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40년전 할아버지의 죄를 들은 김삿갓

오토산 2020. 2. 28. 08:32

●방랑시인 김삿갓 02-(104)

*40년전, 김삿갓의 할아버지 김익순이 저지른 죄.

(적악지가필유여앙: 積惡之家必有餘殃)

 

"자식이 없기는 왜 없었겠소.

범강장달에 기라성 같은 아들이 삼형제나 있은걸요.

그러나 내 팔자가 사나워서 그만 ....."

주인 영감은 거기까지 말을 하다가 말을 삼켰다.

 

김삿갓은 아들이 삼형제나 있는데도,

팔십 노부부가 단둘이 살고 있는 것에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


"아니 그럼, 아드님들은 모두 ,

어디 가고 두 분만 적적하게 살고 계시다는 말씀입니까 ? "

 

그러자, 주인 영감은 한동안 우수에 잠겨 있다가,

 넋 잃은 사람 처럼 말을 하였다.


"명이 짧아 죽었다면 원통하지나 않겠소.

장사 같은 세 아이를 홍경래의 난으로 하루아침에 모두 잃었다오."

 

김삿갓은 <홍경래 난>이라는 소리에 가슴이 뜨끔하였다.

홍경래의 난으로 죽었다면,

 그 당시 선천 방어사 였던 자기 할아버지와

어떤 관련이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마음 한켠에는 망설임도 있었지만 궁금한 것을 참을 수가 없어,

눈 딱 감고 이렇게 따져 물었다.


"아드님 삼형제를 일시에 잃어버리셔서 얼마나 비통하셨겠습니까.

 아드님들은 관군이었습니까,

반군이었습니까 ?"

 

주인 영감은 그런 질문을 받자 갑자기 얼굴에 노기를 띠며,

"에이, 여보시오 !

내 아들들이 아무리 못났기로서니 ,

나라를 배반한 역적의 무리들과 한패가 되었을 것 같소 ?

우리집 아이들은 당당한 관군이었다오."


그리고 잠시 뜸을 두었다가,

"소위 방어사라는 작자 처럼 죽으면 죽었지,

역적놈들에게 항복을 했을 것 같소 ?

우리집 아이들은 비록 졸병에 지나지 않았지만,

 총사령관인 방어사가 역적에게 항복했다는 말을 듣고 울분을 참지 못하고

자기 나름대로 반란군에게 덤벼들었다가 반란군에게 그만,

무참히 죽임을 당해 버렸다오."하고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김삿갓은그 말을 듣는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머리를 들 수 없었다.

주인 영감의 세 아들을 억울하게 죽게 만든 사람은 ,

다른 사람 아닌 자기 할아버지였기 때문이었다.


김삿갓은 할아버지를 대신하여 용서를 비는 마음으로

<홍경래에게 항복한 선천 방어사 김익순은 바로 저의 할아버지였습니다>하고

솔직하게 고백하고 싶은 충동을 강렬하게 느꼈다.

그러나 그 말이 차마 입 밖으로는 나오지 않아,

 "그 당시 방어사가 반란군에게 항복하는 바람에, 자제분들처럼 억울하게 죽은

병사들이 얼마나 되었습니까 ?" 하고 엉뚱한 말을 물어 보았다.

 

주인 영감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소위 방어사라는 작자는 역적에게 항복을 했지만,

정의감에 불타는 젊은 병사들은 반란군에 굴복하지 않고

자기들 나름대로 반란군에게 정면으로 대항 하다가,

숫적으로 우세한 반란군에 밀려나 무참하게 죽은 병사가 여러 백이 넘었을 것이오."

 

그것은 김삿갓이 이제까지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이었다.

김삿갓은 할아버지가 반란군에게 항복한 사실이 부끄러워

 숫제 집을 나와 버리고 말았지만, 할아버지의 잘못으로 인해

수많은 젊은 병사들까지 억울하게 희생이 되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일이었다.


그렇다면 그 당시 방어사 김익순은 나라에 용서받지 못할 죄를 저질렀을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부하들에게도 씻지 못 할 죄를 저지른 셈이 아닌가.

 

주인 양주는 성품이 인자하여 ,

김삿갓을 자신의 아들처럼 따듯하게 대해 주었다.

 

그러나 김삿갓은 그러한 대접을 받을수록 마음이 괴로워 견딜 수 없었다.

(내 할아버지가 방어사로 처신을 잘못했기 때문에 지금도 선천에는

주인 부부들 처럼 불행하게 된 노인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 )

 

이렇게 생각하고보니, 김삿갓은 선천 땅에 발을 들여 놓을 면목이 없었다.

물론, 자기만 시치미를 떼고 있으면 선천 사람들이 자신이

 옛날 , 방어사였던 김익순의 손자라는 사실을 알 턱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뻔뻔스럽게 양심을 속여가며 유람하듯이 선천 지방을

 떠돌아 다니기가 마음이 꺼렸던 것이다.

 

이날 밤, 김삿갓은 주인 양주의 얼굴을 대하기가 거북스러워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으나,

잠이 오지 않아 뜬눈으로 밤을 새우다시피 하였다.

새롭게 알게 된 40여 년 전에 할아버지가 저지른 죄악으로 인해,

오늘 날 자기가 괴로움을 당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아 ! ...

적악지가필유여앙(積惡之家必有餘殃 :

조상이 지은 죄는 자손에 까지 재앙을 불러온다,이라더니 ! ... )

 

다음날 아침 김삿갓은 주인 양주에게 몇 번이나 머리 숙여 배례하고

다시 나그네의 길에 올랐다.

 

...계속 105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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