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링빙야화

죽은나무에 꽃은 스무송이

오토산 2019. 5. 23. 09:12


죽은나무에 꽃은 스무송이


옛날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한참 전 이야기인데

그 때 일본에서 우리나라에 사신을 보내왔는데,

이 사신이 수수께끼를 두 가지 가지고 왔다네.

어떤 수수께끼인고 하니, 하나는 글이요,

  다른 하나는 그림인데 그게 참 묘하거든.


글은「죽은 나무에 꽃은 스무 송이요 열매는 백 개라」는 것이고,

그림은 비둘기를 데리고 꽃 앞에 선 노인 뒤에 개가 따르는 모양이었단다.

그게 다 무슨 뜻인지 풀어 보라는 거다.


조정에서는 한다하는 신하들을 다 불러 모아 수수께끼를 풀어 보라고 했는데

  풀어내는 사람이 한명도 없는거야.

당최 무슨 뜻인지 알아야 말이지.

날고 긴다는 선비들도 몇날 며칠 밤을 새워 가며 머릴 짜내도 풀수가 없단 말이야.


그래서 할 수 없이 선비들이 조선팔도에 흩어져 다니면서

수수께끼를 풀 인재를 찾기로 했다네.

예나 지금이나 나라에서는 꼭 급한 일이 생겨야 인재를 찾는단말야.


그래서 한 선비도 인재를 찾으러 이 고을 저 고을 정처 없이 떠 돌며

헤매고 다녔다지. 하루는 점심 참에 어느 길가 주막에 들게 되었지.

다리 쉼도 하고 허기도 면하려고 들어간게야.

들어가니 어른은 없고 그저 열 살이 될까 말까 한 계집아이가

집을 보고 있더란 말이야.


『밥 한 그릇 청해 먹을 수 있겠느냐?』

『예,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아주 명랑하고 곱상한 그 계집아이가 부엌에 가서 점심상을 차려 오기에

한 상 달게 먹고 나서 잠깐 쉬었다 가려고 마루에 걸터앉아 있었는데

조금 있다가 손님 셋이 와서 또 점심을 청해 먹고 담배를 한 대씩 피운다.

옛날에는 집집마다 화로가 있었다

. 화로에 불 잉걸을 담고 재를 덮어 놓으면 손님들이 그 화로에 재를 헤치고

불을 당겨 담배를 한 대씩 피우곤 가지.


그러고 나서 조금 있으니 주모가 장을 봐 가지고 왔다.

『얘, 그 동안 손님 들었니?』

『예, 아까 손님 세 분이 점심 드시고 갔습니다.

산중 손님 한 분, 평지 사는 손님 한 분, 한양 손님 한 분이 다녀갔습니다.

손님 한 분은 아직 쉬고 계시고요』


아직 쉬고 있는 손님은 자기를 가리키는 건데,

아까 다녀간 손님을 산중 손님 어쩌고 하는걸 보니 참 신기하거든.

  그냥 밥만 먹고 담배 한 대씩 피우고 갔지,

  어디에 산다는 말 한마디 없었는데 그걸 어찌 아느냐 말이야.

하도 신통해서 그 계집 아이를 불러서 물어 보았지.


『얘, 아가야. 아까 왔다 간 손님들이 어디 사는 사람인지 어찌 알고

그런 말을 하누?』

예, 담배 피우시는 걸 보면 압니다』


『어떻게?』

『첫째 손님은 담배불을 당기실 때 화롯불을 험하게 헤쳐 놓고

 재를 다시 모으지 않았습니다.

나무가 흔한 곳에 살지 않고는 그러지 못하지요. 

  그러니 산중에 산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럴듯하거든.

『둘째 손님은?』

『둘째 손님은 화롯불을 모아 다독다독 두드렸지요.

  그걸 보면 나무가 귀한 곳에 사는 분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평지 마을에는 나무가 귀하지 않습니까?』


점점 더 그럴듯하단 말이야.

『옳거니, 그럼 셋째 손님은?』

『셋째 손님은 화롯불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점잖게 살짝 헤치고 불을 당겼습니다.

  한양 사람들은 다들 그러지요』

선비가 고개를 끄덕끄덕 감탄을 하고 또 물어 봤다.


『그럼 나는 어디 사는지 알겠느냐?』

『어디 사시는지는 모르겠으나 선비인 줄은 알겠습니다』


『어떻게?

이 선비가 조선팔도 돌아다니느라고 차림새는 영락없는 거지꼴이거든.

계집아이가 그 선비를 위아래 훑어 보더니

『비록 차림이 남루하나 소매 끝에 먹물 때가 묻은 것을 보면 압니다』


선비가 무릎을 탁 치고 아주 크게 감탄했다.

뭐 인재가 따로 있나 이만하면 인재라 할 만하지.

이만한 아이라면 혹시 이수수께끼를 풀지도 모르겠다 싶어

가지고 온 글과 그림을 꺼내 턱 펴놓고 물어 봤겠다.


『얘, 이것 좀 봐 다오.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

아이가 가만히 글을 들여다보더니 뭐 오래 생각할 것도 없이,


『이건 곶감입니다』하거든.

『어째서 곶감이란 말이냐?』


「죽은 나무에 꽃은 스무 송이요 열매는 백 개라」

곶감을 꼬치에 꿰어 말리니 곧 죽은 나무에 열린 열매요,

곶감 열 개를 한 줄로 꿰면 앞뒤에 꽃무늬를 하나씩 새겨 넣으니

 열 줄이면 꽃이 스무 송이 아닙니까?


곶감 열 줄이면 열매가 백 개인 것은 삼척동자도 알 테고.

이번에는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더니,


『여든 한 살 노인이 새봄에 꽃이 피는 걸 보고

죽은 아내를 생각하며 한탄하고 있군요』하거든.


『그건 어째서 그러하누?』

『비둘기는「구구구」하고 우니까 구구는 팔십일,

  여든 한 살인걸 알겠습니다.』


뒤에 개가 따르는 걸 보니 노인이 혀를 차고 있음을 알겠습니다.

개는 혀를 쭈쭈쭈 하면서 부르지요.

혀를 찬다 함은 곧 한탄하는 것인데,

꽃을 보고 한탄했으니 새봄에 다시 피는 꽃을 보고


  『꽃은 졌다가도 다시 피어 나는데 사람은 어찌 한 번 가면

 다시 올 줄 모르는고 ?』하는 뜻이니,


그림 속의 노인이 아내를 여의었음을 알겠습니다』

이래서 수수께끼를 다 풀게 되었다.


이 선비가 좋아라 하고 한양으로 올라와서 나라에 고하니,

  나라에서는 수수께끼 답을 적어 일본 사신에게 주어 보냈다.


일본에서는 그 답을 턱 받아 보고,

『조선에 이런 인재가 있는 동안에는 함부로 칠 수 없다』


  그래서 못 쳐들어 왔다네.

그 뒤에 한 번 더 일본에서 어려운 수수께끼를 보내 왔는데

그걸 못 맞춰서 왜 놈들이 쳐들어 왔다네.

그 수수께끼를 풀려고 그 계집아이가 있는 주막을 찾아갔으나

주막도 그 딸내미도 온데간데 없더라지 뭐야.


그래서 그수수께끼를 못 풀자 일본 놈들이 우릴 얕잡아 보고 쳐들어왔다는 말이지.

믿어도 될런지 어떨지 그런 이야기도 있었다네.

<sn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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