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상식
청와대를 봉황대(鳳凰臺)라고 하자
오토산
2026. 1. 2. 15:56
불원재유교문화해설(178)
【청와대를 봉황대로 바꾸자】
○ 청와대를 봉황대(鳳凰臺)라고 하자
평소 존경하는 박석무 다산연구소이사장이 한겨레신문에 기고한 내용에
대통령의 상징인 봉황기를 내리고 문양을 교체할 것을 주장하였다.
주된 내용은 《지난 4월 4일 헌법재판소 파면과 동시 용산 대통령실 봉황기가 내려졌다.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은 나라에서는 가장 큰 머슴이자 공복의 으뜸인 지위인데,
왜 임금을 상징하는 문양으로 대통령실을 꾸미느냐는 생각이었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의 그 혹독한 독재정치가 헌법의 결함에도 있겠구나라고 여기면서,
임금이라는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봉황 무늬나 문양, 봉황기 탓도 있겠구나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12·3 계엄에 관한 특검 수사가 진행되면서, 계엄으로 내란을 일으킨 동기가 밝혀지고 있는데,
최근 보도에는 내란으로 반국가 종북세력을 척결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영구집권을 꾀하고 끝내는 ‘윤석열 왕국’을 꿈꾸었다고 한다. 봉황기를 내리고 봉황의 문양을 지우는 것부터 실천해야 한다.
봉황기를 내리고 문양도 교체할 것을 간절히 바란다.》
일반인들이 유학자이자 ‘호남의 대제학’이라 칭송하는 박석무 이사장은
조선시대 퇴계와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1527~1572) 사제간의 인연,
퇴계11대손 향산(響山) 이만도(李晩燾, 1842~1910)의 절의순국에 대한
호남의 대학자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 1846~1916)과의 인연과 그가 지은 묘갈명에서
“우리 조선이 한창 융성하자 퇴계 선생께서 도학(道學)으로써 한 차례 문명(文明)의 운세를 열어 다스려지게 하더니,
국가가 망하자 향산 선생이 절의(節義)로써 만세토록 내려오는 강상(綱常)의 중요함을 붙드셨다.
대체로 도학과 절의는 다른 길이면서도 하나로 모아지고,
일이야 다르지만 공로는 한 가지여서 하늘과 땅 사이에 하루라도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라고 쓰면서,
퇴계는 성리학이라는 도학으로 조선왕조 철학의 근간을 세워 나라 융성의 기틀을 세웠고
향산은 유교의 다른 덕목의 하나인 절의를 몸으로 실천하여 조선의 혼을 천하에 떨쳤으니
역사적 임무를 그 집안에서 완성했다는 평가를 송사(松沙)의 묘갈명에 밝혔다고 하였다.
이러한 학자들의 인연을 이어 호남과 영남의 가교 역할을 하면서
매년 ‘향산선생추모회’에 동참하면서 안동지역의 인사와 깊은 인간관계를 갖고 있다.
이런 대학자가 삼척동자도 다 읽는 천자문의 “명봉재수 백구식장(鳴鳳在樹 白駒食場)”에서
대통령은 백성의 공복으로서 ‘태평한 세상을 만들어 달라는 백성의 간절한 마음이 담긴’ 대통령 봉황휘장을 내리라는
얼토당토 아니한 주장에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봉황휘장은 독재정치와 계엄정국, 윤석열왕국과도 무관한 것이며 정치적으로 해석해서도 아니되고
진정한 학자라면 봉황휘장을 내릴것이 아니라 청와대를 봉황대(鳳凰臺)로 바꿀 것을 주장해야 할 것이 아닌가!
○ 대통령의 공관 청와대 명칭의 변천사
조선시대 국왕이 거처하던 공간 전체를 경복궁(景福宮)이라 하였고, 국
가권위의 상징이자 공식행사와 의식을 거행하던 곳을 근정정(勤政殿) 또는 정전(正殿),
국왕의 일상 집무실을 사정전(思政殿) 또는 편전(便殿),
생활공간을 강령전(康寧殿) 또는 내전(內殿),
숙식공간을 교태전(交泰殿) 또는 침전(寢殿)이라 하고,
국왕이 기거하던 공간 전체를 어전(御殿)이라 불렀다.
조선이 망하고 1910년 경술국치후
일제(日帝)가 덕수궁과 광화문 일대의 기존건물을 사용하여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로 사용하다가
1926년 조선의 역사를 지우기 위하여 광화문 뒤편 근정전 앞에 조선총독부 건물을 신축하여 조선총독의 행정본부로 사용하였고, 1937년에는 경복궁 뒤편, 현 청와대 자리에 총독의 기거생활 공간으로 총독관저(總督官邸)를 지어 사용하면서 조선을 통치하였다.
1945년 8.15해방후 미군정시대에는 총독관저와 총독부건물은 미군정청으로 사용하였고
1948년 정부수립후 초대 이승만대통령은 미군정청이 사용하던 총독관저를
조선시대 경복궁과 군사훈련, 무과시험장이었던 역사에 근거하여 대통령 집무공간을 경무대(景武臺)라 명명하고
총독부청사는 중앙행정기관으로 사용하였다.
1960년 3.15부정선거로 촉발된 민심이반이 4.19혁명으로 이어져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고
1960.8.13일 4대 윤보선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권위주의와 부정선거란 오명(汚名)을 뒤집어쓴 경무대란 명칭을 버리고,
미국의 백악관(白堊館,White House), 중국의 중남해(中南海)와 같이 외관의 의미를 부여하여
청와대(靑瓦臺)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조선총독부 본청건물은 해방이후 미군정청, 대한민국중앙행정기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하다가
1995년 철거되고 2010년대 광화문과 경복궁의 훼손된 역사공간을 복원하였다.
1960년 4대 윤보선 대통령이 대통령의 집무공간을 청와대로 명칭한 이후
2022.5.9일 19대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퇴임한 이후 청와대란 명칭이 사라지고,
2022.5월 20대 윤석열 대통령이 용산 국방부청사를 대통령집무실로 변경하면서
대통령의 집무공간을 대통령실이라 부르고 휘장인 봉황기를 게양하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4.12.3. 비상계엄 선포로 인한 국회의 탄핵소추안이 발의되어
헌법재판소는 2025.4.4. 윤석열대통령 파면결정이 내려지면서 용산의 봉황기가 내려지게 되었다.
이어서 실시된 6.3대통령선거에서 21대 이재명대통령이 당선되어 2025.6.4일 용산대통실에 곧바로 직무를 개시한 이후에
옛 청와대로 집무실을 옮기기로 계획하여 25.12.29일 대통령은 옛 청와대 본관에 봉황기를 게양하면서
청와대가 다시 대통령의 직무공간이 되었다.
○ 동아시아 국가 군왕의 상징
동아시아 전통시대 절대군주의 상징은 나라마다 달랐다.
하화족(夏華族)인 중국은 황제(皇帝)라 하여 상징은 상상의 동물 용(龍)을 상징하여
군주는 하늘을 날아 비와 바람을 부리는 용과 동일시 하였다.
3천년전 주(周)나라 자전(字典)에 “용은 아홉가지 짐승의 장점만을 땄다.
머리는 낙타, 뿔은 사슴, 눈은 토끼, 귀는 소, 목덜미는 뱀, 배는 큰조개, 비늘은 잉어, 발톱은 매, 주먹은 호랑이와 비슷하다.
목 아래에는 거꾸로 박힌 비늘 역린(逆鱗)이 있다.
그런데 용의 비늘은 81개이고, 입 주위에는 긴 수염이 있으며, 턱밑에는 명주(明珠)가 있다.”
사기(史記) 한비자(BC28~233) 열전에 “용이란 동물은 잘 길들이면 그 등을 탈 수도 있다.
하지만 목 줄기 아래에 한 자 길이의 밑돌을 파고
동쪽으로 향하는 구멍 하나에 거꾸로 난 비늘이 있는데 이것을 건드리면 그 사람을 죽여 버린다.
군주에게도 역린이 있으니 유세(遊說)하는 사람이 군주의 역린을 건드리지 않으면
거의 성공적인 유세를 할 수 있다.”라고 용을 설명하고 있다.
또한 주역과 음양오행사상에 의거 중국은 세상의 중심이란 사상으로 오황토(五黃土)를 의미하여 군주의 옷을 황금색으로 하고,
주역건괘 구오효(九五爻) 비룡재천(飛龍在天)의 의미로 다섯 발톱을 가진 오조룡(五爪龍)을 수 놓았다.
그런데 조선은 중국의 변방으로 인식하여 용포는 발톱이 세 개인 3조룡(三爪龍)에 적색 곤룡포(袞龍袍)를 입다가
조선말엽 대한제국이후에는 5조룡을 표상하였다.
일본 왕실의 최고권위이자 상징인 국화문장(紋章)은 세상 8방위의 앞.뒤를 뜻하는 꽃잎 16개인 국화문장(菊花紋章)이고,
일본 내각총리의 상징은 태평성대에 봉황이 깃든다는 의미와, 조선국왕 뒤편 일월오봉도와 같이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의미로 세상의 변화를 주도한다는 의미로 5.7배열한 오동잎 문양을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다.
중국 문화혁명이후 중국공산당 정권은 노동자 농민의 연대와 당의 지도성을 상징하는 황금색의 낫과 망치가
교차된 당휘장(黨徽章)과 붉은바탕에 당휘를 수놓은 당기(黨旗)를 최고권력으로 상징하고 있다.
중국을 대표하는 국기(國旗)에는 붉은바탕에 황금색의 다섯별중 큰 별은 공산당 정권을 의미하고
네 개의 작은별은 인민과 사회계급의 결합을 상징하고 있다.
○ 대한민국 대통령의 상징 봉황표장(鳳凰標章) 유래
대통령의 상징인 봉황문양(鳳凰文樣)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이승만 정부 시절부터 대통령과 관련된 상징 요소로
전통의 「태평한 세상을 희구하는 의미」에서 봉황이 비공식적으로 사용되었다.
1967년 박정희 대통령당시 《대통령 표장에 관한 공고 7호》를 통해 봉황문양이 공식적으로 채택되어
그때부터 대통령 표장(휘장)으로 정식 사용되기 시작하여 대통령 관저와 집무실 등
청와대 대통령 직무 공간에 널리 쓰이게 되었다.
당시 대통령 휘장으로 공식 채택된 의미는 동아시아에서 봉황은 덕(德), 평화, 조화 등의 상징으로 여겨졌고,
대한민국 대통령의 도덕적 권위와 국가 정체성을 표현하는 상징으로 선택되었다
○ 봉황문양의 진정한 의미
봉황(鳳凰)은 상상의 새이다.
봉(鳳)은 수컷, 황(凰)은 암컷을 말하는데, "봉황은 오동나무가 아니면 머물지를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고,
예천의 물이 아니면 마시지 않는다".(非梧桐不樓 非竹實不食 非醴泉不飮)고 하였다.
옛사람들은 성인(聖人)이 출현하여 태평한 세상이 되면 봉황이 나타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봉황이 출현하여 천하가 태평하고 행복한 세상을 바라는 뜻에서
종택이나 고택, 정자에는 오동나무와 대나무를 심어 숭상하였고
대통령 휘장을 봉황무늬로 한 것 또한 ‘바른 정치를 베풀어 태평한 세상을 만들어 달라’는 뜻이 있다.
『천자문(千字文)』에 “명봉재수(鳴鳳在樹)하고 백구식장(白駒食場)이라.”는 말이 있는데
‘봉황이 나무에서 울고 있고, 흰 망아지는 마당에서 풀을 뜯고 있다’ 는
'태평한 시대에는 세상 만물이 화락하여 봉황이 나타나 오동나무에서 울고
또 어진 신하와 군주가 대화하는 동안 그가 타고 온 망아지는 마당가에서 평화롭게 풀을 뜯는다'는
태평성대를 칭송하는 말이다.
『시경(詩經)』 대아(大雅)장의 '봉명조양(鳳鳴朝陽)'이란 시는
중국 주(周)나라때 난세(亂世)가 지나고 태평성대를 축원하며 어진사람을 등용하여 태평성대를 이룩하라는 시이다.
鳳凰于飛 翽翽其羽 亦傅于天(봉황우비 홰홰기우 역부우천) 봉황이 높이 나네. 훨훨 날갯짓을 하며 하늘 위로 올라가네.
藹藹王多吉士 維君子命 媚于庶人(애애왕다길사 유군자명 미우서인) 어진 임금에게 어진 신하 많아 임금이 명령하니
백성들에게 사랑받으리.
鳳凰鳴矣 于彼高岡(봉황명의 우피고강) 봉황이 우네. 저 높은 언덕 위에서 우네
梧桐生矣 于彼朝陽(오동생의 우피조양) 오동나무 자라니, 저 동쪽 아침해가 뜨는 곳이라네
菶菶萋萋 雝雝喈喈(봉봉처처 옹옹개개) 오동나무 무성하고 무성하여 봉황의 울음소리 조화롭다.
시경 '봉명조양'이란 뜻에서 안동임하 내앞마을 백운정(白雲亭)에 퇴계선생이 쓴 조양문(朝陽門)이란 현판이 걸려 있고,
경복궁 동행각 동문이 봉양문(鳳陽門)이며. 충남 홍주성 동문이 대원군 친필의 조양문(朝陽門)이 있다.
또한 영천 조양공원의 누각 앞뒤에 조양각(朝陽閣)과 서세루(瑞世樓) 현판이 붙어 있다.
백성들은 천하가 화락(和樂)하고 만백성이 행복한 세상을 꿈꾸며 『시경』의 구절을 인용하여
봉황이 날아와 언덕위의 오동나무에서 울고 어둠이 걷히고 밝은 세상이 되기를 염원하면서 '조양문'이라 하였다.
상상(想像)의 새인 봉황은
모든 동물의 우두머리인 용(龍)과 학(鶴)의 결합으로 생겨난 동물로 상서로움을 뜻한다.
봉황은 성인이 탄생했을 때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였다.
봉황은 우리나라 고대로부터 태평한 세상을 만들어 달라는 의미로 군주의 상징이기고 하였다.
동한시대(AD 100) 허신의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의하면 봉황의 암컷과 수컷은 오동나무에 사이좋게 살면서
예천(禮泉)의 샘물을 마시고 대나무 열매를 먹는다고 했다.
봉황의 모습은 앞은 기러기, 뒤는 기린, 턱은 제비, 입부리는 닭, 목은 뱀, 꼬리는 물고기, 이마는 황새,
뺨은 원앙, 몸의 무늬는 용, 등은 거북이라고 했다.
봉황은 특히 인.의.예.지.신의 오덕(五德)을 갖추고 살아있는 곤충과 풀은 먹지않고
살생이 끊긴 세상에 나무 열매와 죽순과 예천의 물을 마신다고 했다.
산해경(山海經)에는 오색깃털에는 묘한 음색을 낸다고 하였고.
이러한 고상하고 품위있는 모습을 두루 갖추고 있는 봉황은
태평성대를 예고하는 상서로운 새로 여겨 군주는 이러한 덕목을 갖추어 태평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바램으로
봉황을 대통령 휘장으로 만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