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링빙야화

재상들의 노비친구 서기(徐起)

오토산 2019. 5. 23. 08:37


재상들의 노비 친구

[출전] 계서야담, 이향견문록


[등장인물] 서기 - , 24, 심씨 집안의 노비

          심부인 - , 48, 서기의 주인
                                        이지함 - , 32, 토정비결의 저자,

                                             서기의 사형이자 스승



[줄거리]
심부인은 노비들로부터 남편의 생전 친구들이 자신의 집으로 몰려온다는 말을 듣고

준비를 하고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자

다시 노비에게 시켜 그들이 왜 이리 오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그들은 난처한 기색으로 머리를 긁으며 재상들은 모두

 서기가 기거하는 행랑방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심부인은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서기는 자신의 집안 사노비였다.

그래서 다시 노비를 시켜 자초지종을 알아보게 하니

 서기가 몸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은 재상들이 서기의 문병을 온 것이란다.


 심부인은 그 말에 기가 막힌다.

 남편인 심상열이 1년 전에 돌아가고 나서는 자신의 집엔

 한번도 걸음을 하지 않던 사람들이 하찮은 자신의 집안 노비가

아프다고 하니까 문병을 왔다는 것이다.


서기는 다른 노비들과 달리 똑똑하고 학문이 있어서

 남편 생전에는 사랑방에 드나들며 남편과 대화하고,

남편 친구들이 찾아왔을 때도 그들 틈에 앉아서 심부름을 했다는 것을

 심부인도 알고 있다.


더구나 남편이 죽으면서 유언으로

서기를 어린 아들의 가정교사를 삼으라고 하여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했지만

심부인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노비들의 얘기를 들으면 노비주제에 주인집 도련님을 가끔 나무라기도 하고

어떤 때는 사당 문을 열고서 귀한 아들에게 회초리로 종아리까지 때린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틀 전에는 서기가 아들의 종아리를 때리는 것을 직접 본 심부인은

부아가 치밀어 다른 노비들을 시켜 서기를 멍석말이를 시켜 때리도록 한 뒤

이제부터는 아들의 가정교사를 하지 말라고 했다.


지금 서기는 멍석말이의 후유증으로 앓고 있는 것이다.

심부인은 사람을 시켜 다른 선생을 모셔왔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아들과 몇 마디 대화를 하면서 학문을 평가하더니

 자신의 능력으로는 가르칠 수 없다고 손사래를 치고는 꽁무니를 뺀다.


벌써 6명의 선비들이 이런 노릇이다.

 마지막에 나간 사람을 불러 찬찬히 물어보니

아들의 공부상태가 꽤 정박하고 깊이가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어떤 부분에서는 자신들을 뛰어 넘어 자신들의 능력으로는

가르치기 힘들다는 것이다.

아들에게도 물어보니 그들이 모두 시시하다는 것이다.


심부인은 서기가 아들을 제대로 가르쳤다는 것을 알지만

미천한 노비 주제에 아들의 종아리를 때리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더구나 아들도 서기를 너무 무서워하고 있다.

심부인은 화가 나서 사람을 시켜 당장 서기를 불러 오라고 한다.

제대로 굴신하지 못하는 서기는 주인마님이 호출했다는 말을 듣고 몸을 일으킨다.

 

심부인 앞에 나아간 서기는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고 앉는다.

그러자 심부인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어찌 남편의 친구들이 너희 집에 왔냐고 추궁한다.

 서기는 자신이 병이 났다는 소식을 들은 그들이 문병 왔다고 대답한다.


원래 어젯밤에 어느 재상의 사랑방에서 모임이 있었는데

서기가 몸이 아파 사람을 시켜 못 간다고 기별을 드렸더니

황송하게도 대감들이 문병을 왔다는 것이다.

심부인은 서기가 재상들의 모임에 참가한다는 말을 듣고는 놀라 재우쳐 묻는다.

 

그곳에 가서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고?
서기는 태연하게 주역과 같은 경서에 대한 토론도 하지만 시, , 화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고 때로는 정사에 대해서도 토론한다고 한다.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일개 노비주제에

어찌 이 나라의 정사를 좌지우지하는 대감들과 정사를 논의한단 말인가.

다시 한번 심부인은 서기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때 노비가 와서는

남편 친구 분들이 모두 와서는 심부인을 만나고자 청한다고 아뢴다.

심부인은 우선 그들을 사랑방 대청에 모신 뒤에 직접 가서 그들을 대면한다.


그들은 심부인에게 정중하게 안부를 전한 뒤에

단도직입적으로 서기를 속량해 달라고 청한다.


학문이 그토록 높은 자를 노비로 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더구나 심부인의 아들의 스승인 자를 노비로 그냥 둔다면

그것도 아들과 집안의 체면과 위신이 서지 않는다고 한다.


 자신들이 속량전을 내겠다며 서기를 속량시키라고 다시 부탁한다.

그들은 서기가 심부인에게 맞아서 앓고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을 통해 들었다.

 심부인은 그들의 말을 듣고 보니 일리가 있다.

그러나 자존심이 센 그녀는 죽은 남편의 체면을 생각해서 속량전을 받지 않고

 스스로 속량시키겠다고 한다.


재상들이 물러가고 난 뒤에 심부인은 다시 한번 서기에 대해 생각해 본다.

서기는 이제 겨우 24세의 젊은이이며 자기 집안의 노비이다.

그는 도대체 언제 그토록 뛰어난 학문을 익혔을까?

심부인은 서기를 불러 속량시키겠다고 말하고는 서기의 내력을 물어본다.


서기는 원래 이천에서 농사를 짓는 평범한 양인 집안에서 태어난다.

그러나 흉년이 들어 내리 3년 동안 제대로 세금을 내지 못하자

 아버지가 현청에 불려가 곤장을 맞고는 장독으로 목숨을 잃게 된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린 서기와 동생을 먹여 살리기 위해

 다른 집 날품팔이와 삯바느질까지 안 해 본 일이 없다.


러나 몸이 약한 어머니는 영양실조에 걸리고 어느 날 피를 토하고는 돌아가신다.

 졸지에 고아가 된 서기와 동생은 함께 한양으로 올라온다.

 서기는 한양에서 동생과 구걸하며 지내다가 우연하게 한 사람의 은인을 만나

그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서당에서 2년 동안 머물면서 학문과 선학에 대해서 배웠다.


2년 뒤에 그는 다른 곳으로 가게 되어서 어린 동생과 자신은 각기

그 스승과 안면이 있던 심상 열공과 다른 재상집의 노비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때 25세가 되면 모두 속량시켜 주기로 약속을 했다는 것이다.

심부인도 남편에게 이 사실을 들었으나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남편의 친구들이 나서서 이구동성으로 속량시켜 주라고 하니

심부인도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서기에게 속량되더라도 아들의 공부를 계속 가르쳐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자 서기는 이미 학문으로는 초시와 복시에 급제할 실력이 되어 있지만

자만심이 지나쳐 일을 그르칠 수 있다고 한다.


 더구나 자신의 신분이 미천하여 더 이상 닦달해도 먹히지 않으니까

엄한 선생님을 찾아 배우도록 하라며 다른 선생을 추천해 준다.

서기는 속량이 되자마자 토정 이지함을 찾아간다.

 서기는 이미 20세가 되던 해부터 틈틈이 토정을 찾아와 학문을 배우곤 했다.

 토정은 서기보다 나이가 불과 여섯 살 밖에 더 먹지 않았지만

 그의 학문은 깊고 정심했다.


서기는 과거 자신과 동생을 돌봐준 은인이 화담 서경덕 선생님인 것을 알았다.

 토정도 그때 그곳에서 만났던 것이다.

토정은 서기에게는 사형이자 사부인 셈이다.

 서기를 다시만난 토정은 반가워하며 자신이 전국유람을 하려고 하는데

함께 가지 않겠냐고 제안한다.


 서기는 찬성하고는 토정과 함께 전국유람에 나선다.

그동안 다른 집 노비로 얽매어 15여년을 살아 왔는데

 이제는 자유로운 신분이 되어 존경하는 스승과 함께 전국유람을 나서는

 서기의 기분은 날아 갈 듯이 상쾌하기만 하다.                            



* 삼노팔리 []                             

종 출신의 세 집안과 아전 출신의 여덟 집안. 삼노는 정도전, 서기, 송익필의 집안이고

,팔리는 동래 정씨, 반남 박씨, 한산 이씨, 흥양 유씨, 진보 이씨, 여흥 이씨, 여산 송씨,

 창녕 성씨의 집안이다.(학자들에 따라 의견을 달리하는 경우도 있슴) 

모두 처음에는 종 또는 아전이었으나 뛰어난 자손의 덕으로 양반이 되었다.

<sns에서 옮겨 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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