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봉파에서 떨어진 봉추
삼국지(三國志) (262)
낙봉파에서 떨어진 봉추
유비가 양회,고패 등 두 장수를 죽이고 부수관을 점령했다는 소식을 듣고,
태수 유장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유비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 ?"
유장은 문무 백관을 모아놓고, 크게 노하면서도 걱정을 하였다.
그러자 황권이 나서며 아뢴다.
"주공은 걱정 마십시오.
낙성은 부수관을 제압하는 요충이니,
그곳으로 군사들을 몰아 나가면 유비군을 깨치는데 문제가 없습니다."
"음 ...
그러면 자네가 잘 계획을 세워서 부수관을 탈환 하도록 하라."
무능한 유장은 모든 뒷수습을 오직 황권에게 맡길 뿐이었다.
그리하여 황권은 장임, 유궤, 냉포, 등현 등 네 장수들에게 명하여
각각 정예병을 이끌고 낙성으로 향하게 하였다.
한편,
부수관을 점령한 유비에게는 또 다른 고민이 있었다.
그것은 오만에 이르는 대군의 군량이 며칠 분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비가 이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는데,
방통이 이것을 알고 아뢴다.
"주공, 군량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허나, 낙성은 서촉의 요충으로 그곳에는 군량고가 있어,
우리가 낙성을 점령한다면,
형주까지 돌아갈 때까지 군량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유비는 그 말을 듣고,
"그러면 불가피,
낙성을 취해야만 하겠구려."하고,
대답하였다.
다음날,
유비는 방통의 진언대로 낙성을 취하기 위해, 전군의 선두에 서서 출발하였다.
그리하여 낙성을 삼십 여리 앞둔 지점에 이른뒤, 전일 장송에게 선사받은 서촉
사십일 주의 지도를 펴놓고 지세를 살펴보고 방통에게 묻는다.
"선생, 낙성까지 삼십 리가 남았는데,
여기서 왼쪽 큰 길은 낙성 동문(東門)으로 통하고,
오른쪽 샛길은 서문(西門)으로 통하니,
어느 길로 가는 것이 좋겠소 ?"
그러자 방통은,
"주공,
저는 위연 장군과 함께 오천의 군사를 데리고 서문을 공격하겠습니다.
주공께서는 황충 장군과 함께, 대군을 이끌고 동문을 공격하십시오.
양 쪽에서 협공을 펼치면 낙성은 어렵지 않게 함락될 것입니다."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유비는 조금 망설이더니 입을 연다.
"아니오,
나는 전장에서 잔뼈가 굵어 샛길에 익숙하니,
선생보다 내가 샛길로 가는 것이 낫겠소."
"큰 길은 매복이 있을 겁니다.
주공께서는 전쟁에 능하시니,
대군을 이끌고 동문으로 가십시오.
제가 샛길로 가겠습니다."
방통은 애초의 계획을 고집한다.
그러자 유비가 하늘을 올려다 보며,
"선생, 날이 스산한 것이,
왼지 불길한 징조인 것 같소."하고,
말하는 바람에 방통도 하늘을 올려다 보고,
"서천이 비가 많은 지역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하고,
유비의 근심을 가라앉히려는 말을 하였다.
그러자 유비가,
" 길을 나누지 말고,
한 쪽으로 가는 것은 어떻겠소 ?"하고,
말한다.
"좋습니다.
그러면 군사를 셋으로 나눠,
샛길로 제가 위연 장군과 함께 선두에 서고,
주공께선 황충 장군과 함께 중군에 서시고,
후군에는 관평과 유봉 장군을 따르게 하시지요."
"정찰병이 전하기를 샛길이 조용하다고 했는데,
어쩐지 자꾸 불안한 마음이 드는군요.
그러지 말고, 내가 선봉에 서겠소.
병사들이 나를 지켜 줄 것이오."
"허허허허 !..
주공, 걱정이 지나치십니다.
유장은 무능한 겁장이 입니다.
지금도 우리가 성도를 공격할 것을 걱정하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 매복은 없을 것입니다.
주공 ?...
아무 걱정 마시고 주공은 중간에 계십시오.
지금은 무엇보다 낙성 함락이 최우선 입니다."
"알았소,
선생의 말대로 합시다."
"고맙습니다."
유비의 진형은 군사, 방통의 진언대로
방통과 장군 위연이 오천의 군사로써 선봉에 나서기로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방통이 출발에 앞서 말에 오르려다가
말이 요동을 치는 바람에 그만 낙상하고 말았다.
"어이쿠 !"
"저런 !"
말에서 떨어진 방통이
몸을 <툭툭> 털고 일어나, 유비에게 다가와 말한다.
"주공,
무리한 부탁을 한가지 드려도 되겠습니까 ?"
"말하시오."
"주공의 말을 빌려주십시오."
유비의 말은 예전 군사인 서서가 평가했던 적로마였다.
당시, 서서의 평가로 적로마는 주인을 해치는 상(想)을 가진 말이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유비는 뒤쫒는 채모의 형주군을 피해,
적로마로 단계를 뛰어넘은 전례가 있었다.
그런 말을 방통이 빌려달라고 한다.
"적로마가 성질은 급하지만 실력은 최고지요.
제가 선봉에서 지휘해야 하니, 좋은 말이 있으면 편할 것 같습니다."
방통이 잠시 대답을 하지 않는 유비에게 앞서 입을 열었다.
그러자 유비는 더 이상 토를 달지 아니하고 허락한다.
그리고 호위 군사를 향해 명한다.
"선생을 내 말에 태워드려라."
"정말 고맙습니다.
이 은혜는 절대 잊지않겠습니다."
방통이 허리를 깊숙히 숙이며 유비에게 감사를 표하였다.
그러자 유비는 의외란 듯이,
"선생, 오늘 따라 왜 이러시오 ?
말 한 필 가지고 인사가 과하구려."하고,
말한다.
그러자 방통이 게면쩍은 웃음을 웃어 보인다.
"허허허허 !..."
그리고 나서 유비의 적로마에 올라타며 명한다.
"가자 !"
한편,
낙성에 도착한 장임, 유궤는
유비군이 부수관을 출발하여 쳐들어 온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긴장하였다.
"이번에야 말로
적을 씨알머리도 없이 섬멸해 버리자 !"
상장군 장임은 이렇게 결심하고,
명궁수(名弓手) 삼천여 명을 몸소 이끌고 남방 산협에 잠복한 뒤,
유비군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첩보병이 달려오더니,
적정을 아뢴다.
"유비군은 좁은 협곡을 타고 진군해 오는데,
선두에 선 적장은 백마를 타고 있습니다."
"백마를 타고 있다면 그자가 바로 적의 총대장 유비이다.
모든 궁수들은 내가 명령을 내리거든 백마를 탄 자에게 화살을 집중하여라 !"
삼천 군사는 적이 나타나기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방통은 선두에 서서 조심스럽게 말을 몰아나가며
협곡의 지형지물을 살펴 보았다.
장군 위연이 염려를 담은 말을 한다.
"선생, 전방으로 척후병을 보내,
적정을 살피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지형에선 복병을 조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나 방통은 이렇게 대답한다.
"아니오. 만약 적의 복병이 있다면
새들이 놀라서 모두 달아났을 것이오.
보시오, 평소와 다를 것이 없지 않소 ?"
위연이 그 말을 듣고 보니,
아닌게 아니라 산새들이 나뭇가지에 한가롭게 앉아
지저귀고 있는 것이 아닌가 ?
그리하여 위연은 의심을 접고
방통의 뒤를 따라 계속하여 협곡으로 군사들을 몰고갔다.
때는 몹시 무더운 늦여름이었다.
방통과 위연은 군사들의 선두에 서서,
땀을 줄줄 흘리며 험한 길을 행군하고 있었다.
이윽고 방통이 나무 그늘에서 땀을 씻고 다시 말에 오르며
조금 전에 붙잡은 포로에게 묻는다.
"길이 몹시 험악한데,
대체 이곳을 뭐라 부르냐 ?"
"낙봉파(落鳳坡)라고 부르옵니다."
"무어 ?
내 도호가 봉추(鳳雛)인데,
이곳 이름이 낙봉파란 말이냐 ?"
"이곳은 지명이 불길하니,
전군은 뒤로 물러나 다른 길로 진군하자 !"
방통이 이렇게 외치듯이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산협에서 별안간 요한스런 함성이 일어나며 동서 사방 팔방에서
방통을 향하여 화살이 빗발치 듯 날아오는 것이 아닌가 ?
"백마를 탄 자가 유비다 !
화살을 집중하라 !"하는,
소리와 함께 ...
"앗 !"
방통은 미처 몸을 피할 여지가 없었다.
빗발처럼 퍼붓는 수천의 화살에, 방통은 물론 그가 타고 있던 적로마는
붉은 피를 흘리며 그자리에 고꾸라져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때 그의 나이 서른 여섯.
서촉의 대장 장임은
백마를 타고 오던 사람이 유비인 줄로만 믿고,
"적의 총수 유비를 죽여 없앴으니,
이제는 마음놓고 나머지 군사를 여지없이 무찔러 버려라 !"하고,
산을 달려 내려오며 소리쳤다.
촉군은 그 소리에 기세 앙천하며 함성을 내지르며 추격해 온다.
그 바람에 선봉에 나선 유비의 오천의 군사들이 일대 혼란에 빠져버렸다.
그리하여 오던 길을 되돌아,
뒤따르는 유비의 중군으로 도망치자
중군 대장 황충이 군사를 이끌고 합세하는 바람에
장임은 낙성 방향으로 후퇴하였다.
황충은 더이상 추격하지 아니하고 군사들을 물렸다.
위연은 선봉에 섰다가 패전한 병사들을 수습해 가지고 중군으로 돌아왔다.
위연이 돌아오는 것이 보이자 유비가 바삐 달려가 묻는다.
"군사 방통은 어찌 되었는가 ?"
위연이 유비 앞에 황망히 엎드리며
다급한 목소리로 아뢴다.
"주공 !
적군이 매복 작전을 펼치는 바람에 군사께서 화살을 맞고,
전사하셨습니다 !"
"무엇 ?..."
유비는 놀라며 위연 앞으로 뛰어 나왔다.
그러다가 발을 헛디뎌 몸을 가누지 못하였다.
"주공 !"
호위 병사들이 달려들어 급히 유비를 부축하였다.
유비가 위연을 붙잡고 다시 한번 묻는다.
"지금 뭐라했나 ?
잘못 보거나 잘못 말한 것이 아냐 ?"
그러자 위연은 품속에서 한장의 서찰을 꺼내 내민다.
"이건, 군사께서 주공께 남긴 서찰입니다."
위연이 내민 꼬깃하게 구겨진 서찰에는 피가 흥건히 묻어있었다.
그 서찰에는 방통의 필체로 이렇게 쓰여있었다.
<주공,
유장이 먼저 주공을 공격하도록 제가 장송을 이용했습니다.
주공께서는 명분이 없어 걱정하지 않으셨습니까 ?
이제 명분이 생겼습니다.
주공께서는 형주로 철수중이었는데,
유장이 복병을 배치하여 주공의 책사를 죽인 것입니다.
이를 구실로 서천을 취하면 천하 만백성이 납득할 것이고,
주공께서도 꺼릴 것이 없을 겁니다.
낙봉파라는 골짜기는 형주로 돌아가는 길목에 있는데,
매복하기 좋은 곳입니다.
바로, 하늘이 저에게 준 최고의 묏자리지요. >
"내가 어리석었구나 !
적군이 매복하리라고 나도 예상하고 있었는데..
어찌 책사가 몰랐겠는가 ?...
낙봉파여 !... 낙봉파여 !...
어서 내 책사를 돌려다오 !
내 책사를 돌려달란 말이다 !...."
유비가 하늘을 향하여 울부짖었다.
"백마를 탄 책사를 적들은
주공이라 착각하고 집중적으로 공격을 가한 것입니다."
위연이 유비에게 당시 상황을 아뢰었다.
그러면서,
"방패로 무장한 백여 명의 병사로 방어하려 하였으나,
역부족이었습니다 !"하고,
오열을 거듭하였다.
유비가 쌍고검을 빼어들고 군사들을 향하여 소리친다.
"모두 들어라 !
유장은 신의를 저버리고,
우리 군의 선봉을 추격하여 책사를 죽였다 !
지금 당장 서천으로 가서, 책사의 복수를 한다 !"
"복수하자 !"
"책사의 복수를 하자 !"
군사들은 너나 없이 손에든 칼과 창으로
하늘을 향해 치켜들면서 방통의 복수를 외쳐대었다.
"가자 !
낙성을 취하자 !"
"와아 !...."
263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