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영명사 벽암대사를 찾은 김삿갓

오토산 2020. 2. 11. 09:14

●방랑시인 김삿갓 02-(86)

* 사람이 영원히 사는 방법

 

다음날 아침, 김삿갓은 아침을 먹고 나자 영명사로 벽암 대사를 찾아 나섰다.

영명사는 부벽루 서쪽 기린굴(麒麟窟) 위에 서 있는 절이다.

경내에 들어와 보니, 절은 빈집처럼 조용했다.

영명사는 언제나 조용한 절인지, 누각에는 다음과 같은 시가 걸려 있었다.

 

永明寺中僧不見<영명사중승불견>         영명사 절에 중은 보이지 않고

永明寺前江自流<영명사전강자류>    영명사 절 앞에는 강물만이 흐른다

 山空孤塔立庭際<산공고탑입정제>   산은 비고 뜰에는 탑만 홀로 서 있어

 人斷小舟橫渡頭<인단소주횡도두>사람 없는 나루터엔 배만 둥둥 떠도네.

 

이 시를 읽다 보니,

김삿갓은 무아정적(無我靜寂)에 들어 온 느낌이 들었다.

 

"나는 김삿갓이라는 사람이오. 벽암 스님을 만나 뵈러 왔소이다."

마침 눈에 띄는 상좌가 있길래 말을 하였더니, 상좌는 합장 배례를 하더니,

김삿갓을 선실(禪室)로 안내 해 준다.

 

벽암 대사는 김삿갓을 반갑게 맞아주며 말한다.

"어서 오십시오.

 어제 임 진사댁에 갔다가 선생이 계시다기에 뵈려고 기다렸는데,

오늘은 직접 찾아 주셨군요. 

 일전에 금강산 장안사에 갔다가 입석봉에서 내려 오신 공허 스님한테서

 선생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벽암 대사는 나이가 80은 넘은듯 한데,

어딘가 모르게 거룩한 느낌이 드는 모습이었다.

 

"어제는 임 진사 댁까지 어려운 걸음을 해 주셨는데,

시생이 만나 뵙지 못하여 결레가 많았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방안을 둘러보니,

한쪽 벽에는 다음과 같은 족자가 걸려 있었다.

 

白雲千里萬里猶是同雲<백운천리만리유시동운> 구름은 천리만리에 덮혀 있어도

                                     구름일 뿐이고

 明月前溪後溪嘗無異月<명월전계루계상무이월>                   달은 앞에 비치고

                                                         뒷내에도 비치나 달빛이 아니로다.

 

김삿갓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했다.

" 저 족자의 뜻이 깊습니다. 스님께서 지으신 글이옵니까 ?"

 

"저 글은 신라 때 진경(眞鏡) 선사께서 읊으신 게송(偈頌)입니다."

 

"저 글을 보니, 반야심경(般若心經)에 나오는

 <색불이공, 공불이색(色不異空,空不異色)>이라는 말과 같은 뜻이 아니옵니까 ? "

 

벽암 대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삿갓 선생은 저 게송의 뜻을 대번에 알아보는구려.

엔간히 유식한 사람들도 저 족자의 뜻을 알아보는 사람이 극히 드물답니다."

 

두 사람이 차를 마시며 그런 한담을 나누고 있는데, 문득 문밖에서,

"대사님 계시옵니까, 대사님을 잠깐 만나 뵈러 왔습니다." 하는 소리가 들린다.

 

문을 열고 내다보니,

80쯤 되어 보이는 쪼그랑 할아버지가 문밖에서

 연신 머리를 수그려 굽신거리고 있었다.

 

"어서들어 오십시오."

 

벽암대사는 서슴지 않고 쪼그랑 할아버지를 방안으로 맞아들였다.

할아버지는 다리가 자유롭지 못한지,

방안에 들어와 앉기까지 무진 애를 쓰는 것이 보였다.

 

"보아하니, 몸이 매우 불편하신 것 같은데,

무슨 일로 오셨소이까 ?"

 

벽암 대사가 그렇게 물어 보자,

노인은 몸이 괴로운 듯 얼굴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내 나이 올해 90이올시다.

 몸이 괴로운 걸 보니, 앞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네요.

대사님은 영험이 대단하시다고 들었는데,

나를 조금만 더 오래 살게 해 주실 수는 없을까요 ?"

김삿갓은 옆에서 그 소리를 듣고 <사람의 욕심은 한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그만 더 살고 싶다구요 ?

몇 해나 더 살고 싶다는 말씀입니까 ?"

 

"될 수 있으면 백 살까지는 살고 싶구려 ! "

 김삿갓은 그 대답을 듣고 입이 딱 벌어졌다.

 

그러자 백암 대사는 노인에게 나무라듯 말한다.

"에이, 여보시오.

영감님은 어쩌면 그렇게도 욕심이 없으시오 ?

 백 살까지 살고 나면, 그때는 어쩔 수 없이 죽어야 할 게 아닙니까 ?"

 

노인은 <죽음>이란 말을 듣고, 크게 당황하는 빛을 보인다.

"아닙니다. 이왕이면 백 오십 살까지 살게 해 주십시오."

 

"좋소이다.

백 오십 살까지 살게 해드리지요.

그런데 백 오십 살이 되는 해의 섣달 그믐날에는 반드시 돌아가셔야만 하는데,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

 

그러자 노인은 또다시 당황하는 빛을 보이며

 "그렇다면 이백 살까지 살게 해주소서."

 

그러자 벽암 대사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나무란다.

"영감님은 욕심이 왜 이렇게 적으십니까 ?

이왕이면 영원히 살아가셔야지요.

그 생각은 왜 못하십니까."

쪼그랑 노인은 그 말을 듣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에이, 대사님두,

 사람이 죽지 않고 어떻게 영원히 살아갈 수 있단 말입니까 ?"

 

벽암 대사는 이때다 싶은지, 노인에게 자신만만한 설교를 한다.

"중생이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 말씀대로 살아가면

고해(苦海)에서 반드시 제도(濟度)되는 법이옵니다.

그렇게 되면 육신은 비록 죽어 썩어 버리더라도,

영혼은 반드시 극락 세계로 가는 법이지요.

극락 세계야말로 죽음의 고통을 모르는 영생의 세계라는 것을

왜 모르시옵니까 ?"

이렇게 벽암 대사가 순순히 타이르자,

 쪼그랑 노인은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며 불교에 귀의해 버리는 것이었다.

 

김삿갓은 벽암 대사의 능수능란한 포교술(布敎術)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대사님은 어쩌면 설법이 이렇게도 능란하시옵니까 ?"

 

"하하하,

장안사에 계신 공허 스님의 말씀을 들어 보면,

공허 스님이 삿갓 선생과 시짓기 내기를 했다가 참패를 당했다고 하시던데,

그러한 삿갓 선생께서 내게 <설법을 잘한다>는 칭찬을 듣고 있으니,

 이런 영광이 없소이다."

 

...계속 2-87회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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