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인문아카데미에서 영주 삼판서고택을 다녀와서
1911년 조선총독부에서 토지수용령을 공포하였다는 4월 17일
퇴계인문아카데미에서 소수서원 답사를마치고
순흥에 있는 '소문난 암소갈비'에서 점심을 맛있게 먹고나니
순흥로타리에는 순흥복숭아 조형물이 아름답게 서 있었으며
우리는 가흥동에 있는 삼판서고택을 찾아갔다.
삼판서고택(三判書古宅)은
고려말부터 조선초까지 세명의 판서가 살았던 곳으로
고려말 형부상서를 지낸 정운경(鄭雲敬 1305~1366)선생이 살며
아들 정도전(鄭道傳 1342~1398) 형제들이 어린시절 거처하였고
공조판서를 지낸 사위 황유정(黃有定 1343~1422)선생에게 물려줬고
황유정이 역시 사위 김소량(金小良 1384~1449)선생에게 물려주어서
김소량의 아들 김담(金淡 1416~1464)선생이 이조판서에 오르면서
봉화정씨, 평해황씨, 선성김씨 세 가문에서 판서를 배출한 집이다.
서천둔치에 주차를 하고 철교량을 건너서 박터널을 지나
서천변 구릉에 조성된 구학공원에 있는 삼판서고택을 찾았더니
고택 뒤에는 조선시대 약국역할을 하였던 제민루(齊民樓)가 있었고
1371년(공민왕 20)년 설립된 제민루는 소백산 등에 자생하는
진귀한 약재를 저장하여 태의(太醫)에 공납(貢納)하고
백성들을 치료하는 공공의료를 수행하면서
선비들이 시가(詩歌)를 읊는 경로소(敬老所)로 이용되어 오다가
1961년 대홍수로 붕괴되어 2007년 개축하였다고 전하며
아래층에는 돗자리를 깔고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제민루를 내려서니 삼판서고택이 남향으로 자리하였고
집경루(集敬樓)라 편액된 사랑채옆 솟을대문을 들어서니
황판서가 편액하였다는 소쇄헌(掃灑軒) 마루에 올라서
문화해설사님의 안내를 받았다.
고택은 구성공원 남족쪽에 영주선비의 표상으로 이어오다가
1961년 대홍수로 철거되어 2008년 현위치에 복원되었으며
고택뒷편에는 1961년 7월 11일 영주에 5시간동안 200㎜의 폭우로
서천이 범람하는 대홍수가 발생되어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님이
군용기로 수해지역을 시찰하고 공병대를 파견하여 군사작전하듯
서천수로를 현위치로 변경하여 1962년 3월 31일 준공식을 앞두고
3월 30일 기념식수 한 소나무가 지금도 건장하게 자라고 있었다.
삼판서고택과 제민루에서 서천과 주변의 시가지를 돌아보고
상세하게 설명을 하여주신 해설사님에게 감사인사를 드리고
우리는 주차장으로 와서 화기리 인동장씨종택을 찾았다.
달빛에 천번 미끄러져도 원래모양을 잃지 않는 달처럼
백번 찢어도 피어나는 버드나무처럼 유구한 날이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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