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상식

어사화와 무궁화에 대한 글

오토산 2018. 12. 31. 11:37



최치원이 당나라에 보낸 국서에서 신라를 근화향(槿花鄕:무궁화의 나라, 신라를 뜻함)이라 하였고,

구당서》에도 같은 기록이 있을 정도로 우리 민족과 관계 깊은 꽃이다.

조선시대에는 과거에 급제하면 ‘어사화’라 하여 보라색·노란색· 다홍색 무궁화를 머리에 꽂았으며,

 

자생지는 밝혀진 바 없으며 꽃이 피고 지는 것이 끝이 없어 무궁화라 부른다.

정절을 지킨 부인과 관련된 전설이 있어서인지 꽃말은 일편단심, 은근과 끈기이다.

 

추위에 강하고 소나무, 자작나무, 버드나무 등과 더불어 햇볕을 좋아하는 대표적인 양수이다.

또한 봄이나 여름에 꽃을 피우는 많은 식물들처럼 꽃을 피우기 위해 낮의 길이가
밤의 길이보다 길어야 하는 장일성(長日性) 식물이기도 하다.

아침 일찍 꽃이 피었다가 황혼 무렵이 되면 시들어 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나,
여름에서 가을에 이르기까지 새로 난 가지의 밑에서 위로 향하면서 차례차례 꽃을
피워내기 때문에 오랫동안 꽃이 피어 있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이와 같은 예는
배롱나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주로 꽃잎의 빛깔에 따라 수백 종의 품종으로 나눠진다.

대표적으로 흰 꽃잎 안쪽이 붉은 ‘백단심’,

꽃잎에 분홍색 얼룩이 들어간 ‘아사달’,

연분홍 바탕에 짙은 얼룩이 있고 줄무늬가 밖으로 뻗쳐 있는 ‘영광’ 등이 있다.

무궁화 관련 단체에서는 바탕이 희고 중심부에 붉은 무늬가 들어간 무궁화를

표준나라꽃 으로 정했다.

 

조경용이나 분재용으로 가치가 있으며 생울타리로도 이용된다.

줄기와 뿌리의 껍질을 ‘목근피’라 하여 치질이나 불면증을 치료하는데,

잎은 ‘목근엽’이라 하여 열을 내리거나 무좀을 치료하는데 많이 사용하고 있다.

종자, 꺾꽂이, 포기나누기 등으로 번식하며 생명력이 강하다.

[출처] 어사화와 무궁화|작성자 부는바람



(근세)조선시대 장원급제한 선비에게 님금이 하사하신 꽃을 ‘어사화’라 하였다.{한국_민족문화_대백과 ‘어사화’ 참조} 그런데 이 꽃의 정체를 놓고 왈가왈부하는데, 1) 어떤 이는 양반꽃/능소화라 하거나, 2) 무궁화라 하고, 3) 또 어떤 이는 참꽃/진달래/두견화라 한다. 이에서 한걸음 나가, 무궁화를 국화(國花)로 정함은 잘못된 일이며 애국가 후렴에 들어있는 ‘무궁화 삼천리’도 민족의식을 고취하느라 취한 무리한 처사라 강변하는 이들도 있다.

능소화나무는 쌍떡닢 식물로서 통화_식물_목 능소화_과에 속하는 갈닢{落葉성} 덩굴식물로 분류되어 있다. 원산지는 중국 중부 이남으로 알려져 있고, 길이 10 [m] 정도 자라는 덩굴이며, 무궁화와 흡사한 야생화를 꽃 피우지만 어사화는 아닐 개연성이 크다. 같은 과에 속하는 꽃식물로 부용이나 접시꽃 등도 비슷한 모양의 꽃을 피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궁화는 쌍떡닢 식물로서 아욱_목 아욱_과 무궁화_속의 落葉(락엽) 관목으로 분류되어 있어, 꽃의 생김새가 비슷한 능소화 등과는 전혀 다른 종류로 보아야 할 듯하다. 선교사들에 의해 영어로는 ‘Rose of Sharon’으로 알려졌고 학명이' Hibiscus syriacus L.'로 되어 있어 한때는 마치 Syria[씨리아]가 원산지인 듯 오해를 불렀으나, 최근에는 인도ㆍ중국ㆍ한국 지방이 원산지라는 설이 유력하며 200여 종이 알려져 있다. 중지나인들은 ‘훈화초, 목근’ 등으로도 부르나 무궁화라 쓴 적이 전혀 없고, 우리는 뜻글자로 無窮花ㆍ無宮花ㆍ舞宮花 {http://terms.naver.com/entry.nhn?cid=1611&docId=554194&mobile&categoryId=1611참조} 등으로 전래해왔다.

<단군세기>에 의하면 5세 단군 구을 16년(기원전 2084년)에 “장당경에... 많은 환화(桓花)를 심었다”는 기사가 있으며, 또 13세 단군 흘달(屹達, 기원전 1782~1772년) 20년(기원전 1763년) 조에 “多設蘇塗 植 天指花{소도를 많이 설치하고 천지화를 심었다}”는 기사에 “國子郞 出行 頭揷 天指花 故 時人 稱爲 天指花郞{국자랑은 길을 다닐 때 머리에 천지화를 꽂고 다녀서 사람들은 이들을 천지화랑이라 불렀다”는 구절이 들어있고, 환화에 관한 기록은 <조대기>를 인용한 <태백일사 환국_본기>에도 들어있는바, 이를 통해 상고대로부터 신라를 거쳐 근세조선까지 우리 선조들은 천지화/환화/어사화의 전통을 예부터 이어 왔음을 추정할 수 있다.

한편 기원전 8~3세기에 지나에서 저술된 <산해경> 해외_동경_편에, 동진시대 곽_박이 종합 정리한 내용에 “君子之國 有薰花草 朝生 暮死{군자의 나라에 훈화초가 있는데,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진다}”는 구절이 무궁화를 ‘훈화초’라 부른 가장 오래된 기록이라 한다.{한국_민족문화_대백과 참조} 즉 이 천지화가 바로 무궁화이고 어사화의 원형이었던 것이다. 또 이를 고대 지나인들이 환화와 당시 발음이 같거나 비슷한 훈화(薰花)로 표현한 것임도 짐작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근래 일각에서는 이와 다른 시각이 끈질기게 존재해 왔다. 이는 상고대 사실(史實)들을 잘 몰랐을 조_동화씨가 한국일보(1956.2.3~4일자)에 論議(론의)한 내용과 서울대 문리대 李_민재 교수가 조선일보(1956.2.8일자)에 기고한 글 등이 근간이 된다. 일찍이 그들이 ‘무궁화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꽃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대안으로서 ‘가장 알맞은 것에 진달래가 있다’고 내세운다. 근거 論理(론리)는 다음과 같으나, 이제 잘못된 이견은 불식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진달래는 국토전역에 분포되어 있고, 둘째 한국령{이른바 한반도}이 원산지이며, 셋째 화전놀이 풍속으로 보아 민족사와 친교가 있고, 넷째 꽃도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무궁화는 이상과 같은 조건들을 구비하지 못하였으니 우리나라를 대표하기에는 부족한 꽃이라는 주장이다. 일견 그럴듯한 이러한 주장을 따라, 최근 전산망에서 ‘천지화가 참꽃’이라거나, ‘어사화도 바로 진달래’라는 주장{http://www.coo2.net/ 참조}이 나오게 된 것으로 보인다.

참꽃도 좋은 꽃이며 한국령을 대표할 만하지만, ‘하늘꽃’에 대한 論難(론란)은 유감천만으로서 고대사와 선조들과의 결별을 원하는 이가 아니라면 사적(史籍)을 바로 찾아 읽고 사실을 추구하면 해결될 사항으로서 말타툼할 문제는 아니다. 우선 무궁화가 북한지역에 널리 서식하지 못한 것과 상고대 우리 강역을 잘못 관련지운 오류를 스스로 범하고 있음을 지적하는 바이다. 중국 감숙성과 섬서성이 무궁화 군락지임과 西安[씨안]에 있는 장안성의 절과 청진사 지붕 청기와에 무궁화 무늬가 박혀 있는 사실 등도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다.

또한 선조의 어사화 유물이 무궁화 종이꽃이라는 동아일보(1977.6.11일자) 기사와 사진을 참고하기를 권한다. 그러면 이러한 모든 유물들과 옛 기록들이 놀랍게도 서로 완전히 부합됨을 스스로 알게 될 것이다. 아울러, 반도/식민사관으로 잘못된 번역에 현혹됨없이 상고대~근세 우리강역이 어디였는지하는 명제에 관해서도 뚜렷이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 신라시대에 이미 우리나라를 '무궁화의 나라'라고 불렀다는 다음과 같은 기록들을 잊지말자: 신라 효공왕이 문장가 최_치원에게 작성시켜 당나라에 보낸 국서 가운데 “근화향(槿花鄕:무궁화의 나라. 신라를 일컬음)은 겸양하고 자중하지만, 호시국(楛矢國)은 강폭함이 날로 더해간다”고 하였다. <구당서舊唐書 199권 신라_전> 성덕왕 36년 기사에도 “신라가 보낸 국서에 그 나라를 일컬어 근화향, 곧 무궁화의 나라라고 하였다”는 구절이 있다.{한국_민족문화_대백과 ‘무궁화’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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