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링빙야화

터구 이야기

오토산 2021. 1. 11. 20:22

재미있는 글이 있어 공유
합니다.

 
제목: 터구 이야기.
 
 
조터구가   책가방을 들고 서둘러 안기동 미나리 논을 가로 질러 나이아가라 중국집을 돌아,

저만치 교회종각을 보고 길을 건너는데  학교 뒷산과 교무실 앞 쪽에 핀 아카사아 향기가

거기까지 날아와 코를 벌름거리게 하고  있었다.
조터구 원래 이름은 조병조다.

늘 매사 성실하고 심성이야 착하다하지만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다.
시험은 늘 30점 밑을 돌고 통지표에 양 아니면 가를 받고,

학급 석차도 59명 중에 58등이니 터구 소리를 들어도 싸다.
당체  계산이 안 되고 매사 곧이곧대로 남들 시키는 되로 하고 남을 속이거나, 약지를 못하는 성품이다.
 
그는 영양석보  깊은 산골 출신으로서 늘 어리벙벙한 태도를 보고
 
"석보촌넘!"
 소리를 듣다가 "터구" 로 불리워기게 된 동기가 있다.

언젠가 반 친구들이
 “야 조터구 너 이번 학기 낙제했다고 선생님이 2학년 2반으로 가서 수업 받아라 카드라!”
 
거짓말로 놀렸는데...

그는 정말로 한 학년 아래 2학년 2반에  가방 들고 자리를 옮긴 적이 있어서 그때 친구들이 
 
'" 야 이 터구야!"  하는 바람에

이제 그의 이름은 "터구"로 불려졌다.
 
" 터구"라고

말은 경상도 북부지방에서 등신보다는 머리 돌아가는 것이 조금 웃 질이고
쪼데기나 맨자구로 호칭함보다는 마음 씀씀이가 한결  나은 사람을  놀리듯이  호칭하는 말이다.
 아름드리 굴참나무가 우거진 경안고등학교 동산위에는 별장보다 더 아름다운 미국식  선교사 집이 있고 

그 아래 있는 교정 언덕에는 온통 아카시아 나무들이 숲을 이루어 운동장 쪽에서

아카시아 숲 쪽으로 봄바람이라도  한번 뒤흔들면 

길가는 개들도 코를  벌름 거릴 정도로 숨 막히게 아카시아 향기가 좋은 학교였다.
 
 첫 교시는 염전한 양반선생님으로 통하시는 유 교감 선생님의 도덕 시간이다.
 둘째 시간은 김영탁 선생님의 체육 시간이고
 셋째시간은 김효대 선생님의 국어시간이다.
 넷째는 골치 아픈 코사인 탄잰트 수학 시간이다.

그 다음이 점심시간...

부자 아이들은 쌀밥 도시락을 열어 놓고 먹고,
가난한 아이들은 노오란 조밥 도시락을 까먹고,
조터구터럼 더욱 가난한 아이들은 그냥 다른 아이들이 도시락을 다 먹을 때까지

교실 뒷 쪽이나 뒷 동산에 얼찐거리다가 오후 수업 시작 전 우물가에서

벌컥벌컥 물배만  채우고 오후 수업을 시작했다.
 
아카시아 향기는 오월춘풍을 타고 계속 숨 막히게 교정에 풍기고

  체육시간도 끝나고 어느덧 셋째 국어 시간을 맞고 있었다.
 
김효대 선생님은 대학졸업하시고 첫 교단에 오신 분으로서

국어 실력은 경상북도에서도 알아주시고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치시는 분이시다.
그날도 김 선생님은 윗니 두 번 째에 번쩍번쩍 금 이발을 보이시면서
 
" ㅅ,ㅈ,ㅊ 밑에 "ㅣ" 선행 모음 탈락 현상"을
  입에 침을 튕기면서 열심히 가르치시는데 
 늘 국어 점수를 잘 받는  권오기 반장은

오늘도  신이 나서 선생님 질문에도 답을 잘하고 의기 양양거렸다.
 그런대 문제가 생겼다.

 

 배재두가 새 자전거 타는 이명국이 도시락을 몰래 까서는 

노오란 계란 부침조각을 꺼내어 입안에 얼른 집어  넣고
또 하나를 꺼내어 아침도 못 먹었다는 바로 뒤에 있는 조터구에게 넘겼다.

 

 보통 도시락 반찬은 무우지 아니면 골 짠지(무우 말랭이 김치) 정도였고

조금 집안이 좋은 아이들은 콩자반이나 멸치조림으로 도시락 반찬을 해 왔다.
 

그러니 뚜껑을 열면 된장 항아리 속에서 소금에 찌든 무우지 냄새나 골 짠지 냄새가 퍼져서

  금방 도시락 까먹는 것을 코 냄새로 알기 마련인데 부자 집 이명국이 도시락은

늘 계란말이니 혹은 미군 부대에서 나 온 소고기 통조림을  밑반찬으로 사용하는지라

냄새도 그리  티 나게  나지 아니하고 마침 또 아카시아 향기가 너무 짙어

아무도 그 냄새를 못 알아 차렸다.

 

그러자 그 옆에 김 자일이라는 녀석도 귓속말로
 ' 야 너거끼리 처 묵지 말고  나도 쫌 주라 너거 주디만 주디(입)라!"했다.

 

그러자 그 옆에 남홍만이도 달라고 낮으막히 말했다.
아침을 먹었다지만 한창 나이라서 다들 허기지기는 마찬가지다.
그때 흑판에 열심이 고어 풀이를 하시던 국어선생님이 낌새를 차리시고 돌아서시더니

곧바로 몽당분필이 김자일이 머리 위로 날았다.
 
" 거짝에..

뒤에서 떠드는 놈 일어서"
 
 국어 선생님은 성품이 안동양반 그 이상이고 웬만해서 화를 내시지 않는 분이시지만
 지난번 중간고사 국어 시험이 다들 엉망이라서 교장 선생님에게 
 
 "나머지 수업"을 지시 받은 이후 신경이 날카로워 지셨다.
아이들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 누구냐?

일어섯!"
 
 그러자 키다리 조터구가 제일 먼저 나무걸상을 뒤로 밀고 일어섰고

곧이어 김자일이와  배재두도 일어섰다.
 배재두는 입에 아직 계란말이가 미처 목구멍을 넘기지 못하고 있었다.
 
" 무슨일이냐?

  수업시간에 왜 떠들고 그래?.

너거들 ㅅ,ㅈ,ㅊ 밑에 ㅣ 선행모음 탈락 현상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는 알어?"
하고 고함을 치셨다.
 

배재두는 계란말이를 물고 있으니 대답을 못하고 고개만 숙이고 있었고

조터구와 김자일이는 눈만 바닥으로 내리깔고 있었다.
 배재두 표정을 보고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킥킥 거렸다.

" 야 이놈들아 점심시간 아직 멀었는데 벌써 도시락 까먹나?

그리고 조병조!

니는 아직 우리 글자도 제 되로 못 깨우친  놈이 수업태도가 그래서  우짤래?"

 

“..............”

 

“조병조 왜 대답이 없어?..

너 지난번 국어 시험지에
 
”착하게“를 ”차카게“로 적고
”국물도 없다“ 를 “궁물로 업다” 로 적고
"멸치"를 "멧고기" 로 적은  놈이잖아!“
 
그러자 여기저기 아이들이 킥킥 거렸다.
조터구 한글은 실로  문제가 있었다.
그는 늘 안동 사투리 발음 식으로 한글을 공책에 적었다.
 
" 선생님 야들 언가이 먹는 것 걸피니더

퍽 하면  명국이 도시락을 훔쳐 먹습니다"
 
반장 권오기란 놈이 묻지도 아니한데 일어서더니

배재두,김자일이를 가리키면서 얄망스럽게 일러 바쳤다.
반장 권오기가 저러는 이유는 늘 점심시간에

이명국이 도시락 반찬을 얻어먹는 놈이기 때문이다.

그러자 터구 옆자리에 앉은 이승영이가
 
'“저늠의 반장 시끼..

공부 잘 하믄 뭐 하노 인간이 되야지"
 낮으막하게 뇌까렸다.

 

왜 점심시간도 안 되었는데 수업시간에

도시락을 먼저 까먹느냐고 나무라시자
김자일이가
 
“터구가 아침 못 먹었다꼬해서 우리가 뺀도 반찬 계란말이 하나 줬습니다”

 

"야 이놈아 뺀도가 뭐로?

내가 그렇게 갈키드나!

도시락이지 뺀또가 뭐로 엉?"

 

"잘못했습니다"
김선생님이 조병조가 아침을 굶었다하자 다소 목소리를 낮추시고는

" 조병조..너  아침 굶었어?"
"................"

 

" 왜 아침을 굶었나?

어서 말해봐"
 
그러자  이승영이가 벌떡 일어서서
 " 터구 자치 방에 보리쌀이 떨어졌다카디더!"
 
조터구 사정을 이야기 했다.
비록 조터구 뿐 아이다.
아카시아 꽃이 휘날릴 때 즈음 보릿고개가 시작되므로 조당수는 고사하고

  개떡도 못 먹는 학생들이 제법 있었다.
 지난번 국어시험에서 40점 이하 나온 학생들만 모아서

오후 수업이 파하고 한 시간 씩 더 나머지 수업을 했었다.
나머지 수업하는 아이들 사이에는 늘 조터구도 포함이 되었다.

 

물론 퍽하면 나머지 수업을 받는 조터구 성적은 전과 동일하게 맨 꼴찌를 달렸다.
그때 여드름이 송글송글 솟은 18살 총무과 인숙이가 아카시아 나무에 매달린 종을 땡땡 울렸다.
그래서 세 번째 국어시간도 무사히 끝이 났다.
창밖에 벌들은 더욱 분잡스럽게 윙윙거리고

다시 한바탕 아카시아 향기가 교실 가득히 밀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 세월 중략--------------
 
 어느 덧 세월은 30년을 훌쩍 흘러서 흰 눈이 펑펑 쏟아지는 12월 달에

퇴계로 R 호텔 에머랄드 홀에서 경안고등학교 제 00회 전국 동창회가 송년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꼴통 배재두는 인천에서 식당으로 자리를 잡아 순 처복으로 살고 있었고
 어께 김자일이는 안동역에서 일하다가 명퇴를 하고 낚시 대를 들고 임하 땜에 들락거리면서 살고 있고
 늘 이명국이 옆에서 알찐거리던 권오기는 모 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이승영이는 상계동 쪽에 안동 칼 국시 집을 열어서 문전성시를 이루고
 조절래는 벨즈음 브르셀에서 유럽생활을 20년 넘게 하고 있었다.

 

각자 출세를 위하여 달리던 동창들이 ...

처음으로 전국 동창회를 서울 유명한 R호텔에서 개최했다.
어느 덧 머리 털이 숭숭 빠지고 어금니 한두개씩 다 도망가서 씹지도 잘 못하는 오십대들이 되었다.
 
‘어이 배재두!...

제수씨하고 안 싸우고 잘 사는가?"

 

”야..이사람아 우리 마누라가 형수되지 우째 제수가되노!"

 

"이승영이 너거 안죽 안죽었나!“

 

“옛끼 이 사람아 동생들이 멀쩡하게 두 눈 뜨고 있는데

내가 우째 먼저 죽노 하핫”
 
투박한 경북북부지방 우스개들이 피는 모임이다.
오랜 만에 고교동창들이 많이 모여서 다들 반갑게 악수를 하면서

고교시절로 돌아가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우는데 ..

맨 끝자리 자석에서 말없이 조용히 소주만  연신 들이 키는 동창이 있었다.
 
" 저 쪽에서 혼자 술만 마시노 저 친구는 누구로?"

 

." 누구로?...

오랜 만에 보니 나도 기억이 잘 안 나네 우리 동창 맞나?"

 

' 저늠아  명국이 아니라?"
그러자 지하철  검표원으로 일하는 영일이가 뻔쩍이는 이마를 들이 밀면서

 

" 늘 부자랏꼬 껍죽이든 이명국이 맞네!"

 

" 왜 우리가 도시락 자주 뺏어 먹던 놈 있잖아

삼천리  새 자전거타고!"

 

"아..새 자전거 그래그래 전교에서

새 자전가 타는 놈은 저 친구 뿐이였지"

 

" 맞아..그

래 이명국이 기억이난다.

.신 시장 제일 큰 부자 집 아들 이 명국이...

근데 왜 풀이 죽었노!"

 

"잔네(자네)들 소식 아직 못 들었나?"
승영이가 전후 사정을 잘 아는 척 했다.

 

"무슨 소문?"

 

" 소문에...

부모님이 이룬 재산 저늠아 다  말아먹고, 마누라도 도망가고..

지금은 거의 노숙자 신세 됐다카드라"

 

' 저런!"

 

" 저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고 우리 어릴 적 마당에 벼 짚가리 큰 집 치고  후손 잘된 집안 없어...

옛  말에 삼대 부-우자 없다꼬"

 

" 그 많은 재산 다 날렸다꼬?..."

 

“그럼..다 날렸지”

 

“절래...

자네 새마을 사업할 때 지은 신양초등학교 학교 부지 무상으로 기부하고

박통한테 감사장 받았던 유시국이 아부지 아나?”

 

“풍산 들 절반이 그 사람 것이라고 유부자 말이가?”

 

“그래 그 집도 국회의원 몇 번 치루고 쫄딱 망하고

시국이는 소주병으로 죽은 지 3년이 넘었지!”

 

“저런!

나무 모타리따!”

 

 다들 쫄딱 망한 부자 집 아이 들을 들먹였다.
 그때다 파티 장을 가장 늦게 어스름한 옷차림으로 들어서는 친구가 있었다.
 그 이름도 유명했던 머저리 같은 조터구(조병조)다.

" 어이 조터구!"

 

" 터구?...

아 나머지 수업 받던 친구!"

 이미 술이 한잔씩 된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조터구 손을 잡고 흔들었다.
비록 공부는 지지리도 못했지만 늘 싱긋 웃는 그는 세월이 흘러도 인기가 높았다.
 그가 입은 허름한 잠바에는 붉은 피 자국도 보였다.
 알고 보니 조터구는 졸업 후 안동 기차역에서
 
" 청량리 가는 열차 표 중에 기중 싼 거 한 장주이소" 하여

입석을 타고 청량리에 도착한 후

미리 서울에 올라와 고모가 운영하는 호텔에 일하고 있던 이승영이 방에 3일 신세를 진후에
 신당동 도살장에 잡부로 들어가서 열심히 하여  이젠 큰 육도매점을 경영하고

지난해에는 빌딩도 5층짜리를 마련했다 한다.

 

“저늠아는 도살장에 들어가서 ..

일도 한눈팔지 아니하고 죽자고  터구처럼 했어”
 
 파티 장에서  내내 씨-익 씨-익 웃기만 하던 그는 일이 바쁘다면 조금 빨리 자리에서 일어섰는데 ....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 총 경비 1백 육 십 만원을  말없이 전부  결재하고 일터로 돌아갔다.
그리고 동창회 발전 기금으로 3백만원짜리 자기 앞 수표를   선듯 총무에게 맡기고 갔다는 것이다.
 
학교 다닐 때 옹천-안동 간  한 달 파스(기차표)  90원이 없던  친구!
조밥 도시락은 고사하고.. 끼니조차  자주 굶고 다니던 조터구...
반 석차가 59명중에 58등 아니면 59등을  오르내리던 조터구..
“착하게”를 늘 “차카게”로 적을 정도로 국어 실력이 떨어지던 조터구..
자칫하면 한 학년 낙제할 뻔 했던 친구..
 
그런  그가 매사 조금 모자란 듯이  세상을 터구처럼 진솔하게 살아 온 덕분에
이제 그는 성공한 오십대 동창으로서 , 

공부 잘하고 집에 돈 많았던 다른 동기생들을 제치고 저만치 앞서 달리고 있었다.
 
문득 허기져서 도시락을 미리 까먹던 모교와

오월 춘풍에 숨 막히게 코를 찌르던 아카시아 숲이

R 호텔 에머랄드 송년 파티 장을 뒤 덮고 배재두가 술잔을 높이 처 들고
 
“동창 발전 기금  삼백만원을 내 놓은  우리들의 터구 조병조를 위하여!
선창을 하자 모두들
 
“조터구를 위하여!”
 잔을 높이 처들면서 소리를 쳤다.
 
 끝.

 꼬랑지 글.
구름아 그름아 하는 넘이 어느 성공한 동창생을 모델로 글을 만들었다.
모두가 잘사는 디지탈 시대라고 하지만 그저 100점만 바라보고 달리는 세태에 억눌려서
젊은  청년들이 자살도 하는 시대다.
성적이 좋으면 좋겠지만 나쁘다한들 실망하지 말았으면 한다.
아울러 부모님이 부자가 아님을 실망하지 말라..

부자 집안 자식들은....

실패 할 확율이 매우 높은 법이다.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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