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 (380)
검, 창, 활 없는 전쟁
사위(四圍)가 고요하고 어두운 가운데
사마의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화로 앞에 앉아서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다.
"조진 그 자보다 아들 조상의 재주가 낫군."
본가에서 보내온 솜옷을 아버지에게 건네는 사마소에게 사마의가 중얼거렸다.
그때 밖에서 요란하게
"조상 장군이 돌아오십니다!" 하는
소리가 들린다.
사마소는 밖을 슬쩍 내다보고는 아버지에게,
"조상이 촉군과의 전투에서 공을 세웠나 봅니다.
병사들이 말에 촉군의 머리를 하나씩 매달고 옵니다."하고,
말했다.
그 소리를 들은 사마의는 아들에게 이렇게 당부한다.
"조상을 조심해야 할 것이야...
명심하도록 하거라."
한편 한중에서는 공명이 홀로 앉아 유유자적 거문고를 뜯고 있다.
진창(陳倉)에서의 혈전를 마치고 돌아온 왕평은
밖에서 서성이고 있는 위연에게,
"승상은 회복하신 겁니까?
거문고 연주소리가 들립니다."하고,
묻는다.
"애초에 승상은 멀쩡하셨네.
난 알고 있었지."
위연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공명의 처소를 주시하며
이렇게 대답하고는 공명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 들어갔다.
공명 앞에 선 위연의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하고
인사하는 목소리에는 성의가 없다.
왕평은 진창성에서의 전투 결과를 공명에게 보고한다.
"승상,
소장이 아군 오천을 잃고 말았습니다......
위군은 이미 진창성에 입성하였고,
무도, 음평, 하관 등도 모두 적에게 넘어 갔습니다."
왕평으로부터 진창에서의 처참한 결과를 듣고도
공명은 별다른 말도, 표정의 변화도 없다.
이에 위연은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으로,
"승상,
진창은 중요한 곳입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아군의 보급로인 진창을 적에게 미끼로 던지시다니요......
실은 진짜로 철군(撤軍)할 마음도 없으시면서 말입니다."하고,
불만을 늘어 놓았다.
공명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위연, 진창이 그렇게도 못 견디게 아까운가?
그렇다면 내가 그대에게 잠시 빌린 셈 치지.
곧 돌려주면 될 것 아닌가."
공명의 말에 위연은 자신이 도를 넘은 것을 깨닫고
두 손을 모으며 고개를 숙였다.
"승상,
제가 실언(失言)을 하였습니다.
부디 용서하십시오."
"내가 모든 군량을 기산(祁山)으로 옮기라 한 것은
기산이 지대(地帶)가 높기 때문이지.
전에 비해 우기가 7, 8일가량 늦어지고 있어.
늦어진만큼 이전의 우기보다 더 큰 비가 올 것이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지.
진창은 저지대(低地帶)네.
비가 들이닥치면 꼼짝 못하고 모두 잠기게 되어 있어.
군량이 다 젖게 되면 아무리 뛰어난 기마병이 와도 어쩔 도리가 없네.
그렇지 않겠는가?"
공명의 설명에 위연은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다.
공명은 위연, 왕평을 앞에 두고 고개를 위로 슬쩍 젖히며
이렇게 말하였다.
"전쟁은 하늘의 뜻을 봐야 하네.
하늘의 뜻만 안다면 이기게 되어 있어."
위군 대도독 조진은 본영의 군사를 이끌고
아들 조상이 수복(收復)한 진창성 앞에 당도하였다.
"곽회!
나 대신 자네가 조정에 상소를 쓰게.
아군이 용맹하게 싸워 제갈양의 군대를 격퇴하고
진창성을 비롯한 열 개의 성을 수복했다고 말일세.
으하하하!"
기분이 한껏 들뜬 조진은 진창성의
위용(威容)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때 사마의가 그들 앞에 불쑥 나타나,
"곽회,
그게 다가 아니네.
상소문에는 이 내용이 꼭 들어가야지.
조상 장군이 직접 철기군을 이끌어 촉군을 몰살시키고
진창성을 획득했으니 조상에게 큰 상을 내려 달라는 내용 말일세." 하고,
말하자 아들 칭찬에 신이 난 조진은
"하하하하하!" 하고
파안대소(破顔大笑)했다.
그리고 사마의를 향해,
"중달,
상소는 곽회가 아니라 자네가 써야겠네.
그래야 폐하께 더 설득력이 있지 않겠나?
하하하!" 하고,
말하며 웃음을 그칠 줄을 몰랐다.
"예.
대도독의 명이라면 받들어야지요."
사마의는 조진의 명을 고분고분 따른다.
사마의는 사마소와 함께 진창성 성내를 거닐었다.
"아버님,
정말로 조진을 위해 상소를 쓰실 작정이십니까?"
사마소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제 아비를 향해 이렇게 묻는다.
"내 이미 쓰기로 약속하였는데 어쩌겠느냐?
왜 그러느냐?"
"그런 상소를 쓰면 조정의 신료들이
모두들 아버님을 비웃을 겁니다.
조진은 아버님을 몰아내려는 생각 뿐인 사람인 것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데,
그가 부임하자마자 승리한 것도 모자라
그 공을 치하해달라는 내용의 상소문을 아버님께서 직접 작성하시면 말입니다.
폐하와 신료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습니까?
걱정이옵니다."
근심이 가득한 아들의 물음에
사마소는 아들을 넌지시 바라보며 이렇게 대답한다.
"아마 이리 생각할 것이다.
'어라? 사마의는 다른 뜻이 있는 자가 아니구나.
도량이 넓은 대인배였어.
조진과의 사적인 원한은 접어두고 나라에 충성하고 있군.'
이렇게 말이다.
특히 폐하께서는 그리 생각하고 나에 대해 놀라실 게다.
게다가 내 상소가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진의 패전보가 도착할 테니 폐하께서는 더더욱 깜짝 놀라실 테지.
'응? 무어라?
승전보가 오자마자 패전?
어찌된 노릇인가?
여하튼 조진은 앞으로 큰 일에 써서는 안 되겠구나......'
하고 여기실 것이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조진의 패전 기미는 전혀 없습니다."
승전으로 기세등등(氣勢騰騰)한 조진의 패전을 운운하는 아버지의 난데없는 말에
사마소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이에 사마의는,
"옛말 틀린 것 하나 없다.
화(禍) 속에 복(福)이 있고,
복 속에 화가 있다고 했느니......
꼭 이와 같은 경우구나."
이렇게 알 듯 말 듯한 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아버님,
빙 둘러 말씀하지 마시고
저에게 허심탄회(虛心坦懷)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답답하옵니다."
아들의 청에 사마의는 아들을 쓱 쳐다보며,
"싫다.
알려주지 않겠다.
네 스스로 생각해 보거라.
흐흐흐!" 하고
말하고는 아들 사마소 앞에서 사라졌다.
그야말로
검, 창, 활이 없는 조용한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다.
381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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