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링빙야화

조선 보부상의 아버지 백달원

오토산 2021. 3. 3. 20:03

[최고의행운 인(仁)을 실천하여 부자가 된 사람]
<조선 보부상의 아버지 백달원>

사내는 지루함과 고달픔을 잊기 위해 소매에서 표지가 너덜너덜한 책자를 꺼내 들었다.

아내가 친정에서 나올 때 가지고 온 책자로 사마천의 '사기열전'이었다.

아내는 까막눈인 그에게 글을 가르쳐 읽을 수 있게 했는데, 그는 특히 '화식열전'을 좋아했다.

사내의 이름은 백달원.
황해도 토산 출신의 천민으로 원래 귀족인 왕씨가의 노비였다.
아내는 바로 그 주인집 딸이었다.

노비와 주인 아가씨 신분이었지만,

백달원은 어릴 때부터 아가씨와 오누이처럼 자랐다.

하루는 백달원이 아가씨를 모시고 절에 다녀오게 되었다.
불공을 드리고 내려오는데 소나기가 쏟아져 업고 계곡을 건너다

춘정이 동해서 아가씨를 껴안았는데 아가씨가 거절하지 않았다.

백달원은 아가씨를 몰래 만나서 사랑을 속삭였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다.
주인나리가 아가씨를 개경의 유력한 부자에게 시집보내려 했기 때문이다.

"이제 둘이 도망칠 수밖에 없습니다."

백달원은 아가씨와 함께 야반도주를 했다.
그들은 황해도와 평안도를 떠돌다 함경도의 삼수갑산까지 와서 정착했다.
귀하게 자란 아내는 산속에서 사는 것을 힘들어했다.
농사를 지을 줄도 모르고 사냥을 할 줄도 모르는 그들은

이웃 사람들이 친절하게 도와주었다.

'사람은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

백달원은 그것이 공자가 말한 인(仁)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그는 그때부터 마을에 어려운 일이 닥치면 반드시 솔선하여 도왔다.

오느 날, 백달원에게 사마천의 말 중

'가족을 부양하지 못하는 이는 열등한 인간'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래 , 열등한 인간이 될 수는 없어.'
백달원은 지난 밤에 생각했던 계획을 아내에게 이야기 했다.

"장사요?"
아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응시했다.

"언제까지 산속에서 살 수 없지 않소?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모여 살아야지."

"산속 생활에 지쳤어요?"

"산속에 살다 보면 언젠가는 여진족의 약탈을 당할 수도 있소.

이제는 대처로 나갈 때가 되었소.

우리가 성공하면 부모님도 우리를 받아 주실 거요."
아내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다면 당신 뜻대로 하세요."

 

백달원은 아내의 동의를 얻자

화전을 일구고 사냥을 하는 대신 장사할 준비를 했다.
백달원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산속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짐승 가죽을 모았고

아내는 짐승 가죽을 손질했다.

그렇게 손질한 가죽은 함주에 가지고 가서 팔았다.

가죽을 판 돈으로는 종이, 비단, 놋그릇 등을 사가지고 마을로 돌아와 팔았다.
백달원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장사를 다녔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함주를 오가면서 장사하는 일은 화전을 개간하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

'여기서 주저앉아서는 안 돼.

편하게 장사하여 돈을 벌 수 있다면 누구나 돈을 벌 거야.

남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해.'

6개월이 지나고 1년이 지나자 조금씩 돈이 모이기 시작했다.
백달원은 어는 정도 돈이 모이자 나귀를 한 마리 샀다.

나귀에 물건을 싣고 다니자 더 많은 이익을 낼 수 있었다.

하루는 백달원이 함주 저잣거리를 돌아다니며 물건을 구경하고 있는데

난전 한쪽에 웅크리고 앉은 걸인 부부가 아기를 안고 구걸하고 있었다.
날씨는 살을 엘 듯 추었다.

'저 사람들은 건장해 보이는데 어째 일을 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저 걸인 부부에게도 국밥을 한 그릇 말아주시오."

"인심도 좋구려."

 

주모는 내키지 않는다는 듯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걸인 부부에게 국밥을 가져다 주었다.

며칠 후 백달원이 다시 함주의 저잣거리에 들렀을 때 걸인 부부는 여전히 구걸을 하고 있었다.
백달원은 그때 어떤 생각이 번개처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렇게 구걸해서 어떻게 살겠소?

오늘은 굶주림을 면했다고 해도 다음 날도 면할 수 있겠소?

추운데 집도 없고... 나를 따라 오겠소?"

"어디로요?"

"나는 장사하는 사람이오.

나하고 장사를 같이하지 않겠소?

나하고 장사하면 적어도 가족이 굶주리지는 않을 것이오."

"먹고 살게만 해주신다면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걸인 남자가 벌떡 일어나서 대답했다.

백달원은 자기 집 옆에 움막 한 채를 짓고

'차득보' 일가를 살 게 한 뒤 그를 데리고 장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차득보의 부인은 아내와 농사일을 하거나 허드렛일을 하게 했다.

그러자 아내가 불안해하거나 무서워하지 않아 백달원은 마음 놓고 돌아다니며 장사를 할 수 있었다.

백달원은 걸인들을 휘하로 끌어들였다.
흉년이 든 데다 관리들의 착취로 거리에는 굶어죽는 사람들이 가을 낙엽처럼 뒹굴고 있었다.
손만 내밀면 사람들이 기꺼이 따라왔다.

백달원은 그들을 끌어들여 상단(商團)을 조직했다.

'한 사람이 장사를 하면 이익이 두 배로 남고,

두 사람이 장사를 하면 네 배로 남고,

열 사람이 장사를 하면 백 배로 남는다.'

백달원은 상단을 조직한 뒤 본격적으로 장사를 나섰다.
장사 규모도 커지고 거래 품목도 다양해졌다.
그들의 가족까지 합치자 100명 가까이 되어 마을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장정들끼리 싸우거나 장사하러 다니면서

도둑질을 하거나 음란한 짓을 하는 사람들까지 나타났다.

그래서 백달원은 장정들과 가족들을 모아놓고 삼강오륜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간의 도리를 지키지 않으면 상단에서 추방하겠다고 선언했다.

① 물망언(勿忘言) :    말을 함부로 하지 마라.
② 물패행(勿悖倫) : 행동을 함부로 하지 마라.
③ 물음란(勿淫亂) :    음란한 짓을 하지 마라.
④ 물도적(勿盜賊) :        도적질을 하지 마라.
이는 500년 동안 이어온 조선 보부상의 전통이 되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피비린내가 풍겨왔다.
백달원은 여진족이 완전히 시체가 되어 나뒹굴 때까지 풀숲에 납작 엎드려 있었다.
장사를 하러 다니다가 뜻밖에 전투를 목격하게 된 것이다.
백달원은 차마 물건을 버리고 달아날 수 없어서 풀숲에 엎드려 있었다.

'저 장수는 누군지 참으로 용맹하구나.'

동북면 군사들 중 유난히 활을 잘 쏘는 장수가 있었다.

그는 여진족과 마주쳤을 때 귀신같은 활 솜씨로 여진족을 쓰러뜨렸다.
전투가 끝나자 백달원은 강가 풀숲을 살폈다.

'동북면 장수가 죽었나?'

여진족 군사들이 여기저기 시체가 되어 널브러져 있었다.
그 때 시체들 틈에서 동북면 장수가 신음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의 허벅지는 창에 찔렸고 어깨에는 화살이 박혀 있었다.

"장군님, 견딜 만합니까?

제가 상처를 치료해도 되겠습니까?"

"그대는 의원이오?"

"아닙니다.

떠돌이 장사꾼이지만 임시 조치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럼 부탁하겠소."
장수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백달원은 어깨의 화살을 뽑은 뒤 지혈을 하고

창에 찔린 허벅지 상처도 헝겊으로 동여매 피가 흐르는 것을 막았다.

상처 때문에 고통스러울 텐데도 입을 다물고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상처가 있어서 움직이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저희 집이 가까우니 치료를 받고 돌아가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럼 부탁드리겠소."

백달원은 나귀에 실은 물품이 걱정되었으나 사람을 먼저 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단을 내려놓고 동북면 장수를 나귀에 태워 집으로 돌아왔다.

"부탁이 있소.

내 부하들이 죽었는데 시신도 함께 수습해주시오.

함주까지 보내주면 사례하겠소."
장수가 백달원에게 청했다.

"시신을 함주로 보내라."

 

백달원은 일꾼들에게 지시했다.
동북면 장수는 치료를 받는 동안 말이 없었다.

눈이 부리부리하고 목소리가 굵은 사내였다.

이따금 백달원이 읽던 책을 뒤적거리다가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을 뿐이었다.

'예사 인물이 아니로구나.'
백달원은 장수의 의연한 모습에 감탄했다.
장수는 자신이 누구인지 말하지 않고 백달원에 대해서도 묻지 않았다.

여진족에게 죽은 군사들 시체를 수습하여 함주에 갔던 일꾼들이 동북면 군사 수백 명과 함께 왔다.
장수는 군사들을 이끌고 함주로 돌아갔다.

백달원은 장수가 돌아가고 한참 지난 뒤에야 그가 '이성계' 장군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성계는 여러 달이 지난 뒤 백달원을 함주 군영으로 초대했다.
그는 생명을 구해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이성계가 지휘하는 군영에 물자를 납품하게 해 주었다.

고려는 왜적의 침입과 홍건적의 침입으로 어수선했다.
백달원은 이성계의 군사들에게 전쟁물자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성계에게는 필요한 물자를 공급할 뿐 비용을 요구하지 않았다.

백달원은 이성계가 큰일을 도모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주위에 인재들이 모여들었고 이성계는 그들을 포용했다.

'이성계는 사람을 경영하고 있다.'

"물자를 준비하느라 고생이 많다고 들었소.

그대가 아니면 이성계는 존재하기 어려웠을 것이오."

이성계는 진심으로 백달원에게 말했다.

"장군께서 주실 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군대 물자는 걱정하지 마시고 큰 일을 도모하십시오."

"허허,

내가 그대에게 배워야 할 것 같소.

내가 큰일을 할 작정인데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 것 같소?"

"인(仁)입니다."
백달원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삼봉 정도전이 인재라고 생각했는데 그대 또한 인재가 분명하오.

정말 벼슬에 나설 생각은 없소?"

"사람마다 업이 다릅니다.

상인은 장사하는 것이 업이고, 농부는 농사짓는 일이 업입니다.
자기 업을 버리고 권력을 쫓는 것은 욕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과한 욕심은 화를 부르고 인간은 화가 닥치면 헤어나지 못하게 되지요.

그래서 상인으로 만족하면서 살 생각입니다."
백달원은 권력에 조금도 미련을 두지 않았다.

 

고려는 점점 혼탁해져갔다.
'최영' 장군은 고려인들이 존경하는 무인이었으나 딸을 우왕에게 시집보내 왕비가 되게 하면서,

우왕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하고 이성계와 대립했다.

"왕을 간사한 자들이 보필하고 있다.

이 자들을 몰아내지 않으면 고려는 개혁할 수 없다."
이성계가 군사들에게 선언했다.

"이성계가 반란을 일으켰다.

이성계의 반란군을 모조리 죽여라."

최영은 군사들을 모아 이성계에게 대항했다.

개경의 시가지에서 대대적인 전투가 벌어졌다.

그러나 한나절도 되지 않아 최영의 군은 이성계에게 대패했다.
이성계는 결국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건국하여 태조가 되었다.

'하늘의 뜻이다.

이제 이씨 세상이 되었구나.'
백달원은 고려 왕조가 조선 왕조로 바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살구꽃은 3월에 피고

국화꽃은 9월에 핀다'

"꽃도 피고 질 때를 아는데,

하물며 사람이 나아가고 물러날 때를 몰라서야 되겠는가?"

백달원은 이성계가 왕이 되었어도 찾아가지 않았다.
이성계는 몇 년 동안 백달원이 찾아오지 않자 사람을 보내 그를 불렀다.

"그대는 어찌 옛날의 벗을 찾아오지 않는가?

나에게 서운한 일이 있는가?"
이성계가 백달원에게 술을 권하면서 물었다.

"대왕께서 옛날에 아무리 궁벽했다고 해도 이제는 존귀한 분이 되었습니다.

오로지 우러러 받들 뿐입니다."

"내가 조선을 건국할 수 있었던 데는 그대의 공이 크다.

나에게 원하는 것이 있으면 말하라."

"상인들이 편안하게 장사할 수 있도록 보호해주십시오."

백달원은 자신을 도와준 상인들이

나라의 보호를 받으면서 장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청했다.

"어떻게 하면 그들을 보호하는가?"

"도성과 지방에 임방을 설치하여

서로 보호하고 돕도록 윤허해주십시오."

이성계는 상인들을 보호하고 육성하기 위해서

개성의 발가산에 보부상들의 업무를 관장하는 임방을 설치하고 백달원에게 그 책임을 맡겼다.

이성계는 아울러 어물, 소금, 목물, 토기, 무쇠그릇

다섯 가지 물품에 대한 전매 특권을 백달원에게 부여했다.

백달원은 조선 최초로 상인들을 통괄하는 총책임자가 되었고

, 중요한 물품의 독점권까지 획득해 이성계에게서 기대 이상의 보상을 받았다.

백달원은 임방에 의거하여 보부상들을 보호하고

그들에게 마음껏 장사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주어 보부상들의 아버지가 되었다.

출처: 조선부자16인 이야기 중에서

# '중국 부자16인 이야기' 책을 읽고 큰 감동을 받고,

'조선 부자 16인 이야기' 책을 읽게 되었다.

부의 3요소는 축척, 증식, 분배라고 한다.
중국 부자에도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 백성들이 굶주릴 때,

자기의 재산과 곡식을 아까워하지 않고 나누고 베풀어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살리고, 더 큰 부자가 된 부자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이 책에도 많은 부자들이 인(仁)을 실천하여 부자가 되었다.
백달원은 그중에 한 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거 소설책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봤다.

너무 재미있고 감동적인 책이다.

백달원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황순원'의 '소나기'를 연상했다.
비를 맞으면 사랑이 많이 싹트나 보다.

모든 부자가,

그리고 어진 사람들이 그랬듯이 백달원도 책을 가까이 하고 실천한 사람이다.
태조 이성계가 배움을 청하고 인재라고 할 정도이니,

백달원의 인품과 지식이 대단함을 가름할만하다.

천민이었던 사람이 양반 아가씨와 결혼하고

이어서 임금인 이성계와 벗이 되고 나라를 위해 재물을 내놓을 수 있다니...

정말 소설 같은 이야기다.

내가 귀인을 알아보고 귀인이 나를 알아보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백달원을 통해 다시 한번 되새기는 시간이 되었다.

 

<sn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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