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양위 조서(讓位 詔書)
삼국지(三國志) (309)
두번째 양위 조서(讓位 詔書)
조비는 천자의 조서와 함께 가져온 옥새를 황홀한 눈으로 들여다 보며,
화흠으로부터 천자가 내린 조서의 내용을 보고 받는다.
조비는 조서를 모두 듣고,
"화흠,
당신이 볼 때 이 조서의 내용이 어떠한가 ?"하고,
물었다.
그러자 화흠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한다.
"어투는 정중한 편입니다."
"정중하다기 보다, 청승맞은 듯 하니,
듣기로는 내가 칼을 들고 협박하는 것처럼 들리지 않나 ? "
"그럼, 전하께서는 ? ..."
"샤양 !...
당신이 상주문을 대신 쓰시오.
사양을 해야 소인배들 입을 틀어막지 !..."
"알겠습니다."
조비는 이렇게 천자의 양위(讓位)를 사양하며
조서와 함께 옥새를 돌려보냈다.
화흠은 그 길로 천자를 찾아갔다.
그리하여 조비가 보내온 사의문(謝意文)을 내놓았다.
천자가 그것을 보고 말한다.
"위왕이 이리 겸손하니
짐이 어찌해야 하오 ?"
그러자 화흠은 대뜸 불만어린 대꾸를 한다.
"폐하,
이 선양문(禪讓文)은 누가 쓴 겁니까 ?"
"소, 소관 입니다."
천자의 곁에 있던 진군(陳群)이 당황하며 대답하였다.
"이놈 !
위왕을 박덕한 사람으로 오인하도록 조서를 쓰다니,
조서를 이렇게 쓴 의도가 무엇이냐 !"
화흠이 이렇게 호통을 내지르자 동행한 장군 조홍이 즉각 수하에게 명한다.
"끌고가 참하라 !"
진군이 천자앞에 주저앉으며 소리친다.
"폐하 !
살려주소서 ! "
그러나 힘이 없는 천자는 진군을 살려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천자가 묵묵부답하자,
진군은 조홍의 수하에 의해 가차없이 끌려나간다.
"폐하 ! ~...
폐하 ~... ! "
소리를 거푸 내지르며...
이런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화흠이 입을 연다.
"폐하,
조서를 다시 내리십시오."
"짐이 다시 조서를 내리겠다."
모든 것을 포기한 심정으로 천자가 대답한다.
"비단을 내와라 !"
화흠의 명에 의해 시종이 조서를 새로 쓸 비단을 내왔고,
천자는,
"화흠,
이번엔 그대가 조서를 대신 쓰면 어떻겠소 ?"하고,
물었다.
그러나 화흠은,
"그건 아니될 말씀입니다.
신이 감히 어찌 씀니까 ?"하고,
거부 하였다.
그 소리를 듣고 천자가 화흠을 노려보며 묻는다.
"그럼, 짐 보고 직접 쓰란 말인가 ?"
"그래야 천자의 성의가 조서에 나타나지 않겠습니까 ?"
화흠의 요구는 사실상의 강요였다.
천자가 먹과 비단이 준비되어 있는 주부(主簿)의 자리로 옮겨가
선양 조서를 직접 쓰기 시작하였다.
천자가 조서를 모두 쓰자 화흠이 이를 살펴 보고,
"조회를 열어 폐하께서
이 선양조서를 친히 위왕께 내리십시오."하고,
말한 뒤에서야 물러나가는 것이었다.
다음날 조회(朝會)에는
천자가 조서와 옥새를 직접 가지고 장락궁에 들었다.
그러자 장중의 대신들이 수근거린다.
"두 번째 조서로군.."
"맞아, 두번째 조서야..."
천자는 자리에 앉기전에 물었다.
"위왕은 어디에 있소 ?"
"폐하의 취지를 못 들어 궁밖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화흠이 대답한다.
"위왕을 들라하시오."
명은 즉각 전달되어 황궁 시종이 화흠의 명을 받아 소리친다.
"위왕은 들라 하십니다 !"
장락궁 계단 앞에 서있던 위왕 조비가
가슴을 펴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천자가 선채로 조비의 입장을 지켜보았다.
이윽고 앞으로 다가온 조비가 두 손을 모아 예를 표한다.
그리고 입에서 나온 그의 인삿말은 고작,
"폐하."..
였다.
천자가 선양 조서를 펼쳐 들고 읽기 시작하였다.
"짐이 난세에 태어난 뒤, 천하가 반분 되고 전란이 이어졌으나,
요행히 위왕 부자의 은덕으로 한실을 이어올 수있었다.
이제 천문을 관찰하고 민심을 살피건데,
한실의 수명이 다했으며 천심과 민심이 모두 위왕에게 모여드니,
짐은 하늘의 뜻을 받들고 민심에 따라,
요(堯)임금이 했던 바 대로 위왕에게 선양하기로 결정하였다."
천자의 선양 조서의 낭독이 끝나자 조비가 즉각,
"아뢰옵니다.
폐하 ! 신은 덕행이 미천하여 천자의 지위를 계승할 수 없으니,
말씀을 거두어 주시기를 청하옵니다." 하고,
말한 뒤에 돌아서 나가 버리는 것이었다.
그러자 천자는 대신들을 향하여,
"짐이 두번씩이나 조서를 내렸는데도 받지 않으니,
짐이 어찌해야 하는가 ?..."하고,
한탄조로 물었다.
그러자 역시 화흠이 나서며,
"폐하,
천자의 선양을 받는 자는
응당 세 번은 사양을 해야만 덕이 있다 할 수있지요.
설마 이것을 모르시지는 않겠지요 ?"하고,
적반하장식 대답을 한다.
"그러면 짐더러 어쩌라는 것이오 ?"
"폐하께서 세번째 조서를 내려,
천자의 성의를 보이십시오."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천자가 그 말을 듣고, 손에 든 조서를 내동댕이 쳐버렸다.
"세상에 !...
짐을 두번 죽이는 것으로도 부족해, 또 죽이려는가 ? ..."
천자는 대신들을 향해 울부짖었다.
이날 밤,
야심한 시간에 사마의가 천자를 찾아왔다.
천자가 자리에 앉기도 전에 사마의는
무릅을 꿇고 천자에게 공손히 큰절을 올린다.
"신 사마의가 폐하를 뵈옵니다."
천자가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사마의 ?
짐에게 절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 그대는 왜 이리 하는거요 ?"
그러자 사마의는 엎드린 채로 말한다.
"신은 한실 신하의 자손입니다.
폐하께서 제위에 계시는 한, 신은 군신의 예를 다할 것입니다."
"특이한 일이군.
군신의 예를 기억하고 있다니...일어나시오."
천자는 오랜만에 보는 대신의 언행에 일편 안심하면서 명하였다.
"망극하옵니다."
사마의가 비로서 고개를 쳐들었다.
"야심한 밤에 어인 일이시오 ?"
천자의 음성이 부드러워졌다.
그러나 사마의는 자리를 고쳐 앉으며 말한다.
"화흠 대인이 폐하의 명을 받고,
성밖에 선양대를 쌓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 명은 안 내렸는데 ?"
천자는 사마의의 느닷없는 소리를 듣고, 되물었다.
그러자 사마의는 이렇게 대답한다.
"기억을 못 하시는 게지요.
화대인이 틀릴 리 가요 ?
안 그렇습니까 폐하 ?"
"음 !..."
천자는 사마의의 돌변한 태도와 대답에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되었다.
그리하여,
"계속하게."하고,
명하니,
사마의는 천자를 상대로 협상가의 어조로 말을 한다.
"단(壇)이 완성되면,
폐하께서 길일을 택하시어 문무백관들을 소집하신 후,
위왕에게 옥새를 전하고 제위를 넘겨주시면 됩니다."
"어 ~...
동작대에서 연회처럼 모이겠군."
"그렇습니다."
"조서는 필요없겠지 ?"
"제(祭)를 올리고 양위식(讓位式)을 해야 하는데,
없으면 안되지요."
"무엄하다 !"
천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사마의의 태도가 극히 불경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마의는 앉은채로,
"고정하십시오.
윤허하시면 신이 나서서 폐하의 노고를 덜어드리겠습니다.
앞으로 이런 기회는 다시 없을 겁니다."
"짐을 위해 뭘 해줄 건가 ?"
천자는 자포자기 하는 심정으로 물었다.
사마의가 탁자 앞으로 가서 말한다.
"조서의 초안을 작성하겠습니다."
"그렇치 !...
자넨 조비의 심복이 아니던가 ?
자네가 적임자겠군."
"그렇습니다."
"오, 그렇다면 내가 친히 먹을 갈아주겠네.
핵심을 잘 짚어서 작성해 보게나."
천자가 직접 먹을 갈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옆에 있던 조황후가,
"폐하,
신첩이 먹을 갈겠습니다."하고,
나선다.
그리고 탁자위에 조서를 쓸 비단을 가져다 놓고, 먹을 갈기 시작하였다.
이때 사마의가 말한다.
"망극하옵니다."
310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