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상식

빚쟁이와 빚꾸러기

오토산 2021. 1. 18. 05:38

빚쟁이와 빚꾸러기

성 기 지 / 한글문화연대 운영위원

 

학생들 사이에서 “재수 덩어리!”, “왕재수야!” 하는 말들이 오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말들을 부정적으로 쓰는 것이라면, ‘재수’라는 말을 잘못 사용하고 있는 사례이다.

‘재수’라고 하면 ‘재물이 생기거나 좋은 일이 있을 운수’를 말한다.

그러니까, ‘재수’는 누구나 바라는 참 좋은 말이 된다.

“왕재수야!” 하면 대단히 좋은 일이 생겼다는 말이기 때문에 말하는 사람의 의도와는 정반대가 된다.

운수 나쁜 일이 생겼을 때에는 이 말에 ‘없다’를 붙여서 ‘재수 없다’라고 표현해야

말하는 사람의 의도가 제대로 전달된다.

이런 말들은 잘못 쓰고 있는 경우이지만,

아예 원래의 뜻이 반대로 옮겨가서 굳어진 낱말들도 있다.

‘빚쟁이’란 말도 그러한 사례이다.

요즘에는 빚을 진 사람을 낮잡아 이를 때 쓰는 말로 ‘빚쟁이’를 많이 쓰고 있다.

가령 “유명 연예인이 사업 실패로 하루아침에 빚쟁이가 되었다.”에 쓰인 ‘빚쟁이’가 바로 그렇다.

그런데 ‘빚쟁이’의 본디 뜻은 빚을 진 사람이 아니라, 남에게 돈을 빌려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는 빚 독촉에 못 이겨 집을 빚쟁이에게 넘기고 말았다.”처럼 써왔던 말이다.

우리말에서 빚을 진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은 ‘빚꾸러기’였다.

예전에는 빚을 진 사람은 ‘빚꾸러기’, 돈을 빌려준 사람은 ‘빚쟁이’로 엄격히 구분해 썼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빚꾸러기’는 잊고

돈을 빌려 준 사람이든, 빌려 쓴 사람이든 모두 ‘빚쟁이’로 부르기 시작했다.

‘빚꾸러기’가 점점 힘이 약해지고 잘 쓰이지 않게 되자

‘빚쟁이’가 ‘빚꾸러기’의 자리까지 빼앗아 버린 것이다.

이제 ‘빚꾸러기’는 사전 속에서나 볼 수 있는 말이 되었다.

 

<sns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