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 크기계산에 담긴 철학
1. 넓이보다 구조로 규모를 계산하는 한옥
아파트 분양광고의 첫번째 설명은 평형이다.
그리고 누가 아파트에 산다고 하면 가장 먼저 몇 평 짜리인지 관심을 갖는다.
그런데 한옥은 면적으로 표시하지 않는다.
생각하면 할수록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전통건축을 잘 모르므로 그 이유를 모르며 쉽게 알 수도 없다.
이런 건 인터넷을 아무리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그 이유를 추측하고자 한다.
건물의 규모는 층수, 높이, 면적 등으로 표시한다.
한옥은 대부분 단층이니 층수나 높이에 별다른 의미가 없고 일단 면적이 유일한 기준이다.
참고로 전통한옥이 단층인 이유는 복층으로 지을 기술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라
풍수지리의 영향 때문이라고 한다.
각설하고 문화재 등 한옥 목조건물의 규모를 표시할 때 면적으로 표시하지 않고 ]
“정면 몇 칸, 측면 몇 칸” 식으로 표시한다.
문화재청 홈페이지를 검색해보면 한옥 목조건물의 크기는 모두 그렇게 표시되어 있다.
넓이를 평 또는 평방미터로 표시하지 않는다.
한옥 크기에서 칸이란 기둥과 기둥 사이의 공간이다.
줄기, 기둥을 뜻하는 간에서 유래한 것으로 한글로 굳어질 때 ‘칸’으로 되어 표준말이 되었으며
간은 ‘초가삼간’처럼 이미 굳어진 단어에서 사용한다.
기둥에 네 개 있으면 세 칸이고 세 개 있으면 두칸이다.
보잘 것 없는 작은 집을 초가삼간(草家三竿)이라고 하는데
기둥이 옆으로 네 개씩 앞뒤 두 줄 모두 8개 있는, 방 등의 공간이 세 개인 초가집을 뜻한다.
‘삼간’이란 가운데 부엌이 있고 양쪽에 방이 있는 구조인데
고대에는 방이 두 개나 있는 ‘호화주택’보다는 방, 부엌, 창고(마굿간) 등의 구조였을 것이다.
2. 칸수 계산요령
다음 사진은 전등사 대웅보전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 전체 9칸이다.
다음 사진은 칠장사 누각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 전체 6칸이다.
칸수는 전등사 대웅보전보다 적지만 앞에 서보면 칠장사 누각이 훨씬 크다.
불당, 서원 등에서 볼 수 있는 한옥 중 일반적인 크기는 정면 3칸 측면 2칸 또는 3칸이며
큰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3~4칸 정도이다.
다음 그림은 칸 수 계산법의 예제로 42칸 집이다.
정자는 사당보다 넓지만 둘 다 1칸이다.
안채 A구역 13칸
사랑채 B구역 8칸
안행랑채 C구역 7칸
바깥행랑채 D 구역 13칸
사당 E구역 1칸
한옥 칸수 계산법은 자료를 찾을 수 없어 나름대로 추정한 것이고
대문과 중문을 칸수로 치는 지는 잘 모르겠다.
내 생각으로는 용도에 관계없이 기둥으로 나뉜 공간이 칸이므로 계산에 넣었다.
확실하게 아는 분이 댓글을 달아주면 고맙겠다.
3. 한옥의 크기계산에 담긴 철학
크기를 칸으로 표시하면 기둥 간격에 따라 면적이 들쑥날쑥하다.
그러므로 굵고 튼튼한 기둥을 사용하여 기둥 간격을 띄우면 같은 칸이라도 넓다.
우리 조상들이 집의 규모를 면적으로 계산하지 않고 칸으로 표시했다는 점은,
절대적인 면적보다는 공간의 분할을 중요하게 여긴 것으로 보인다.
한옥의 특징은 공간배치에 있다.
경사면에 집을 지을 때는 건물의 위계에 따라 배치했다.
향교나 서원에서 제사공간은 학습공간보다 높은 뒤쪽에 있다.
또 마당과 사랑채의 구분도 중요했다. 대문을 들어서면 중문을 지나
안채로 들어가는 구조인 점도 넓이보다는 공간구조를 중요시한 특징을 보인다.
조선시대 건축법은 칸으로 집의 규모를 제한했다.
왕 이외에는 아흔아홉칸을 넘는 집에서 살 수 없었다.
그러나 집이 차지하는 면적에 대한 제한은 없었다.
문의 숫자도 제한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황제는 문 5개, 왕은 3개를 사용하므로 일반 백성은
문을 두 개(대문/솟을대문, 중문)만 만들 수 있었던 것 같다.
경복궁 등 모든 궁궐은 앞쪽 문이 3개이다.
개성의 고려왕궁은 문이 5개이므로 초기의 고려는 황제국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현대는 정신문명보다 물질문명이 지배하고,
철학보다는 과학이 우선하며, 직감보다는 계산에 근거한다.
우리 선조들의 사고방식과는 정반대이다.
한동안 서양의 물질문명만 추구하던 우리 사회가 부분적으로 바뀌고 있다.
넓은 아파트보다 전원주택을 선호하는 사람이 늘지 않을까?
돈이 많은 것보다 마음이 편한 것이 행복 아닐까?
넓은 집보다는 포근한 집이 좋지 않을까?
면적보다 칸으로 계산하는 한옥의 규모는 물질문명보다
정신문명을, 과학보다 철학을,
계산보다 직감을 먼저 추구했던 선조들의 세계를 느낄 수 있는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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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꼬레보기 원문보기 글쓴이: 국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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