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인왕산을 내려 온 김삿갓

오토산 2020. 5. 13. 21:42

●방랑시인 김삿갓 02-(13)

* 滿滿집 주모. "상"

 

인왕산을 내려온 김삿갓은 세검정을 지나 무악재로 발걸음을 옮겼다.

파주.장단을 거쳐 , 오백년 망국지한이 서린 고려의 도읍지 ,

송도에 가보려는 것이었다.

무악재 고개위에 올라서니 ,넓은 들판이 한눈에 환하게 내려다 보여,

 한양을 돌아보며 생겼던 갑갑증과 함께 우울했던 가슴이 탁 트이는것 같았다.

 

터벅터벅 산 길을 내려오던 김삿갓의 눈 앞에는 커다란 소나무 그늘아래서

농삿꾼 인 듯싶은 장정 하나가 지게와 낫을 옆에 놓고

네 활개를 쫙 펴고 태평하게 낮잠을 자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마 나무를 하러 가다가 낮잠을 자고 있는듯 하였다.

 

김삿갓이 가까이 다가 가자 그가 불현듯 벌떡 일어나 앉는데 ,

 두 눈이 왕방울 처럼 부리부리하고 머리에는 수건을 질끈 동여매고

있는 것으로 보아 , 호락호락한 위인은 아닌듯 보였다.


김삿갓은

 "날이 많이 덥군요.

산에 나무 하러 가시던 길인가요." 하고 말을 걸었다.

 

그러자 농사꾼은 자신이 앉아 있는 옆자리를 가리키며,

 "산에서 내려오시던 길인가보죠 ? ...

여기 좀 쉬어 가시오." 하며 말한다.


그러면서 자리에 앉은 김삿갓의 행색을 살피더니,

 "그런데 남들은 좀체 쓰지않는 삿갓을 쓰고 다니시는구려." 하며

이상한 눈으로 김삿갓을 바라 본다.

 김삿갓은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삿갓이야 사정이 있어서 쓰고 다니지요.

 그나 저나 아까부터 목이 컬컬하여 술 생각이 간절한데,

혹시 부근에 술집이 어디 있는지 알고 계시오 ? " 하고 물어 보았다.

 

농사꾼은 "술" 이라는 소리를 듣더니 정신이 번쩍 드는지 ,

왕방울 같은 눈알을 대번에 희번덕 거리며 입맛 부터 다신다.


"술집이요 ?

술집이라면 나한테 잘 물으셨소. 저기 보이는 고개를 넘어가면

 滿滿이라는 술집이 있다오. 

 술맛도 기막히지만 안주도 천하 일품이지요."

 

"저 고개 너머에 그렇게나 좋은 술집이 있어요 ?

"만만"이라 , 술집 이름도 참 이상하네.."

 

김삿갓이 이렇게 말을하자 농사꾼이 대뜸 대답하는데,

"술집 이름이 이상하긴요 ?

아 , 글쎄, 술 한잔 가득, 또 한잔 가득, 그래서 찰만,찰만 , 만만 집이라오."

 

"그것 참 재미있는 술집 이름이오."

김삿갓은 농사꾼의 너스레에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보아하니 노형도 술을 어지간히 좋아 하시는 모양이구료."

 

"아따, 사내 대장부 치고 술 싫어하는 사람 보셨소.

돈이 원수라서 그 좋은 술을 맘껏 못 먹고 밤낮 촐촐게 지내는것 뿐이지요."

 

"그러면 내가 한잔 살테니 같이 가시려오 ? "

 

농사꾼은 그 말을 듣기 무섭게 벌떡 일어서며,

 "돈은 넉넉하시오 ? "

 

"돈은 걱정 말고 같이 갑시다."


"그럼 나를 따라 오시오."

 

"지게와 낫은 안 가져가시려오 ?"

 

"술을 먹으러 가는 판인데,

그깟 지게와 낫은 가지고 가면 뭘하오."

 

"그러다가 누가 가져가 버리면 어떡하죠 ?"

 

"아따 , 그 양반 걱정도 팔자요.

그깟 지게와 낫을 누가 가져간단 말이오

. 어서 나를 따라 오시오."

 

김삿갓은 ,

누가 술을 사고 얻어 먹는 것인지 ,주객이 전도된 기분이었지만 , 

 농사꾼의 수작이 여간 흥미진진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앞장서 허울대며 가는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이윽고 나지막한 고개를 넘어 산 아래로 따라 내려오니 ,

산 모퉁이에 "滿滿" 이라는 초라한 주막이 보였다.

 

그는 술집 안마당으로 들어서며 호기롭게 주인을 불러제긴다.

"만만 아줌마 계시오 ? ..

내가 오늘은 손님 한 분 모시고 왔소.

 술은 넉넉하겠지 ! "

 

그러나 주모는 목소리 만으로도 누가 왔는지 아는 듯,

문도 열어 보지 않고 짜증스런 어투로 대꾸한다.


"에구 저런 ! 백수 건달이 또 왔는가보네 !

오늘은 아직 개시도 못 했는데 마수걸이 외상술을 먹겠단 말이오 ? 에구머니 ! ..

오늘은 제발 그냥 좀 가시구려" ..

 

이렇듯 대꾸하는 주모의 말로 미루어 보건데,

 이 사람 외상 술값이 어지간히 달린 모양이었다.

 

그러나 주모에게 백수 건달로 불린 이 사내는 주모의 매몰찬 냉대에도

눈 하나 깜짝않고 ,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서며 또다시 호기를 부린다.


"아따, 외상이 몇 푼이나 된다고 이 야단이야,

내가 주모 외상 술값 떼 먹을 사람으로 보여 ?

걱정말라구 !..

그렇지만 오늘은 내가 외상술을 먹으러 온 것 아니고 큰 손님을 모시고 왔으니,

 아무 걱정 말고 어서 술상이나 차리라구 ! "

 

토라진듯 방문을 등뒤로 돌아 앉아있던 주모는 또 다른 한 사람이 들어서자 ,

그제서야 뒤를 돌아 보더니 놀란듯이 말을한다.


"어머나 !

다른 손님이 계신 것을 몰랐네..."


그러면서 김삿갓을 흘깃 보더니 ,

"어서 오세요.

 상제님이 같이 오신것 같은데 ..

우리집은 밑천이 딸려서 외상 술을 드리기 곤란한데 어쩌지요 ?" 

 삿갓을 쓰고있는 김삿갓을 상제로 알고 말을한다.

 김삿갓은 삿갓을 벗어 들고 빙그레 웃으며 말을했다.


"오늘 먹는 술값은 내가 맞돈을 드리죠.

염려 말고 술이나 주시오."

 그러자 백수 건달로 불린 사내는 아랫목에 배짱 좋게 주저 앉으며 한마디 한다.


 "것 보라구 ! ..

오늘은 맞돈 주겠다는데 주모는 웬 잔소리가 그리도 많지 ?"

 그러나 주모도 만만치 않은 소리를 한다.


"내가 술장사를 시작한 첫날부터 삼 년동안이나 외상 술을 먹어온 주제에 ,

 무슨 낯짝으로 큰소릴치는게야. 어쩌면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 원 ...."

 

"아따 ,

외상술 주기가 그렇게나 아까우면 숫제 나를 서방님으로 모시면 될것 아니겠나,

하하하.. 안그래요 ? 삿갓양반 ! "

 백수 건달이 능글맞게 나오자 주모가 입을 삐쭉이며 말을한다.


"이봐요 백수 건달씨 !

지금 내 나이가 몇 인데 ,아들 같은 댁을 서방으로 삼겠소 ?"

 

김삿갓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면서 나이를 가름해 보는데 ,

 백수 건달로 불리는 사내는 갓 40이 넘은 것 같아 보이고 ,

주모는 오십 중반으로 보였다.

 

그러자 백수 건달이 대꾸하는데,

"아들같은 젊은 사람하고 살면 더좋지 ! ..

젊고 싱싱한 물건을 밤마다 맛 볼수 있을테니 말이야..."

 

"사람이 밥을 먹고 살아야지 , 그 물건만 먹고 사는가 ? .. 

  개떡 같은 수작은 그만하고 밀린 외상 값이나 어서 갚아요."

 

김삿갓이 두 사람 하는 수작을 듣노라니 ,

그냥 두었다가는 결판이 나지 않을 행색이라 ,


"외상값이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

오늘 술 값은 내가 낼테니 염려 말고 술이나 가져 오시오."하고 재촉의 말을 하니 ,


그제서야 주모는 얼굴에 화색이 돌며 ,

 "오늘 술값은 틀림없이 손님이 맞돈으로 주시는 거죠 ?" 하고 또한번 묻는다.

 

이렇듯 주모가 하도 미심쩍어 하므로

김삿갓은 숫제 주머니에서 돈자루를 꺼내 보였다.


"자, 돈이 이만큼이나 있으니 무슨 걱정인가 .

아무 걱정 말고 술이나 가져 오라구 ! "

 

돈자루를 보자 눈이 휘둥그래져 놀란 사람은 주모만이 아니라 ,

백수 건달도 왕방울 같은 눈이 튀어나롤 정도로 놀라며

주모에게 호기롭게 소리치는데,

 "이것 보아요 주모 !

지금 저 돈자루 보았지 ?

아까부터 내가 "큰손님" 이라고 하지 않던가 ..

그러니까 마음놓고 술을 얼마든지 가져 오라구.

이런 제길헐 ,의심이 이렇게 많아서야,

츳츳..." 하며 제법 혀까지 차면서 주모를 나무란다.

 

주모는 그제서야 부엌으로 달려나가 주안상을 들고 들어오며,

"백수 건달이 오늘에서야 삿갓 양반 덕택에 술을 마음껏 마시게 되었구먼.

 그러나 남에 호주머니 돈을 내돈으로 착각은 하지 말아요." 하며

또 한마디 쏘아 갈긴다.

 

그러자 백수 건달은 지지 않고 한마디 하는데,

"이런 제기헐, 본래 돈이란 돌고 도는것 ,

 술자리에서 네 돈 남에 돈이 어디 있어 ? ...

안그래요 삿갓양반 ? "

 

김삿갓은 동의를 강요당하자 ,

너털웃음을 웃을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두 사람의 술자리는 시작 되었다.

김삿갓은 비록 백수 건달이라 불리는 사나이와 초면부터 술자리를 함께 하게 되었지만,

노상에서 술 친구를 만난것 조차, 즐거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백수 건달은 술을 얼마나 좋아 하는지 ,

 술잔을 쪽쪽 빨아대는 소리가 나도록 마시며 말한다.


"어~허 ..술맛 조오타....

이렇게나 좋은 술을 한번도 마음껏 마셔보지 못하고,

 그놈에 외상값 때문에 주모한테 밤낮 구박을 받아 오고 있으니 ,

신세가 비참하기 이를데 없네 ...

삿갓 선생 !

 어쩌다 내 신세가 이런 꼴이 되었는지 모르겠구료."

 

김삿갓은 백수 건달에게 술을 다시 따라 주고 ,

자기도 잔을 채워가며 말한다.


"나도 술을 좋아하지만,

노형도 술을 어지간히 좋아하는가 봅니다."

 

"물론이지요.

남자의 인생에서 술과 계집을 빼놓으면 뭐가 남겠소."

 

"하여튼 ,

돈은 넉넉하니까 오늘은 마음껏 마셔 보시오."

김삿갓이 그렇게 말을하며 다시 술을 따라 주었다.

 

그러자 백수 건달은 감격해 마지 않으며,

"원,이렇게도 고마운 일이 있나.

내가 어젯밤 돼지꿈을 꾸었더니

오늘은 술복이 한꺼번에 터졌습니다그려."

 

"그나 저나 , 노형을두고 주모가 백수 건달이라고 부르던데 ,

 그 연유나 들려주시오."

김삿갓은 백수 건달로 불리는 사나이의 속내가 무척 궁금했다.

 그러자 그는 "킥킥" 웃더니 말을한다.


"내 본래 이름은 백남봉이라오.

 그런데 남봉,남봉 하며 남들이 부르다보니,

난봉꾼 처럼 들리게 되었고,

결국은 난봉을 일삼는 백수 건달로 불리게 된것 이라오."

 

"허허..매우 재미있소이다."

김삿갓은 별 일 다 보았다는 듯 호쾌하게 웃었다.

그러면서 곧 정색을하며 백수 건달에게 말했다.


"내가 노형에게 한 가지 따져야 할 일이 있소이다."

 

"예 ? ...

나한테 따질 일이 있다구요 ? "

 

"그렇소. 노형이 아까 , 나를 이 집으로 데리고 올 때,

 이 집에 술안주는 천하 일품이라고 말하지 않았소이까 ?

그런데 정작 이 집에 와보니 , 안주라고는 고작 도토리묵 한 접시뿐이 아니오.

도데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오 ? "

 

김삿갓이 안주 투정을 하자,

주모가 얼른 앞으로 나앉으며 대답을 가로 막는다.


"우리집 술 안주는 언제나 도토리묵 한 가지 뿐인걸요. 

 한양에서도 제법 떨어진 첩첩 산중이라,

다른 안주는 재료를 구할 수가 있어야 말이죠."

 김삿갓은 하도 어이가 없어서 백수 건달을 다시 나무랐다.


"노형은 이 집 술 안주가 천하 일품이라고 분명히 말하지 않았소.

 그런데 주모의 말을 들어 보면 ,

이 집 술 안주는 언제나 도토리묵 한 가지 뿐이었다고 하니,

노형은 처음부터 거짓말을 한게 아니오?"

 

그러자 백수 건달은 술 한잔을 또다시 단숨에 쭈욱 들이키고 나더니

도토리묵 한조각을 입안에 집어 넣으며,


"이 집에 술 안주는 언제나 도토리묵 한 가지 뿐이라오.

그러니 그게 바로 천하 일품이 아니고 뭐겠어요,

하하하..."하고

방안이 떠나갈 듯이 통쾌하게 웃어 제친다.

 

김삿갓이 들어 보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속은 것은 분명한데 , 괘씸하지는 않았다.


"에이 여보시오.

나는 마침 출출하던 판이었기에 ,

안주가 천하 일품이라 하기에 큰 기대를 걸고 왔다오.

그런데 도토리묵 하나를 가지고 천하 일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심하지 않소."

 백수 건달은 그 말을 듣고 커다란 눈알을 두어 번 꿈쩍 거리더니 별안간,


"이봐, 주모 !"

하고 큰소리로 주모를 부른다.

 

"왜 또 부른데요 ?" ..


"이 집에 씨암탉 몇 마리 있지 않은가 ?

오늘은 큰손님이 오셨으니 한 놈만 안주삼아 잡아먹자구."

 

그 소리에 주모는 펄쩍 뛸 듯이 놀란다.

"백수 건달이 미쳤나 ?

씨암탉은 우리집 귀중한 재산인데 그것을 어떻게 안주로 삼자는 말이야 ?"

 

"그대신 돈을 많이 받으면 될것 아닌가 ?"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안되요."

 

"허긴 , 이집 씨암탉이 주모보다 더 가치있다는 것은 내가 알지만,

오늘은 귀한 손님이 오셨으니, 그깟 씨암탉이 대수인가 ?"

 

"그깟 씨암탉이 ?

나보다도 가치가 있다고 ?"

주모가 주먹다짐 하듯이 백수 건달을 노려 보며 말한다.

 

"그럼, 씨암탉은 매일같이 달걀을 하나씩 낳아 주지만 ,

주모야 달걀도 못낳는 식충이 아닌가, 하하.."

 

씨암탉 이야기가 오가자 ,

김삿갓은 새삼스럽게 시장기가 들었다.

그래서 주모에게 간청을 했다.


"주모, 내가 허기가 져서 그러니 닭을 잡을 수 있거든 한 마리만 잡아와요.

닭 값은 넉넉히 줄테야."

 

"돈이 문제가 아니고 내 손으로 키운 닭을 내 손으로 잡아 먹기가

마음이 괴로워서 그러죠."

 그러자 백수 건달이 두 사람 사이를 비집고 끼어들며 한마디 한다.


"이봐 ! 서방이 씨암탉이라도 잡아오라면 냉큼 잡아올 일이지 ,

무슨 핑게가 그리도 많아 ! "

 

"아따 , 누가 누구의 서방이라는 거야.

내가 언제 서방질 했다고 서방이래 ! "

 

"아참 ..

이불 속에서 꼭 그 짓을 해야 서방인가 ?

마음이 서로 통하면 그게 바로 서방이 아닌가 ? ....

안그래요, 삿갓 선생 하하하."

 김삿갓도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럴수도 있지요.

비록 남녀간에 통정은 안했더라도 마음이 통하면

 애인이라고도 볼 수가 있으니까 말이오."

 

"것 봐라 벽창호 주모야.

 이 손님으로 말을 할것 같으면 손이 크신 어른 아닌가.

닭을 한 마리만 잡아오면 의례 대여섯 마리 값을 치러 주실 것인데,

 그것을 왜 모르느냐 말야 . 술장사를 하려면 사람 보는 눈이 있어야지 원.."


백수 건달은 슬쩍 ,

주모를 도와주기 위해 김삿갓에게 바가지를 씌우려는 눈치로 말을한다.

 

"어마, 한 마리를 잡아오면 한 마리 값만 받아야지 ,

 도둑놈 모양으로 어떻게 대여섯 마리 값을 받아요 ...

아무튼 손님이 시장하신 모양이니 한 마리 잡아 올께요.

닭을 잡는 동안 두 분은 술을 천천히 들고 계세요."


 주모가 닭을 잡으려고 바깥으로 나가 버리자 ,

 백수 건달은 주모에 관한 이야기를 이렇게 말한다.

 

~~계속 2-14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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