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퇴계인문아카데미 회원들이 성주 한개마을을 다녀와서

오토산 2026. 9. 19. 08:41

퇴계인문아카데미 회원들이 성주 한개마을을 다녀와서

 

1940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한국독립군을 창설하였던  9월 17일

퇴계인문아카데미 회원들이 성주지역에서 회연서원과 성밖숲을 답사하고

예전에 큰 나루가 있었던 한개마을로 가서 황금들판이 펼쳐진 마을입구에서

회연서원에서 만났던 문화해설사님을 만나서 함께 답사를 하였다.

 

전국에 민속마을로 지정된 곳이 8개소이고 경북에는 안동 하회, 경주 양동, 

영주 무섬, 영덕 괴시마을과 함께 한개마을도 민속마을로 지정된 곳이라며

한개마을은 조선 세종때 이우(李友)선생이 입향하여 개척한 뒤 그 후손들이

마을을 이어 오는 성산이씨 집성마을로 60여채의 전통가옥이 있다면서

마을유래를 설명하시고 마을안으로 안내를 하였다.

 

냉온수기와 양심우산이 배치되어 있는 관광안내소를 지나

우리는 예안에서 시집을 와서 '예안댁'이라 불렸던 <진사댁>으로 갔다.

 

진사댁은 1796년 이주진선생이나 1858년 이문상선생이 건립한 것으로 

추정되는 一자 안채와 사랑채. ㄱ자 새사랑채가 ㄷ자형으로 배치되어 있었고

아름답게 가꾸어진 정원에는 파초꽃 피었으며 정원석 위에 조개와 산호?도

보였고 향나무아래에 조성된 연못에는 금붕어가 노니는 모습도 보였으며

새사랑채에는 누마루처럼 꾸민 칸막이에서 담밖을 볼 수 있는 곳도 있었고

卍자로 장식한 방문이 특이하였으며 이문상선생의 부인이 예안출신이어서

<예안댁>으로 불리다가  이국희선생이 살림나면서 집을 샀고 1984년

조선왕조 마지막과거 진사시에 합격하여 <진사댁>으로 불리게 되었다 한다.

 

진사댁을 나와 삼일유가(三日遊街)의 광대들이 놀았던 광대거리를 지나

돈재(遯齋) 이석문(李碩文 1713~1773)선생의 신도비 건너편에 있는

응와종택을 찾았다.

 

응와종택(凝窩宗宅)은 솟을대문 안에 안채, 사랑채, 안사랑채, 사당, 북비채,

대문채로 이루어진 살림짐으로 수차례 중수와 증축을 거쳐 현모습을 갖추었고

돈재선생이 사도세자의 호위무사를 지내다가 1762년 영조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둘때 세손(정조)을 업고 부자상면을 시켰으며 파직되어 돌아와 사도세자를

추모하는 뜻에서 북쪽(北扉古宅)으로 문을 내고 무괴지심(無愧之心)으로

충절의식을 보여줬다고 전한다.

 

손자 농서(農棲) 이규진(李奎鎭 1763~1822))이 1779년 장원급제 했을때 

정조가 '너의 조부가 세운 공이 가상하다 아직까지 너의 집에 북녁으로 낸

대문이 있느냐?'고 물었다고 전하며 증손자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

1792~1871)는 74세때 기로사(耆老社)에 들어가 영정을 하사 받았고

1869년 과거급제 60주년을 맞아 회방홍패(回榜紅牌)를 받았다고 전한다.

 

북비고택에서 돈재선생과 사미당, 농서, 응와가문에 대한 설명을 듣었다.

북쪽으로 난 대문채에 北扉,  고택에 無愧心라 쓰여진 현판이 걸려 있었고

 북비고택을 나와 사랑채를 돌아 '定憲公凝窩先生影堂不䃾廟'라 쓰여진

사당을 참배하고 응와종택을 나와서 마을뒷편 산책로로 가서 전망대에서

전면의 성산과 마을전경을 구경하고 한주종택으로 갔다.

 

한주종택은 사랑채, 안채, 사당, 정사 등 11채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고

1767년 이민검(李敏儉)선생이 창건, 1866년 한주선생이 고쳐지었고

1910년 아들(이승희)이 한주정사를 지었다고 전하며 문간채와 노송이

반겨주는 중문을 통과하여 한주정사(寒洲精舍)에서 한주선생 가문에 대하여

설명을 듣는 기회를 가졌다.

 

응와선생 친가 조카인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 1818~1886)선생은

20세에 도산서원을 찾아 퇴계선생에 대한 숭모의 정을 표현한 이래

서재이름을 조운헌도재(祖雲憲陶齎 : 주자(紫雲)의 가르침과 학문을

근본으로 삼고 퇴계(退陶)의 가르침을 법으로 삼는다)라 하였고 전하며

35세 정재 류치명, 40새 서산 김흥락을 찾아 학문을 논하며 퇴계학맥을

이어왔고 44세에 심즉리설(心卽理說)을 발표하면서 한주학파를 형성하였고

아들 대계(大溪) 이승희(李承熙 1847~1916)와 손자 이기원, 이기인이

독립운동을 하여서 삼부자가 건국훈장을 받았다고 한다. 

 

또 한주정사 옆에 조성된 두개의 연못은 벗이 서로 도와 학문과 덕을 닦음을

표현하는 이택(麗澤)이라 하기도 한다고 한다.

 

우리는 한개마을에서 상세한 설명을 하여주신 해설사님께 감사를 드리며

백일홍과 꽃무릇, 설악초가 아름답게 피어있는 길을 나와서 버스를 타고

오늘의 마지막 답사지인 세종대왕자 태실을 찾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