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

사랑방야화 부벽루, 폭석루와 영호루

오토산 2018. 2. 1. 10:06

사랑방야화18 부벽루, 촉석루, 영호루


왕년에 한가락 했지만 이제는 늙고 할 일 없는 대감들이 모인 팔판동 김대감댁

 널찍한 사랑방.

김대감이 장죽을 물고 담배 연기를 천장으로 후~ 불며 옛일을 떠올린다.

 

내가 평안감사로 부임했더니 평양 최고 갑부인 최진사가 부벽루에서

연회를 베풀어 주는데, 팔작 처마 끝마다 청사초롱 불 밝히고

상다리가 부러져라 주연상을 차려 놓았는데 가관입디다.

칠보산에서 따 온 송이산적 안주에 구월산에서 캔

백년 묵은 산삼으로 담근 술을 마시고 시 한 수를 읊었지.

 

김대감이 숨을 고르고 눈을 감은 채

 장성 너머 출렁이는 대동강 물이요,

드넓은 들판 동쪽엔 점점이 박힌 산이로다.

시 한수를 뽑고 나서,


부벽루에서 내려다보는 대동강 물줄기와 반짝이는 평양성의 불빛,

그 너머 산들이 이뤄낸 풍광은 뭐라 말할 수 없었어요.

부벽루에서 내려다 본 경치는 조선 팔도강산 어디에도 따를 데가 없어요.했다.

 

그때 경상도 관찰사를 지낸 민대감이 어흠어흠 헛기침을 했다.

진주성 촉석루에서 굽어본 남강이야말로 조선 팔도가 아니라

천하제일경이지요.

 

민대감은 눈을 지그시 감고 그의 인생 전성기 때 화려했던

촉석루 연회를 반추하며 미소를 머금었다.


그날따라 만월은 두둥실 떠올라 달이 세 개가 되었지요.

하늘에 하나, 남강에 하나, 내 술잔에 하나였소.

두둥둥둥 장고 장단에 진주 명창이 창을 뽑고

기생 홍란이 진주검무를 추는데, ~ 이건 한마리 나비였소.

끌어안고 풍덩 남강으로 빠지고 싶더라니까요.

검무를 마치고 땀이 밴 홍란을 안고 술 한잔 마시고 달 한번 쳐다보고,

또 한잔 마시고 남쪽 벼랑 끝의 달빛에 젖은 용두사를 바라보고,

또 한잔 마시고 남강을 내려다보고.

때 그 경관에 견줄 만한 데를 나는 평생 두번 다시 보지 못했소이다.

 

한방 가득 앉아 있던 늙은 대감들이

~ 부벽루보다는 촉석루가 낫다.며 한 마디씩 했다.


그때 구석진 벽에 기대어 앉아 있던 권대감이 고개를 짤랑짤랑 흔들며

가느다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안동 영호루가 으뜸이오.

 

늙은 대감들이 수군거렸다.

아무렴 그럴려고? 안동 영호루를 어찌 부벽루와 촉석루에 비할 수 있겠소?

안동부사로 있을 적에 내 나이 서른둘, 팔팔할 때였지요.

새로 온 열여섯 살 수청기생 청매는 간단한 안주를 싸 들고

나는 술병을 들고 누각 처마 끝에 초승달이 걸린 늦은 밤에 영호루에 올랐지요.

천상천하에 우리 둘뿐이었지요.

 

권대감의 사설에 다른 대감들이 귀를 쫑긋했다.

내 도포를 벗어 바닥에 깔고 우리 둘은 옷을 훌훌 벗었지요.

나는 강을 보고 앉고 탱탱한 청매는 내 허벅지에 마주 보고 앉아 술을 마시는데

술잔이 없어 청매가 호리병을 들고 입 가득 술을 담아 내 입에 반을 부어 주고

나머지는 그 애가 마셨지요.

청매는 명기를 가졌지요.

술 한 잔을 마시고 나면 아홉 번씩 꽉꽉 조였어요.

 짝 달라붙은 청매 어깨 너머로 청매 눈썹 같은 초승달을 보며

희미하게 흘러가는 낙동강 물을 보노라면 무

릉도원이 따로 없었지요.

 

침만 삼키던 늙은 대감들은 이구동성으로 입을 모았다.

부벽루와 촉석루는 영호루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옮겨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