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단계(檀溪)를 뛰어 넘어 만난 수경 선생

오토산 2021. 9. 24. 17:46

삼국지(三國志) (155)
단계(檀溪)를 뛰어 넘어 만난 수경 선생
 
유비는 적로마를 달려 급히 도망하였다.

그리하여 한참을 달려가 보니,

 

<아뿔사 !> ...
앞은 깊은 강으로 가로 막히고,

그 건너는 깎아지른 절벽이 아닌가 ?
유비는 급한 중에도 전방의 상황을 보고 황당했다.

 

눈 앞은 깊이를 알 수 없는 강에 가로 막히고,

뒤에서는 채모가 군사를 새카맣게 이끌고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잠시 망설이던 유비는 그대로 적로마를 강으로 몰아갔다.
허우적 거리며  강 속으로 들어간 말은
강 한 복판에 이르러 더이상 앞으로 나아가길 주저하며 머뭇거린다.

"적로야, 오늘 네가 기어코 나를 해치려는구나 !"

 

유비는 순간,

양양 저자 거리에서 불현듯 만난 사내의 말이 생각되었다.

 

"하 !..."
유비가 한탄을 하였다.

그때 강변에서 채모의 군사들이 쏜 화살이 유비의 주변에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이~ 히히힝 !..."
그 순간, 적로가 갑자기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러대더니

그대로 강물을 박차고 몸을 솟구친다.

 

그리고 번개같이 앞으로 내달아 강 건너편으로 향하는 것이 아닌가 ?
그 순간, 유비가 떠난 자리에는 수백 발의 화살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아니 ? 저럴 수가 !"

 

유비의 뒤를 쫒던 채모를 비롯한 그의 군사들이

단계를 뛰어 넘은 유비를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런 뒤에 채모는 강 건너편에서 서서히 자리를 떠나는 유비를 

바라 보며  망연자실 하고 있었다.

잠시후,

조운이 군사를 이끌고 나타났다.

조운은 채모를 의심의 눈길로 바라 보며,

 

"채장군, 우리 주공은 어디 계시오."하고, 물었다.

채모가 퉁명스런 어조로 대꾸한다.

 

"자네 주공 ?
이미 저 맞은편으로 건너가셨네."

조운이 주변을 돌아보고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그럴리가 ? 골짜기가 이렇게 깊은데..

과연 어느 말이 저길 뛰어넘을 수 있겠소 ?"
그러자 채모도 기막힌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장군 말이 맞소,
헌데 유비는 저길 뛰어 넘었단 말이오."
조운은 채모와  무장한 그의 군사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런데 왜 병마는 끌고오셨소 ?"

 

"9군 42현 관원이 모두 양양에 있는데

형주의 상장군으로서 호위를 해야할 게 아니오 ?"

채모는 궁색하게 둘러대었다.

그러자 조운은 창끝을 채모에게 향하며 외치듯이 말했다.

 

"그건그렇고, 우리 주공을 어찌했나 ?
왜 여기까지 따라왔단 말인가 ?"하고,

추궁하였다.

 

"난 아무 짓도 안 했소.

못 믿겠거든 직접 유비에게 가서 물어보시오."
채모는 이렇게 퉁명한 어조로 대꾸하고, 이어서,

"치워라 ! 조운,
자네 주공은 지금 생사를 알 수 없는데,

지금 여기서 싸움이라도 벌일 셈인가 ?"하고,

말하며 칼을 뽑아 대적할 자세를 보인다.

 

그러자 조운이 천천히 창을 거두며 뒤로 물러선다.
그 즉시 채모는 몰고온 군사들을 돌려 양양으로 돌아가기 시작하였다.

채모가 돌아간 뒤,

조운은 다시 한번, 단계 강 기슭에서 강폭과 수심을 유심히 살펴 보았다.
사람이 말을 타고는 도저히 건널수 없는 깊은 강물이 흐르는 강이었다. 

 

그러나  채모의 말로는,
저 앞의 단계를 자신의 주공이 건너갔다고 하니,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유비는 기적적으로 강을 무사히 건너자 신야를 향하여 말을 달렸다.
그리하여 얼마를 달리다 보니,

대나무 숲 사이에 유아하고 깔끔한 초당이 보인다.

유비는 말에서 내려 초당을 향하여 걸음을 옮겼다.

초당안에서는 거문고 소리가 그윽하게 울려나왔다.

 

유비가 주인장을 부르려고 하는데,
문득 거문고 소리가 뚝 그치더니 

백발 노인이 흰 옷을 걸친 채로 문을 열고 밖을 내다 보며 나오는데, 

머리는 백발이고 몸이 수척한 것이 백학(白鶴) 같이 청아한 노인이었다.
노인은  문을 열고 나오자 마자  유비의 앞으로 걸어 오며,

"금(錦:거문고 줄) 소리가 우렁찬 것을 보니,

틀림없이 어느 영웅이 훔쳐 듣고 있을 터...
노부(老夫)의 별호는 수경(水鏡 : 본명 = 사마휘(司馬徽)이라 하오. "하고,

자신을 소개하며 웃는 낯으로 다가왔다.
유비는 노인을 향하여 예를 표하며,

 

"저는 유비 유현덕입니다.

수경선생을 뵙습니다."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수경 선생은 유비를 꿰뚫고 진작부터 아는 듯이,

 

"유황숙이셨군. 반갑소이다."하고, 말하고나서,

유비의 행색을 훝어 보며, 이어서 말한다.

 

"장군의 말(馬)은 훌륭한데 지금 차림새는 말이 아니구려,

옷도 젖은 것을 보니 방금 곤경에서 빠져 나오셨구먼..."
유비는 수경 선생의 말에 흠칫 놀랐다.

 

"선생, 대단하십니다.

사실 제가 조금 전 병사들에게 쫒기느라 10여 리쯤 떨어진 골짜기에 빠졌었습니다.

병사들이 화살을 쏘길래 이번엔 죽었구나 싶었는데, 
다행히 저 적로마가 깊은 강물을 뛰어 넘어,

겨우 빠져나왔습니다.

운이 좋았지요."

수경 선생은 유비의 말을 다 듣고 나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정말 그렇다면 전례 없는 대단한 일이오."

 

"전례가 없다니오 ?"

 

"그 골짜기는 단계라 하는데,

그 옛날 초패왕 항우가 그곳에서 진나라 투항병 30만을 몰살 했던 곳이오.
말 그대로 피가 내를 이루고 수급이 산을 이뤘다고 하며,
그 후 수 년이나 걸려 단계는 그것들을 양강으로 흘려보냈다오. 

 

하지만 생각해 보시오.

그 물 속에 얼마나 많은 영웅들의 고혼이 잠들어 있고,

얼마니 많은 망령들이 쌓여 있겠소.

 

그런데도 유장군 당신만은

단계에 빠져서도  말이 박차올라 죽음을 피하지 않았소 ? "

 

유비는 방금 전에 적로마와 함께 뛰어 넘은 깊은 강과

깍아지른 골짜기가 단계라는 것과 그 유래를 수경 선생으로 부터 듣게 되자,

하늘을 우러러 감탄한다.

"하 ! ~...세상에 ! "
유비의 이런 모습을 지켜 본 수경 선생은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하늘에 감사해야 할 일이오. 
집 안에 술 몇 동이가 있으니, 들어가서 몇 잔 하시지요."

 

유비는 신선처럼 고고하고 예지력이 있는 수경 선생의 말을

듣자 마자 손을 모으고 허리를 굽혀,

 

"감사합니다, 선생."하고, 순순히 응하였다.

그리하여 방으로 들어가 두 사람이 마주 앉았다. 
수경 선생이 유비에게 묻는다.

"장군, 형주 유표의 앞날이 어떨 것 같소 ? "

 

"유경승은 제 황형(皇兄)이고 덕과 인의가 있고 문무를 겸비했으니

한나라를 부흥시킬 임무를 맡을 만 합니다."
유비가 이렇게 형주의 유표를 평가하자,

수경 선생은 느닷없이 조소(嘲笑)를 금치 못한다."

"하하하핫 !.. 장군 !

  지금 본인의 입으로 한 말은 사실, 본인도 믿지 않잖소 ?
체면을 생각해서 말을 아낀 건 아니오 ?"

 

유비는 수경 선생의 대꾸에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조신하게 물었다.

 

"그럼, 선생께서는 유경승을 어찌 보십니까 ?"
수경 선생은 거침 없이 자신의 견해를 밝히며 묻는다.

 

"밖엔 강적을 두고 안에서는 가족끼리 다투니,

보다 못한 형양 각지(荊養 各地)의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가 있는데

들어 본 일이 있으시오 ?"

 

"무슨 노래입니까 ?"

 

"그 노래는 이러하오."​

八九年​間始欲衰  (팔구년간시욕쇠 )
至十三年無孑遺  (지십삼년무혈유 )
到頭天命有所歸  (도두천명유소귀)
泥中蟠龍向天飛  (이중반용향천비)

팔구 년째부터 쇠락하기 시작해서
십삼 년이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으리
마침내 천명이 돌아와
진흙 속에 뭍혔던 용이 하늘로 오르리라.

"이 노래는 건안(建安)초에 시작되었는데,

건안 팔년에 유표가 전처를 잃고,
집안이 매우 어지럽게 되었으니,

그것이 이른바 시욕쇠 (始欲衰:쇠퇴하기 시작함)요,

그래서 십삼 년이 지나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으리라 했으니,

그것은 유표(劉表)의 사후(死後)를 말한 것이 아니겠소 ?

 

그래서 하늘이 돌아 나갈 길이 없어,
마침내 때가 이르니 진흙 속에 용(龍)이 하늘을 향해 난다는 것은,

후일  현덕을 두고 이르는 말이 아니고 무엇이겠소 ?"

수경 선생의 말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유비는 그 소리를 듣고 크게 놀랐다.

"제가 어찌 감히 그런 일을 감당하겠습니까 ?"

 

"천만의 말씀. 천하의 기재(奇才)들이 모두
이 지방에 모여 있고, 또한 시운(時運)이 장군에게 뻗쳤소.
오늘 단계에서 겪은 일은 우연을 가장(假裝)한 필연(必然)인게요."

 

"황송한 말씀입니다.

천하의 기재는 누구이오며,

그 분은 어디 계신지 가르쳐 주십시오.

 

저는 병력도 얼마 되지 아니하고 장수도 적어,

수많은 세월동안 싸우기만 하면 계속 패했습니다.

저같은 사람도 선생이 말씀하신 대로 대업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 "

"이 세상에는 영웅이 적지 않소.

허나 아무리 큰 뜻을 품었다 하여도 그것을 이루는 사람은 극히 적소.

 

어째서겠소 ?
용의 기상을 가졌더라도 승천하려면 날개
두 쪽이 있어야 할 게 아니오 ?
바로 문(文),무(武)라는 날개 말이오.
장군은 무는 강하나 문이 약하오. 

 

관우, 장비, 조운은 혼자 만 명을 상대할 장수이나,

손건, 간옹,미방 등은 절대 군심과 민심을 다스릴 만한 인물은 못 되오.
그러니 장군에게는 날개가 한 쪽 뿐인 것이지요.

장군에게 부족한 것은 천하를 통찰하고 가슴에 지략을 품은 군사(軍師)요.."

 

"선생 말씀이 맞습니다.

그런 군사를 어디서 찾을 수가 있습니까 ?"

 

"세상에는 와룡과 봉추가 있는데,

둘 중에 한 사람만 얻어도 세상을 평정할 수 있소."

 

"와룡(臥龍), 봉추(鳳雛) ...
그 두 사람은 어디 있습니까 ?
선생께서 가르쳐 주십시오."

유비는 수경 선생을 향해,

두 손을 읍하고 애원하 듯 부탁하였다.

그러나 수경 선생은 미소만을 띠며,

 

"때가 되면 기회가 올 것이오."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유비는 낙담한 가운데 다시 희망을 가지고 물었다.

 

"선생,

이 유비가 와룡과 봉추를 얻지 못하면 선생께서 직접 도와 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

그러면 정말 더할 나위 없는 저의 홍복입니다."
그러자 수경 선생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노부는 이제 남은 날이 많지 않소.

이제는 자연과 벗하며 사는 길 만이 남았을 뿐이오."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유비는 그 말을 듣고 낙담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수경 선생은,

 

"장군, 서두르지 마시오.

조만간 이 노부보다 열 배는 나은 사람이 장군을 도울 것이오.
때를 기다리시오."하고, 말한다. 

그리고 이어서,

 

"때가 따르지 않으면 운도 따르지 않는 법이니,

때가 오면 장군은 그 흐름을 따르기만 하면 되오."하고

, 말하는 것이었다.

유비는 더 이상 수경 선생을 조르지 않았다.

이미 그로부터 천하제패를 향한 자신의 부족한 부분에

통찰한 조언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다시 한번 수경 선생에게 고마운 예를 해보인다.

 

"선생의 가르침에 감사 드립니다."

 

"자, 이제 이 이야기는 이쯤에서 그만 하고, 술을 듭시다."
유비는 이렇게 그날 밤을 수경 선생 집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다.
               
156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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