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나무에 꽃은 스무송이
옛날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한참 전 이야기인데
그 때 일본에서 우리나라에 사신을 보내왔는데,
이 사신이 수수께끼를 두 가지 가지고 왔다네.
어떤 수수께끼인고 하니, 하나는 글이요,
다른 하나는 그림인데 그게 참 묘하거든.
글은「죽은 나무에 꽃은 스무 송이요 열매는 백 개라」는 것이고,
그림은 비둘기를 데리고 꽃 앞에 선 노인 뒤에 개가 따르는 모양이었단다.
그게 다 무슨 뜻인지 풀어 보라는 거다.
조정에서는 한다하는 신하들을 다 불러 모아 수수께끼를 풀어 보라고 했는데
풀어내는 사람이 한명도 없는거야.
당최 무슨 뜻인지 알아야 말이지.
날고 긴다는 선비들도 몇날 며칠 밤을 새워 가며 머릴 짜내도 풀수가 없단 말이야.
그래서 할 수 없이 선비들이 조선팔도에 흩어져 다니면서
수수께끼를 풀 인재를 찾기로 했다네.
예나 지금이나 나라에서는 꼭 급한 일이 생겨야 인재를 찾는단말야.
그래서 한 선비도 인재를 찾으러 이 고을 저 고을 정처 없이 떠 돌며
헤매고 다녔다지. 하루는 점심 참에 어느 길가 주막에 들게 되었지.
다리 쉼도 하고 허기도 면하려고 들어간게야.
들어가니 어른은 없고 그저 열 살이 될까 말까 한 계집아이가
집을 보고 있더란 말이야.
『밥 한 그릇 청해 먹을 수 있겠느냐?』
『예,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아주 명랑하고 곱상한 그 계집아이가 부엌에 가서 점심상을 차려 오기에
한 상 달게 먹고 나서 잠깐 쉬었다 가려고 마루에 걸터앉아 있었는데
조금 있다가 손님 셋이 와서 또 점심을 청해 먹고 담배를 한 대씩 피운다.
옛날에는 집집마다 화로가 있었다
. 화로에 불 잉걸을 담고 재를 덮어 놓으면 손님들이 그 화로에 재를 헤치고
불을 당겨 담배를 한 대씩 피우곤 가지.
그러고 나서 조금 있으니 주모가 장을 봐 가지고 왔다.
『얘, 그 동안 손님 들었니?』
『예, 아까 손님 세 분이 점심 드시고 갔습니다.
산중 손님 한 분, 평지 사는 손님 한 분, 한양 손님 한 분이 다녀갔습니다.
손님 한 분은 아직 쉬고 계시고요』
아직 쉬고 있는 손님은 자기를 가리키는 건데,
아까 다녀간 손님을 산중 손님 어쩌고 하는걸 보니 참 신기하거든.
그냥 밥만 먹고 담배 한 대씩 피우고 갔지,
어디에 산다는 말 한마디 없었는데 그걸 어찌 아느냐 말이야.
하도 신통해서 그 계집 아이를 불러서 물어 보았지.
『얘, 아가야. 아까 왔다 간 손님들이 어디 사는 사람인지 어찌 알고
그런 말을 하누?』
『예, 담배 피우시는 걸 보면 압니다』
『어떻게?』
『첫째 손님은 담배불을 당기실 때 화롯불을 험하게 헤쳐 놓고
재를 다시 모으지 않았습니다.
나무가 흔한 곳에 살지 않고는 그러지 못하지요.
그러니 산중에 산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럴듯하거든.
『둘째 손님은?』
『둘째 손님은 화롯불을 모아 다독다독 두드렸지요.
그걸 보면 나무가 귀한 곳에 사는 분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평지 마을에는 나무가 귀하지 않습니까?』
점점 더 그럴듯하단 말이야.
『옳거니, 그럼 셋째 손님은?』
『셋째 손님은 화롯불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점잖게 살짝 헤치고 불을 당겼습니다.
한양 사람들은 다들 그러지요』
선비가 고개를 끄덕끄덕 감탄을 하고 또 물어 봤다.
『그럼 나는 어디 사는지 알겠느냐?』
『어디 사시는지는 모르겠으나 선비인 줄은 알겠습니다』
『어떻게?』
이 선비가 조선팔도 돌아다니느라고 차림새는 영락없는 거지꼴이거든.
계집아이가 그 선비를 위아래 훑어 보더니
『비록 차림이 남루하나 소매 끝에 먹물 때가 묻은 것을 보면 압니다』
선비가 무릎을 탁 치고 아주 크게 감탄했다.
뭐 인재가 따로 있나 이만하면 인재라 할 만하지.
이만한 아이라면 혹시 이수수께끼를 풀지도 모르겠다 싶어
가지고 온 글과 그림을 꺼내 턱 펴놓고 물어 봤겠다.
『얘, 이것 좀 봐 다오.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
아이가 가만히 글을 들여다보더니 뭐 오래 생각할 것도 없이,
『이건 곶감입니다』하거든.
『어째서 곶감이란 말이냐?』
「죽은 나무에 꽃은 스무 송이요 열매는 백 개라」
곶감을 꼬치에 꿰어 말리니 곧 죽은 나무에 열린 열매요,
곶감 열 개를 한 줄로 꿰면 앞뒤에 꽃무늬를 하나씩 새겨 넣으니
열 줄이면 꽃이 스무 송이 아닙니까?
곶감 열 줄이면 열매가 백 개인 것은 삼척동자도 알 테고.
이번에는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더니,
『여든 한 살 노인이 새봄에 꽃이 피는 걸 보고
죽은 아내를 생각하며 한탄하고 있군요』하거든.
『그건 어째서 그러하누?』
『비둘기는「구구구」하고 우니까 구구는 팔십일,
여든 한 살인걸 알겠습니다.』
뒤에 개가 따르는 걸 보니 노인이 혀를 차고 있음을 알겠습니다.
개는 혀를 쭈쭈쭈 하면서 부르지요.
혀를 찬다 함은 곧 한탄하는 것인데,
꽃을 보고 한탄했으니 새봄에 다시 피는 꽃을 보고
『꽃은 졌다가도 다시 피어 나는데 사람은 어찌 한 번 가면
다시 올 줄 모르는고 ?』하는 뜻이니,
그림 속의 노인이 아내를 여의었음을 알겠습니다』
이래서 수수께끼를 다 풀게 되었다.
이 선비가 좋아라 하고 한양으로 올라와서 나라에 고하니,
나라에서는 수수께끼 답을 적어 일본 사신에게 주어 보냈다.
일본에서는 그 답을 턱 받아 보고,
『조선에 이런 인재가 있는 동안에는 함부로 칠 수 없다』
그래서 못 쳐들어 왔다네.
그 뒤에 한 번 더 일본에서 어려운 수수께끼를 보내 왔는데
그걸 못 맞춰서 왜 놈들이 쳐들어 왔다네.
그 수수께끼를 풀려고 그 계집아이가 있는 주막을 찾아갔으나
주막도 그 딸내미도 온데간데 없더라지 뭐야.
그래서 그수수께끼를 못 풀자 일본 놈들이 우릴 얕잡아 보고 쳐들어왔다는 말이지.
믿어도 될런지 어떨지 그런 이야기도 있었다네.
<sn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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