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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당.합.각.재.현.루.정의 의미

오토산 2019. 4. 24. 22:32



궁궐의 전각(殿閣)에도 서열이 있다 

근래 시청자들이 즐겨보는 TV연속극가운데 대부분의 사극은 왕을 중심으로

 왕비, 후궁, 그리고 정승들과 이를 추종하는 세력들 간에 합종연횡을 거듭하며

 권력을 독차지하기 위하여 암투를 벌리는 장면이 자주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이 암투가 벌어지는 공간은 주로 왕의 평소 집무공간인 '강령전(康寧殿)'을

 비롯하여 왕과 왕비의 침실공간인 '교태전(交泰殿)',

그리고 대신들의 회의공간인 빈청(賓廳)을 무대로 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여기에서 왕실의 큰 어른이라 할 수 있는 대비전(大妃殿)을 빼놓을 수 없다.


한편, 궁궐 밖으로 눈을 돌려보면 우리 선조들에 의해 지어진 건물 가운데는

 과거 중앙에서 지방에 파견된 사또(군수)가 공무를 집행하는 공간을

 '동헌(東軒)'이라 하였고, 또 남원의 '광한루', 밀양의 '영남루'와 같이 '루(樓)'자가

붙는 건물과 마포의 '망원정', 강남의 '압구정'과 같이 '정(亭)'자가 붙여진

크고 작은 건물이 아직도 전국 각지에 소재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이와 같은 전통 건축물에 대하여 자세히 살펴보면,

그 건축물의 주인이 누구냐 하는 점과 그 쓰임새에 따라

그 격(格)이 엄청나게 달라질 뿐만 아니라 그 명칭도 다르게 붙여졌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전통 건축물의 주인과 그 쓰임새 등에 유의하여 살펴본다면

건축물에 대한 우리의 안목도 한층 높아질 것으로 생각된다.



<사용목적과 용도에 따른 분류>

우리의 선조들은 전통적 건축물에 대하여 그 사용목적과 용도에 따라

반적으로 다음과 같이 크게 5가지로 구분하였다.

① 의식(儀式)을 위한 공간은 궁(宮), 궐(闕), 전(殿), 당(堂), 청(廳), 단(壇), 묘(廟),

                                       사(祠), 무(?)

② 거주(居住)를 위한 공간은 각(閣), 헌(軒), 재(齋), 사(舍), 실(室), 방(房)

③ 수납(受納)을 위한 공간으로 고(庫)와 간(間)

④ 여흥(餘興)을 위한 공간은 루(樓), 정(亭), 대(臺), 관(館)

⑤ 출입(出入)을 위한 공간은 문(門)과 루문(樓門) 등이 있다.


첫째로 의식(儀式)을 위한 공간은 많은 사람이 모여 의식을 행할 수 있는 집합공간으서

        궁실(宮室)과 종교적인 관계에 따라 유형별로 위엄, 장식, 격식 등을 위주로 하며,

        규모가 크고 높으며 가장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둘째로 거주(居住)를 위한 공간은 인간의 생활을 영위하므로 인간을 위한 집으로 다른

         건축보다 규모가 인간적이어야 하며, 가장 많은 부분을 구획한다.

         전체 공간 가운데 한 쪽으로 치우치게 배치하고 있다.

셋째로 수납(受納)을 위한 공간은 외부에 대하여 최대한 개방을 억제하고 폐쇄한다.

         따라서 공간구성 중에서 문과 창이 가장 적고, 주위의 건축들 사이에 위치하여

         최대한 공간 활용에 도움을 주도록 배치하고 있다.

넷째로 여흥(餘興)을 위한 공간은 가장 많은 부분을 외부에 개방토록 하며 내 외부

        공간을 구조적으로 상호 연결함으로써 공간의 분할이 가장 적게 한다.

       그리하여 자연과 합일(合一)할 수 있도록 배치 상 주위가 트일 수 있게 가장

       외곽지역에 위치하게 한다.

다섯째 출입(出入)을 위한 공간은 외부 통로와 상관관계를 갖는 지점에 위치를 선정하고

       방향을 설정한다.  



<건물의 공간적 배치에 따른 서열>

경복궁, 창덕궁 등 조선조의 궁궐로 사용되었던 장소에는 임진왜란 등의 국가적

재앙으로 인하여 우리 역사의 격랑 속에서 많이 소실되어 없어졌지만 아직도

그 당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전각들이 일부나마 남아있어 한편으로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된다.

 궁궐내의 이 전통 건축물들은 주인의 신분이나 그 쓰임새 등에 따라 각기 차례대로

이름이 붙여져 공간적으로 배치되어 그 기능을 수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건물부터 순서를 매기면,

전(殿), 당(堂), 합(閤), 각(閣), 재(齋), 헌(軒), 누(樓), 정(亭)으로서

오늘날 우리는 그 건물 이름만 들어도 대체로 어떤 건물인지 가늠해 볼 수 있다.

  

'전(殿)'은 궁궐의 여러 건물들 가운데 가장 격이 높은 건물로서 왕의 즉위식, 세자의

     혼례식 등 왕실의 주요한 의전행사가 열리는 공간이나 왕이 임석한 조회 등 공식

     업무를 수행하는 공간으로 사용된다. 원래 중국에서는 천자 곧 왕의 당(堂)을

    구별하여 말할 때나, 승상과 같은 고위관리가 있는 높고 엄숙한 집을 말할 때

     전(殿)이라고 하였다.

    또한 '전하(殿下)', '중전(中殿)', '자전(慈殿)'등과 같이 왕과 왕비, 대비 등을 지칭는

    대명사의 역할을 하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으며, 궁궐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외전(外殿), 내전(內殿)의 기능과 깊숙이 관련되어 있다.

 

'당(堂)'은 전(殿)에 비해서 그 격(格)이 한 단계 떨어지는 곳으로서 의전행사장소로

       보다는 일상 업무나 기거용으로 더 많이 쓰였다.

       이를테면 왕이 핵심 신료들을 만나 정사를 논의하는 곳을 연거지소(燕居之所)라고

       하는데, 연거지소에는 대부분 당호가 붙는다. 한자 글자 뜻으로는 집을 반으로

       나누어  앞쪽 반 빈 부분을 당(堂)이라 하고, 뒤쪽 막힌 부분을 실(室)이라 하였다.

       또 다른 의미로는 햇볕을 바로 받는 집을 가리키거나, 또는 예의를 밝히는 곳,

       다시 말해서 의식을 갖추어 외부 사람을 만나는 장소를 가리켰다.

 

'합(閤)'은 대체로 전(殿)에 부속되어 있는 건물이나 완전히 전의 일부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어느 정도의 규모를 갖추고 독립되어 있는 집이다.

        중국에서는 문 옆에 있는 집을 규(閨)나 합(閤)이라 했는데, 작은 규를 합이라

         한다고 했다.


'각(閣)'은 규모 면에서 전이나 당보다는 떨어지며, 전이나 당의 부속건물이거나, 립된

         건물로 되어 있다.

         독립 건물일 경우에도 부속 건물을 많이 거느리지 않고 비교적 단출하다. 용도의

         면에서는 기거용보다는 보조적인 기능을 담당하는데, 왕실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물건을 보관하거나 주요한 관측시설과 관련된 기능이 많다. 원래는 누(樓)가

          겹쳐 있는 집을 각이라 했다.

 

'재(齋)'는 숙식 등 평상 주거용으로 쓰거나, 주요 인물이 조용하게 지낼 수 있는 독립된

        건물로서, 규모 면에서 전이나 당에 비해 작은 편이다.

        아직은 출가하지 않은 대군·공주·옹주들의 집이거나, 세자궁 소속의 인물들이

        기거하는 곳, 또는 격이 높지 않은 후궁의 집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로 학업, 사색을 위한 공간이나 그와 관련된 서고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많은

        듯하다.

 

'헌(軒)'은 전(殿)의 좌우에서 이를 보좌하는 형태인 익각(翼閣)이거나 따로 독립된

        건물로도 위치하였다. 전의 익각인 경우에는 전의 주인이 보조적으로 활용이 되고

       공무적 기능을 가진 경우는 특별한 인물의 전용 공간이 되었던 듯하다.

 

'루(樓)'는 글자가 이름에 붙은 집은 온돌이 아니라 루면에서 사람키 높이 가까이 위로

          떨어진 마루로 되어 있는 형태이다.

          '루'는 주요건물의 일부로서 마루방 형식인 경우와 이층 건물의 이층인 경우

           혹은 정자처럼 작은 독립건물인 경우가 있다.

          또한 기능적으로 살펴볼 때 루(樓)는 정(亭)과는 달리 내전의 생활공간에 연접되어

          배치되거나 독립적으로 위치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 있다.


'정(亭)'은 우리가 흔히 '정자'라고 하는데, 경관이 좋은 곳에 있어 휴식이나 연회 공간으로

         사용하는 작은 규모의 집을 가르킨다.

         지붕 모양이 사각형 이외에 육각형, 팔각형을 이루고 있으며, 곳에 따라서는

         부채꼴을 이루는 형태도 있다.

         궁궐에 있어서 '정'은 대부분 후원지역에 집중적으로 위치하고 있다.

         허신(許愼)의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이르기를 '거소이안정야(居所以安定也)'라고

         하여 포괄적인 쉬는 장소임을 나타내고 있는 반면, 이규보(李奎報)는 개방된

         공간(豁)을 갖도록 만들어졌기에 안으로는 공간이 비어 있으며(虛) 밖으로는

         공간이 열려져 있어 시원한 느낌을 주는 공간(磯)으로 되어 있는 것을 정이라 했다.

          (作豁然虛磯者爲之亭)


'대(臺)'는 일반적으로 사방을 훤히 바라 볼 수 있는 높은 곳에 위치한 건물을 가르킨다.

       궁궐에 있어서 대는 평지보다 높은 곳에서 사열, 과거, 자연물 등을 내려다보는

       장소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궁궐의 외전과 내전>

궁궐내의 이러한 건물들은 다시 기능에 따라 외전(外殿), 내전(內殿), 동궁, 궐내각사,

생활기거공간, 후원 등으로 나눠지는데, 같은 기능을 갖는 건물들은 대체로 한 구역에

 모여 전체 궁궐의 공간구조를 형성하였다.


'외전(外殿)'은 왕과 신료들이 공식적으로 만나 각종 의식을 치르는 곳으로서 그 중심건물

        을 법전(法殿), 법전 앞의 넓은 마당을 조정(朝廷)이라 한다. 경복궁의 근정전,

        창덕궁의 인정전, 창경궁의 명정전, 경희궁의 숭정전, 경운궁의 중화전이 그것이다.


'내전(內殿)'은 왕과 왕비의 공간을 가르키는 말이다.

      '동궁(東宮)'은 세자의 공간을 가르키는 곳으로서 궁궐가운데 해가 떠는 동쪽에

      위치한데서 유래하고 있다.


'궐내각사(闕內各舍)'는 왕의 지근에 있으면서 왕을 만나 국정을 협의하고 건의하고

       비판하는 기능을 맡은 신료들이 공무를 수행하는 공간을 가르킨다.

       여기에는 문서출납을 담당하는 승정원, 학문과 글 짓는 일을 맡은 홍문관, 왕에게

       간쟁을 하고 백관들의 잘못을 지적하며 처벌하는 사간원과 사헌부, 그리고 최고

      신분을 가진 대신들의 회의장소로 사용된 빈청을 비롯해 그 아래 실무를 맡은

      여러 관서들이 포함된다.


이상과 같이 궁궐 내의 '전.당.합.각.재.헌.루.정'은 궁궐의 전각에 대한 기능과 일차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대체적으로 건물의 규모가 큰 것부터 작은 것으로 가는 순서이다.

용도의 경중에 따라 국가적, 공식적, 의전적 행사를 치르는 곳에서부터 일상 주거용

순으로, 다시 비일상적이며 특별한 용도로, 휴식공간으로 이어지는 순서라고 이해하면

무난하다고 하겠다.

결론적으로 이 '전.당.합.각.재.헌.루.정'은 그 순서가 궁궐 건물들이 가지는 품격을

 나타내는 순서이자 또 다른 위계질서에 의한 서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