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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 테러 때 숨진 김재익 경제수석' 부인'
경제기획원 기획국장 된 남편
서울 서빙고동의 아파트에서는 한강이 보였다. 갔다가 한강 맞은편에 아파트 짓는 걸 봤어요. 이쪽으로 이사 온 것은 국립묘지를 보기 위해서였지요. 여기 창가에서 바로 보여요. 제 남편이 사준 집 같아요. 국립묘지에는 남편이 죽고 10년 동안은 매일 갔어요. 요즘에는 일주일 두세 번씩 운동 삼아 가요." 청와대 경제수석의 부인, 이순자(72)씨를 보니 곱게 늙는 모습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느낌부터 들었다. 풍파(風波)의 세월도 그녀의 천성을 허물진 못한 것이다. 남편이 저세상으로 갔는데 혼자서 칠십 몇 살까지 살아온 것은 뻔뻔한 일이죠." 최근 서울대에 20억원을 내놓겠다고 약정했다. 기자회견 없이 다만 서울대에 자신의 생각을 담은 글을 전했다. 학문과 기술로 우리가 나라를 일으킨 것처럼 이제는 우리보다 불우한 나라에 힘을 보태는….' 아프리카 등 제3세계의 젊은 학생과 관료들이 서울대에 와서 경제정책을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 하겠다는 취지다. 이에 서울대는 '김재익 펠로십(장학금) 펀드'를 만들겠다고 화답했다. 이제 인생을 서서히 정리할 나이도 됐고요. 저는 연금이 나오니까 돈이 더 필요가 없어요. 사실 돈이 있어도 쓸 돈만 자기 돈이지요. 생전에 남편은 '우리가 좀 살게 되면 우리보다 못한 나라의 젊은이를 위해 교육프로그램을 해야 한다' 고 했어요. 내가 내놓으려는 액수가 내 형편에서는 매우 크지만 참 적다는 걸 알았어요. 개인당 한해 3300만원이 든다고 해요. 선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혹 더 있을지 모르니, 대학 측에서는 펀드를 키우자고 했어요." 홀로 두 자식을 키웠습니다. 선뜻 20억원을 내놓을 만큼 그렇게 많은 돈은 언제 벌어놓았지요? 비쳤는데, 바로 다음날 신문에 났어요. 이렇게 빨리 알려질 줄은 몰랐어요. 사실 지금은 가진 돈이 없어요." 제가 1980년에 장기저축예금을 들었어요. 남편이 '경제수석 마누라가 무슨 증권사에 들락 거린다는 말이 나와서는 안 된다'고 해서 예금만 했던 겁니다. 그때 은행 이자가 20%대였어요. 만기일인 1985년에는 원금의 150%가 되어 있었어요. 남편이 죽은 뒤 그 돈을 탄 거죠. 둘이 모은 돈이어서 차마 그 돈을 쓸 수가 없었어요. 그때 친척이 그 돈으로 경기도 용인에 땅을 사놓으라고 했어요. 이번 여름에 그 땅이 토지주택공사에 수용이 됐어요. 3년 만기채권으로 받았어요. 2013년에 약12억원을 받게 됩니다. 바로 그 해는 남편이 돌아가신 30주기가 돼요. 이렇게 딱 들어맞으니, 제 힘으로 한 것 같지 않더라고요." 아파트까지 내놓겠다고 보도됐더군요. 20억원 중에 이 집이 포함돼 있어요. 제가 가진 큰 재산이 집과 용인 땅이에요. 제게는 이 집이 너무 커요. 자식들도 모두 결혼했고. 제 남편은 굉장히 검소한 사람인데 생전에도 '우리가 일반 사람들 평균보다 몇 배를 잘 산다'고 했어요. 때가 되면 이 집을 팔고 실버타운에 들어갈 생각이에요." 아들과 의논했느냐고? 그런데 왜 그래야 하죠? 미국의 부잣집 아이들은 '우리 아버지는 부자이지만 난 아니다'라고 합니다. 사전에 상의가 없었어요. 저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걔들이 벌어준 돈이 아닌데." 자신을 위해서도 좀 쓰시라'고 해요. '주위에서는 어머니께 소송을 걸어야 한다고 부추긴다'고 농담도 하지만 '어머니 때문에 저희들 위신이 올라갔다'고 말해요." 받은 보상금도 포함돼 있나요? 아웅산 사태 때 돌아가신 분들 대부분이 40대였어요. 공직에서 20년 이상 일해야 연금이 나오는데, 남편을 포함해 이분들은 연금 수혜 대상이 안 됐어요. 당시 전두환 대통령께서 일해재단(현 세종재단)을 통해 연금이 지급되도록 해줬어요. 또 상속세금 면제와 유자녀 교육자금과 생활보조금 등 당당하게 혜택을 줬어요. 그건 참 고마운 일이었죠." 산 입구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어요. 뭐 무슨 일이 생겼나 했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어요. 차 안에서 라디오 뉴스를 듣고는 알았어요. 정말 기가 막힌 일이었어요." 있을 만큼 세월이 흘렀지 않습니까? '좀 지나면 잊혀진다'며 제게 위로했어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 이상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떻게 잊어버려요? 세월이 지나면 잊는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다만 이겨내는 힘이 생기는 거지요. 저는 작은 아들 때문에 살았어요. 걔가 없었으면 이 세상에 안 살았을 겁니다. 큰아들은 대학생이었으니 괜찮았어요. 하지만 초등학생인 막내를 두고 제가 다른 마음을 먹는다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죠. 걔를 핑계로 살았어요." 해줬으면 하는 마음은 안 들었나요? 대통령을 암살하려고 했고, 우리 공직자들을 그렇게 많이 죽였으니까요. 당시에도 좌파세력이 별별 음모론을 퍼뜨렸어요. 북한은 아예 반응이 없었어요. 정말 제가 폭탄을 들고 나가고 싶더라고요. 그래도 마음을 진정하니, 내 애들을 키우려면 전쟁이 없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은 참 자기 본위로만 생각하죠." 보면서 느낌이 아무래도 남달랐겠습니다. 한편으로는 리더십이 없어 당하는 이명박 대통령이 불쌍해요. 국민들은 정부가 하는 일을 못 믿게 됐으니…. 천안함 사태 때 정부가 민간에 잠수부 자원봉사자를 찾는 걸 보면서 서글펐어요. 아니 군(軍)에서 일어난 일은 군이 스스로 해결해야지, 민간에 도움을 구하니 그게 어떻게 나라의 군대인가요." ![]() ―남편이 5공(共)에 참여할 때는 어떠했습니까? 형제와 친구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죠. 이민을 가자고 했지요. 국제기구로 갈 수 있었어요." 그 솔직한 면에 끌렸던 것 같아요. 가정교사를 몇 달간 했어요.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핑계로 누구 밑에 가서도 충성할 인간'이라는 말을 들었어요.
'만약 내가 누구를 설득시켜 그 사람의생각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으면 해야지'라고 했어요." "새로운 경제정책 추진에는 엄청난 저항이 있을 텐데 끝까지 제 말을 믿어주시겠습니까?" 했을 때, 전두환 대통령이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 라고 답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로 전합니다.
고도 했어요. 당시 대통령이 다 알아서 하라며 전권을 줬던 게 사실이에요.군부와 갈등이 많았 어요. 군부 출신 실세는 남편 사무실 책상 위에 권총을 탁 놓았어요.대통령의 신임이 남편 쪽으로 실리는 것에 대한 경고였어요 '너 죽고 싶어?' 하는 메시지였어요." 당시에 제가 알았다면 '당장 그만두고 떠나자'고
안 되는 경제학자가 우리나라를 살릴 수가 있다.
이런 기회는 돈을 내고도 해야 한다'고도 했어요." 이제 큰아들의 나이가 더 많지요? 불안해서 제대로 잠을 못 이뤘어요.
부터 그분의 착한 심성이 제일 좋았어요.
옮긴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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