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상식

생일에 미역국과 케이크의 유래(낙여)

오토산 2018. 3. 9. 22:56



생일에 미역국과 케이크의 유래




 
생일에 빠질 수 없는 케이크, 서양 문화가 우리의 문화에서

비교적 잘 흡수되어 빠질 수 없는 음식이 된 생일 케이크의 유래는 어떻게 될까?
해외 백과사전 등에는 축하용 케이크를 처음 사용한 곳은 고대 로마였다고 한다.


로마 시대에 보리빵을 구워 결혼식에 빠질 수 없는 축하음식으로 등장을 한 것을

필두로 이후 각종 생일 및 축하 용도로 케이크를 사용해 왔다.


현재와 같은 의미의 생일 축하 케이크는 독일의 '킨테 페스테'라는

어린이들을 위한 생일 축하 행사에서 사용된 것이 유래되어

이후 서양에서 생일 축하 케이크를 널리 사용해 왔다.


특히, 이 시기부터 케이크를 다 먹을 때까지는 촛불을 켜놓는 것이

전통이 되어 이후 케이크 위에 초를 꽂아 놓기도 하고 소원을 빌며

단숨에 촛불을 끄는 전통들이 부수적으로 생겨났다.


최근에는 케이크가 생일 축하용 뿐 아니라 커피 및 케이크

전문점들에서 일상적으로 간단하게 차와 함께 먹을 수 있는

용도로 확대되어 널리 성업 중에 있다.

은은한 차 향기와 함께 달콤한 케이크 한 조각을 입안에 넣으며

이러한 유래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것도 바쁜 생활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유쾌하면서 소박한 삶의 여유로 활용 할 수 있다.


*생일에는 왜 미역국을????
생일날 미역국을 먹게 된 유래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두 가지 설이 있다.
아이가 태어난 날 어머니가 산후조리를 위해 미역국을 먹는데

미역 성분을 함유한 어머니 젖이 처음 먹은 음식이기에

‘미역국은 태어난 날’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부모가 이미 겪은 출산의 고통을 되새기면서

자식된 도리로서 그 은혜에 감사하기 위한 뜻이라는,

다분히 형이상학적인 해석도 있다.


조선시대 여성들의 풍습을 기록한 ‘조선여속고’에는

“산모가 첫 국밥을 먹기 전 산모 방의 남서쪽을 깨끗이 치운 뒤

쌀밥과 미역국 세 그릇씩 삼신(三神)상을 차려 바친 뒤

국과 밥을 산모가 모두 먹었다”고 기록돼 있다. 

 예나 지금이나 산모는 출산 후 몸속에 쌓인 노폐물을 배출하고

 피를 맑게 하기 위해 삼칠일(21일) 동안 미역국을 먹는다.


 


 미역에는 칼슘과 요오드가 풍부해 산후에 늘어난


 자궁의 수축작용과 함께 조혈제 역할을 한다고 한다.


 이 같은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되면서


 미국의 유명 병원에서도 산후 건강식으로 미역국을 내놓고 있다.


 

케익은 서양에서 전래된 음식 중 이제는 우리 문화에서도 매우 친숙해진 것 중의
  하나이다.
흔히 "축하", "무병장수에 대한 기원", "약혼 및 결혼등의 경사" 등에서

빠뜨릴 수 없는 필수 음식이 된 케익은 대중예술의 총아인 영화에서도

극중 긴장감이나 사실감을 부각시켜 주기 위해 아주 요긴하게 쓰이기도 한다.

생일 케익을 촛불로 장식해서 생일파티를 갖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인류학자들은 "중세 독일 농민들 사이에서 ''킨테 페스테''라고 하는

어린이를 위한 생일 축하 행사가 기원이 되었다''라고 주장한다.


''킨테 파스테''는 생일을 맞은 아침에 눈을 뜨면
촛불로 장식된 케익을 아이 앞에 놓으면서 시작되며,

이 촛불은 저녁 식사 때 온 가족이 케익을 먹을 때가지 계속 켜 놓았다.


특히 촛불은 아이 나이보다 하나 더 많게 하여 밝혀 놓았는데

하나 더 많게 밝힌 그 촛불은 "생명의 등불을 의미"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생일을 맞은 아이들은 선물과 음식을 나눠 먹고 소원을 빌며

촛불을 끄는 오늘날의 관습도 바로 독일의 ''킨테 페스테''에서

유래된 것으로 "촛불은 단숨에 끌 것"

 "소원은 꼭 비밀에 부쳐야 할 것"등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다.

요즈음 청소년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케익 크림 씌우기 등은

''루킹래징(Rooking Razzing)''이라 불리우는 서양인의 오랜 관습 중 하나이다.


이것은 "신체에 피해가 가지 않는 범위 내에서 벌이는 장난으로 상대방에게

호의적인 태도로 받아들어져 웃고 즐기며 친분관계를 확인하는 풍습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