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02-(115)
*불당골에서의 음담패설 (下)
"당신은 내 불구덩이에 그림을 그려 놓고, 고향에 다녀 오면서도 ,
그렇게나 내가 미덥지 않았어요 ? "
"누가 임자를 의심한다고 했나 ?
내가 없는 동안에 별일 없었는가 물어 보았을 뿐인걸."
훈장은 대수롭지 않은 듯 대답해 버렸다.
그러나 <도둑이 제 발이 저린다>고 했던가.
마누라쟁이는 암만해도 의심을 받는 것 같아, 내친김에 이렇게까지 말해 버렸다.
"당신은 내가 의심스러워 불구덩이에 그림까지 그려 놓고 고향에 가시지 않았어요 ?
그런데도 고향에 다녀 와선, 의심을 거두지 않으니 웬 일이에요."
그러면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가랑이를 활짝 벌려 보이기까지 하였다.
그러자 남편은 웃을밖에 없었다.
"허허허 ....임자가 그렇게까지 말을 하니 그럼. 어디 ,한번 들여다볼까 ? "
훈장은 뒤로 자빠져서 가랑이를 활짝 벌리고 누운 마누라의 치마를 들추고
사타구니 속을 들여다 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
자기는 분명히 ,마누라 옥문 언덕에 <조이삭>을 그려 놓았는데,
지금은 <피이삭>으로 변해 버렸고.
다른 쪽에는 분명히, <누워 있는 토끼>를 그려 놓았는데,
지금은 <서 있는 토끼>로 바뀌어 버린 것이 아닌가 ?
그것은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었다.
자기가 그려 놓은 그림에 이와 같은 변화가 생긴 것은
누군가 마누라와 재미를 실컷 보고나서,
그림을 자기 나름대로 , 새로 그려 놓았음은 의심 할 여지가 없는 일이 아닌가 ?
(내 마누라의 행실이 이렇게까지 대담무쌍했던가 ? )
훈장은 어처구니가 없어, 새삼스럽게 마누라를 책망할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리하여 마누라 가랑이 속을 한참 동안이나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다가,
문득 훈장답게 한문투로 이렇게 감탄하였다.
"흐음 ...선종조(先種栗)했는데 후종직(後種稷)했으니
농리(農理)에 대통(大通)한 사람이요,
홍시(紅矢)가 사합(射蛤)함에 와토(臥兎)가 경기(警起)했으니
사격(射擊)에도 명수(名手)였구나
(먼저는 조를 심었는데 뒤에는 피를 심었으니 농사 이치에 밝은 사람이었고
붉은 화살로 조개를 쏘아, 누워 있던 토끼가 놀라, <벌떡> 일어서게 하였으니,
사격에도 명수였구나 ! )
김삿갓은 이야기를 거기까지 듣다가 배꼽을 쥐고 허리가 끊어지게 웃었다.
"하하하하 ... 훈장의 말투는 어디까지나 훈장다웠군요,
마누라가 그 어려운 문자를 알아들었을까요 ?"
"마누라쟁이가 알아듣기는 무얼 알아들었겠소.
남편이 웃어 쌓으니까, 저도 따라서 웃었겠지요."
그래서 좌중에는 또다시 폭소가 터졌다.
"그래서 훈장 부부는 그 후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 부부는 아직도 이 마을에 살고 있나요 ?
김삿갓이 웃으며 물어 보자, 이야기를 들려 준
향장 영감이 펄쩍 뛸 듯이 놀라 보인다.
"우리가 아무리 경우가 무딘 늙은이들이기로,
황서랑이 이곳에 살고 있다면 감히 이런 이야기를 입밖에 낼 수 있겠소."
"그렇다면 ..."
김삿갓이 말 끝을 흐리자 ,향장 영감이 다시 말을 하는데,
"그런 일이 있은 그날 밤,
황서랑은 <자기도 누구 못지않게 정력이 왕성하다>는 것을
마누라에게 과시해 보이다가,
불행하게도 마누라 배 위에서 세상을 떠나 버렸다오."
김삿갓은 깜짝 놀라며,
"예엣 ?
... 그러면 복상사(腹上死)를 했다는 말씀입니까 ? "
"마누라가 워낙 외방 남자를 좋아하니까,
훈장은 열등감을 심하게 느꼈는지 <나도 사내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무리를 하다가 그만, 목숨을 잃게 된 것이지요."
"음 -- 그러면, 그 후에 그 마누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 "
"마누라는 남편이 죽은 지 열흘도 안되 우리 마을을 떠났지요.
들려 오는 풍문에 의하면, 지금은 용당포(龍塘浦)인가 어디선가
술장사를 하고 있다는 거예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그 마누라도 이제는 육십이 넘었을 것이오."
이야기를 들은 김삿갓은 인생의 허무감이 밀려와서 가슴이 서늘해지기까지 하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반야심경(般若心經)에 나오는
<색즉시공 공즉시생>이라는 구절이 불현듯 생각났다.
<색 = 현실>이라는 것은 본시 공허한 것이지만,
사람의 마음이 미혹되면 그것이 인생의 전부로 알게 된다는 소리다.
훈장 부부는 그 점을 깨닫지 못하고
오로지 육신의 향락에만 얽매어 헤매다가 모두가 불행하게 된 것이 아니던가.
옛글에 <迷者不問路>라는 말이 있다.
(인생에는 참된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그 길을 깨닫지 못해 결국은 몰락을 하게 된다)는 소리다.
김삿갓은 그 구절을 한번 더 새겨 보고 , 새삼 숙연한 심정이 되었다.
...계속 116회로~~~
<sn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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