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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앞에 흔들리는 등불(1)

오토산 2022. 5. 24. 09:08

삼국지(三國志) .. (414)
바람 앞에 흔들리는 등불(1)

답중에 있던 강유는 위나라 대군이 쳐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요화, 장익, 동궐(董厥)에게 군사를 출동시켜 접응하라는 격문을 보냈다.
그리고 자신은 답중의 병력을 모두 모아 전투 태세를 갖추고 적이 오기를 기다렸다.

 

곧 위군이 답중에 들이닥치자,

강유는 군사를 거느리고 나아가 적과 맞섰다. 

위군의 선봉장은 천수군 태수 왕기(天水郡 太守 王頎)였다.

왕기가 말을 박차고 나오며 강유에게 소리친다.

 

"우리 백만 대군, 상장(上將) 일천 명이

스무 갈래로 진격하여 이미 성도(成都)에 다다랐다.
대세가 이렇게 기울었는데 항복하지 않고 맞설 생각을 하다니

강유 네가 천명(天命)을 모르는구나!"

 

강유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고

창을 움켜쥔 채 곧바로 왕기에게 달려들었다.
왕기는 불과 세 합을 견디지 못하고 패하여 달아났다.
강유가 군사들을 재촉해서 이십여 리를 추격했다.

 

강유가 말에 채찍을 가하며 추격의 속력을 높이고 있는데

돌연 북소리와 징소리가 울리더니 한 무리의 군사가 쏟아져 나와

강유의 앞길을 막았다.

 

그들이 들고 있는 깃발을 보니,

'농서 태수 견홍(隴西 太守 甄弘)'이라고 씌어 있었다.

그것을 본 강유가 코웃음을 쳤다.

 

"고작 저런 쥐새끼 같은 놈들이 내 적수란 말이냐?"

 

강유가 견홍의 군대를 깨치는 것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강유의 군사가 또 십여 리쯤을 가다가

이번에는 등애의 군사와 맞딱뜨렸다.

 

양쪽의 군사들이 격돌하여 혼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강유와 등애도 맞붙어 싸웠다.
둘은 십여 합을 겨뤘지만 승패가 갈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또 강유의 후군 쪽에서 북소리와 징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강유가 얼른 등애를 떨쳐내고 적의 기습을 피해 퇴각하려는데,

후군에 있던 전령이 달려와서 강유에게 보고한다.

 

"금성 태수 양흔(金城 太守 楊欣)이

감송(甘松)을 기습하여 우리 영채를 모조리 불태웠습니다!"

 

강유는 대경실색했다.
감송을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급히 부장(副將)에게 허장성세로 많은 기를 세워서 등애군을 막도록 하고

강유 자신은 후군을 거두어서 감송을 구하기 위해 밤새 달려갔다. 
감송으로 가는 도중에 강유는 양흔의 부대와 마주쳤다.

 

양흔은 감히 강유와 맞설 생각을 하지 못하고

산길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강유가 양흔의 뒤를 바짝 쫓았다.
강유가 산중턱 낭떠러지 끝에 이르렀는데,

 

갑자기 절벽 위에서 수많은 통나무들과 돌들이 비내리듯 쏟아져 내려와

더이상 진격이 불가능해졌다.
강유가 감송을 구하기로 한 것을 그만두고 그대로 군사를 돌려 절반쯤을 되돌아갔을 때,

등애와 대치했던 본진이 이미 대패하여 위군의 주력부대가 강유에게 쇄도해 오고 있었다.

 

위군이 강유를 에워쌌지만 강유는

기병대와 함께 포위망을 빠져나와 후방에 세워 두었던 대채로 달아났다.
그리고 방어진을 촘촘히 구축하여 굳게 지키며 구원병이 오기를 기다렸다. 

이때,

여기저기에서 강유에게 비보(悲報)가 여러 통 날아들었다.

 

"양안관(陽安關)을 종회에게 빼앗겼습니다.

그곳을 지키던 장서(蔣舒)는 위군에 투항하였고,

부첨(傅僉)은 전사하여 한중이 이미 위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낙성(樂城) 수비장 왕함(王含), 한성(漢城) 수비장 장빈(蔣斌)이

한중이 함락되는 것을 보고 성문을 열어 위군에 항복했습니다.

호제(胡濟)는 적을 막아낼 수 없어서 구원병을 요청하러 성도로 도망쳤습니다!"

 

강유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즉시 전군의 영채를 거둬서 후방으로 퇴각하기 시작했다.

 

그날밤,

강유의 군대가 강천(疆川) 어귀에 이르렀는데,

그곳에서는 또 한 무리의 군사가 강유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유를 기다렸던 것은 얼마 전 산중에서

강유를 곤경에 몰아넣었던 금성 태수 양흔이었다.
강유는 대로하여 쏜살같이 양흔에게 달려들었다.
양흔은 단 일 합만에 패하여 허겁지겁 도망쳤다.
강유가 활을 들어 양흔에게 연달아 세 발의 화살을 쏘았으나

모두 빗나가고 말았다.

 

화가 난 강유가

활을 꺾어 패대기치고는 창을 잡고 양흔을 쫓았다.
그런데 그만 강유가 탄 말이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강유가 마상에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양흔은 그 모습을 보더니 말머리를 돌려 강유를 향해 달려들었다.
강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얼른 창을 비껴잡고

양흔의 말 머리를 푹 찔렀다.

 

양흔을 죽이려는 찰라,

뒤에서 위군이 폭풍처럼 달려와서 양흔을 구출해 갔다.

강유가 다시 양흔을 추격하려고 말에 오르는데,

부장 하나가 급히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뒤에 등애군이 몰려 옵니다!"

 

급보에 강유는 앞뒤를 돌아볼 겨를 조차 없었다.
군사들을 얼른 수습하여 그 자리를 떠나기로 했다.
이제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한중을 다시 탈환해 오는 것이었다.
강유가 한중을 바라보고 진격하려는데 정탐꾼이 달려와서 소식을 전한다.

 

"옹주 자사 제갈서(雍州 刺史 諸葛緖)가

우리의 퇴로를 끊어 놓았습니다!"

 

강유는 하는 수 없이 한중으로의 진격을 멈추고

험한 산세에 의지하여 영채를 세웠다.

그리고 다시 정탐꾼을 보내서 앞쪽의 상황을 자세히 살피고 오도록 했다.
돌아온 정탐꾼의 보고를 듣고 강유가 장탄식을 한다.

 

"진퇴양난이구나.
아! 무심하기도 하여라.
하늘이 나를 버리시는구나!"

 

정탐꾼이 가져온 소식은 위나라 제갈서가

음평교(陰平校)에 교두보(橋頭堡)를 차렸다는 것이었다.
곁에 있던 부장 영수(副將 寧隨)가 강유에게 말한다.

 

"옹주 자사 제갈서가 음평교를 장악했다니,

옹주에는 오히려 군사가 적을 것입니다.

우리가 공함곡(孔函谷)을 거쳐서 옹주성을 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

제갈서는 반드시 본거지를 구하려고 음평교를 포기하고 돌아갈 것입니다.

 

그 틈에 장군께서는

군사들을 이끌고 검각(劍閣)으로 달려가 그곳을 지키십시오.

검각이 무사하면 한중은 곧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좋은 생각이군.
그것 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겠다."

 

강유가 영수의 계책을 받아들여 즉시 공함곡으로 가서 옹주를 공격하는 척했다.

제갈서는 정탐꾼을 통해 강유의 움직임을 파악했다.

 

"옹주는 내가 지켜야 할 땅인데,

그곳을 잃으면 조정의 문책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제갈서는 음평에 소수의 병력만 남기고

옹주를 향해 주력군을 대거 출동시켰다.

 

공함곡에서 나온 강유는 삼십 리쯤을 가다가

제갈서가 옹주로 간 것을 파악하고 후군을 전군 삼아 음평교로 향했다.
과연 음평교에는 별 볼일 없는 군사 몇이 남아서 지키고 있었다.
순식간에 강유가 적병을 격파하고 텅 비어있는

제갈서의 영채를 모조리 불살라버렸다.

 

한편,

옹주로 달려가던 제갈서가 다리에서 불길이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황급히 되돌아 왔을 때는 강유의 군대가 지나가고 벌써 반나절이나 흐른 뒤였다.

강유는 군사들을 이끌고 다리를 지나 곧장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앞에서 갑자기 한무리의 군사들이 달려나왔다.
살펴보니 그것은 좌장군 장익과 우장군 요화가 이끄는 군대였다.
강유는 장익과 요화를 반가이 맞으며 묻는다.

 

"아니,

두 장군이 어찌 알고 여기에 오셨소?"
장익이 대답한다.

 

"천자께서 황호가 천거한 무당의 말만 믿고

출병을 시키지 않으셨습니다.

 

한중이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조정에 아뢸 새도 없이 군사를 일으켰으나,

이미 양안관이 종회에게 함락당한 뒤였습니다.

그래서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장군께서 곤경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도우러 달려온 것입니다."

 

이리하여 강유, 장익, 요화 세 장수는 군사들을 하나로 합쳤다.

군사를 정돈하고 요화가 말한다.

 

"이제 사방이 다 적입니다.
우리의 군량 보급로 또한 막혔으니 여기서 버틸 것이 아니라

우선 검각으로 물러갔다가 다시 반격의 기회를 노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강유가 고민하며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그때,

종회와 등애가 군사를 십여 길로 나누어

쳐들어오고 있다는 급보가 도착했다.
강유는 곧장 병력을 출동시켜 위군과 맞붙으려 했다.
요화가 강유에게 말한다.

 

"백수(白水) 땅은 길이 협소하고

통로가 여러 군데라 싸움을 벌일 곳이 못 됩니다.
차라리 후퇴하여 검각을 확보하는 것이 낫습니다.
검각을 잃으면 돌아갈 길이 없습니다."

강유가 마침내 결단을 내려 요화의 계책을 따르기로 했다. 
강유, 장익, 요화 군이 검각으로 후퇴하여 관문에 이르렀다.
그런데 갑자기 북소리와 뿔피리 소리, 함성소리가 땅을 뒤흔들었다.
곳곳에서 깃발이 서고 한무리의 군사가 관문 입구를 막아섰다.

 

뒤에 있던 강유가 급히 선두로 나서서

입구를 막아 선 군사들을 살피고는 가슴을 쓸어 내렸다.
관문을 막고 있던 군사들은 다름 아닌

촉나라의 보국장군 동궐(輔國將軍 董厥)의 군사들이었다.
동궐은 위군이 쳐들어왔다는 강유의 격문을 받자마자

즉시 군사 이만을 검각으로 이끌고 와서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매일 정탐병을 출동시켜 경계하고 있던 중,

오늘 멀리서 어렴풋이 흙먼지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위군이 오는가 싶어 군사를 대기시켰던 것이었다.

 

그런데 동궐이 직접 앞에 나와

관문으로 오고 있는 군사들을 바라보니

강유, 장익, 요화의 군대였다.

 

동궐은 세 장수가

무사히 검각으로 온 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며 이들을 맞아들였다.

인사를 마친 동궐은 강유에게 눈물로 호소한다.

 

"성도의 상황을 들으셨습니까?
황제 폐하가 간신 황호의 말만 믿고 계시다 합니다. 
후방이 그 꼴이니, 전방에 있는 우리가 무슨 힘을 얻어

적을 물리칠 수 있겠습니까?"
강유가 동궐의 어깨를 다독이며 위로의 말을 한다.

 

"나도 성도의 소식은 들었소.
허나 공은 근심 마시오.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위나라가 우리 촉을 집어삼키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오.

당분간은 검각을 지키면서 적을 물리칠 계책을 찬찬히 짜봅시다."
동궐이 여전히 눈물을 지으며 말한다.

 

"장군께서 오셨으니 이 관문은 어떻게든 지켜내겠으나, 성도가 걱정입니다.
지금 그곳에는 나라를 걱정하여 지키고자 하는 인물이 없다시피 합니다.
적군이 기습하면 그대로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성도 주변은 산세가 험해서 그렇게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오.

쉽게 공격할 수 있는 지형이 아니잖소."

 

이렇게 촉의 장수들이 의논을 하고 있는데 음평교를 잃은 제갈서가

검각 관문 앞으로 몰려오고 있다는 급보가 도착했다.
안개 속에 휩싸인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며 우울한 심사에 싸여 있던 강유가

그 소식에 분기탱천(憤氣撐天)하여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오천의 군사들을 이끌고 나가서

분풀이라도 하듯이 제갈서의 군사들을 닥치는대로 해치웠다.
제갈서는 변변히 힘도 쓰지 못한 채 황급히 패잔병을 끌어모아 달아났다.
제갈서는 가까스로 수십 리 길을 후퇴하고 영채를 세웠다.
남은 병력을 헤아려보니 사상자 수가 셀 수 없이 많았다.

제갈서는 자신의 판단 실수을 자책했다.

 

촉군은 위군이 버리고 달아난 무기와 말을 가득 싣고 관문으로 돌아갔다.
종회는 검각으로부터 이십 리 정도가 떨어진 곳에 당도하여 그곳에 영채를 세웠다.

그곳으로 제갈서가 찾아와서 종회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그리고 스스로 패전의 죄를 청했다.
종회는 분노가 폭발하여 제갈서를 무섭게 꾸짖는다.

 

"내가 너에게 음평교를 잘 지켜서 강유의 귀로를 끊으라 명했거늘,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았단 말이냐?
더구나 내 명도 없이 제 멋대로 출병해서 이렇게 참패를 당하다니!
그 죄를 무엇으로 갚으려 하느냐!
입이 있으면 말을 해봐라!"
제갈서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한다.

 

"강유는 계략이 뛰어난 자입니다.
강유가 옹주를 치러 가는 듯한 움직임이 있어서

저는 옹주를 잃을까 염려가 되어 급히 옹주로 떠났습니다.
그 틈에 강유가 얼른 음평교를 건너 도망쳤습니다.
뒤늦게 간계였음을 깨닫고 만회하려고 뒤쫓았다가 그만 패하고 말았습니다."
종회는 제갈서가 변명을 늘어놓자 더 화가 나서 불호령을 내린다.

 

"뭐?

나는 무엇으로 죄를 갚겠냐고 물었다.

그런데 지금 변명을 하는 것이냐?
여봐라, 당장 이놈을 끌어다가 목을 쳐라!"
감군 위관(監軍 衛瓘)이 급히 말린다.

 

"제갈서가 죄를 지은 것은 분명하나,

그는 정서장군 등애 수하의 장수입니다.
장군께서 섣불리 제갈서의 목을 베었다가
두 분 사이의 의가 상할까 걱정스럽습니다."
종회가 피식 웃더니 말한다.

 

"흥!

나는 천자의 친임관(親任官, 임금이 직접 임명하는 벼슬)이다.
게다가 진공(晉公, 사마소)의 명령으로 촉을 치러 왔다.
제갈서가 대수냐. 나는 등애라도 죄를 지으면

응당 그 또한 참형에 처할 것이다!"

 

모든 장수들이 종회를 만류하고

또 만류한 끝에 간신히 제갈서의 목이 달아나지 않았다.

대신 종회는 제갈서를 함거(檻車, 죄인을 호송하는 수레)에 실어

낙양으로 보내버렸다.

 

 

그리하면 낙양에서 사마소가 제갈서를 알아서 처리할 것이었다.
그리고 제갈서가 이끌던 병력들은 등애에게 보내지 않고

종회 자신의 수하로 편입시켰다. 
이러한 소식을 전해들은 등애는 이를 부드부득 갈았다.

 

"괘씸한 놈!

나와 품계(品階)가 같은데 나를 이렇게 무시한단 말이냐?
내가 변방에서 갖은 풍상을 겪으며 이 나라를 지키는 동안 제까짓 것은

도성에서 진공에게 아부나 떨고 있었으면서 말이다.

그런 놈이 혼자 잘난 척은 다 하는구나."
아들 등충이 제 아비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한다.

 

"옛말에 사소한 것을 참지 않으면 큰 일을 망친다 하였습니다.
부디 노여움을 거두십시오.
아버님께서 종회와 반목(反目)하여 지내시면

나라의 대사를 그르칠 수 있으니 마음이 넓으신 아버님께서 참아주십시오."

 

"그래. 나도 알고는 있다."

 

등애는 참아야 할 때라는 것을 알면서도 분이 쉬이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 종회를 직접 만나보기로 하고 친위병 십여 명을 동반하여

종회의 진영을 찾아갔다.
등애가 왔다는 말에 종회는 측근에게 묻는다.

 

"군사를 몇이나 거느리고 왔느냐?"

 

"십여 명 쯤 됩니다."

 

종회는 대답을 듣더니 곧장 장막 안팎에 무사 수백 명을 늘어 세웠다.
등애가 말에서 내려 종회가 있는 장막으로 걸어가며 주변에 서 있는 군사들을 살폈다.

군사들이 삼엄한 분위기 속에서 질서정연하게 있는 것을 보고

등애의 마음은 은근히 불안해졌다.

 

등애는 제갈서의 일을 두고 따지러 온 본래의 목적은

슬그머니 마음 속에 집어 넣고 다른 용건을 꺼낸다.

 

"장군께서 힘써 한중을 얻었으니

이것은 우리 조정의 큰 행운이오.
이제 검각을 차지할 계획을 세워야겠소이다."
종회가 등애에게 묻는다.

 

"장군의 고견은 어떠신지요?"

 

"나야 재주가 미천해서 무슨 계획이랄 것이 있겠소."
등애가 대답을 슬쩍 회피하는데 종회가 거듭 요청한다.

 

"사양하지 마시고 한 수 가르쳐 주시지요."
등애는 하는 수 없이 대답한다.

 

"내 짧은 생각으로는, 군사를 거느리고 음평 샛길을 따라

한중의 덕양정(德陽亭)까지 곧장 가서 성도를 기습하는 것이 좋을 성싶소.

그러면 강유는 반드시 성도를 구하러 갈 것이오.
그 사이에 장군이 강유가 떠난 검각을 취하면 우리가 완승을 거둘 수 있을 것이오."
등애의 계책을 듣더니 종회는 감탄을 하며 말한다.

 

"허헛! 절묘하다, 절묘해.
장군의 계책을 누가 따르겠습니까?
즉시 군사를 거느리고 음평 샛길로 나아가시지요.
나는 여기에서 장군의 기쁜 소식을 기다리며

군사들을 대기시켜 놓으리다."

 

두 사람은 적어도 겉으로는 웃음이

오가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 술잔을 나누고 헤어졌다. 
등애를 배웅하고 장막으로 돌아온 종회가 장수들에게 말한다.

 

"사람들이 하나같이 모두

등애가 유능하다고 하도 말을 하기에 기대를 하였거늘,

내가 오늘 보니 범부(凡夫)에 불과하구나."

 

"어째서 그렇게 보셨습니까?"

 

"음평 샛길은 산세가 험하다.
무장한 군사들이 그곳을 어떻게 넘어 가겠느냐?

가다가 지치고 말 것이다.
게다가 길이 좁으니 촉군이 겨우 백 명 남짓의 군사만 동원해도

등애군의 앞길과 뒷길을 끊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퇴로가 끊기면 군사들은 모두 산 속에서 굶어죽는 신세가 되겠지.

나는 정공법을 택하겠다.
오직 큰길을 통해 나아갈 것이다.
그리해도 촉군 하나 쯤은 격파하고도 남는다."

다음날부터 종회는 운제(雲梯)를 마련하고

포대를 설치하여 검각의 관문을 맹렬하게 공격하기 시작했다. 
종회의 영채에서 나와서 등애는 측근을 보며 묻는다.

 

"나를 대하는 종회의 태도가 어때 보였느냐?"

 

"보아하니 속으로는

장군의 말씀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 같은데

입으로만 맞장구를 치는 것 같았습니다."
등애가 씩 웃더니 말한다.

 

"나만 그리 느끼는 것이 아니었군.
종회가 내 계책과 능력을 우습게 보고 있는 모양인데,

이제 본때를 보여줄 때가 된 것 같다.
기필코 내가 성도를 점령하고 말겠다!"

등애가 본채로 돌아오니 등충과 사찬을 비롯한

몇몇 장수들이 나와서 등애를 맞이하며 묻는다.

 

"종회 장군과 좋은 의견 나누고 오셨습니까?"

 

"나는 진심으로 얘기했는데

그는 나를 자기보다 한 수 아래로 보는 것 같더군.
지금 자기가 한중을 얻어서 큰 공을 세운 줄 알고 의기양양한 모양이다만,

내가 강유를 답중땅에 발 묶어 두지 않았다면 그 일이 가능하기나 했겠느냐?
이제 내가 성도를 취하면 한중 땅을 얻은 것쯤은

내 공에 비하면 별 것도 아닌 것이 될 것이다."

 

등애는 바로 그날밤 영채를 모두 걷어서

음평 샛길을 향해 진군했다.
그리고 검각으로부터 칠백 리 떨어진 곳에 영채를 세웠다. 
등애의 움직임을 살피던 종회쪽 첩자가
그 사실을 종회에게 보고한다.

 

"등애가 성도를 공략하려고 떠나

음평 샛길로 가고 있습니다."
종회가 비웃으며 말한다.

 

"미련하구나.

그냥 내버려 두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