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후 금계리 학봉역사문화공원을 다녀와서
서후 금계리 학봉역사문화공원을 다녀와서
1654년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의 대관식이 있었던 6월 7일
성곡리 장태사공의 단소를 다녀서 시내로 돌아오는길에
지난해 9월 30일 개원한 <학봉역사문화공원>을 찾았다.
학봉종택 건너편에 자리한 학봉역사문화공원은
임진란을 슬기롭게 극복하는데 앞장선 학봉 김성일선생 등
선현과 의병들의 애국충정을 기리고 미래세대에게
올바른 국가관 확립과 투철한 호국정신을 함양하며
지역관광과 시민의 휴식공간확충을 위하여 조성되었다.
공원입구를 들어서니 초유정(招諭亭)앞에는
학봉선생이 1577년 왕사(王使)의 서장관으로 중국(明)을 다녀올 때
가져와 사용한 것으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안경을 모티브한 작품과
학봉선생의 임란 초유와 의병활동을 기록한 안내판이 서 있었으며
사무실앞 광장 우측에는 <鶴峯歷史文化公園>표지석이 있었고
사무실 광장 좌측에는 의병활동의 불꽃을 표형한 조형물도 있었으며
사무실옆 공간에는 안동의 여러 종가에서 생산하는 가양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서산재(西山齋)라 이름 붙여진 강의동을 지나니
임란역사관(壬亂歷史館)이 자리하고 있었다.
임란역사관에서 만년(60쎄)의 퇴계선생이 유학 16성현의
도학(道學)핵심을 정리하고 학문적 특성과 전해온 심법(心法)을
80자로 요약해서 젊은(29세) 학봉에게 써 준 병풍글(屛銘)과
청렴 강직한 관료로 대궐의 호랑이(殿上虎)로 평가받았고
임란이 일어나자 왕명을 받들어 군사를 모으고 적을 토벌하면서
관군과 의병을 함께 단속하고 지휘하였던 초유사(招諭使)로
활동하시다가 진주성에서 순국하신
학봉 김성일(鶴峯 金成一 1538~1593)선생의 일생에 대한
기록들을 관람하고
학봉선생의 11대 종손으로 퇴계학맥을 이어 오시면서
1895년 서산재에서 을미의병을 결심하고 창의(倡義)하신
서산 김흥락(西山 金興洛 1827~1899)선생의 독립운동과
노름꾼, 파락호로 위장하여 독립군 자금을 지원하셨던
김용환(金龍煥 1887~1946) 13대 종손님의 활동상을 관람하였다.
역사관앞 광장에는 1609년(광해원년) 국왕이 예관을 보내어
학봉선생 사당에 제문을 내리고 학문과 충절을 기렸던
<국왕이 내린 제문>을 새긴 비석과
학봉선생의 친필 유훈인 <효제충신(孝悌忠信)을 새긴
돌비도 볼 수 있었다.
임란역사관 뒷편으로 언덕을 올라 내삼문을 지나니
정면에 학봉선생의 초상화을 모신 충의각(忠義閣)이 있었고
학봉선생의 초상화를 중심으로 壬亂護國英靈諸位 위패와
招諭使文忠公鶴峯金先生아란 위패가 양측에 서 있었으며
충의각 오른편에는 임란 경상도 육진의 영웅들 추모벽(292위)이 있고
왼편에는 서후초등학교 학생들의 글씨를 모아 오방색으로 세긴 기림비에
<이름 아니 남기신 의병영웅을 기립니다.
드높은 그 이름 아니 남기신 의병님들께서
짐지고, 돌 나르고, 밥 짓고, 옷 깁고, 아이기르고, 다친이 어른 돌보며
칼 창 활 화살총 화약 만들어 땀 눈물 피로써 싸워 왜적 하나 남김없이
몰아내고 지키신 조선 땅, 후손들이 5백년뒤 다시 몇첩고름 아니 잊고자
학가봉 굽어보는 검제 냇가에 돌하나 눕혀 새겨 기리나이다>라
새겨져 있었다.
우리는 학봉역사문화공원을 돌아보며
현재 역사공원 뒷편에 이건중인 임천서원이 존공되면
역사문화공원 건너편의 학봉종택과 학봉선생을 모신 임천서원,
학봉선생의 활약상이 전시되어 있는 역사문화공원이 한 자리를 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학봉선생의 나라사랑 정신을 기리면서
휴식을 하는 공간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면서
교리에 있는 <가을신선>카페로 갔다.
시내에서 안동역을 지나서 삼태사분들이 잠들어 계시는
서후지역으로 가는 갈림길, 송야천변 들판에 자리한 <가을신선>에서
아보카토, 아메리카노, 가을신선 장미꽃차를 시켜서 마시며
오늘 다녀온 여행지 이야기를 나누며 휴식하다가 나왔더니
송야천 버드나무 아래에 자리한 송류정(松柳亭)도
오늘이 즐거웠느냐고 인사를 하였다.
오늘도 점심을 사시고 운전을 하시며 함께하신 서 회장님,
상세하게 안내하시며 <가을신선>에서 차를 사신 한 회장님,
묵묵히 함께 동행하셨던 신회장님 모두들 감사합니다.
6월에는 더 건강하시고 즐거운 나날을 보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