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인문아카데미에서 울진 대풍헌을 다녀와서
퇴계인문아카데미에서 울진 대풍헌을 다녀와서
2025년 국정기획위원회의 '찾아가는 소통버스'가 안동시청을 찾았던 7월 17일
퇴계인문아카데미 회원들이 울진답사에서 울릉도와 독도를 가던 수토관들이
바람을 기다리며 머물렀던 대풍헌을 찾았더니 남향 홑처마 팔작기와집 정면에
箕城龜山洞舍와 待風軒이라 새겨진 현판 두개가 걸려 있었다.
대풍헌(待風軒)은 구산포에서 울릉도로 가는 수토사(搜討使)들이
배를 띄우기전에 순풍(順風)을 기다리며 항해를 준비하던 곳으로
처음 언제 세워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구산동사 중수기에 의하면
1851년(철종 2) 대풍헌을 고쳐지어 구산동사와 대풍헌 현판을 걸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1906년 중수후 2010년 현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1693년(숙종 19) 3월 안용복이 울산출신 어부 박어둔 등 40명과 함께
울릉도에서 어로작업중 일본 오키섬 어부들에게 납치, 일본으로 잡혀갔다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땅임을 주장하고 막부의 지시로 조선으로 돌아왔던
안용복 사건이 일어난 이후 울릉도에 일본인들을 수색하여 토벌하는 군사인
수토사(搜討使)를 정기로 파견하는 수토제도를 200여년 계속하여 왔다.
지휘관은 대풍헌에서기다리고 군사들은 월송만호에서 기다리면서
남서풍이 불어오는 시기에 배 4~6척에 80~150명과 식량을 싣고
돛을 올려 바람을 타고 구산포~울릉도 태하리 144㎞를 19~23시간
항해로 갔다가 올때는 대풍감에서 바람을 기다렸다가 돌아왔다고 한다.
2010년 대풍헌을 새로지어 이전하는 과정에서
수토사들이 비용마련 내용과 출항자 인적사항, 작전기록 등을
상부에 보고하였던 수토절목(搜討絶目), 온문(完文) 등 고문서가 발견되어
오래전부터 조선이 울릉도와 독도를 지키고 관리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증명하는 귀중한 자료들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대풍헌에서 해설사님의 '해양수호의 성자'라는 상세한 설명을 듣고
2019년 건립된 수토문화전시관에서 수토절목, 완문, 대풍헌 상량문,
수토사들의 활동상과 돛단배 모형들을 구경하고 나오니
대풍헌 앞 바닷가에는 독도공원이 설치되어 있었다.
우리는 대풍헌에서 '독도는 우리 땅'이란 다짐을 새롭게 하면서
대풍헌을 출발하여 오늘의 마지막 답사지인 월송정으로 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