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링빙야화

저는 살만한데 나라가 걱정

오토산 2021. 4. 4. 10:33

●“저는 살만한데… 나라가 걱정”●

김형석 교수는 법 이전에 양심과 도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3일 인터뷰에서 “대통령이나 정치하는 사람들은

법에만 걸리지 않으면 문제가 안 된다는 식인데

그건 범죄자가 아니라는 것뿐 인생의 가장 낮은 단계”라며

“양심과 도덕, 윤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17세 때 도산 안창호의 설교를 듣고 뜻을 세웠고,

시인 윤동주와는 어릴 적 친구, 대학에서는 김수환 추기경과 동문수학했고,

교편(중앙고)을 잡는 동안에는 정진석 추기경을 길러냈다.

그리고 평생의 벗인 고 안병욱 교수 곁에 자신이 갈 곳을 마련해 뒀다.

인생은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지만 이 정도 삶이라면 살아볼 만하지 않을까...

올해 우리 나이로 102세가 된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저는 살 만한데… 나라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 1920년생이신데 아주 정정하십니다.

“그런가요?

건강은 괜찮은데 백 살이 넘으니 별일이 생기기는 하네요.” (별일요?)

 

“지난해 제주도 가려고 김포공항에 갔는데 저만 발권이 안 됐어요.

컴퓨터에 제 나이가 한 살로 떴다더군요.

대한항공만 930번 이상을 탔는데…

컴퓨터가 나이는 100을 빼고 읽나 봐요...

백 살이 넘은 사람이 비행기를 타는 경우가 별로 없어서인지

항공사도 처음 겪었나 봅니다.

하하하...

5년 후에는 초등학교에 갈지도 몰라요.”

(명예 교장선생님 같은 걸 하시나요?)

 

“아니요.

3년 전인가?

제 주변에 106세 된 할머니가 계셨는데 초등학교 입학 통지서가 왔대요...

별일이다 싶어 놔뒀더니 안 보내면 벌금 문다는 통지서가 또 왔답니다.
주민센터에 갔더니 여섯 살인데 손녀를 왜 학교에 안 보내느냐고 해

‘그게 나’라고 했더니 놀라더래요...

 

몇 년 후에 저한테도 초등학교 입학하라는 통지서가 오겠지요?

다시 초등학교를 다니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네요.”

― 우문(愚問)입니다만,
늙는다는 건 어떤 건가요...

“글쎄요…

안 늙어봐서…

저희 때는 60세가 되면 회갑 기념 논문집을 내고, 잔치하고, 소일하다

몇 년 후에 정년 퇴직하는 게 보통이었지요...

 

저도 예순에 같은 행사를 했는데

그 며칠 전만 해도 ‘안녕하십니까?’ ‘일찍 나오셨습니다.’ 하고 인사하던 후배 교수들이

이제는 ‘건강은 괜찮으신지요?’ ‘요새 뭘로 소일하십니까?’로 말을 바꾸는 거예요...

나는 늙었다는 생각도 없고, 늙지도 않은 것 같은데…

안 늙을 수도 있는데 주변에서 자꾸 늙은이로 취급하니까

늙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그때 들었지요...

그래서 65세 정년 퇴직하는 날 후배들 앞에서

‘졸업 후에는 사회에 나가 일하는 게 사회적 책무이니 앞으로 열심히 일하겠다.’고 했어요...

좀 오기를 부린 거죠.

그래서인지 제 책 중에 비중 있는 건 70대에 나왔어요...

학교에 있을 때가 아니고...”

― 60세가 되니 비로소
철이 든 것 같다고도 하셨습니다만…

“정년 퇴임 후 외국에서 강연도 많이 하고 책도 많이 썼는데

그러다 보니 75세가 됐더라고요.

‘이제는 좀 늙었나?’ 하고 봤는데

여전히 한창 좋은 나이인 것 같았어요...

여든세 살 땐가?

50년 지기인 안병욱, 김태길 교수와 인생의 황금기가 언제인가를 얘기한 적이 있는데…

셋 다 60쯤 되니까 그제야 철이 든 것 같다고 했어요.

철 들었다는 게 뭐냐면…

스스로를 믿을 수 있는, 비로소 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나이를 말하지요...
사람이 성장하는 동안은 늙지 않아요...

노력만 하면 90세까지는 성장할 수 있겠더라고요.

김태길 교수도 우리 나이로 90세까지 살았는데

세상을 떠나기 7, 8개월 전까지 정상적으로 일했거든요...
사과나무를 키우면 열매를 맺을 때가 제일 중요하잖아요?

사회에 열매를 주는 때가 60~90세라고 봐요.”

― 힘든 시기는 없으셨습니까?

“구십 고개가 힘들었어요.

저와 비슷한 또래들이 대부분 그때를 전후해 세상을 떠났거든요.

살아 있는 친구들도 거동을 잘 못하고…

서영훈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1920~2017) 는

정신은 좋았는데 몸을 움직이지 못했지요.

강영훈 전 국무총리(1922∼2016)는 몸은 건강했는데 치매로 힘들어했고,

저도 구십 고개가 되니 확실히 신체적인 면은 내려가더군요...

그런데 희한한 게…

정신은 아니더라고요.

문장력은 50, 60대 때가 좋았지만 역사적인 통찰력과 시야는 지금이 더 넓은 것 같아요.”

― 매일 수영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보통 오전 6시∼6시 반 사이에 일어나는데,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못 하지만 그 전에는 일주일에 5일 수영을 했어요.

50세 때까지 술, 담배는 안 했는데 지금은 와인이나 맥주만 아주 조금 마시지요.

지금도 몸에 해로운 건 전혀 안 해요.

안병욱 선생이 젊고 건강하게 살려면 공부, 여행, 연애를 많이 하는 게 좋다고 했는데 맞습니다.

감정이 젊어야 건강한데 연애만큼 감정이 젊어지는 게 또 어디 있습니까?

흐흐흐... 30, 40대보다 70대에 연애할 때가 더 젊어지거든요.”

― 실례지만 연애도 많이 하셨습니까?

“안 선생이 80대 초반 때였는데…

집 근처 카페 아가씨랑 친하게 지냈어요.

그 아가씨가 안 선생 책도 많이 읽고 친절하게 대했는데

하루는 조용히 개인적으로 할 말이 있다고 했대요.

잔뜩 기대하고 2주 만에 봤는데…

아, 글쎄 결혼식 주례를 부탁하더라는 거예요.

그러겠다고는 했는데 커피 맛이 뚝 떨어지더래요...”

주례 부탁을 했다면 20대였을 것 같은데…

괴테입니까?

 

“나이가 많아도 남녀 간의 감정에는 차이가 없는 거 같아요.”
선생님은 어떠신가요?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고…

즐겁게 살고 있어요.”

너무너무 부럽습니다.
“하하하.”

― 98세 때 세금만 3,000만 원을 내셨다고요.

“그땐 상금 때문에 좀 많았죠.

강연료도 있고, 재작년에는 교회 설교까지 포함해 160회 정도 했으니까요.

항상 그렇게 많지는 않은데 그래도 책 인세 등이 있어서 좀 많이 내기는 해요.
작년에는 1,500만 원 정도였던 것 같은데…

이번 달 건강보험료가 100만 원이니까…

누군가 잘 쓰겠지요?”

네? 무슨 뜻이신지…
“잘 안 믿어서 말하기 뭐한데…

전 병원을 거의 안 가요.

어쩌다 가면 의사가 언제 건강검진 받았느냐고 묻는데,

받아본 적이 없어요...

안 믿기지요?”

네...
상금은 개인적으로 안 쓰신다고 하던데요...

“내가 번 돈은 쓰지요...

하지만 상금은 내가 번 게 아니라 사회가 맡긴 돈이기 때문에

나를 위해 쓰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자들에게 맡겨서 문화사업이나 사회사업 같은 데 쓰고 있지요.”
외람되지만 너무 훌륭하신 것 같습니다.

 

“아니에요.

교수 때 월급이 오르거나 보너스가 나왔다고 좋아했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부끄럽지요...

등록금을 못 내는 학생들이 수두룩했는데 스승이라는 사람이 자기 월급 올랐다고 좋아했으니…

요즘도 일기를 쓰면서 매일매일 실수를 반성하고 있습니다.”

― 주변에 장수하신 분들이 많습니까?
“지금은 세상을 떠났지만 일곱 분이 100세를 넘겼죠. 그런데 공통점이 있어요. 재산이나 명예 같은 데 욕심이 없고, 화를 내거나 남 욕하지 않아요. 감정이 아름다운 분들이라고 할까.”

― 선생님 칼럼을 보면
현 정부에 화가 많이 나셨던데요...

“하하하.

많이 나지요.

내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불만이 많은데,

사람이 미운 건 아니고 하는 일이 틀려서….”

어떤 점에서 그렇습니까?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 때까지는 권력과 힘이 지배했고,

김영삼 대통령부터 법이 지배하는 사회가 됐습니다.
선진국이 되려면 법치사회에서 도덕과 윤리로 유지되는 사회로 넘어가야 하는데

현 정부는 권력으로 몰아대고 이끌어가니까…

다시 권력사회로 떨어지고 있어요.

청와대 사람들 얘기 들으면 도덕과 윤리가 없잖아요.

또 북한 인권 문제는 우리가 더 원해야 하는데 그런 건 언급하지 않고

오직 북한 정권하고만 손잡으려고 하니…

나 같은 사람은 나라 걱정이 많지요...

해방 후 김일성하고 같이 밥을 먹은 적이 있는데

가장 먼저 할 일이 뭐냐고 물으니 친일파 숙청, 토지 국유화, 지주 자본가 추방이라 하데요...

지금 여기서도 극렬 좌파는 비슷한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 가랑잎을 타고
대동강을 건넜다는 그분인가요?

“네.

초등학교 선배에 고향도 같고, 집안끼리도 잘 아는 사이죠.

우리 친외가 할머니가 석 달 동안 젖을 먹여 김일성을 키웠어요.

김일성 어머니와 같은 마을 출신인데 비슷한 시기에 두 분 다 친정에서 출산했거든요.

그 할머니 아들들이 공산당 때문에 죽었지요.”

― 지난해 ‘국민이 정부를 더 걱정한다.’는
칼럼을 쓰신 것도 그런 까닭입니까?

“사회가 유지되려면 진실, 정의, 휴머니즘이 있어야 해요.

이 가치가 무너지면 그 사회는 없어집니다.

그런데 현 정부 들어 이런 가치가 다 사라지고 있어요.

지금 대통령 말을 우리가 못 믿지 않습니까?

지금 여당 대표는 물론이고 그 전 대표는 더 심했고...

정부가 국민을 걱정해줘야 하는데, 거꾸로 국민이 나라와 정부를 걱정하게 만드니…

새해에는 문 대통령이 좀 정직해졌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내 사람이 아니면 함께 일할 수 없다는 아주 편협한 사고방식도 좀 고쳤으면 하고요...”

그는 종종 모르는 사람에게

“대학 등록금을 내주셔서 감사하다.” 는

인사를 받는다.

 

영문을 몰라 하는 김 교수에게 그들은

“어떤 분이 대신 내주시면서,

‘내가 학생 때 김형석 선생님에게 등록금을 받았는데 졸업 후 갚으러 갔더니

내게 갚지 말고 어려운 학생들에게 주라.’ 고 하셨다.”고

했다고 한다.

스승의 가르침을 따른 제자들의 선행이 그도 모르게 30여 년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 것이다.
이런 분의 고언(苦言)은 진심이라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 102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 ***

< 자료 : 동아일보, 대담 : 이진구기자 >

<sn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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