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02-(126)
*강계 기생 추월이.
김삿갓이 깜짝 놀란 이유는,
답장의 내용이 기가막혔기 때문이었다.
<榴字書翰則 巨儒 蘇世讓之書翰也. 勿爲剽竊 .... 秋月 >
( 류자서한칙 거유 소세양지서한야 . 물위표절 .... 추월)
<榴字 편지는 거유 소세양이 썼던 편지이니,
그대는 남의 글을 자기 글인 양 함부로 표절하지 말지니라... 추월>
김삿갓은 답장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추월이라는 기생이 소세양과 황진이의 고사를 알고 있다는 일 도 놀라운 일이거니와,
더구나 <남의 글을 제 것인양 쓰지 말라>는 꾸지람을 보내온 데는
더욱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음 --- 추월이라는 기생은 보통 기생이 아닌 모양이로구나 ! )
이러다 보니, 김삿갓은 답장을 보내온 추
월이라는 기생에게 관심이 쏠릴 수 밖에 없었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니, 어젯밤 만호재 서당에서
아이들이 말 한 <추월>이라는 기생 이름을 들은 바도 있거니와,
만호재 훈장, 변대성의 처제 이름도 <기생 추월>이라고 말해 주지 않았던가 ?
그리고 추월은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지만, 시를 특별히 잘 지어,
엔간한 선비는 거들떠도 안 본다는 말도 하지 않았던가.
김삿갓은 이렇게 명성이 자자한 일등 명기를
인풍루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그러나 자신은 그런 줄도 모르고 장난 편지를 보냈다가
<남의 글을 함부로 표절하지 말라>는 훈계를 받았으니 ,
세상에 이처럼 기가 막히는 일이 없었던 것이다.
김삿갓은 추월이 보내 온 편지를 다시 한 번 읽어 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너털 웃음을 웃었다.
"허허허 ...
추월이 나를 <남의 글이나 표절하는 협잡배>로 알고 있는 모양이니,
추월이와 한번 어울려 보기는 영영 틀린 일이 되겠구나 ! "
김삿갓은 추월이가 이처럼 도도한 기생이라면 꼭 한 번 어울려 보고 싶었지만,
그녀에게 협잡배로 낙인이 찍혀 버렸으니,
이제는 그녀와 어울려 볼 기회가 영영 없게 되었다고 생각하였다.
(헛참 ! 추월과 나는 인연이 없어도 보통 없는 게 아닌가 보구나.
그런데, 지난 날 노상에서 점을 쳐보았을때,
점쟁이가
<강계에 가면 귀인을 만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릴수 있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
허허..그 점쟁이 허튼 말에, 공연히 마음만 들떴군 ! ...
쯔쯧, 에라 !
이제는 모든 것을 단념하고 절 구경이나 다녀야 하겠군.)
김삿갓은 다음날부터 강계에 있는 절을 하나씩 구경다니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봉향산(奉香山) 법장사(法藏寺), 백운산(白雲山) 영각사(英覺寺),
선주산(善住山) 심원사(深原寺)등을 돌아보았다.
김삿갓이 들른 심원사에선 칠십이 넘어 보이는
스님 하나가 김삿갓을 보고 깜짝 놀라며,
"아니, 삿갓 선생께서 이 깊은 산중까지 웬일이십니까 ?" 하며 반기는 것이었다.
너무도 뜻밖의 일이어서 김삿갓은 스님에게,
"스님은 어떻게 저를 아시옵니까 ? " 하고 물으니,
"저는 금강산 불영암에서 공허(空虛) 스님을 모시고 있던 범우(凡愚) 화상입니다.
나뭇잎은 떨어져 뿌리로 돌아간다고 하더니,
저도 이제는 고향에 돌아와 이 절을 지키고 있습니다."하고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예전에 금강산에서 만났던 기억이 새로웠다.
"반갑습니다. 스님, 그동안 건강히 지내셨는지요 ?"
이렇게 범우 스님과 반가운 해후를 한 김삿갓은 심원사에서 여러 날을 묵는 동안에
스님에게 강계 지방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듣게되었다.
"강계 고을은 워낙 궁벽한 산촌인지라,
글을 숭상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삿갓 선생의 문명(文名)을 알아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강계에는 시를 잘하는 추월이라는 기생 하나가 독보적 존재라 할까 ..."
"추월"이라는 말을 듣고 ,
이번에는 김삿갓이 놀랐다.
"추월이라면 ,
시를 잘한다는 기생 말씀입니까 ? "
"추월은 재주가 비상한 기생이지요.
일전에 우리 절에 들렀기에, 이런 말 저런 말 하다가,
선생께서 금강산에서 공허 스님과 시짓기 내기를 하셨던 이야기를 들려 주었지요.
그랬더니 추월은 별안간 얼굴이 새빨게 지면서,
<김립이라는 분이 그렇게도 유명한 시인입니까 ? >하고 물어 보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
<지금 우리나라에서 삿갓 선생을 당해 낼 시인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큰소리를 쳐보였답니다."
"하하하,
당치않은 과찬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그려."
"과찬이 아니라 사실이지 뭡니까.
공허 스님께서도 <삿갓 선생이야 말로 시에 있어서 당대의 일인자>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추월은 내 말을 듣곤, 다시 얼굴이 새빨개지는 것이에요.
어째서 추월이 얼굴을 붉혔는지는 저도 모르겠지만 ..."
범우 스님은 그렇게 말을 하면서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나 김삿갓은,
그때에 추월이가 연이어 얼굴을 붉힌, 이유를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것은 추월이, 김삿갓이 유명한 시인인 줄을 모르고 인풍루에서
<榴, 金笠>이라는 편지를 받고,
<그대는 남의 글이나 우려먹는 협잡꾼>이라고 호되게 모욕을 주었던
일이 새삼스럽게, 생각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러나저러나 그런 일은 이미 지나간 일이다.
(한 번 ,깨져버린 요강물을 어찌 주워 담으랴 ?
지나가 버린 시간은 결코 되돌릴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삶이 아니던가 ! )
이런 생각이 든 , 김삿갓은 얼마전에 지나간 일을 회상하며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계속 127회로 ~~~
<sn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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