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비의 지략(智略)과 공명의 지략으로 이룩한 낙성 점령
삼국지(三國志) (264-1)
장비의 지략(智略)과 공명의 지략으로 이룩한 낙성 점령
이후로도 장비가 아무리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 싸움을 걸어도
파군 현령 엄안은 성문을 굳게 닫은 채 일체 싸우려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장비는 새로운 계교를 쓰는 수밖에 없었다.
장비는 군사를 모아 놓고 새로운 명령을 내린다.
"너희들은 지금부터 산에 올라가 풀을 베어 오라.
그러면서 파군을 지나 낙성으로 빠지는 샛길이 있는지 알아보아라."
장비는 속히 이곳 파군을 지나서 하루라도 빨리
형님인 유비가 고군분투하고 있는 낙성으로 달려가 돕고싶었다.
그리하여 그날부터 장비의 군사들은 날마다 산에 올라가 풀을 베어 오고 있었다.
엄안은 성중에서 그 소식을 염탐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다,
어째서 장비는 군사들에게 풀만 베어 오라고 하는 것인가 ?)
궁금증을 참지 못한 엄안은 십여 명의 부하를 장비의 군사로 변장시켜
풀을 베는 그들 틈에 끼워 넣어 사정을 염탐해 오게 하였다.
엄안의 군사는 어렵지 않게 적진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며칠동안 산에서 풀을 베어 오던 군사들이 장비에게,
"장군님,
구태어 낙성으로 통하는 길을 찾으실 게 아니라,
파군성(巴郡城)으로 직통하는 사잇길이 있으니,
그길을 통하면 성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겠습니다."하고,
보고하는 것이 아닌가 ?
장비는 그 소리를 듣고 눈을 커다랗게 뜨며 놀란다.
"무어 ?
그런 길이 있었다면 진작 알리지 않고 이제서야 말하느냐 ?"
"저희들도 그 길을 오늘에서야 알아냈습니다."
"그래 !
그렇다면 파군성을 단숨에 때려 부순 다음에 낙성으로 가야겠군.
오늘밤으로 행동을 개시할 테니, 모든군사는 이경(二更 : 밤 9시 ~ 11시)에 밥을 지어 먹고,
삼경(三更 : 밤 11시 ~ 새벽 1시)에 출동하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춰라 !"
그리하여 모든 준비가 장비의 명령대로 <착착> 진행되었다.
그렇게 삼경에는 모든 군사가 달빛에 흠뻑젖으며
파군성으로 통하는 샛길로 출동하였다.
엄안의 염탐꾼들은 본진으로 돌아가 이런 사실을 즉각 보고하였다.
십여 명에 이르는 염탐군들이 제각기 돌아와 보고하는데
그 내용이 한결같으므로 엄안은 손뼉을 치면서 기뻐 하였다.
"그래 ?
무식하고 어리석은 장비는 우리가 싸움에 응해 주지 않으니까
샛길로 돌아서 우리를 치려는구나 !
그렇다면 우리는 장비를 단숨에 섬멸시킬 대책을 세워야겠다."
엄안은 파성으로 통하는 샛길에 많은 군사들을 매복시켜 놓았다.
성미가 급한 장비가 분명히 선봉으로 내달려 올 것이고,
주력군은 뒤따라 올 것이 분명하므로,
적의 허리를 잘라 놓고 단숨에 장비군을 전멸시키려는 작전이었다.
이윽고 밤이 깊어지자,
장비가 선두에서 말을 타고 나타나고, 그의 뒤를 따라오는 군사들이 보였다.
엄안은 숲속에 숨어서 지켜보다가 장비의 주력부대가 나타나기를 기다려
공격의 진고를 울리며 적에게 돌진하였다.
또한 길 양편에 숨어있던 복병들이 일시에 일어나며
장비의 주력부대를 포위하고 공격하였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
장비는 이미 선봉으로 멀리 가버린 줄로 알았는데
그런 장비가 홀연 엄안의 뒤에서 나타나며,
"엄안아 ! 도망치지 마라 !
내가 너를 기다린지 오래다 !"하고,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 듯한 고함을 지르며
달빛에 번쩍이는 장팔사모를 휘두르며 덤벼오는 것이 아닌가 ?
엄안은 혼비백산하게 놀랐다.
그러나 이미 사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아니던가 ?
이에, 엄안도 장비에게 창검을 빼어들며,
"마침 잘 만났다.
덤빌 테면 덤벼봐라 !"하고,
외치는 수밖에 없었다.
"하하하핫 !...
늙은 것이 하늘 높은 줄을 아직도 모르는구나 !"
장비는 그렇게 말하며 비호같이 달려들기가 무섭게
엄안의 허리띠를 움켜잡아 부하들에게 던져준다.
"이놈을 단단히 묶어라 !"
엄안은 힘도 한번 못 써보고 졸지에
장비의 군사들에게 포박을 당하고 말았다.
그러자 엄안을 둘러싼 병사들이,
"파군 현령 엄안이 사로잡혔다 !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는 자는 살려준다 !"하고
, 일시에 소리쳤다.
그러자 매복에 나섰던 파군성 병사들은 두 말없이 손에서 무기를 떨어뜨렸다.
이로서 한밤중 달빛 아래 싸움은 이렇다할 큰 충돌 없이 장비군의 승리로 끝났다.
포로들을 수습하란 명령을 내린 장비가 엄안의 앞으로 다가와 호통을 내질렀다.
"네가 이래도 항복을 안하겠느냐 ?"
엄안은 결박을 당한 채로
눈을 부라리며 장비를 마주 꾸짖는다.
"너는 무사의 예절도 모른단 말이냐 ?
참된 장수는 목이 달아나는 일이 있어도 항복은 안하는 법이다 !"
장비는 그 말을 듣고 멈칫하였다.
그리하여 아무 말 없이 엄안의 뒤로 돌아와 그의 포박을 끌러 주며,
"나와 함께 진중으로 돌아갑시다."하고,
말하며 엄안을 앞세우고 파군성으로 향하였다.
장비는 엄안과 함께 파군성으로 들어가자,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말했다.
"노장군은 나의 무례를 용서하시오.
나는 이제사 장군이 호걸지사임을 알고,
나의 무례했음을 사과드리오."
엄안은 장비가 자신을 알아주는 데 크게 감동하였다.
"오오,
장군이 패군지장인 나를 이렇게까지 융숭하게 대해 줄 줄은 정말 몰랐소.
장군조차 이처럼 사람을 알아주니,
유황숙과 관우 같은 분들이야 얼마나 후덕하겠소."
"고마운 말씀이오.
만약 장군이 우리 편이 되어 주신다면,
내가 형님께 잘 말씀드려서, 장군께 영광된 자리를 마련해 드리도록 하리다."
"고마운 말씀이오.
나는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하도록 하리다."
엄안은 이렇게 말한 뒤에,
잠시 생각터니,
"내가, 좋은 방법이 있는데,
아군과 적군이 서로 피를 흘리지 않고 낙성을 얻으면 어떻겠소 ?"하고,
묻는 것이 아닌가 ?
장비는 그 말을 듣고,
귀가 번쩍 틔었다.
"무슨 좋은 방법이 있으시오 ?"
그러자 엄안이 입을 열어 말한다.
"여기서 낙성까지 가자면
적들이 수비하기 용이한 험한 협곡에 위치한 대소 관문(大小 關門)이
서른일곱 개가 있어서, 무력으로 밀고 들어가려면
백만군을 동원하더라도 용이한 일이 아니오.
허나, 내가 앞장 서 나가면서,
<나 조차 항복한 것은 유약한 군주로는
백성들의 안위를 지킬 수 없기 때문이었으니,
너희들도 대항할 생각을 하지 말고, 유황숙에게 힘을 보태라>고
설복하면 무난히 서른일곱 개의 관문을 지날 수 있을 것이오."
장비는 크게 감탄하며 엄안의 말대로 그를 앞세우고 진군하였다.
그러자 과연 저들은 엄안의 말을 듣고,
<노 장군께서 저렇게 말씀하시는데야...>하고,
저마다 항복을 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