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에 이는 불안
삼국지(三國志) (172)
강동에 이는 불안
노숙(魯肅)과 제갈양(諸葛亮)은 함께 배를 타고
장강(長江) 천리의 귀로(歸路)에 올랐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뱃길이었다.
노숙은 공명이 종자(從子) 하나도 거느리지 아니하고
단신으로 손권을 만나러 가는 것을 보고,
그의 비장한 결심을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기에 노숙은 공명과 함께 차를 마시면서 부탁조로 말한다.
"공명, 내가 강동에서 유황숙과의 연합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긴 했지만,
사실 강동의 대신들이 모두 찬성 하는 것은 아니오.
때문에 우리 주공을 만나 뵈올 때,
특히 대신들이 듣는 앞에서 조조군의 규모에 대해서 말씀하지 마시오."
공명은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는 듯 하다가,
"네, 이해합니다.
현인들이 많은 곳이니 의견이 분분하겠지요,
저도 부탁을 안 하셔도 대강 짐작하고 있었습니다."하고,
대답하는 순간,
내달리고 있는 배에 무엇인가 <탁 !>하고 부딪치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그 바람에 공명도 노숙도 대화를 끊고 밖의 상황에 귀를 기울였다.
노숙이 밖을 향해 소리쳤다.
"무슨 소리냐 ?"
그러자 곧이어 노숙의 호위 장수가 들어오며,
"보고드립니다.
조조의 선전포고 입니다."하고,
아뢰면서 죽통과 함께 조조의 선전 포고문을
들고 들어와 탁자 위에 올려 놓았다.
노숙이 공명이 듣는 앞에서 조조의 선전 포고문을 읽어내린다.
"<황명을 받들어 역적을 토벌하고,
기치를 높게 들어...바라건데, 천리에 순응하되,
오판은 하지 마라.>"
이것은 조조가 강동의 백성들에게,
죽통에 담아 장강에 띄운 삼천 개의 선전 포고문 중에 하나였다.
노숙은 선전 포고문을 모두 읽고 말이 없었다.
그것은 공명도 마찬가지로, 두 사람 사이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먼저 입을 연 사람은 공명이었다.
"훌륭하군요.
천하를 삼킬 듯한 웅대한 기상이 보이는 문장이군요."
"이 포고문이 강을 따라 왔으니,
강동의 관리들과 백성들이 누구나 볼 수가 있다는 것이 문제요. 하 !..
이것을 본 강동의 군심과 민심이 흔들려 큰 혼란이 일어날 것 같구려.
공명, 우리 주공의 탁자에 이런 죽통이 얼마나 쌓여 있겠는지 모르겠소 ..."
노숙은 이렇게 말하면서 한숨을 내쉰다.
그러자 공명이,
"자경..
이제 조조가 얼마나 대단한 지 아셨을 것이오.
그래, 조조는 전쟁에 앞서, 상대방의 마음부터 공격을 했소."
공명은 포고문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러자 노숙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아니하고 눈만을 깜빡거렸다.
이윽고 강하를 떠난 배는 장강 천 리를 내려와 강동에 도착하였다.
그리하여 두 사람이 배에서 나와 나루로 향하니,
궁중의 시종이 두 대의 수레를 대기시켜 놓고 기다리다가 노숙에게,
"주공께서 공명 선생은 내일 뵙겠다고 하시고
객관에 모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하고, 아뢴다.
공명이 그 말을 듣고 노숙을 향해 예를 표하며,
"그럼, 저는 내일 뵙겠습니다."하고,
말한 뒤에 수레에 올랐다.
노숙이 공명을 배웅하며 서 있자,
궁중 시종이 노숙에게 아뢴다.
"주공께서 당장 뵙자고 하십니다."
그리하여 노숙은 장거리 여행의 노독을 풀 사이도 없이
그 길로 궁중으로 들어갔다.
그리하여 손권의 앞에 이르자,
그곳에는 이미 장소를 비롯한 두 명의 대신들이 손권을 뵙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손권의 탁자 위에는 조조가 장강에 띄워 보낸,
죽통 여러 개가 올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그 건으로 의논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러나 일단 노숙은 어떤 사안이 논의되고 있는 지 알 수가 없는 일인지라,
먼저 손권에게 예를 표하며,
"주공, 다녀왔습니다."하고,
고하였다.
그러자 보고서를 읽고 있던 손권은 노숙에게 손짓을 해 보였다.
눈치를 챈,
노숙이 대신들 틈으로 들어가자,
손권은 장소(張昭 : 字: 자포(子布))를 가리키며,
"아, 사숙(私叔 : 사사로이 부르는 작은 아버지) 계속하시오."하고, 말하였다.
노숙이 도착하기 직전 부터 손권은 장소에게 보고를 받던 중이었던 것이다.
장소가 두 손을 올려 예를 표하며 말한다.
"주공, 이런 말은 소신만이 할 수 있을 뿐,
다른 대신들을 할수가 없사옵니다."
"말씀해 보시오."
"조조의 백만 대군은 천자의 이름을 내걸고,
기치를 높게 세운 정예 병력 입니다.
장수들은 대부분 북방 지역에다 서역 출신인 지라 용맹하기 그지 없고,
병사들은 대부분 전투경험이 풍부하여 예봉이 날카로우며
수하의 모사들은 대부분 용별술을 갖추어 지략이 풍부합니다.
허나, 우리 강동군 만은 보군과 수군을 모두 합쳐 봐야,
십만이 채 안 되며,
선제께서 창업한 지 오십이년 동안
강동의 장수들이 경험한 가장 큰 일전이 바로,
형주의 유표와 겨뤘던 작은 전투이나
그것 조차 승부를 가리지 못하였습니다.
허나, 유표의 장수들은
이번에 감히 조조와 싸워볼 생각도 못하고 모두 투항한 상태 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강동은 조조군의 적수가 못 됩니다. "하고,
전쟁보다는 주화론(主和論)을 주장하였다.
그러자 손권이,
"선생, 우리에겐 장강이라는 요새가 있지 않소 ?"하고,
다소간 불만 어린 어조로 질문하였다.
그러자 장소는 허리를 굽히며,
"맞습니다.
허나, 조조의 백만 대군이면 물길 조차 막을 수가 있습니다.
더구나, 방금 강에서 돌아온 어부의 말에 의하면
조조가 동정호에서 수군을 훈련중이며,
그 수는 사십만에 이르고,
수천 척의 전함을 건조중이라고 합니다.
더구나 건조중인 전함은 길이가 이십 장에 폭은 수 장에 달해,
우리 강동의 전함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크고 튼튼하다고 합니다."하고,
고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손권이 실망한 어조로 묻는다.
"그럼, 사숙의 의견은...?"
장소가 대답이 난처한 듯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내쉰다.
"하... !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전쟁은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고...
투항은 백성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으니..
주공께서 강동 육군의 백성들과 관리들을 이끌고 조정에 투항을 하신다면
조조가 주공께 태수 자리를 내리고 강동을 지키도록 할 것입니다....
다만, 매년 허창에 조공을 바쳐야 하겠지요...
사실 조조가 원하는 것은 천하를 통일해 역사에 남는 것이니,
그가 보고 싶지 않는 것은 도처의 군웅이 할거해 패권을 다투고
강산이 파괴되는 것이며, 원치 않는 또 하나는 남북 대군의 교전으로
시신이 산을 이루고 장강이 피로 물드는 것입니다."
장소는 이렇게 말을 하고 손권을 향하여
불편한 말을 꺼낸 것에 대한 송구함으로 안절부절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다른 대신이 뒤이어 아뢴다.
"장소의 말이 하늘의 뜻이자 민심입니다."
그러자 지금까지 간간히 장소를 힐끗 거리며
쳐다보던 손권이 이번에는 노숙을 한참 건너다 보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 손권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하 ! ..
사숙과 여러 대신들은 물러가시오.
이 문제는 숙고해 보겠소"하고,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시립해 있던 장소를 비롯한 두 명의 대신이 물러나간다.
그들이 물러가자 손권은 노숙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화난 어조로 소리쳤다.
"모두 다 투항을 권하는데, 선생은 한 마디도 안 하셨소 !"
그러자 노숙은 찬찬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주공, 장소와 다른 대신의 주장도 일리는 있습니다.
저들 입장에서 보면, 투항해야 마땅합니다.
그 이유는 투항한 후에도 그들은 정사를 돌 볼 수 있고,
백성을 관리하고 평안을 가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조정의 관직을 잃지 않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소신조차 투항할 수 있습니다.
소신이 투항에서 관직에서 물러나 집안에 들어 앉아 시문이나 지으며,
제자들을 거두면 먹고 사는 것은 문제가 없지요.
허나, 주공, 강동의 관리들이 모두 투항해도 오직 주공만은 투항할 수 없습니다 !"
그러자 손권은 뒤로 돌아서 노숙을 바라보며 물었다.
"왜, 나는 투항할 수 없다는 거요 ?"
"얼마 전 조조가 허창에서 황금으로 새장을 만들었는데, 휘황찬란 하답니다.
그 새장을 조정이라 명하고, 새 한 마리를 넣었으니,
그 새 이름을 천자라고 합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조조는 또 한 마리를 넣었으니,
그 이름이 유종이라고 합니다. 주공께서 투항하신다면
주공 역시 황금으로 만든 새장에 갇히게 될 겁니다.
주공, 생각해 보십시오, 한 새장 안에 세 마리
가 사는 것은 너무 비좁지 않겠습니까 ?"
손권이 그 말을 듣고,
감탄하듯, 외치듯 말한다.
"하 !...
자경, 지금 그 말씀은 제 가슴을 후벼 파는 듯 하오..."
"그러시겠지요,
그게 사실이니 말입니다."
노숙은 언제까지나 조용조용 말하였다.
173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