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02-(106)
*다시 보는 송아지 사주.
다시 길을 떠난 김삿갓이 선천 방향으로 반나절 쯤 걸어가다 보니,
제법 큰 장거리가 나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마침 그날이 장날이어서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장터를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다.
장터 이곳 저곳을 구경하던 김삿갓의 눈에 ,
어느 담장 앞에 돗자리를 펴고 앉은 늙수그레한 점쟁이가 눈에 띄었다.
담장 바람벽에는 <관상(觀相), 수상(手相), 사주 (四柱), 택일 (澤日), 궁합 (宮合),
평생운(平生運), 토정비결 (土亭秘訣), 당주역 (唐周易) 등 무엇이든
쪽집게 처럼 알아 맞추는 백운거사(白雲居士), 어떤 재앙이나 액운에 대해서도
피해 가는 특별 방술(方術)을 알려 줄 수 있슴> 이라고 쓴 선전문이 걸려 있었다.
김삿갓이 생각하건데, 이렇게 많은 상품을 두루 섭렵하려면
책은 물론 많이 읽었어야 할 것이고 ,
<주역>이나 <상서> 같은 책은 통달 하고 있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점쟁이의 행색을 살펴 보니, 늙은이는 땟국이 꾀죄죄 흐르는 옷을
입은데다가 쓰고 있는 갓 조차 낡고 허름 한 것이 아무리 보아도 곰팡내가
푹푹 풍기는 꼴이 , 눈을 씻고 보아도 지식이 풍부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호기심이 발동한 김삿갓은 늙은 점쟁이가 앉아 있는 돗자리 앞으로 다가가 ,
늙은이와 눈높이를 맞춰 쪼그려 앉으며 물었다.
"광고문에 쓰인 대로 여러가지를 모두 다 알아 보려면
어지간한 전문성이 없어서야 되겠소이까 ?
그러려니 광고문을 뒤집어 본다면 특별한 전문성도 없다는 말이 되지 않겠소 ?"
김삿갓은 이른바, <당신은 엉터리 점쟁이가 아니냐 !>하는 소리를
애둘러 물어 본 것이었다.
그러자 점쟁이 늙은이는,
"무엇이든지 물어 보시오. 점쾌고 ,사주고, 맞지 않으면 복채를 받지 않겠소" 하고
자신 만만하게 나온다.
"좋소 ! 그렇다면 사주를 보는데 복채는 얼마죠 ? "
"댁은 인상이 좋아, 복채는 주는 대로 받겠소."
세상에 큰소리치는 놈치고 실속 있는 사람이 없는 법 이라고 생각하는 김삿갓은
점쟁이 늙은이의 큰소리치는 말에 일종의 혐오감이 느껴져서 한 번쯤
골려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아까 보아 두었던 송아지의 사주를 알려 주면서,
"이 아이의 팔자가 어찌 될 지 한번 보아 주시오." 하고 말을 했다.
송아지의 사주로 늙은 점쟁이를 놀려먹을 생각이었다.
점쟁이는 김삿갓이 알려 주는 사주를 종이에 써놓고, 한동안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나더니 대뜸, "이 사주는 최근에 태어난 갓난애기의 사주인가 보구려 ! "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역시 점쟁이는 전문가인지라, 태세(太歲)와 월건(月建)만 보고도
갓난아기의 사주임을 대번에 알아차렸다.
김삿갓은 웃음을 참아가며 거짓말을 적당히 꾸며대었다.
"내 친구의 마누라가 며칠 전에 애기를 낳았는데,
이 사주는 그 애기의 사주라오."
점쟁이는 아무 말 없이 사주를 열심히 풀어 나가다가,
별안간 붓을 내던지며 화를 내고 말았다.
"세상에 원 ! 이렇게도 흉악한 사주가 있단 말인가 ! "
"사주가 흉악하다뇨 ?
그게 무슨 말씀이오 ? "
"초년 신수도 불길하거니와,
마지막 쾌(快)는 말도 못하게 흉악하단 말이오 ! "
"마지막 쾌는 어떻길래 흉악하다는 말씀이오 ? "
"세상에 ! 오세봉액 타두종명 (五歲逢厄 打頭終命),
즉, 다섯 살 때에 액운을 맞아 머리를 두두려 맞고 죽게 되었다고 하니,
세상에 이런 흉악한 사주가 어디 있느냐 말이오 ? "
김삿갓은 그 말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소>라는 동물은 살아 평생, 농사를 짓느라고 고생을 하다가 다섯 살쯤 되면
도살장으로 끌려가 쇠망치로 이마빼기를 얻어맞고 죽는 운명이 아니었던가.
점쟁이는 자신이 푼 사주가 송아지의 사주라는 것은 모르는 모양이지만,
아무튼 사주 풀이 만큼은 기가 막히게 들어맞은 셈이다.
(이 늙은이가 겉보기와는 달리, 보통 명술가가 아닌가 보구나 ! )
김삿갓은 그런 생각이 들자 미안한 느낌이 없지않아,
얼른 화제를 딴 곳으로 돌렸다.
"실상인즉, 그 사주는 나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는 사주였소.
남의 사주 애기는 그만하고, 노인의 실력을 알았으니,
이제는 나의 신수나 좀 보아주시구려." 김삿갓의 할아버지가 봉직(奉職)했던
선천으로 가는 것이 어쩐지 찜찜한 생각이 계속 되기에,
그 점을 한번 물어 보고 싶었던 것이다.
점쟁이도 마찬가지로 일단 , 김삿갓 같은 봉이 걸려 들었으니
그냥 놓아 보낼 턱이 없었다.
"댁은 어떤 신수를 보아 달라는 말이오 ?
평생 운수를 보아 달라면 평생 운수를 보아 줄 것이고,
당년 운수를 보아 달라면 당년 운수를 보아 주겠소.
평생 운수를 보자면 복채를 많이 내야 하니까,
그런 줄 아시 오."
점쟁이가 복채를 흥정하자는 데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나는 워낙 돈이 없어, 복채를 많이 드릴 형편은 못 되오.
닷 냥밖에 못 드리겠으니, 금년 신수나 한번 보아 주시오."
그러자 점쟁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소.
그런데 복채는 돈을 먼저 내놓아야 점쾌가 잘 들어맞는다는 것은
알고 계시겠지요 ?"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하하하, 선금을 요구하는 것을 보니,
점을 쳐 주고도 복채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꽤 많은 모양이구려 ?"
김삿갓은 너털 웃음을 웃으며, 얼마 안 되는 노자 중에서 엽전 닷 냥을
돗자리 위에 내놓았다.
...계속 107회로~~~
<sn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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