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뱃사공으로 부터 평양기생 이야기를 들은 김삿갓

오토산 2020. 1. 29. 08:46

●방랑시인 김삿갓 02-(73)

* 평양 기생.

 

황해도 땅을 벗어난 김삿갓은 여러 날을 걸어 ,

석양 무렵에 대동강 나루터에 도착하였다.

김삿갓은 유유히 흘러내리는 강물을 보자,

가슴이 설레와서, "여보시오. 이 강이 바로 대동강이지요 ?"

하고 감격어린 목소리로 뱃사공에게 확인해 보았다.

 

그러자 뱃사공은 흥청거리는 소리로 대답한다.

"이 강은 선남선녀들에게는 사랑의 강이요,

이별의 강이요, 눈물의 대동강이라오."

 

뱃사공으로부터 "눈물의 대동강"이란 말을 듣자,

 김삿갓은 다시 한번 도도히 흐르고 있는 대동강 물을 망연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대동강 위에서 사랑하는 남녀의 이별이 얼마나 많았으면,

이름모를 뱃사공에 입에서 조차,

"눈물의 대동강"이라는 ,시 와 노래 같은 말이 나왔을까 ? ....)

 

뱃사공은 푸른 물결을 갈라 헤치며 노를 흥겹게 저어 나간다.

대동강에는 수많은 놀잇배가 떠 있었다.

저마다 멋들어지게 차려 입은 선남선녀들이 가득가득 타고 있는 놀잇배에서는

 장구소리와 함께 유량한 노랫소리도 아득하게 들려 오고 있었다.

 

뱃사공 조차 노를 저으며 흥얼거리는데 , 평양 사람들은 모두가 바람둥이인지 ,

뱃사공의 노랫소리에도 어깨춤이 저절로 들썩거려질 지경이었다.

 

"여보시오, 뱃사공 양반 ! 당신도 노래 실력이 대단한가 보구려 ?"

김삿갓이 웃으며 농담을 건네자, 뱃사공도 따라 웃으며 대답했다.

 

"뱃사공의 종자가 따로 있갔시오?

돈 떨어지면 뱃사공이디요.

나도 한 때에는 한가락 하던 놈이 아니갔시오."

 

"어쩐지 밑천이 많이 든 노래 같소.

 그러면 기생 외도도 많이 했겠구려 ?"

 

"기럼, 평양내기치고 기생 외도 못 해본 놈이 어디 있갔시오?

 뭐니뭐니 해도 , 기생 - 하면 평양인 줄 아시라요.

 기러니,손님도 기왕에 평양에 왔으니끼,

 눈 딱 감고 기생 외도를 꼭 한번 하고 가시라요.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 세상인데, 인생이란 본시 그런 것이 아니갔시오."

 

김삿갓도 말로만 들어 왔던 평양 기생 외도가 노상 생각이 없지는 않아,

뱃사공에게 다시 물었다.

"기생 외도를 하려면 돈이 얼마나 드나요 ?"

 

뱃사공이 웃으며 대답한다.

"기야 기생 나름이디요.

소문난 명기는 돈을 섬으로 퍼부어도 안되갔지만,

 허접한 기생들이라면 2,3백 냥쯤 쓰면 문제없을 거외다."

 

"2,3백 냥이라 ! ..

그런데 그만한 돈이 없는데 ,기생 외도를 공짜로 할 수는 없을까요 ?"

김삿갓이 웃으며 그렇게 물어 보자, 뱃새공은 입을 딱 벌린다.

 

"아따 그 양반, 배포 한번 대단하시네.

범에게서 날고기를 빼앗아 먹을 재주가 있다면 모를까 ?

기생 외도를 어떻게 공짜로 한단 말이오 ?"

 

"하하하하. 안 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구려.

그나저나 도데체 평양에는 기생이 몇 명이나 있소?"

 

"평양 바닥에는 기생이 백사장에 모래알보다도 많디요.

거리에 나다니는 잘 차려 입은 젊은 여자들은 모두가 기생인 줄만 아시라요."

 

"백사장 모래알처럼 기생이 넘쳐난다면 ,

외도값도 응당 헐해야 할게 아니오 ?"

 

"아무리 기생이 차고 넘쳐도 2,3백 냥 없이는

허접한 기생조차 콧배기도 구경할 수가 없을 것이오."

 

"그래요 ?​

그런데 따지고보면 명기나 허접한 기생이나 그 맛 만은 같지 않겠어요 ?"

 

"허어, 이 양반 ! 재미있는 분일세."

"아무리 그래도 사내가 허접한 기생 외도로 재산을 탕진한다는 것은

 너무도 억울한 일이 될것 인데, 당신은 재산을 얼마나 없애 버리셨소 ?"

 

"나도 강서(江西)에서는 조업(祖業)을 물려받아 가지고 제법 부유하게 살던 몸이디요

. 평양에 나와서 기생 외도에 맛을 들였다가 이제는 빈털털이가 되었지만

 기래도 고향에는 돌아가고 싶지는 않디요.

지금은 할수 없이 내레 ,입에 풀칠을 하기위해 뱃사공 노릇을 하고 있디만 말이오."

 

"평양에는 당신처럼 기생 외도로 신세가 처량하게 된 사람이 많겠구려."

 

"많다 뿐이갔시요 ?

모르면 모르되 기생 때문에 나같이 처량하게 된 놈팡이가 수 백명은 될 것이오."

 

"후회 되지는 않소 ?"

 

"눈 앞에 향락이 뒷 일을 가름하게 하지 않디요.

또 내가 저지른 일 인데, 후회 한들 무엇하갔시오.

다 팔자 소관이디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신의 과오를 합리화 하는 방법으로

"팔자"라는 말을 곧잘 써온다.

어쩌면 그런 팔자 타령 때문에 수많은 인생의 역경을 이겨 나가는

끈기가 그런 데 있는지도 모르리라 싶었다.

나룻배가 강 한복판에 이르렀을 때 눈을 들어 건너편을 바라보니,

왼편으로는 높은 산이 강가의 절벽을 이루고 있었는데,

강 건너 들판에는 수양버들이 실실이 늘어져 있어서,

 마치 산이 강 건너 들판을 감싸고 포옹하는 것처럼 보였다.

"저 산은 무슨 산이고, 강 건너 들판은 뭐라는 곳이지요 ?"

 

눈앞의 경관이 하도 아름다워 뱃사공에게 물어 보니,

뱃사공은 그쪽으로 눈길을 돌리며 대답한다.

"절벽을 이루고 있는 산은 평양의 진산(鎭山)인 금수산(錦繡山)이고,

 강 건너 수양버들이 무성한 곳은 능라도(綾羅島)라오."

 

"아, 저게 바로 유명한 능라도인가요 ?"

김삿갓은 감탄해 마지않으며 능라도의 푸른 버드나무를 그윽히 바라보며

백호(白湖) 임제(林悌)의 시가 떠올랐다.

 

패강아여답춘양<浿江兒女踏春陽>   대동강 아가씨들 봄놀이 즐기려니

 강상수양정단장<江上垂楊正斷腸> 수양버들 실실이 늘어져 마음 애닮다

 무한연사고가직<無限烟絲苦可織>    가느다란 버들 실로 비단을 짠다면

 위군재작무의상<爲君裁作舞衣裳>      고운 님을 위해 춤옷을 지으리라.

 

...계속 2-74회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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