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02-(100)
*함경 감사 유한준의 궤변.
김삿갓은 순천 사또 류현진(柳賢眞)이
<악명 높은 유한준(柳漢俊)의 손자>라는 말을 듣고 크게 놀랐다.
김삿갓은 물론 유한준을 생전에 직접 만나 본 일은 한번도 없었다.
그러나 남달리 간지(奸智)에 능한 그는, 세상 사람들 사이에는
표리부동(表裏不同)한 인물로 알려져,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면서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형조참판, 함경 감사, 호조판서 등의 권세를 한없이 누려온,
세도가 사이에서도 유명한 기회 주의자로 알려져 있는 인물이었다.
유한준은 가는 곳마다 토색질이 어떻게나 심했던지,
한때에는 <유한준이 앉아 있던 곳에서는 풀 한포기조차 나지 않는다>는
비난성의 말조차 떠돌 지경이었다.
그가 함경 감사로 있을 때에는 이런 일화가 있었다.
그는 함경 감사로 내려오기가 무섭게 인정사정 없이 토색질을 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돈 많은 부자들을 한 사람씩 불러다가 무지막지하게 볼기를 쳐갈기며,
"이놈아 ! 네 죄는 네가 알렷다 ! "하고 다그치는 바람에,
부자들은 죄목도 없이 형편에 따라서 이만 냥씩 삼만 냥씩
돈을 마구 바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부자들의 돈을 엄청나게 우려냈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했던지,
다음번에는 중농층(中農層)까지 붙잡아다 볼기를 쳐대어 ,
이백 ,삼백 냥씩을 사정없이 거두어 들였던 것이다.
감사란 자가 이렇게도 토색질이 혹심하다 보니,
백성들의 생활 형편은 말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참다 못한 백성들은 암암리에 임금님께 상소장(上訴狀)을 올려,
유한준의 직위를 박탈하여 함경 감사직에서 추방해 버릴 것을
청원(請願)하는 준비가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그 당시로 보면, 백성들이 감사 추방을 청원하는 일은 생각조차 할수 없는 일이었건만,
백성들은 어차피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기가 매일반 이어서,
죽음을 각오하고 그런 준비를 전개 하였던 것이었다.
그러나 백성들의 이러한 움직임을 간파한 유한준은 백성들을 회유하기 위하여
비상한 꾀를 내게 되었다.
그리하여 어느날, 넓은 감영 정원에 음식을 요란하게 차려 놓고
자신의 배척 운동에 나선 백성 모두를 한 사람도 빼지 않고 모조리 초청하였다.
그리고 술과 진수성찬을 배가 터지도록 먹여 놓고 ,
다음과 같이 절묘한 연설을 하였다.
" ..... 너희들이 나를 배척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너희들이 짐작하다시피, 나는 돈을 십만 냥이나 쓰고 함경 감사가 되었다.
그러니까 나도 재직중에 본전을 뽑아내야 할 게 아니겠느냐 ? 어찌 본전뿐이겠느냐.
이자도 약간은 붙여 먹어야 할 게 아니겠느냐 ? 이런 관계로
지난 몇 해 동안 너희들을 많이 괴롭혀 왔었다.
그러나 오늘로써 본전과 이자를 깨끗이 거두어들였으므로,
이제는 너희들을 조금도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너희들은 그런 사정도 모르고 나를 쫒아내려고 한다지만,
만약 감사를 새 사람으로 모셔왔을 경우를 생각해 보아라.
그러면 그 사람도 나처럼 본전과 이자를 뽑아내려고 너희들을
또다시 볶아댈 게 아니겠느냐 ? 너희들은 그런 점은 왜 모르고,
어리석게도 나를 배척하려고 하느냐 ...... "
정말 기기괴괴한 궤변이었다.
그러나 순박하기 짝없는 백성들에게는 그 궤변이 전폭적으로 먹혀들어가서,
유한준은 <배척 운동>이라는 그 난관을 무사히 넘겨 버릴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순천 부사 류현진이 다른 사람이 아닌 유한준의 손자라고하니,
김삿갓은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간동 대감댁 직손이라면
, 사또께서는 어찌하여 이런 산골 원님으로 내려와 계시옵니까 ? "
"물론 자네 말대로 나는 이런 산골 구석에서 썩을 사람이 아니지.
엊그제 한양에서 내밀한 기별이 내려왔는데,
나는 명년 봄에는 호조 참판에 제수되어,
한양으로 올라가기로 되어 있다네."
그 말을 듣고 김삿갓은 기가 막혔다.
사또 류현진은 살인범 하나도 잡아내지 못해 상금을 걸고 해결하려는
무능력자가 아니던가. 그런자가 어떻게 일국의 호조 참판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네 ? 호조 참판으로 영전되신다구요 ? "
"이 사람아 !
호조 참판이 문젠가. 두고 보게 !
나는 한양으로 올라 가면 삼 년 안으로 판서 자리 하나는 꼭 따내고야 말 생각이네.
그래서 자네에게 특별히 부탁하고 싶은 일이 하나 있단 말일세."
"특별한 부탁이라면 ?
... 혹시 제게도 감투 하나 씌워 주시겠다는 말씀입니까 ? "
김삿갓은 비꼬아 주는 심정으로 물어 보았다.
그러자 유 사또는 고개를 흔들며,
"이 사람아 !
감투라는 것은 아무나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야 !
... 실은 나에게는 늦게 얻은 아홉 살 먹은 사내자식놈이 하나 있네.
그 녀석은 공만 가지고 놀기만 하고, 글읽기를 싫어한단 말야.
그래서 내가 한양으로 영전되어 갈 때까지,
자네가 그애에게 글을 좀 가르쳐 달란 말일세.
보수는 얼마든지 줄테니,
아이가 공부를 제대로 하려면,
자네처럼 머리가 비상한 사람이 가르쳐야 하지 않겠나 ? "
김삿갓은 생각지 못한 부탁을 받고 기가 막혔다.
아울러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고 하여도 ,
간신의 자식에게 글을 가르쳐 줄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할애비 때부터 대대로 내려오며 백성들의 등이나 쳐먹고 살아온 탐관오리가,
자식에게 글을 배워 주어 무엇에 쓰겠다는 말인가.
차라리 어렸을 때부터 토색질하는 수법이나 가르쳐 주는 것이 낫지 않겠나 ?)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본인에게 대놓고 말할 수는 없어서,
"글이라는 것은 아무리 많이 배워도 돈이 되는 것은 아니올시다.
돈도 안되는 글을 배워 주실 게 아니라,
어려서 부터 돈 모으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는게 어떻겠습니까 ? "하고 말했다.
그것은 얼굴에 침을 뱉는 것보다도 더 심한 독설이었다.
그러나 유 사또는 그런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그야 물론 글이 돈만 못한 것은 사실이겠지.
그러나 글을 배워야 벼슬을 할 수 있고,
벼슬을 해야만 돈이 쉽게 생길게 아니겠나.
자네한테 아이를 부탁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일세."
유 사또의 말을 듣고 김삿갓은 눈앞이 아찔해 올 지경이었다.
그리곤 입을 굳게 다물고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러자 사또는 다시 입을 열어 말한다.
"거듭 말하거니와,
보수는 자네가 요구하는 대로 줄 테니,
내가 한양으로 영전되어 올라갈 때까지만 자식놈을 꼭 좀 맡아주게."
...계속 101회로 ~~~
<sn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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