것을 우려해 같이 심은 벚나무가 죽지 않는 한

자신에게도 별일이 없을 테니 걱정 말고 잘 지내고 있으라.‘는 말을 전해달라는 부탁을

하고는 만주로 떠났다. 며칠 후 그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처녀는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리고는 수시로 찾아와 전탑 앞에 서서 간절히 기도를 하고 벚나무를 보살폈다.

그해 여름 광복이 되었지만 독립운동을 하러 만주로 떠났던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몇 년 뒤 6.25 전쟁이 일어나 그녀 역시 피난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전쟁이

끝나고 천신만고 끝에 고향으로 돌아온 그녀는 제일 먼저 안동역부터 찾았다. 벚나무의

생사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뜻밖애도, 기적처럼 역에는 그 역무원이 와

있었다. 만주에서 독립군 생활을 하던 그는 해방이 되면서 어쩔 수 없이 북한군에 편입,

장교로 지내게 되었고 그러다가 전쟁이 일어나 안동까지 내려오게 되었다고 했다.


한국군의 반격으로 다시 북으로 후퇴해야 할 처지가 되었지만 벚나무를 보고는 그녀 생각에 도저히 떠날 수가 없어 그만 국군에 투항했다. 그리고는 전쟁이 끝난 후 이곳으로 행여 하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녀는 너무도 기뻐서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이제 그 두사람의 소식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그들이 심어놓은 애뜻한 사랑을 말해주려는 듯 연리지처럼 밑둥지가 하나로 붙은 채 오늘도 푸른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치고 있는데 요즘도 안동역을 찾는 젊은 연인들은 이 이야기를 전해들으면 벚나무를 찾아가 그 앞에서 자신들의 사랑을 맹세하곤 하기도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언제부터인가 벚나무 연리지는밑둥지만 흔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안동동부동 5층 전탑(安東東部洞 5層塼塔)



안동 운흥동 당간지주 (安東 雲興洞 幢竿支柱)





안동역 연리지에 얽힌 사연 표지판 (安東驛 連理枝에 얽힌 事緣 標識板)


언제부터인가 벚나무 연리지 밑둥지가 베어져 있다.




안동역 연리지에 얽힌 사연 (安東驛 連理枝에 얽힌 事緣)







"시간은 인생의 동전이다.

시간은 네가 가진 유일한 동전이고,

그 동전을 어디에 쓸지는

너 만이 결정할 수 있다.

네 대신 타인이 그 동전을

써 버리지 않도록 주의하라."

 

- 칼 샌드버그 (Carl Sandbug)

미국,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