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개풍군수의 마부를 살린 김삿갓

오토산 2020. 5. 13. 21:49

●방랑시인 김삿갓 02-(17)

개풍군수 강호동의 馬夫 살리기.

 

장단을 떠나온 김삿갓은 개풍(開豊) 땅으로 들어섰다.

이날 밤 김삿갓은 어느 마을에 있는 서당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서당의 훈장의 이름은 이윤성(李允成)이었는데 ,

 인물이 풍채도 좋았지만 선량해 보이는 선비였다.


그런데 훈장은 무슨 걱정거리가 있는지 ,

 김삿갓과 마주 앉아서도 연신 한숨만 푹푹 쉬고 있었다.

김삿갓은 그런 광경을 보다못해 이렇게 물어 보았다.


"훈장께서는 어떤 걱정꺼리가 있기에 이렇듯 한숨을 쉬고 계시오 ? "

 그러자 훈장은 몇 번의 한숨을 더 쉬곤 ,

 간신히 입을 열었다.


"나는 오십 평생에 남에게 못할 짓은 안하고 살아 왔는데 ,

 오늘은 사람을 죽이는 실수를 하고 말았으니,

어찌 마음이 괴롭지 않겠습니까."

 

김삿갓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사람을 죽이다니요 ?

그게 무슨 말씀이오 ? "

 

"알고 보면 기가 막힌 일이지요."

 

"무슨 말씀인지 나는 도무지 알 수 없군요."

 그러자 훈장을 다시 한번 한숨을 쉬면서 이렇게 말을 하였다.

 

훈장은 신경통이 있어 ,

낮에 지팡이를 짚고 쩔룩 거리며 이웃 마을 주부(主簿: 의원)에게

침을 맞으러 가는 중에 ,나이가 연만한 장년의 한 사람을 만났다.


그런데 그 사람은 무엇에 쫒기는지 헐레 벌떡 뛰어와,

 "지금 , 나를 원수로 여기는 자가 칼을 들고 쫒아오고 있으니,

그 놈이 나의 행방을 묻거든 모른다고 대답해 주시오." 하면서

 숲속으로 도망을 가버렸다는 것이다."

 

그런 일이 있은 잠시 후 ,

과연 험상궂게 생긴 젊은 놈이 손에 시퍼런 장도(長刀)를 들고 나타나,

훈장의 가슴에 벼락같이 칼을 들이대며,


 "지금 이리로 도망하는 자를 보았지 ?

 그놈이 어디로 도망했느냐.

바른대로 말하지 않으면 죽여 버린다." 하였다는 것이다."

 

너무나 엉겹결에 당한 일이라 , 훈장은 눈앞이 캄캄해 왔다.

그러면서, 죽지 않으려고 본대로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칼을 든 자가 훈장의 말을 듣고 숲속으로 쫒아 들어 갔는데 ,

 잠시후에 숲속에서 비명소리가 들려 온 것을 보면 ,

도망간 사람이 칼을 들고 쫒던 흉악한 젊은 놈에게

목숨을 잃은 것이 분명해 보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훈장이 자책을 하는데,

"내가 오늘 그런 실수를 저질렀으니 ,

그것은 내가 사람을 죽인 것과 무엇이 다르겠소." 하며 괴로워하는 것이었다.

 

듣고 보니 ,훈장이 괴로워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누구라도 그런 경우를 당했다면 ,

죄 없는 사람을 자기가 죽인 것 같은 심정이 될것 이다.

이렇듯 생각이 된 김삿갓은 잠시후 훈장에게 이렇게 말을 하였다.


"그 사람을 살려줄 방도가 전혀 없지도 않았을 것인데,

 워낙 다급했던 관계로 그런 실수가 있으셨군요."

 

그러자 훈장은 눈을 크게 뜨며 반문했다.

"선생 같으면 그 사람을 살려 줄 방도가 있었다는 말씀이군요 ! "

 김삿갓은 훈장의 체면을 생각해서 조심스럽게 말을 했다.

 

"글쎄올씨다. 선생이 다리가 불편하여 지팡이를 짚고 계셨다면,

칼을 든 젊은 놈이 나타나 도망치던 사람의 행방을 묻기전에 ,

 선생이 눈을 감고 장님 행세를 하고 있었다면, 화를 면할수 있지 않았을까요 ? ..

설마하니 장님에게 도망간 사람을 보았냐고 묻지는 않았을 것이니까요."

 

"옛 ?

 장님 행세를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요 ? "


훈장은 김삿갓의 절묘한 계교를 듣자 자기 가슴을 주먹으로 치면서,

"아뿔싸 !

선생 말씀대로 그때 , 눈을 감고 장님 행세를 했더라면 ..

아 아 , 그 사람을 살릴수 있었을텐데..

내가 워낙 멍청해서 두 눈을 뻔히 뜨고도 죄 없는 사람을 죽게 하였으니 ,

 이런 기가막힌 실수가 어디있단 말이오 ! "하면서 새삼스레 괴로워 한다.

 

김삿갓은 민망한 생각이 들어 이제는 훈장을 위로해 주어야할 판이었다.

"선생이 도망가던 사람에게 원한이 있어 그런 것은 아니니

 너무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물론 원한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지요.

 그러나 잘 잘못을 떠나서 결과적으로 한 사람을 죽게 만들었으니

마음이 괴로운 것이지요. 선생 말씀을 들어 보면 ,

그 사람을 살릴수 있는 방법도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나저나 선생은 어쩌면 그처럼 죽을 사람을 살려낼 수 있는

 절묘한 생각을 해내셨소 ? "

훈장은 거기까지 말을 하다가 별안간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

김삿갓의 두 손을 덥석 움켜 잡으며 아래와 같은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선생 ! 내 조카 아이가 꼭 죽게 되었는데 ,

선생이 어떤 방도로 그 아이를 살릴수 있겠는지 말씀 좀 해 주십시요.

 선생이라면 그 아이를 살려 주실 수 있을 것 이옵니다."

 

밑도 끝도 없는 훈장의 이같은 말을 들은 김삿갓은 어리둥절 하였다.

"저는 의원이 아니올시다.

 병으로 죽게 된 사람을 제가 어떻게 살릴 수 있겠습니까 ? "

 

그러자 훈장은 손을 설레설레 내저으며,

"나는 병으로 죽게 된 사람을 살려 달라는 것이 아니고 ,

이 고을 사또에게 미움을 사서 죽게 된 내 조카 아이를 살려 달라는 말씀입니다.

 선생 같은 분이라면,

곧 죽게 되어 있는 내 조카를 충분히 살려 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사또에게 미움을 사서 죽게 되었다니요 ?

세상에 아무리 사또의 세도가 좋기로 사람을 함부로 죽일 수야 있겠습니까 ? "

 

"그러게나 말입니다.

 내가 자초지종을 말씀 드릴테니 , 제 말씀을 좀 들어 보세요."

그러면서 훈장은 김삿갓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들려 주었다.


훈장의 조카, 무송(武松)이는 개풍 군수 강호동(姜浩童)의 마부로 있는 사람이다.

강 사또는 워낙 성질이 불 같이 사납고

기골이 장대한 인물로써 말(馬)을 유난히 좋아 하였다.

이곳 개풍 군수로 부임해 올 때 조차 ,

한양에서 타고 다니던 애마(愛馬)를 끌고 왔을 정도인데,

무송이는 그 말을 양육하는 책임을 맡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무송이가 잘 못 하는 바람에 그 말이 죽고 말았다.

이에 강 사또는 노발 대발하며 무송이를 그날로 옥에 가두고 ,

수 일 안에 사형에 처해 버린다는 것이었다.

 김삿갓은 훈장의 말을 듣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사또가 아무리 세도 등등한 벼슬 자리이기로 ,

 말 한 필 죽인 책임을 물어 , 사람을 함부로 죽일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누가 아니라오.

 그러나 강 사또는 워낙 감때사나운 사람이라 ,

그냥 내버려두면 내 조카놈은 죽음을 면키는 어려울 것이오.

그러니까 선생이 제갈공명 같은 꾀를 쓰셔서 ,

내 조카놈을 꼭 좀 살려 주소서.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그 은혜는 결코 잊지 않겠소이다."

 

그러나 한낱 걸객 시인에 불과한 김삿갓으로서는 

 무송이가 죽지 않토록 힘쓸수가 있으랴 ..

김삿갓은 훈장의 말을 듣고 안타까운 마음이 앞섯지만 ,

다른 한편으로는 억울하게 죽게 된 사람을 구출해 주고 싶은 마음도 간절하였다.


그래서 전,후의 사정을 알아야 하겠기에 훈장에게 물었다.

"도데체 강 사또라는 사람은 누구의 힘으로 사또가 된 사람입니까 ? "

 

그러자 훈장이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한다.

"글쎄 올씨다.

강 사또가 누구의 천거를 받아 사또가 되었는지는 ,

 우리 같은 사람은 알 길 없지요. 다만 ,

 강 사또의 할머니가 안동 김씨라는 말은 있더군요."

 

김삿갓은 안동 김씨의 세도가 이곳까지 미쳤는가 싶어 ,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강 사또가 안동 김씨의 힘을 빌어 사또가 되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 입니까 ?"

 

"떠도는 소문이 그렇다는 것이지 , 사실 여부는 알 길이 없지요.

그러나 옛 말에 발 없는 말(言)이 천리를 간다고 하는 것을 보면 ,

 전혀 근거 없는 소리는 아닌것 같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아무튼 내가 내일 읍내로 들어가 강 사또를 한번 만나 보지요.

그렇다고 죽을 사람을 살려 낼 자신이 있는 것은 아니니까,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십시오."

 

"아니올시다.

선생이 내 조카를 꼭 살려 주시리라 믿고 ,

기쁜 소식을 기다리겠습니다."

 

김삿갓은 이날 밤 서당에서 후한 대접을 받고 ,

 다음날 아침 개풍 군수를 만나 보려고 읍내로 떠났다.

죽게 된 사람을 살려 낼 방법이 있어서 사또를 만나려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 죄가 가벼운 사람을 죽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되겠기에 ,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려내려면 사또를 만나,

 저간의 사정을 들어야 하겠기 때문이었다.

김삿갓은 석양 무렵에 개풍 관아에 당도하였다.

 

그러나 동헌 정문을 지키는 두 명의 군관 사령은

가까이 다가오는 김삿갓을 향하여 호령을 친다.


"이 거지같은 놈아 !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접근해 오느냐, 당장 꺼져 버리거라 ! "

 

그러나 김삿갓은 태연하게 버티고 서서 ,

군관 사령에게 이렇게 말을했다.


"이 사람들아 !

어따대고 큰 소리를 치는가 ?

자네들은 속히 사또에게 한양에서 안동 김씨가 되는 사람이 찾아 왔노라고 고하라 !

그러면 사또가 반갑게 맞을 것이네. "

 

그러자 군관 사령이 저희끼리 얼굴을 마주보며 어쩔줄을 몰라한다.

 김삿갓은 이때다 싶어 , 한번 더 호령하였다.


"어 허 ! ,

내 말을 사또에게 속히 전하지 못하고 무엇을 꾸물거리고 있는가 !"

 

높은 양반을 모시는 아랫것들은 약자(弱者)에게는 강해도 ,

강자(强者)에게는 약한 법이다.

 

김삿갓이 이렇듯 호령을 치자 , 군관 사령들은 금시, 모가지가 자라목이 되며 ,

"네 네, 알겠습니다.

한양에서 내려 오신 ,

안동 김씨라는 어른이 오셨다고 사또 전에 여쭙고 오겠습니다."

군관 사령 하나가 부리나케 안으로 들어 가더니 ,

잠시후 사또가 황급한 걸음으로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사또는 김삿갓의 초라한 행색을 보더니

금새 발걸음을 천천히 하면서 다가오는데 ,

그의 얼굴에는 김삿갓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표정이 보였다.

 

"어디서 온 사람인가 ?"

사람은 아주 우습게 보는 말투였다.

 

김삿갓은 ( 이게 아니다 싶어) 본의 아니게

또 다시 큰소리를 치는 수 밖에 없었다.


"나는 하옥(荷屋) 대감의 밀명을 받고 ,

 관서 지방으로 민정 시찰을 나온 사람이오.

이름은 "병(炳)"자 돌림을 쓰오."

하옥 대감이란 안동 김씨의 총수인 김좌근(金左根) 대감의 속칭이었다.

 

강 사또는 "하옥 대감" 이라는 말을 듣고 경풍 하듯 놀라더니 , 

 김삿갓에게 대뜸 머리를 정중히 수구리며 이렇게 말을 하였다.

"

귀하신 몸으로 이렇듯 어려운 걸음을 해주시니 ,

 저희 고을로썬 , 다시 없는 영광이옵니다.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강 사또는 앞장서서 김삿갓을 객사(客舍)로 정중히 안내해 들어오더니 ,

육방 관속을 모조리 불러다가 인사를 시키려고 하였다.

 

그러자 김삿갓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나는 이미 말한 바와 같이 하옥 대감의 특명으로

비밀리에 민정을 살피러 다니는 몸이오.

따라서 나의 정체가 알려지는 것은 삼가 하시기 바라오."

암행어사라는 말만 하지 않았다 뿐이지 ,

 은연중에 그런 암시를 해보였다.

 

그러자 사또는 더욱 굽신 거리며 ,

"무슨 말씀인지 , 알아듣겠습니다.

그러면 잡인들은 일체 접근하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이 날 저녁 ,

사또의 대접은 융숭하기 이를데 없었다.

 

그는 김삿갓에게 술을 대접하면서,

 "저의 조모님과 하옥 대감은 팔촌 남매간이옵니다.

 제가 개풍목(牧)으로 오게 된 것은 하옥 대감의 덕택입지요." 하고

 묻지도 않은 말까지 실토하였다.

 

훈장을 비롯해,

개풍군 백성들간에 떠도는 소문은 역시 헛소문이 아니었던 것이다.

 

"내가 어제 이곳 개풍 고을 여기 저기 다녀 보았는데 ,

사또의 마부가 말을 죽인 죄로 머지않아 사형을 당하게 되었다는 소리가 있던데

그 소문이 사실인가요 ?"

김삿갓이 이렇게 묻자 , 강 사또는 머리를 굽실거리며 대답한다.

 

"제 수하에 무송이라는 마부놈이 있사온데 ,

그 놈은 성질이 매우 포악한 놈이옵니다.

얼마전에는 제가 사랑하고 아끼는 말을 고의로 죽여 없앴기에 ,

 만 백성들에게 사또의 권위를 보여 주려고 ,

지금 하옥을 시켜 놓고 있는 중이옵니다."

 

"음 ..

사또가 아끼는 말을 고의로 죽였다구요 ? ....

그런 괘씸한 놈이 어디 있단 말이오."

김삿갓은 사또를 두둔하며 분개하는 빛을 보였다.

 

그러자 김삿갓의 눈치를 살피던 사또가 안심하며 말을 하는데,

"사실 , 괘씸하기 짝이 없는 놈이옵니다.

 목숨이 아까운 점으로 보아서는 살려두고 싶으나

일벌 백계 (一罰百戒)를 위해 사형에 처할 생각이옵니다."

 

김삿갓은 다시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사또 ! 그 마부란 놈은 세가지 중죄를 범한 셈이요.

 그놈의 죄질은 사형도 오히려 부족할 지경이오."

 

사또는 너무도 뜻밖의 말에 ,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그놈은 말을 죽였을 뿐이온데,

 세 가지 중죄를 범했다는 것은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말 한 필을 죽인 것이야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요.

 그러나 그 일외에 두 가지 죄를 더 짓게 되었는데 ,

그 죄야말로 용서할 수 없는 중죄(重罪)인 것이오."

 

강 사또는 김삿갓의 말을 들을수록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

"두 가지 죄란 어떤 죄를 말씀하시는 것이옵니까 ? "

 

"거듭 말하거나와 , 말 한 필 죽인 것이야 무슨 중죄라고 할수 있겠소.

그러나 말을 죽임으로써 사또로 하여금 살인죄를 범하게 하였으니 ,

그 어찌 중죄라 아니할 수가 있겠소 ? "

 

사또는 그 말을 듣고 얼굴이 창백해지며,

 "에엣 ? ..

사또인 저로 하여금 살인죄를 범하게 하였다고요 ? "

 

"그렇소이다 ...

말을 죽이지 않았던들 , 사또가 그놈을 죽이지 않을 것이 아니오.

그러니 사또로 하여금 살인죄를 범하게 한 장본인은 마부놈이

 아니고 누구겠소이까 ? "

 

이에 강 사또는 크게 당황하는 빛이 역력하였다.

"현명하신 어른의 말씀은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저는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사또께서 거기까지 생각해 보지 않으셨다면 ,

그 사건을 너무 소홀하게 다룬 감이 없지 않구료.

게다가 그 마부란 놈이 사형을 당하면 ,

사또에게 또 하나의 중죄를 범하게 되는 것이요."

 

"도대체 또 하나의 죄란 무엇인뎁쇼 ?"

강 사또는 안색이 시시 각각 창백해지며

김삿갓의 말에 기가질려 버린듯 말소리 조차 떨고 있었다.

 김삿갓은 강 사또에게 귀띔이라도 해주듯 나지막한 소리로 은밀히 말했다.


"생각해 보시오. 만약 사또께서 수하로 부리는 마부가 말 한필을 죽게 하였다고 ,

죄를 물어 그를 죽였다고하면,

그 소문이 멀지않아 전국 각지에 퍼져 나갈 것이 아니겠소 ? "

 

"글쎄올시다.

그놈을 죽이면 그런 소문이 널리 퍼지게 될까요 ? "

 

"물론이지요.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하지 않소이까 ?

더구나 나쁜 소문일 수록 빨리 퍼지는 법이라오."

 

강 사또는 그 말을 듣고 크게 당황하면서,

"그렇게 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겠습니까 ? "

 

"그야 뻔한 일이 아니오 ?

( 개풍군수 아무개는 백성의 목숨을 말의 목숨보다도 가볍게 여긴다)는

소문이 퍼지게 될 것은 틀림이 없지요.

그리고 그런 소문이 상감 마마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는 날이면

그때는 사또도 무사하기가 어려울 것이오."

 

강 사또는 그 말을 듣자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며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몸을 부들부들 떨기까지 하였다.

 그러면서 김삿갓의 손을 덥썩 움켜잡으며 애원하듯 말한다.


"그러면 이 일을 어찌 했으면 좋겠습니까 ?

 어르신께서 슬기로운 지혜를 베풀어 주소서."

 

"글쎄올시다.

 워낙 중차대한 사건이어서 ,

나로서는 뭐라고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구료."

 

김삿갓은 의도적으로 말을 끊고, 잠시 생각에 잠긴듯 보이다가,

"결자 해지(結者解之:엮은 사람이 푼다)라는 말이 있지 않소이까.

이 일을 원만하게 해결할 방도는 오직 사또의 손에 달려 있을 것이오." 라고

 말해 주었다.

 

그러자 강 사또는 결심이 선 듯 ,

"마부 무송이 놈을 죽이지 않고 풀어 주면 어떻겠습니까 ? "

 

"그야 풀어 주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 되겠지요.

 그러나 사또의 위신이 온존 하겠소 ? "

 

"어르신 말씀 하신대로 ,

더 큰 화를 당하기 전에 내일 아침 풀어 주는 것이 저의 위신보다 중 할 것 같습니다."

 

"사또의 말씀대로 하시오."

 

"그런데 마부놈은 풀어 주는데 ,

어르신께 특별히 부탁드리고 싶은 말씀이 하나 있사옵니다."

 

"무슨 부탁입니까 ? "

 

"어르신께서 한양에 가시더라도 ,

이번 일에 대해서 하옥 대감께는 아무 말씀도 하지 말아 주시옵소서.

 간곡히 부탁드리옵니다."

 

김삿갓은 즉석에서 파안 대소하였다.

"하하하 ,

강 사또는 하옥 대감께서 천거한 사람이 아니오.

 이런 일을 어찌 하옥 대감께 보고할 것이오.

그런 걱정은 마시고 ,모든 것을 원만히 해결할 대책을 찾았으니 ,

이제는 술이나 유쾌하게 마십시다."


김삿갓은 얼굴조차 모르는 무송이라는 마부를

살려주게 된 것이 무엇보다 기뻐 크게 웃었다.

그리하여 사또가 권하는 술을 사양하지 않고 통음하였다.

 

다음날 아침 김삿갓이 길을 떠나려고 하자,

강 사또는 며칠만 더 지내다 가시라고 하며,

김삿갓을 한사코 붙잡고 늘어지는 것이었다.

 

김삿갓은 마지못해 사흘 동안이나 강 사또로 부터 최고의 대접을 받다가

나흘째 되는 날 길을 떠나려고 하자 ,

강 사또는 멀리까지 배웅을 따라 나오며 말한다.

 

"송도로 가시는 길에 ,

송도 팔경의 하나로 유명한 진봉산(進鳳山) 철쭉꽃을 꼭 구경하고 가시옵소서.

일찌기 고려 시인 변계량(卞季良)은 진봉산 철쭉꽃을 구경하며

 유명한 시를 읊은 일도 있사옵니다."

 김삿갓은 그 소리에 귀가 번쩍 트이는 것 같았다.


"진봉산 철쭉꽃이 그렇게도 유명하다니 ,

꼭 들려서 구경하고 가오리다."

 그러자 강 사또가 변계량의 시를 읊어 보이는 것이었다.

 

<오솔길은 멀리 산봉우리로 비껴있고,

흰 구름은 땅에 내려 승가를 덮었구나,

산 속의 옛 절들은 모두가 비슷한데,

철쭉꽃은 봄바람에 간 곳마다 달리 피어있네.>

 

...계속 2-18회로~~~


<sns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