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

영생을 꿈꾸뎐 진시황의 지하궁전

오토산 2012. 6. 11. 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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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을 꿈꾸던 진시황제의 사후 지하궁전★

 

 

‘세계 10대 기적의 하나’로 꼽히는 진시황릉(秦始皇陵)은 중국 최초의 황제인 진 시황제의 묘지로 중원을 통일한 진나라의 도읍지인

함양(咸陽)땅인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에서 30km 떨어진 동현의 원산원(驪山園)에 자리하고 있다.

咸陽

 

능묘 건설만 기원전 246년에서 208년까지 39년 동안 펼쳐진 이 황릉은 최대 70여 만 명의 인력이 동원된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로

현재는 여산이라 불려지는 높이 76m의 야산에 무덤이 안치되어 있으리라 짐작만 될뿐 완전한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을 통일하고 만리장성 건설에 착수한 진(秦)나라 시황제(始皇帝)의 무덤에 관한 문헌인 사마천의 사기 진시황본기편에 의하면

황릉은 지하궁전으로 지어졌으며 내와 강을 이룰 정도로 엄청난 양의 수은을 이용하여 무덤을 외부의 침입자로부터

보호되게끔 시설되었다고 쓰여져있다.

 

 

 

 

그 동안 추측만 했을 뿐 진시황릉은 베일에 싸여 있었으나 우물을 파던 농부의 삽끝에서 우연히 '세기의 발견' 이라 불리는 진시황릉의

병마용갱(兵馬俑坑)이 1974년 발견됨으로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다. 진시황릉원 동쪽 담에서 1km 떨어진 곳에 진시황의

사후를 지키는 친위군단인 병마도용을 수장한 갱도가 긴 어둠의 세월을 걷어내고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이다. 

 

 

 

 

곧 바로 발굴이 시작되어 현재 총면적 25,380m2에 달하는 4개의 갱이 발굴되었다. 1호갱의 규모를 보면 길이 210m, 너비 60m, 깊이

4.5~6.5m의 총면적 12,000m2로 본래 이 갱 위에는 회랑식 건축물이 있었으나 불타 없어졌다고 한다.

 

 

 

 

병마용갱 전체 도용은 약 6,000개로 추정되며, 도용의 크기는 1.75~1.86m, 도마용은 높이 1.5m, 길이 2m의 실물대이며, 갑옷을 입고

무장한 무사의 표정들은 마치 살아 있는 듯 하고 얼굴이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2호갱은 부분적으로 발굴되어 다량의

목제 전차와 이를 끄는 마용 356건, 기병용 116건, 안마 116건, 보병용 562건이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완전 발굴된 520m2의 3호갱은 지휘부로 추정되는데, 장군의 것으로 보이는 채색된 전차 1량과 갑옷 입은 보병용 64건, 마용 4건이

출토되었다. 이 밖에도 진시황릉 서북측에서 동마용과 동용이 딸린 대형 동전차가 1대 발견되었다.

 

 

 

 

'세계의 8대 경이' 중의 하나로 꼽히기도 하는 이 병마용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훌륭한 예술품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진시황 친위군단의 강력한

위용은 물론, 당시의 군사편제 ·갑옷 ·무기 등의 연구에도 구체적인 자료를 제공하고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정작 시황제의 무덤은 아직 발굴되지 않고 있으나 아마도 4면으로 된 피라미드 형태의 흙둔덕 바로 아래 지하궁전에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고고학자들의 연구결과를 보면 진시황릉의 구조가 하나의 거대한 지하도시로 전체 면적이 60여 만평에 달하고, 지하 4층의 거대한 궁전으로

되어 있으며, 묘역 안팎에는 내성(內城)과 외성(外城)을 쌓아 당시 도읍지인 장안(長安)과 같이 외성곽 길이만도 12㎞에 달한다는 발표다.

한마디로 진시황릉은 '거대한 묘역도시'인 셈이다.

 

 

 

 

일반 황릉과는 달리 황후와 합장하지 않은 것도 특이하다. 황후를 합장하지 않고 진시황 단독 묘를 쓴 것은 당시 ‘황제권력은 한없이

높다’는 ‘황권지고무상관(皇權至高無上觀)’을 반영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런 진시황릉에 대한 발굴작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발굴기술로는 원형을 훼손할 가능성이 크다는 중국 정부의 판단 때문에

대대적인 발굴은 미뤄지는 형편이다. 완전한 발굴로 그 실체를 밝히기 까지는 앞으로도 몇 세대의 세월이 필요하다는 고고학자들의 이야기다.

 

 

 

 

절대권력자로서 불로장생을 꿈꾸었던 시황제는 죽음을 막을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 앞에서 내세(來世)의 영생을 믿으며 ‘삶과 죽음은

동일하다’는 ‘생사동일관(生死同一觀)’하에 천년, 만년, 영원한 제국을 이루고자 한 진시황!  사후 210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무한권력자의 생사마저 초월코자 했던 그의 힘이 그대로 느껴지는 진시황릉이다.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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