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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치는 것과 부족한 것

오토산 2019. 1. 19. 13:48



        넘치는 것과 부족한 것

                                         

 

나는 술을 무척 좋아한다.

내가 처음으로 술을 먹었던 것은 초등학교 때 일 것이다.

어른들과 형들은 모두 저녁 늦게까지 들일을 하시느라 정신이 없으시고

일꾼도 얻었는데, 술을 받아올 사람이 없었다.


저녁 어스름에 나는 2되들이 누런 양은 주전자를 들고 집에서 십리 떨어진

 면소재지 양조장으로 걸어가서 술을 받아오곤 하였는데,

그때 호기심으로 가끔씩 주전자에 입을 대고 조금씩 맛을 보곤 했었다.

 또 어머니는 드물게 디딜방아에 곱게 빻은 누룩으로 술을 빚고 하셨는데

가끔은 입맛이 없다고 하시며 술에 사카린을 타서 찬밥을 말아 드셨다.


옆에 있던 나는 어머니가 드시던 술에 말은 밥을 몇 숟갈씩 떠먹어 본적이 있었다.

그 때는 사실 별다른 맛을 느끼지 못하고 먹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고등학교에 와서는 술 받으러 가면 자주 주전자에 입을 대고

술을 빨아먹었다.

그러다 주전자 뚜껑을 열어보고는 놀란 적도 여러 번이다.

주전자가 움푹 들어간 것이다.

 나는 얼른 도랑물로 주전자를 처음처럼 가득 채웠다.


 집에 돌아가면 변명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었다.

이런 날은 일꾼들이 여지없이 술이 싱겁다고 이구동성으로 한마디씩 하였다.

아버지는 술을 거의 드시지 않으셨지만 우리 4형제들은 모두 술을 좋아한다.

이런 우리 형제들을 보고 어머니께서는 외탁을 한 모양이라고 하셨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내가 술을 좋아하는 것은 꼭 술이 엄청나게,

감칠 맛나게 맛있다는 것보다도 술잔 위에 둥실 뜨는 이야기가 좋고

 사람에게 삶에 여유, 사유의 공간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또 사람은 먹는 자리에서 쉽게 친해진다고 하는데,

남자들 사이에서는 술이 더욱 더 그런 음식일 것이다.


나는 대학 시절부터 무척 술을 즐겼는데 아무리 자주 술을 마시고 해도

배탈 한 번 난적이 없었다.

나는 스스로 술에 대해서는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으며,

친구들에게 그렇게 떠벌이기도 했다.

 나는 술중에서도 특히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어릴 적의 아련한 추억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막걸리는 맥주나 양주 보다 깔끔한 분위기는 없지만

운치 있고 한결 넉넉한 느낌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어떨 때는 막걸리를 쏟아서 옷이 뿌옇게 물들기도 하여 행주로 쓱쓱 문질러 보기도

하지만 그것은 지저분하기보다는 여유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5년 전의 일이다.

광주에 있는 전남대학교에서 연수를 받았는데,

그날도 연수를 마치고 연수 온 동료들과 생맥주를 한잔씩 하게 되었다.

술자리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배가 쌀쌀 아파왔다


여태껏 술 먹고 배가 아파 본적이 없는 터라 적잖게 당황하였다.

그 이후로 나는 계속 소화가 안 되고 배가 무겁고 부담스러워서 병원도 여러 번 가고

약을 먹으며 치료를 해도 영 시원치 못하였으므로 집에서도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한약도 먹고 종합병원에도 가보고 민간요법도 해보고 참으로 고생이 많았다.

태어나서 이렇게 약을 많이 먹어보고 병원을 들락거린 것도 처음이었다.

 그 때부터 자연히 술을 멀리하게 되었다.

회식 자리에 가는 것도 즐거움이 아니라 고역이었다.

그 좋아하는 술을 곁에 두고서 콜라 잔이나 만지작거리며,

연신 마시고 있는 것이 정말 고역스러웠다.


회식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기는커녕 오히려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었다.

친구들을 만나는 횟수도 줄어들고 관계도 소원해지는 것 같았다.

"술에는 장사가 없다"는 말이 정말 실감이 났다.

그 동안 자신의 건강만 믿고 절제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 후회가 되었다.

술을 먹지 않으니 아니 먹지 못하니 퇴근도 일찍 하게 되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하지만 그것만이 진정한 삶의 여유는 아닌 것 같았다.

 다행히 열심히 치료한 덕분에 요즘은 막걸리 두어 잔은 비울 수 있게 되어

 너무나 감사하며 살고 있다.

다시 그 넉넉한 삶의 여유를 되찾은 느낌이다.


"넘치는 것은 부족한 것만 못하다(過猶不及)는 말이 있다.

“ 요사이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동안 나는 넘치도록

술을 먹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모든 것은 적당할 때가 가장 좋은 것인데,

우린 그걸 알면서도 지키지 못하여 여러 가지 고통을 받게 되고 후회하게 된다.

 내 생활에서 넘치는 것과 부족한 것을 다시금 생각해 봐야겠다.

 

<sn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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