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를 찾아서 96

【송재종택과 도계정사】

【송재종택과 도계정사】 도산면 온혜리에 송재 이우선생의 유서가 깃든 퇴락된 도계정사와 송당종택의 보수정비사업을시,도의 지원과 이경락 대종회장의 성력으로 2018년에 착수하여 6년만에 공사를 완료하고2024년 5월 4일 준공하였다. 진성이씨 노송정종택이 있는 온혜리는서쪽에는 용두산(龍頭山)에서 흘러내린 용계(龍溪)가 마을앞에서는 온계(溫溪)가 되고,북쪽 태자리에서 마을 동쪽으로 흘러내린 청계(淸溪)가 마을 입구에서 합수되어 쌍계(雙溪)를 이루어남쪽으로 흘러 도계(兜溪)가 되고 아래로 흘러 퇴계종택 앞에서 퇴계(退溪)가 되어하계를 거쳐 낙천(洛川)에 합쳐진다. 퇴계의 상류마을을 상계(上溪), 아래쪽을 하계(下溪), 퇴계의 남쪽 마을을 계남(溪南),재 넘어 마을을 원촌(遠村)이라 하는데 이 곳은 대개 진성이씨..

선조를 찾아서 2024.05.15

이한훈 소장의 업적

아, 이한훈 소장! 어제 재경안동향우회 송년회에서 김영식 회장이 낙향 향우인 이한훈 님에게 감사의 예를 표한 것은 만시지탄의 일이지만 매우 잘 한 일이다. 어떤 분은, 저 사람이 누구냐고? 나에게 묻는다. 이한훈에 관한 나의 기억이 이렇다. 이한훈은 진성이씨로서 나의 족친인데, 수십 년 전에는 서울시 소속의 건축 및 건설, 도시계획 분야의 유능한 기술직 공무원이었다. 그 무렵 남보다, 애향심이 강했던 그는 장차 안동으로의 낙향을 생각하면서 민선 시장 초기에 서울시청 공무원에서 안동시청으로 소속을 변경했다. 그러면서, 그가 재경안동연락사무소 초대(?) 소장이 된 것이다. 이한훈 님은 부잣집 서울특별시청에서 가난한 안동시청으로 새 장가(?)를 오면서, 엄청난 혼수(서울 강남의 요지인 남부터미널 역 인근 전자..

선조를 찾아서 2022.12.10

임인년 첫날 시조묘소참배를

임인년 첫날 시조묘소참배를 세밑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임인년(壬寅年) 첫날아침 청송군 파천면 기곡리에 있는 시조묘소 참배를 하였다. 이민걸 기곡재사 도유사님, 이영걸 안동한지 회장님, 이식락 대종회사무국장과 함께 시조묘소를 찾았더니 이경락 대종회장님과 대구. 영주. 영양의 족친님들이 함께 하셨다. 진성이씨 시조 호장공(碩자) 할아버님은 진보에 사시다가 돌아가시어 이곳(岐谷山)에 묘셔져 있고 묘소아래에는 기곡재사가 있으며 2세 할아버님(子자脩자)은 홍건적을 평정한 공으로 안사공신에 책록되고 청송과 안동을 다스리는 송안군(松安君)에 봉해졌으며 왜구들의 침략을 피해 안동으로 이거하셨고 '동방의 주자'라고 불리는 퇴계선생(滉 7세)은 성리학을 집대성하고 많은 제자를 양성하여 정신문화의 기반을 다지게 되었으며 퇴계..

선조를 찾아서 2022.01.01

퇴계의 정신

퇴계의 정신 퇴계가 벼슬을 사양하고 고향에 돌아와 제자들을 양성한다는 소식이 널리 알려지자 일찌기 영의정(領議政)의 벼슬을 지낸 바 있는 쌍취헌 권철(雙翠軒 權轍)이 서울서 퇴계를 만나보고자 도산서당을 찾아 내려오게 되었다. 권철은 그 자신이 영의정의 벼슬까지 지낸 사람인 데다가 그는 후일 임진왜란 때 행주산성(幸州山城)에서 왜적을 크게 격파하여 만고명장(萬古名將)의 이름을 떨친 권률(權慄) 장군의 친아버님이기도 했었고, 선조 때의 명재상(名宰相) 이었던 백사 이항복의 장인 영감이기도 했다 권철은 워낙 지인지감(知人之鑑)이 남달리 투철하여 불한당(不汗黨) 이나 다름 없었던 소년 이항복의 사람됨을 진작부터 알아보고, 온 門中이 극력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혼자 우겨 사위로 삼은 것은 너무도 유명한 이야기다. ..

선조를 찾아서 2021.10.12

시인 이육사의 딸 이옥비 여사

시인 이육사와 딸 옥비 여사의 고향 마을 안동 원촌 이름이 '옥비'인 분이 경북 안동에 살고 있다. 한자로는 '沃非'다. '기름져서는 안 된다'는 경고와 '윤택하게 살지 말라'는 당부가 담긴 이름이다. 시인이고 독립운동가인 이육사는 1941년, 막 백일이 된 딸에게 '옥비'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3년 후 중국 베이징의 추운 감방에서 고문받은 흔적이 역력한, 피투성이의 몸으로 세상을 떠난다. 광복을 1년 앞둔 시점이었다. 그는 베이징으로 압송되기 직전, 세 살짜리 딸을 껴안고 "아빠 갔다 오마!"라고 볼을 비볐다. 그 아기 이옥비가 올해 일흔 살이 되었고 '여사'라는 호칭으로 불리며 안동 원촌의 이육사문학관을 지키고 있다. 나는 진작부터 이옥비 여사에 관련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해마다 1월16일 ..

선조를 찾아서 2021.09.20

진성이씨 온혜파 최정숙 종부의 삶

진성이씨(眞城李氏) 온혜파(溫惠派) 퇴계생가 노송정(老松亭) 종택 안주인 최정숙(崔貞淑, 69, 법산댁)씨는 경북 성주 법산(法山) 영천최씨(永川崔氏) 가문의 종택에서 자랐다. ▲ 퇴계생가 노송정 종택 전경 영천최씨 집안 종부였던 어머니는 딸 역시 종부로 살아가는 것을 원치 않았지만, 그녀에겐 종부란 어떤 운명과도 같은 것이었던지 진성이씨 온혜파 18대 종손인 이창건(李昌建)씨에게 출가했다. ▲ 왼쪽에서 최정숙 종부, 이창건 종손 최정숙 종부 내외는 현재 노송정 종택을 지킨다. 양반의 고장 안동의 고풍스러운 고택 노송정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60호)은 이황(李滉, 1501~1570, 호 : 퇴계(退溪))이 태어난 곳이라는 이름의 ‘퇴계생가’로 불리는 집이다. ▲ 퇴계선생이 태어난 태실 경북 안동시 도산면..

선조를 찾아서 2021.09.10

退溪의書堂時節의 逸話

退溪의 書堂時節의 逸話 퇴계와 권철 퇴계가 벼슬을 사양하고 고향에 돌아와 제자들을 양성한다는 소식이 널리 알려지자 일찌기 영의정(領議政)의 벼슬을 지낸 바 있는 쌍취헌 권철(雙翠軒 權轍)이 서울서 퇴계를 만나보고자 도산서당을 찾아 내려오게 되었다. 권철은 그 자신이 영의정의 벼슬까지 지낸 사람인 데다가 그는 후일 임진왜란 때 행주산성(幸州山城)에서 왜적을 크게 격파하여 만고명장(萬古名將)의 이름을 떨친 권률(權慄) 장군의 친아버님이기도 했었고﹐ 선조 때의 명재상(名宰相)이었던 백사 이항복(白沙 李恒福)의 장인영감이기도 했다. 권철은 워낙 지인지감(知人之鑑)이 남달리 투철하여 불한당(不汗黨)이나 다름 없었던 소년 이항복의 사람됨을 진작부터 알아보고 온 門中이 극력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혼자 우겨 사위로 삼은..

선조를 찾아서 2021.08.13

퇴계 선생의 처가(妻家) 마을 ‘초곡(草谷)’

퇴계 선생의 처가(妻家) 마을 ‘초곡(草谷)’ 기자명 영주시민신문 입력 2016.09.24 11:37 수정 2021.03.31 12:27 호수 586 우리마을탐방[117] 휴천3동 초곡-사일 ▲ 초곡마을 전경 퇴계, 21살 때 초곡방 허씨 낭자에 장가들다 지방 사족(士族)들의 교유가 활발했던 마을 초곡 가는 길 초곡(草谷)은 영주시청 뒷산 넘어 남향해 있는 마을이다. 영주시내에서 남산고개를 넘어 문수 방향으로 향한다. 수청교(황소걸음)를 건너 100여m 내려가다가 농협파머스마켓 가기 전 수청정미소 앞에서 우측으로 접어든다. 사일교 다리 건너 우회전하면 ‘창계선생유허비’가 보인다. 여기서 왼쪽 산자락으로 난 좁은 길을 따라 300m 쯤 가서 경북선 굴다리 밑을 통과 하면 바로 초곡이다. 지난 3~5일 초곡..

선조를 찾아서 2021.08.12

도산서원 소장 ‘소수서원 입원록(入院錄)’「인물편」

우리고장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을 찾아서 [37]도산서원 소장 ‘소수서원 입원록(入院錄)’「인물편」 기자명 이원식 기자 입력 2021.07.05 12:55 수정 2021.07.05 13:02 호수 820 소수서원 입원록 1권 ② 인물편 소수서원 강학당에서 영주소삼회 회원들이 백록동서원규를 성독하고 있다(2021.5) 최초 입원자 3인, 박승건(순흥)·신원록(의성)·김팔원(안동) 민시원·민응기 부자, 퇴계 1549년 소백산 오를 때 수행 장수희, 퇴계가 ‘최락당’ 써 준 첫 제자, 이산서원 설립 주역 좌의정 지낸 ‘정탁’, 미래 예고한 ‘남사고’, 소수서원 원장 ‘안구’ 소수서원 입원록 소수서원은 주세붕 풍기군수(1541.5-1546.3)에 의해 창건되고, 유경장 군수(1546-1548)에 의해 경상도관찰사..

선조를 찾아서 2021.08.12

시조할뱀 자료

이석(李碩): 본관은 진보(眞寶)이다. 할아버지는 송주(松柱)이고, 아버지는 영찬(英贊)인데, 모두 호장(戶長)을 지냈다. 생몰연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시조공묘갈명(始祖公墓碣銘)」에 의하면, 그의 아들 이자수(李子脩)가 고려 1364년(공민왕 13)에 봉상대부(奉常大夫) 지춘주사(知春州事)로서 홍건적(紅巾賊)을 평정하였고, 그 덕분에 안조공신(安祖功臣)에 책록되고 송안군(松安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이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이석은 대략 충렬왕과 충선왕 때 인물로 추정할 수 있다. 이석은 고려 말엽에 진보현(眞寶縣)의 관리로서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였다. 그 뒤 아들 이자수(李子脩)가 나라에 공을 세운 덕분에 이석은 봉익대부(奉翊大夫) 밀직사(密直司)에 증직(贈職)되었다. 이석은 천성이 매우 공손..

선조를 찾아서 2021.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