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산 속에서 임채무를 만난 김삿갓

오토산 2020. 1. 27. 08:15

●방랑시인 김삿갓 02-(71)

* 산속에서 만난 사내 , 林處士

 

오열탄 계곡은 경사가 급해서 물발조차 거셋다. 흘러내리는 물이 바위에 부딪쳐

산산 조각으로 흩어지며, 이것은 뽀얀 물안개로 변하여 눈 앞을 가릴 지경이었다.

이런 물안개는 비가 오지 않는데도 오색 열롱한 무재개를 이따금씩 떠올려 보여주었다.

 

물보라에 옷을 적시며 구정양장(九折羊腸)의 오솔길을 따라 계곡을 한참 거슬러

올라가니, 높다란 암벽에 커다란 글씨로 "문성대"(文星臺)라고 새겨진 글씨가 보였다.

 

"문성대 .... ? 

 옛날에 어떤 선비가 저 바위위에 올라앉아 글공부라도 했더란 말인가 ?"

그렇게 생각하며 바위 위에 올라와 보니, 눈 아래 펼쳐진 경치가 천하일품이었다.

 

주위에는 수목이 울창한데,

나무숲 너머로는 바다인지 호수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물까지 보였다.

숲속에는 이름모를 새들이 끊임없이 지저귀고 있는데 ,

해는 저물어 서양노을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눈앞의 풍경이 마치 선경인 것 처럼 너무도 멋있는지라,

 김삿갓은 돌아갈 줄을 모르고 달이 뜨기를 기다리며 넓다란 바위에

넋을 잃은 사람처럼 주저 앉아 망중한(忙中閑)을 즐기고 있었다.

이윽고 동녘 하늘에서 쟁반같이 둥근 달이 밝은 빛을 내며 솟아오르고 있었다.

 

김삿갓은 공중에 뜬 ,크고 둥근달을 양 팔을 벌려 가슴에 안아 보이는 사위를 해보이며 ,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달 가운데 계수나무     옥도끼로 찍어내고

금도끼로 다듬어서      초가삼간 곱게짓고

 양친부모 모셔다가    천년 만년 살고지고. 

하고 노래를 불러 가며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자신도 모르게 미친 사람처럼 춤을 추던 김삿갓을 향해,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시오.

당신은 누구요 ?

귀신이오 ?

사람이오 ? "

 

"엣 ? 이 산중에 누가 ?"

김삿갓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리고 눈을 들어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니,

 저만치 암벽 앞에 사람 하나가 우뚝 서 있었다.

머리에는 망건을 쓰고 옷은 바지저고리 만을 입었는데 ,

내실(內室)에 있다가 나온 차림이었다.

 

"나는 귀신이 아니오. 귀공은 무슨 일로 이런 밤중에 산속에 혼자 계시오 ?"

김삿갓은 그쪽으로 두세 걸음 다가가며 , 큰 소리로 물었다.

 

상대방도 이내 경계를 풀고 , 두세 걸음 가까이 다가오며 ,

 "그 말은 내가 노형에게 묻고 싶은 말이오.

노형은 이 밤중에 무슨 일로 혼자 춤을 추고 있단 말이오 ?"

 

김삿갓은 너털 웃음을 웃으며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는 세상 구경으로 떠돌아 다니는 방랑객이오.

오늘 이곳, 문성대에서 보이는 달이 하도 좋기에 눈으로만 보기에는 너무도 아까워,

 춤을 한번 추어 보았다오."

 

그 소리에 상대방도 소리를 크게 내어 웃었다.

"하하하. 달을 보며 춤을 추었다니 노형은 멋들어진 풍류객인가 보구려.

 춤을 추려면 술이 있어야 할 게 아니오.

 내가 거처하는 암굴 속에 술이 있으니,

이리 내려 오시오.

 춤을 추더라도 술이나 한잔씩 나누고 봅시다."

 

김삿갓은 그렇지 않아도 술 생각이 간절했던 판인데,

잘 됬다 싶어 그 사람을 따라갔다.

그가 거처하는 암굴은 그가 서 있던 바위 옆에 있었다.

출입구는 한 사람이 겨우 드나들게 좁았지만,

안으로 들어가 보니 두세 사람이 잘 수 있는 넉넉한 크기였다.

 

암굴 한복판에는 호롱불이 켜 있는데,

호롱불 주위에는 술병과 북어 같은 마른 안주가 놓여 있었다.

혼자 술을 마시다가 김삿갓의 인기척을 듣고 잠깐 나온 모양이었다.

 

"우리가 이런 데서 만난 것도 보통 인연이 아니오.

 앉으시오. 술을 한잔씩 합시다."

이렇게 말하는 암굴 주인은 한양에서 온 50대의 임채무(林採珷)라는 사람으로 

 망건을 쓴 얼굴은 볼 살이 두툼하게 붙어있었고 ,

특히 구렛나루 수염은 유난히 탐스러워 보이는 풍채가 좋은 사람이었다.

 

김삿갓은 술잔을 받으며 물었다.

"노형은 혹시 산중에서 도를 닦고있는 도인이 아니시오 ?"

 

그가 고개를 흔들며 대답한다.

"도인이오 ?

세상에 도인처럼 허황된 인간이 없을 것인데,

 무슨 할 일이 없어 도인 노릇을 한단 말이오."

 

"도인이 아니라면 ...

산삼을 찾아 다니는 심마니는 아닌 것같고.... ? "

얼굴빛과 차림새를 보아하니 심마니는 아닌 것같아 , 김삿갓은 말 끝을 흐렸다.

 

"심마니 ... ?

심마니는 산삼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니까 그런대로 꿈이 있다고는 하겠지만,

그러나 그들의 꿈은 너무나도 작은 것이지요.사람은 모름지기 꿈이 커야 하는거요."

 

김삿갓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 깊은 산중에 홀로 있는 사람이 ,

도인도 아니고 심마니도 아니라면 ,

 도데체 이 사람은 무엇을 하는 사람이란 말인가.

김삿갓이 적이 궁금해하는 기색을 보고, 암굴 주인은 웃으며 자기 소개를 하였다.

 

"나는 한양에 사는 임처사(林處士)라는 사람으로

내세(內世)의 꿈을 실현 하기 위하여 명산을 두루 편답하는 중이라오."

 

그러고 보니 암굴 한쪽 구석에는 지남철(指南鐵)이 보였다.

김삿갓은 그 지남철을 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궁금증이 풀린듯, 소리를 질렀다.

"아 ! 이제야 알겠소이다.

노형은 풍수학(風水學)을 연구하는 지관(地官)이시구려 ? "

 

"옳게 아셨소이다.

나는 오래 전부터 풍수학을 연구해 오는 지술사(地術師)라오.

풍수학은 보통 학문하고는 달라서 현세(現世)가 아닌,

 내세(內世)의 부귀와 영화를 추구하는 학문이라오.

따라서 학문 중에서는 가장 원대한 꿈의 철학 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 말을 듣자,사실주의적 생활 철학이 몸에 밴 김삿갓은 소리를 내어 크게 웃었다.

풍수학이 "원대한 꿈의 철학"이라는 말이 허무맹랑하게 들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임 처사는 좌청룡(左靑龍)이 어떠니 우백호(右白虎)가 어떠니 하며,

 풍수설을 장광하게 늘어 놓더니 , 나중에는 이런 말도 들려 주었다.

 

계속 2-72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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