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몽중몽 술집에 들린 김삿갓

오토산 2020. 3. 31. 08:58

■방랑시인 김삿갓 02-(136)

*술집 <夢中夢>


부슬부슬 내리는 가랑비와 함께, 자욱한 물안개를 뚫고

나룻배가 <구두레>나루터에 도착하자,

김삿갓은 <몽중몽>이라는 술집을 찾아 나섰다.

퇴물 기생이 운영한다는 몽중몽이라는 술집은 노인산(老人山) 기슭에 있었다.


뜰에는 조그만 연못이 있고, 주위에는 복숭이나무도 몇그루 있어서,

 제법 운치가 있는 술집이었다.

40 가까이 되어 보이는 주모는 성품이 서글서글 하여서,

김삿갓에게 술을 따라 주며 익살까지 부렸다.


"옛날부터 < 못난 색시가 달밤에 삿갓을 쓰고 다닌다>는 속담이 있는데,

손님은 멀쩡한 양반이 어째서 삿갓을 쓰고다니신다오 ? "

그러자 김삿갓은 술을 마셔가며 주모를 이렇게 나무라 주었다.


"이 사람아 !

 이 삿갓은 내게는 둘도 없는 소중한 물건이네.

그러니 남의 삿갓을 함부로 깔보지 말게."


"아따 ! 다 해진 삿갓이 소중하기는 뭐가 소중하다고 그러시오 ?"


"모르는 소리 그만 하게 !

이 삿갓은 오늘처럼 비가 올 때에는 도롱이 구실도 하고,

해가 쨍쨍 내리쬘때는 차양노릇도 해주지,

어디 그 뿐인줄 아는가 ?

길에서 보기 싫은 사람을 만났을 때에는 눈을 가리는 가리개 구실도 해주는,

 내게는 친구와 같은 존재라네."


그러자 주모는 손을 휘휘 내젓으며,

"그만 했으면 됬어요.

삿갓 자랑은 그만 하시고, 어서 술이나 드세요."


"기왕 말이 나왔으니 자네가 아무리 듣기 싫어해도,

이 삿갓이 소중한 이유를 하나만 더 말해야겠네."


"그처럼 소중한 이유가 무엇인지, 그러면 하나만 더 들어보기로 하지요."


"내가 이 삿갓을 쓰고 다니는 가장 중요한 이유인데,

 주모가 알게 되면 섭섭할걸 ?"

주모는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시다면 ,

그 중요한 이유가 무엇인지 한 번 들어 볼 까요 ?"


"내가, 오늘처럼 돈이 떨어져 ,

공짜술을 마시고 도망갈 때에는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 ,

이 삿갓이란 말일세.

무전취식(無錢取食)을 한 뒤에 삿갓을 깊숙이 눌러쓰고 도망을 가면,

얼굴이 가려져서 누가 누군지 알아볼 수가 없단 말일세 !

안그렇겠나 ?

하하하."


김삿갓이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는 바람에 방안에는 한바탕 웃음판이 벌어졌다.

주모는 웃으면서 김삿갓의 농담을 응숙하게 받아 넘긴다.


"제가 사람 하나만은 제법 잘 알아본답니다.

손님은 삿갓이나 쓰고 다니면서 무전취식 할 분으로 보이지 않네요.

그런 느낌이 손님에 말과 행동에서 느껴지는 걸요."


"사람, 모르는 소리 그만 하게.

유전강산(有錢江山)에 다호걸(多豪傑)이요,

무전천지(無錢天地)에 무영웅(無英雄)이라고,

무전취식을 하는 종자가 따로 있는 줄 아는가?"


"손님이 정말로 돈이 없으시다면 제가 얼마든지 대접할 테니 안심하고 드세요.

 호호호..."


"그거 참, 고마운 말일세그려 ...

그건 그렇고, 자네집 옥호가 <몽중몽>이던데,

그 이름은 누가 지어 준 이름인가 ? "

김삿갓은 이곳에 오기 전부터 궁금했던 일을 기어코 물어 보았다.


"<몽중몽>이라는 이름은 제가 직접 지은 이름이랍니다."

주모는 정색을 하고 대답했다.


"허어 ...

<몽중몽>이라는 이름을 자네가 직접 지은 이름이라고 ?

그렇다면 자네는 책을 많이 읽은 모양이네그려."


"그건 또 무슨 말씀이세요 ? "


"夢中夢이라는 말은 <夢中占夢>이라는 말의 준말이 아닌가 ?

이 말의 본 뜻은 꿈속에서 꿈을 점쳐 보는 또 하나의 꿈을 꾸고 있다는 말이라네.

<夢中占夢>이라는 말에는 아주 흥미로운 유래가 있지."

김삿갓이 그렇게 말을 하자 주모는 술상 앞으로 바싹 다가서며

매우 흥미로운 듯 말했다.


"저는 그런 유래가 있는 말인 줄 모르고,

내 멋대로 <몽중몽>이라고 지은 것입니다.

옛날에 어떤 유래가 있었다면 제게 꼭 좀 말씀해 주세요."


"자네가 꼭 알고 싶다면 말해 줌세 ....

옛날에 왕적(王積)이라는 시인이 길을 가다 보니,

길가에 <몽중몽>이라는 술집이 있었네.

그러나 그는 그 술집에 들르지 않고 그냥 지나쳐 버렸다네.

그리곤 잠시 후에 나무 그늘에 누워 낮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점을 쳐보았더니,

<夢中夢>이라는 술집에 꼭 들르라는 점쾌가 나왔다고 하는게야.

그래서 꿈에서 깨어난 왕적은 <몽중몽>이라는 술집을

 다시 찾아 오면서 이런 시를 지었다네


夢中占夢罷(몽중점몽파) 꿈속에서 꿈을 점쳐 보는 꿈을 꾸고

還向酒家來(환향주가래)         그 술집을 다시 찾아 오노라


"이렇게,

꿈속에서 꿈을 점쳐 보고 그 술집을 찾아온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주모도 고개를 끄덕이며,

"옛날에도 우리 집처럼 <몽중몽>이라는 술집이 있었던 모양이군요.

그렇지만 제가 우리 집 이름을 <몽중몽>으로 지은 데도 근거가 전혀 없지는 않아요."


"자네는 어떤 연유로 그런 이름을 지었는가.

이왕이면 그 애기도 한번 들어 보세그려."

그러자 주모는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지금으로 부터 15,6년 전, 주모가 <연월(娟月)>이라는 기명으로

기생 노릇을 하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그 당시 연월에게는 그녀를 짝사랑하는 칠십객 부자 노인이 한 사람 있었다.

물론 연월은 거들떠 보지도 않던 늙은이였다.


그런데 그 늙은이가 어느 날 밤 꿈속에 나타나더니, 잠자리를 같이 하자고,

치마끈을 부여 잡고 성화같이 졸라대는 것이 아닌가. 연월은 거절을 하다 못해,

늙은이 소원을 들어 주는셈 치고,

꿈속에서 늙은이에게 깨알 같은 재미를 안겨 주면서 몸을 허락하고 말았다.

잠시 후 잠에서 깨어나 보니, 그것은 다름아닌 꿈이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을 하여 보니,

비록 꿈속이었지만 늙은이에게 몸을 허락한 것은 명확한 사실이아니었던가.

그러자 연월은 그 날로 그 부자 늙은이를 일부러 찾아가,

 지난 밤의 꿈이야기를 들려주며,

스스로 자진해서 몸을 허락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게 된 이유는, 꿈속의 일이었지만 신의를 꼭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었단다.

이렇듯 꿈이 인연이 되어 연월은 노인에게 많은 돈을 받아, 술집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때 문을 열게 된 술집 이름은 꿈 때문에 시작하게 되었다는 뜻으로

<몽중몽>으로 했다는 것이었다.


"음 ----

기가막힌 인연이군그래.

그럼 자네에게 술집 밑천을 대 준 노인은 아직도 생존해 계신가?"

그러자, 주모는 얼굴에 슬픈 빛을 띠며 이렇게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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