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상식

김치의 역샤(낙여)

오토산 2018. 1. 19. 10:55



김치의 역 사




우리나라의 김치는 삼국형성기 이전부터 정착된 농경문화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 것으로 판단된다.


즉, 이때부터 정착생활을 시작하고 주로 곡물을 경작하였는데


뚜렷한 사계절이라는  기후의 특성으로 인해 동절기


식생활에 대비한 산채류나 야생채류의 저장법이 발전되면서


오늘날의 김치에 이른 것이다.


이의 시대별 변천사는 아래와 같다.




○ 삼국시대





당시의 문헌기록이 없는 관계로 고대의 김치 발달과정은 확실히 규명하기 힘들다.


그러나, 이시기에는 정착생활이 보편화되어 채소류의 저장성을 높이기


위한 단순한 소금절임이 성행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중국 문헌인 '후주서(後周書)'등에서


"백제와 신라때 오곡과채나 주례(酒醴 : 술과 감주)의 생산이 중국과 같다"라는

 기록을 볼 때, 삼국시대에 이미 김치류의 제조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중국의 기록이 앞섰다 하여 우리의 채소절임식품이


중국에서 전파된 것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다만 이시대에는 중국과 교류가 성했던 때라 채소류를 절이는 방법도


중국과 비슷했을 것이며 아직 외래 재배채소류가 도입되기 전이라


주로 산채류와 야생채류를 이용해 김치를 담갔을 것으로 추측된다









○ 고려시대





고려시대도 전 시대와 마찬가지로 김치에 관한 기록은 거의 보이지 않지만


'한약구급방'에 처음으로 배추에 관한 기록이 나온다.


이시대의 김치에는 순 무장아찌와 순무소금절이(김치류)가 있었으며,


김치는 단순히 겨울용 저장식품뿐만 아니라 계절에 따라 즐겨 먹는


조리 가공식품으로 변신하기 시작하였다.


이 시대에는 조미료가 발달되어 각종 채소에 향신료를


섞어 만든 김치가 있었음이 추정된다.





○ 조선시대




지금과 같은 우리 김치의 형태가 시작한 것은 외래채소들,

특히 결구배추(학명Brassica, Brassica pekinensis)가 도입 재배되어


이를 주재료로 사용하면서 부터이다.


1700년대 중엽 중국의 북경지방에서 처음 재배된 결구배추의 종자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재배 육성된 시기는 정확히 모르나,


이후 우리나라 풍토에서 더욱 우수한 결구배추 품종들이 개발되어


미국, 캐나다, 멕시코 및 중남미 나라들로 전해졌다.


고추는 임진왜란 이후에 우리나라에 도입되었으나


200년이 지난 18세기에 와서야 김치양념으로 적극적으로 쓰였다.


조선후기에 고추를 조미료로써 사용하면서부터


김치의 담금이 다양해지고 이때부터 김치는 빨간색을 지니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김 치 의    어 원



 


채소의 소금절임에 관련된 최초(?)의 기록인 중국의 시집 '시경(詩經)'에는


오이를 이용한 채소절임을 뜻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저(菹)"라는 글자가 나온다.


이밖에 김치의 어원은 "소금물에 처리된 채소" 또는 "소금으로 절인 야채"를


뜻하는 "함채(鹹采)"라는 말에서 찾을 수 있다.


이는 중국어 발음으로 " 함차이(Hahm Tasy)"  또는 "감차이(Kahm Tasy)"이며


이것이 우리말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김치(Kimchi)"로 발음된 것으로 판단된다.


 


                (전남대학교 농과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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