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02-(137)
*몽중몽 주모 연월이.. (上)
"그 어른은 5년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나셨답니다."
"저런 ...5년 전에 세상을 떠나셨다구 ?
그렇다면 자네에게 술집을 차릴수 있는 돈을 내어주신 그 은혜를 생각해서라도
그 노인이 돌아가셨을때, 상(喪)을 입어 드리는 도리였을 텐데 자네는 어찌하였나 ?"
"그야 물론이죠. 그 어른은 양기가 워낙 신통치 않으셔서,
우리가 육체 관계를 가진 것은 단 한 번 뿐이었지요.
그러나 제게는 바깥 어른이나 다름없는 어른이셨기 때문에,
돌아가신 뒤에는 3년상을 치르느라고 저는 술장사도 하지 않았답니다."
화류계 여성으로 일을 하면서도 노인에 대한 은혜와 도리를 생각해 3년 동안이나
절개를 지켰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음, 요즘 세상에 자네처럼 의리와 은공을
제대로 지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인걸."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은 서로간에 신의를 소중히 여기는 데 있다고 저는 생각해요.
옛 글에
<사내는 자기를 알아 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士爲知己者死 (사위지기자사),
<여인은 자기를 기쁘게 해 주는 사람을 위해 얼굴을 가꾼다>
女爲說己者容 (여위설기자용)>라는
말이 있지 않아요 ?"
김삿갓은 그 말을 듣고 또 한번 놀랐다.
"지금 자네가 한 말은 <예양전(豫讓傳)>에 나오는 말인데,
자네는 그런 책도 읽었는가 ? "
"저는 그런 책은 읽어 보지 못했어요.
그러나 기생질을 오래 하다 보니, 귀동냥으로 못 들어 본 말이 없답니다."
"기생 노릇을 오래 했다면 돈도 많이 벌었겠군그래 ? "
"저는 돈에 대해서는 별로 욕심이 없어요.
사람이 죽고 나면 그만인데, 무슨 돈이 많이 필요하겠어요."
"허어 ...
자네는 금과옥조 같은 말만 하고 있네그려. 대단허이,
하긴 시인이었던 백낙천도 이렇게 말한적이 있었다네."
"신후퇴금 계북두(身後堆金 桂北斗) 죽은 뒤에 돈을 하늘까지 쌓아 보아도
불여생전 일배주 (不如生前 一杯酒) 살아 생전에 술 한 잔만도 못하니라.
그러나 그처럼 간단한 진리를 아는 사람이 별로 없거든."
"그렇게도 어리석은 것이 인생이 아니겠어요.
그러기에 옛날부터
미자불문로(迷者不問路) 길을 잃은 자가 어리석게도 길을 물어 보려고 하지 않는다.
라는 말이 있지 않아요."한다는 소리가 모두 도통(道通)한 소리 뿐이었다.
"여보게 ! 이런 시골에서 자네같이 도통한 여인을 만날 줄은 정말 몰랐네.
기분이 매우 좋으니 오늘은 술을 마음껏 마시기로 하세 ! "
김삿갓이 잔을 비워 주모에게 건네, 술을 한 잔 따라주었다.
그러자 잔을 받은 주모가 또 한마디 하는데,
세사는 금삼척(世事琴三尺)이요,
인생은 주일배(人生酒一杯)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
저 역시 멋진 풍류 남아를 만나 여간 기쁘지 않습니다.
둘이 함께 마음껏 취해 보십시다."
그리고 주모는 술상을 새로 보아 오는 것이었다.
김삿갓은 본시 두주를 불사(斗酒不辭)하는 호주가(豪酒家)가 아니던가.
그러나 주모, 연월이도 술에는 강호(强豪)인지,
아무리 마셔도 끄떡도 하지 않았다.
"여자로서 자네같이 술이 센 사람은 처음 보았네."
"술이라는 것은 상대방에 따라 주량이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까.
미운 사람을 상대하려면 첫 잔부터가 역겨운 것이지요."
"나 같은 걸객이 백마강 나루터에서 자네와 같은 미인과 더불어
인간사 진리를 논 하면서 호음(豪飮)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네.
아마도 이것도 우리 두 사람의 전생의 인연일 걸세."
이렇게 오가는 술잔에 정이 오가다 보니, 방안의 취흥이 점점 도도해 왔다.
김삿갓은 활짝 열려 있는 방문으로 밖을 내다보니,
무심한 강물은 유유히 흘러가고 있는데,
풀밭에서는 누렁 송아지가 풀을 뜯다 말고 허공을 향하여
<음~메~...>하고 엄마를 부른다.
취기가 도도해진 김삿갓의 눈에는 그러한 전원 풍경이 아름답기 그지 없어 보였다.
더구나 강의 이름이 <백마강>인데
송아지의 빛깔은 누런 것이 무척 대조적이어서 무심결에,
"백마강두 황독명(白馬江頭 黃犢鳴) 백마강가에서 누렁 송아지가 울고 있네)
하고 한마디 씨부려보았다.
그러자 주모 연월이도 맞은편 노인산에 소년이 걸어가는 것을 보고
"노인산하 소년행"(老人山下 少年行)노인산 밑으로 소년이 걸어가오
하고 대뜸 댓구를 놓는 것이 아닌가.
김삿갓이 <白>과 <黃>을 대조적으로 표현한 데 대해,
주모는 <老>와 <少>를 대조적으로 표현해 놓았던 것이다.
김삿갓은 주모의 절묘한 화답에 크게 감동되었다.
본인의 말로는 책을 많이 읽지 못하고 술자리에서 귀동냥만 많았을 뿐이라고 했지만,
화답을 응구첩대 (應口輒對)로 멋지게 하는 것을 보니,
시재(詩才)가 비범한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리하여 이번에는 뜰에 있는 연못을 내다보며,
"택리부용 심불견" (澤裡芙蓉 深不見) 연못 속의 연꽃은 물이 깊어 보이지 않네.
하고 또 한 구절 씨부려 보였다.
그러자 주모는 즉석에서 복사나무를 내다보며,
"원중도이 소무성" (園中桃李 笑無聲) 뜰에 있는 복사꽃은 웃어도 소리가 없소.
하고 또다시 멋들어진 대를 놓는 것이 아닌가.
"여보게 ! 자네는 술보다도 시를 더 잘하네그려 !"
"마음이 통하면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 "
김삿갓은 ,주모 연월의 그 대답이 더욱 멋이 있었다.
...계속 138회로 ~~~
<sn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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