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치고 애국가를 못 불러도 아리랑은 다 부른다. 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아리랑을 한국의 국가(國歌)라고 인식할 만큼 알려진 노래다. 아리랑은 국제적으로 남과 북을 구별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없애 주기도 하고, 남과 북이 동시에 참석하는 국제행사에서 한반도를 대표하는 곡으로 국가처럼 불러지는 우리나라의 민요(民謠)다. 이 곡은 한민족(韓民族)의 민요로서 오랜 옛날부터 삶의 현장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감정으로 만들어진 노래다.
특히 아리랑 민요는 지방마다 그 지방의 특성을 살려 만들어진 순수한 민족 감정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나라 아리랑 민요는 곡도 다양하고, 가사도 다양하다. 아리랑 민요가 이렇게 많은 것은 각 지방마다 삶의 여건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중 대표적으로 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 강원도 정선아리랑을 꼽을 수 있는데, 밀양아리랑은 영남지역, 진도아리랑은 호남지역, 정선아리랑은 강원도와 태백산 주변의 산악지대에서 즐겨 불린다. 이 세 곡의 가사와 곡을 자세히 음미해 보면, 지역적 냄새가 물씬 난다. 이는 그 지역의 자연 조건과 삶의 문화에서 나는 것임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잠깐 살펴보자. 산악지역인 강원도 정선아리랑의 가사나 곡은 험한 산악지대 때문에 내왕(來往)이 여의치 못하여 생긴 사연들을 험한 산과 계곡이 만들어 내는 물소리와 바람소리를 통해 한 서린 메아리로 표현하였고, 진도아리랑과 밀양아리랑도 그 지방의 지형적, 문화적 특성에 따라 오랜 세월동안 지형적 요소와 삶의 요소를 가미된 가사와 곡으로 만들어졌다. 예를 들면 밀양아리랑은 밀양의 설화(說話) 아랑의 애화(哀話)와 영남루를 가사에 넣었고, 전남 진도아리랑도 가사에 약산 등대, 만학천봉, 해안선 따라 길게 만들어진 아름다운 백사장, 만경창파 남해에 둥둥 뜬 배등의 표현 등이 진도의 지형적 특성을 말하고 있다. 실제 가사를 살펴보자.
*정선아리랑의 가사는 수도 없이 많으나, 그 대표적인 가사는 이러하다 <정선 아리랑> 아… 강원도 금강산 일만 이천 봉(峰), 팔만 구 암자(庵子), 유점사 법당(法堂) 뒤에 칠성단 다듬고, 팔자 없는 아들딸 낳아 달라고, 석 달 열흘 노구(老軀)에 정성을 말고(말 할 것도 없이), 타관객리(객지) 외로이 태어난 사람 괄시(括視: 사람을 업신여겨 하찮게 대함)를 마라. 세파에 시달린 몸, 만사(萬事)에 뜻이 없어, 홀연히 다 떨치고, 정열(情熱) 만을 의지하여, 지향 없이 가노라니, 풍광(風光)은 예와 달라 만물이 소연(昭然:밝고 뚜렷함)한데, 해 저무는 저녁놀 무심히 바라보며, 옛일을 추억(追憶)하고 시름없이 있나니, 눈앞의 온갖 것이 모두 시름뿐이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날 넘겨주오. 태산준령(泰山峻嶺) 험한 고개, 헝클어진 가시 덤 풀을 헤치고, 시냇물 구비치는 골짜기 휘돌아서, 불원천리 허겁지겁 허허단신(單身) 그대를 찾아 왔건만, 보고도 못 본체 무심(無心)하게 돌아선다. 아… 강원도 금강산 일만 이 천봉, 팔만구(八萬九) 암자庵子) 법당 위에 촛불을 밝혀놓고, 아들 딸 낳아 달라고, 두 손 모아 비는구나.
아리랑은 종류도 참 많다. 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 정선아리랑, 해주아리랑, 자즌아리랑, 긴아리랑 등 수 개가 더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중에서 정선아리랑을 가장 좋아한다. 애절(哀切)하고 슬픔이 마치 우리 민족의 고난에 대한 역사처럼 느껴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곡의 흐름이 강(强)․약(弱)으로 감정(感情)을 자극하지도 않으면서 심심유곡(深深幽谷)의 개울물이 흘러가는 소리처럼 자연스럽고, 급격한 고저(高低)가 없이 고요하고, 잔잔한 어머니의 목소리처럼 마음을 적셔주기 때문이다. 정선아리랑은 다른 아리랑에 비해 가사가 다양하다. 그것은 삶에 대한 사연이 그만큼 많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아리랑에 후렴처럼 계속 반복되는 가사가 ‘아리랑’이다. 아리랑의 어원은 여러 설이 있으나, 대략 다음과 같다. 아리랑의 「아리」는 고어(古語)로 ‘곱다’라는 뜻을 내포한다. 요즘의 ‘아름답다’라는 표현 중 ‘아름’의 형용사형이라 보면 될 것 같다. 또 다른 뜻은 마음이 ‘아리다’의 ‘아리’로 ‘사무치게 마음이 아프다’라는 뜻에 연유(緣由) 되었다고 본다. 「랑」은 ‘浪, 郞’으로 ‘님’을 뜻하고, 또는 ‘領; 령’에서 변형된 표현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본다면 ‘아리랑고개’는 즉, 고운님(정든님)이 넘는 고개라 풀이되고, 이러한 해석을 전제로 강원도 정선아리랑의 가사 내용을 풀이해 보면 강원도 심산유곡(深山幽谷)에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사는 이들의 애환이 더욱 진하게 느껴진다. 정선 아리랑은 가사도 애달프지만, 그 곡이 다른 아리랑보다 구슬프고 애절하다. 여기에 한 많은 사연들이 험준한 산협(山峽)이 가로막아 만들어지고 있다. 이 곡이 지금도 강원도 주민들에게 애창(愛唱)되는 것은 삶의 환경이 열악(劣惡)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별(離別)로 인해 만남이 쉽지 않아 더욱 애절(哀切)하다.
「아리수」란 서울사람들이 먹는 수돗물을 지칭(指稱)한다. 이물의 근원(根源)이 바로 아리랑 고개인데, 이 험준(險峻)한 곳에서 발원(發源)하여 굽이굽이 흘러내려 북한강을 만들고, 이것이 양평 두물머리에서 남한강을 만나 한강수(漢江水)가 되었다. 지금은 각종 댐이 만들어져 추억 속으로 사라져버렸지만 먼 옛날 북한강 시발점(始發点)에서 뗏목을 만들어 맑은 물에 띄우고, 강바닥에 노니는 온갖 물고기들과 벗하여, 흐르는 물에 의지하며 정선아리랑 노랫가락에 삶의 시름을 실어 구성지게 부르다보면 어느덧 종착지(終着地) 마포나루에 당도한다.
뗏목을 옮겨주는 물이 아리령에서 출발하여, 강원도 사람의 시름을 담아 같이 동행하였던 한강수를 「아리수」라 하였다. 이것이 서울 사람들의 생명의 원천(源泉)이 된 것이다. 누가 수돗물을 ‘아리수’라고 작명(作名)하였는지 진심으로 칭찬해 주고 싶다. 실제로 아리수란 이름은 강원도 심심유곡 ‘아리령’에서 만들어진 맑은 약수(藥水)가 모여 한강수가 되었는데, 이것을 다시 정수(淨水)하여, 약수인 ‘아리수’를 만들어 서울 시민에게 공급하고 있다는 이미지(Image)를 주어 생수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물이라는 뜻이니 칭찬 받기에 충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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