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생면부지의 여인에게 편지를 건낸 김삿갓

오토산 2020. 3. 20. 08:05

■방랑시인 김삿갓 02-(125)

*주고 받은 편지의 의미.


김삿갓이 놀란 눈으로 두 사람을 뚫어지게 바라보자 ,

여인은 그제서야 등 뒤에서 누가 엿듣고 있음을 알았는지,

약간 당황하는 빛을 보이며,

"산월아 날이 저물었으니 그만 돌아가자." 하고

부랴부랴 인풍루에서 내려가 버리는 것이었다.


그때, 김삿갓은 돌아서는 여인의 얼굴을 쳐다보니, 천하의 절색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치맛귀를 왼쪽으로 감싸 돌리지 있었다.

따라서 김삿갓은 그 여인이 기생임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렇다면 한 번 수작을 걸어 보아도 되겠군 ! )


순간적으로 그렇게 결심한 김삿갓은 멀어져 가는 여인을 뒤 따르며 용기를 내어

큰 소리로여인의 뒤를 따르는 계집아이를 불렀다.


"애, 산월아 !

이리 와, 나 좀 보고 가거라."

여인과 계집아이는 김삿갓의 부르는 소리를 듣고,

잠시 발을 멈추고 뒤를 돌아다보았다.

그러더니 여인은 돌아서서 가던 길을 다시 천천히 걸어가고 ,

계집아이는 김삿갓 앞으로 걸어왔다.


"저를 부르셨어요 ? "

계집아이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김삿갓에게 물었다.

"네게 부탁을 하고 싶은 일이 있어 불렀단다."


"부탁이라뇨 ?

저에게 무슨 부탁의 말씀을 ...."

"내가 편지를 한 장 써줄 테니, 네가 모시고 있는 너희 집 주인 아가씨에게 전해 다오."

그리고 김삿갓은 부랴부랴 행장 속에서 붓과 종이를 꺼내,

다음과 같은 괴상한 편지를 써 주었다.


"榴 ! 金笠"

계집아이는 김삿갓이 건네 준 ,종이 쪽지를 받아 들고 물끄러미 들여다보더니,

"무슨 편지가 이런 편지가 있어요 ? " 하고 힐난했다.

거지 차림의 불량배가 장난을 치는 것으로 알았던 모양이다.

김삿갓은 빙긋이 웃으면서 말했다.


"너는 몰라도 되는 일이다.

그러나 너희 아가씨만은 이 편지의 뜻을 잘 알 것 이다.

만약 이 편지의 내용을 알아 보지 못하겠거든 답장을 주지 않아도 좋으니,

너희 집 주인에게 전해 주기만 하여라."

계집아이는 시답지 않은 듯 김삿갓의 옷 주제를 잠시 아래위로 훑어 보더니 ,

여인의 뒤를 종종걸음으로 따라가 버리는 것이었다.


김삿갓은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아득히 멀어져 가는

 두 여인의 뒷모습을 그윽히 바라 보았다.


김삿갓이 이름조차 알 지 못하는 생면부지의 기생에게 써보낸

<榴>자는 오래 전에 송도(松都) 명기 황진이가 그 이름을 만천하에 떨치고 있을 때,

한양에서 풍류객으로 소문 높은 소세양(蘇世讓)이라는 거유(巨儒:큰 선비)가

개성 만월대(滿月臺)에 놀러 왔다가 정자 위에서 황진이를 우연히 마주친 일이 있었다.

이때, 소세양은 첫눈에 황진이의 미모와 재주에 반해 수작을 걸어 보았다.

그러나 황진이는 소세양을 거들떠 보지도 않고, 총총히 돌아가 버린 일이 있었다.

이에 소세양은 즉석에서 편지를 한 장 써서 방자를 시켜 황진이에게 보내게 되었으니,

그때 보낸 편지의 내용이 바로 <榴>라는 글자 한 자 였던 것이다.


우리말로 <석류나무 유>로 읽히는 글자를 한문으로 바꾸면

 <碩儒那無遊 (석유나무유)>가 된다.

이것을 우리 글로 풀게 되면

<큰 선비인 내가 여기 와 있는데, 너는 어째서 나와 함께 놀아 줄 생각 없이

그냥 돌아가 버리냐>하는 뜻이 되는 것이다.


소세양은 그런 뜻에서 <碩儒那無游>라는 글 대신에

외 자인 <榴(석류나무유)>를 써 보낸 것이었다.

김삿갓은 그와 같은 옛날 일이 불현듯 떠올라,

짐짓 장난삼아 <榴>자 편지를 써보낸 것이었다.


그때, 황진이는 소세양의 편지를 대번에 알아보고 즉석에서 답장을 써보냈는데,

그때 황진이가 보낸 답장은 <漁(어)>라는 글자 한 자뿐이었다.

그렇다면 황진이가 답장으로 보낸 한 자뿐인 <漁>자는 무슨 뜻이었을까.

<漁>자를 우리말로는 <고기잡을 어>라고 부른다.

이것을 소세양이 보낸 한 글자의 해석대로 한문 글자로 바꾸게 되면

<高妓自不語(고기자불어)>가 되는 것이다.

<高妓自不語>란 <품위가 높은 기생은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뜻이 되는 것이다.


소세양이 보낸 편지에 대한 명기 황진이의 대답은 실로,

변죽을 두두려 복판이 쩡쩡 울리는 기가막힌 대답이었던 것이었다.

소세양과 황진이는 그날의 주고 받은 편지가 인연이 되어,

그 후에는 뜨거운 사이가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김삿갓은 어렸을 때, 서당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었기에,

이 날 ,그 옛날 소세양의 수법을 이용하여 ,

여인에게 <榴>자 편지를 자기 이름으로 보냈던 것이었다.

그리고 답장이 오기를 한참 동안이나 기다리고 있노라니,

이윽고 계집아이가 달려 오더니 답장을 전해 주고 부리나케 달아나 버리는데.

답장의 내용을 읽어 본 김삿갓은 깜짝 놀랐다.


...계속 126회로~~~


<sns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