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와 등애의 대결 ( 2 )
삼국지(三國志) .. (407)
강유와 등애의 대결 ( 2 )
강유는 동정을 거쳐서 남안을 향해 가던 도중 무성산 앞에 이르렀다.
하후패가 무성산의 지형을 휘둘러보더니 강유에게 말한다.
"저 산이 남안 가까이에 있는 무성산입니다.
무성산을 취하면 남안은 거의 손에 넣은 것이나 다름 없겠다고 보겠는데,
문제는 등애입니다.
워낙 꾀가 많고 지형을 잘 이용할 줄 아는 터라
미리 와서 방비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등애의 능력이 그 정도란 말이오?"
강유가 놀라며 하후패에게 묻는데
산 위에서 갑자기 천둥 소리 같은 포향이 터지더니
함성이 크게 일고 북소리와 뿔피리소리가 왕왕 울려온다.
그리고 이어서 깃발이 일어나기 시작하는데 모두 위군의 것이다.
그 한복판에 있는 황색 깃발에는
"등애(鄧艾)"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적혀있다.
촉군은 당황한 나머지
무엇부터 하면 좋을지 어수선하게 움직이고 있는 사이,
위군의 정예병들은 산 위에서 내려와 촉군을 향해 무기를 휘두른다.
위군의 엄청난 기세를 당해내지 못한 촉의 전군(前軍)은
무력하게 패하고 말았다.
강유는 급히 중군(中軍)을 거느리고 전군을 지원하러 갔지만
이미 위군은 촉의 전군을 격파하고 산 위로 가버린 후였다.
"내가 직접 등애와 단판을 짓겠다!"
강유가 기세 좋게 무성산 기슭까지 가서
등애에게 싸움을 걸었지만 적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강유는 등애군을 자극해서 전장으로 끌어내려고
군사들을 시켜 갖은 욕설을 퍼붓게 했지만 등애는 꼼짝하지 않았다.
날이 저물 때까지 등애가 응전(應戰)해오지 않자 강유는 우선 군사를 물리기로 했다.
그러자 산 위에서 또 북소리와 뿔피리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소리만 요란할 뿐 위군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강유는 약이 단단히 올랐다.
치미는 화를 참지 않고
군사들에게 소리를 내질렀다.
"산 위로 진격하라!"
강유 군이 함성을 치며 산 위로 짓쳐가는데
산 위에서 바위와 통나무가 우박처럼 쏟아진다.
촉군이 더이상 앞으로 나가는 것은 무리였다.
삼경(三更)까지 위군을 기다리던 강유는 다시 군사들을 철수시키려 했다.
그때 또 다시 산 위에서 북소리와 뿔피리 소리가 울려댔다.
위군은 역시나 나타나지 않았다.
강유는 군사들을 산 아래로 옮겨 그곳에 방어진을 치도록 했다.
군사들이 바위와 나무를 운반해서 목책과 보루를 쌓고 있는데
산 위에서 또 북소리와 뿔피리소리가 거세게 울려댔다.
위군의 공격 없는 위협에 여러 차례 속은 촉군은
북소리와 뿔피리소리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하던 작업을 계속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진짜였다.
위군이 산 위에서 물밀듯 쏟아져 나오더니 촉군을 가차없이 공격했다.
촉군은 어둠 속에서 허둥지둥하며 본채로 달아나기에 바빴다.
다음날 날이 밝자 강유는 전군을 무성산 아래로 집결시켰다.
그리고 군량과 마초, 수레와 기계 장비를 모아다가
산 아래에 놓고 이것들을 목책처럼 둘러세웠다.
그리고 목책 안에 군사들을 주둔시켜서 적을 포위하도록 했다.
지구전을 노린 것이었다.
그날 밤 이경(二更),
등애는 군사 오백에게 횃불을 들고 산 아래로 내려가
촉군의 수레와 기계 장비에 불을 놓게 했다.
양군은 어둠 속에서 밤새도록 혼전을 벌였다.
촉군은 위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싸움을 하느라 영채를 완성하지 못한 탓에
본채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군사들을 이끌고 돌아온 강유가 하후패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남안을 얻기는 이미 틀린 것 같소.
차라리 먼저 상규 땅을 취하는 것이 낫다고 보오.
상규는 남안 일대의 곡식을 저장하는 곳이니
그곳을 우리가 점령하면 남안은 자연히 위태로워질 것이오.
하후 공은 무성산에서 적을 막고 계시오.
나는 상규로 출격하겠소."
이리하여 강유는 정예군과 맹장들을 모두 이끌고 상규를 향해 나섰다.
행군 도중 날이 어슴푸레하게 밝아왔다.
강유는 지형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산세가 험하고 길은 굽이쳐 있었다.
강유가 향도관(嚮導官)에게 물었다.
"이곳의 지명은 무엇인가?"
"단곡(段谷)이옵니다."
향도관의 대답을 듣자마자
강유는 인상을 쓰고 말했다.
"거 참 불길한 이름이다.
단곡의 단(段)자가 끊을 단(斷)자와 음이 같구나.
누군가 이 골짜기 입구를 끊어 놓기라도 한다면......
기분 나쁜 곳이다."
강유가 길을 가기를 망설이고 있는데,
전군에서 전령이 달려와 아뢰었다.
"산 뒤에서 흙먼지가 뿌옇게 일고 있습니다.
복병이 있는 것이 틀림 없습니다."
강유는 전령의 말을 듣자 마자
군사들에게 후퇴를 명했다.
퇴각을 위해 말머리를 돌리려는데
길 양 쪽에서 사찬과 등충의 복병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다.
복병의 기습에 강유는 맞서 싸우면서
한편으로는 뒤로 달아나며 군사들을 물리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퇴로 앞에서 큰 함성 소리가 점차 촉군을 향해 다가온다.
등애가 군사들을 휘몰아 달려온 것이다.
사찬과 등충, 등애의 군사들을 강유군이 모두 감당하는 것은 무리였다.
강유군이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위기의 순간,
다행히 하후패가 군사들을 거느리고 나타나
강유군은 간신히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강유는 다시 기산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 때 하후패가 강유에게 말한다.
"기산 영채는 이미 진태에게 당했고,
수피장 포소는 싸우다 죽었습니다.
모든 군사는 한중으로 퇴각했다고 합니다."
"아......!
그렇단 말인가......"
위군의 기습에 여러 번 당한 강유는
더이상 동정땅을 취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군사를 돌려 외딴 산길로 조심스럽게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뒤에서 등애 군사들이 추격해왔다.
강유는 장수들에게 군을 이끌고 퇴각하게 하고
자신은 후군이 되어 등애군의 추격을 끊었다.
퇴각을 계속하고 있는 와중에 갑작스럽게
산 속에서 한 무리의 군사가 뛰쳐나와 길을 막았다.
강유의 앞길을 가로막은 것은 위의 장수 진태가 거느린 군사들이었다.
순식간에 강유는 위병들에게 둘러싸였다.
강유는 사람과 말이 모두 지친 상태라
포위를 뚫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마침 앞서 갔던 탕구장군 장의(盪寇將軍 張嶷)가
강유의 소식을 듣고 기병 수백을 이끌고 달려왔다.
수백의 기병이 달려드니 위군의 포위망에 약간의 틈이 생겼다.
강유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겨우 포위망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장의는 위군의 빗발치는 화살에 그만 목숨을 잃고 말았다.
간신히 한중으로 돌아온 강유는
장의의 충성에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이 들어
후주에게 표문을 올려 장의의 자손들에게 벼슬을 내리도록 청하였다.
장의 뿐만 아니라
이번 싸움으로 죽은 장졸은 셀 수 없이 많았다.
죽은 자들의 가족은 모두 강유를 원망했다.
강유 또한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리고 등애의 손바닥 안에서 움직였던 것 또한 너무나 부끄러웠다.
그리하여 패전의 책임을 지기 위해 스스로 대장군의 인수를 내놓고
직위를 후장군(後將軍)으로 내려놓았다.
이는 공명이 가정(街亭)에서 패하고
스스로 승상의 직위를 내놓았던 일을 본받은 것이었다.
408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