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10)
도원 결의
한편,
장비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유비의 마음은 한없이 기뻤다.
비록 얼굴 생김은 험상궂게 생겼어도 장비의 언행은 대장부답게 호탕하고
강직한 것을 다시 알게 된 것도 기뻤거니와,
소문으로만 듣던 하동 해량촌에 있는 지사 관운장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은 더욱 기쁜 일이었다.
"어머니 !
어머니가 애석해 하시던 보검이 오늘 제 손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유비는 사립문을 들어서기가 무섭게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어머니께 보이며 말했다.
어머니는 가보(家寶)가 다시 돌아온 것을 보고 깜짝 놀라며 묻는다.
"장비라는 사람에게 주었다는 검이
어째서 너에게 다시 돌아왔느냐 ?"
그러자 유비는 검을 돌려받게 된 경위를 자세히 설명한 뒤에,
"어머니... 오
늘은 기쁜 소식이 하나 더 있습니다."하고 말했다.
"그건 또 무슨 소리냐 ?"
"하동 해량촌에 관우라는 유명한 지사가 있다는 소문을 오래 전부터 들어왔는데,
조만간 그 사람도 만나게 될 것 같습니다."
"오오, 그래 ?
남자가 큰일을 하려면 동지가 많아야 하는데 그거 참 반가운 소리구나 !
아마 올 봄에는 너에게 비로서 때가 돌아오는 모양이로구나."
어머니는 아들의 얼굴을 그윽히 바라보며,
주름진 얼굴에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다음날 아침,
아침상을 물리고 났을 때였다.
"비야 !
내가 오늘 새벽에 이상한 꿈을 꾸었는데,
아마 오늘은 네게 좋은 일이 생길 것 같구나."
어머니가 아들을 보고 말했다.
"어머니,
무슨 꿈을 꾸셨길래 그러세요 ?"
"글쎄,
네가 친구 두 사람과 함께 용(龍)을 타고 하늘을 날지뭐니,
그때 하늘에는 오색 구름이 영롱하고,
땅에서는 수만 백성들이 너를 우러러보며 박수를 치고 있었단다.
암만해도 이것은 예사 꿈이 아닌 것 같구나."
"제가 용을 타고 하늘로 날아가더라구요 ?"
"그래 !
용은 천자를 가르키는 것이니,
이 얼마나 기쁜 꿈이겠냐."
"글쎄요.
제가 천자가 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어요."
"그나저나 내가 꿈속에서 만나 본 네 친구 두 사람은 혹시나 장비와 관운장이라는 사람이 아닐까 ?
너는 조만간 두 사람을 만나기로 했다면서 ?"
"꼭 만나자는 약속을 한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장비가 관운장을 우리 집으로 데리고 올지도 모릅니다."
"그 사람들이 찾아오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네가 그 사람들을 먼저 찾아가 보는 것이 어떻겠냐 ?
사람다운 사람 한 사람을 구하기란 천하를 얻기보다도 어려운 일이다."
"그럼 제가 먼저 찾아가 보기로 할까요 ?"
"내 생각에는 그 편이 좋을 것 같구나.
큰일을 하려면 먼저 사람을 얻어야 하니까 ! "
"그럼 제가 해량촌으로 관운장이라는 지사를 찾아가 보기로 하지요 !"
유비가 그렇게 대답하고 옷을 막 갈아 입고 있는데,
별안간 마당에서 자신을 찾는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이 댁이 유비 현덕 공의 댁이오니까 ?"
유비는 방문을 열어 보고는 깜짝 놀랐다.
"오오,
장 공이 오셨구려 !
그러잖아도 내가 장 공을 막 찾아가려고 하던 길이었소."
유비는 마당으로 달려나가 장비를 반갑게 맞았다.
장비는 뒤에 서 있는 삼각수염의 관운장을 가르키며,
"내가 관 공을 모시고 왔지요.
자, 두 분은 서로 인사하시오.
이 분은 관운장. 이 분은 현덕 공이오."하고
장비가 인사 소개를 시키자,
관운장은 유비에게 허리를 정중히 굽혀 보이며,
"선성은 많이 들어 왔습니다.
그러잖아도 한번 만나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반나게 되어 반갑소이다."하고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유비도 관운장의 손을 정중히 마주 잡았다.
"이렇게 누추한 곳을 찾아 주셔서 감개무량하오."
세 사람이 수인사를 하는 동안에
어머니는 손님을 알아보고 방안을 부산스럽게 치우고 있었다.
이윽고 그들은 방안으로 들어와서 어머니께 깍듯이 인사를 드린다.
그리고 세 사람은 좁은 방안에 마주 앉아,
나라의 어지러움을 걱정하며 천하 대세를 논하였다.
"우리 세 사람이 합심하면 천하를 바로잡기는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오."
장비가 유비와 관운장을 돌아보며 큰소리로 외친다.
"장 공의 말씀이 옳은 말씀이오.
우리 세 사람이 합심 협력한다면 천하에 안 될 일이 없을 것이오."
관운장의 말이었다.
"그러면 오늘을 기해
우리는 천하 대세를 일으킴에 생사를 같이하는
결의형제를 맺으면 어떻겠소?"
유비가 결의형제를 제안하였다.
"그거 참 좋은 말씀이오 ! "
장비가 즉석에서 응락했다.
"그렇지않아도,
나 역시 아까부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소이다.
우리 세 사람이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다면
천하 대사는 우리의 뜻대로 안 되는 것이 없을 것이오."
관우장은 근엄한 얼굴로 유비와 장비를 돌아다보며 말했다.
"두 분이 뜻을 같이해 주신다니 기쁘기 한량없소이다.
그러면 내가 노모께 우리들의 뜻을 말씀드려 보기로 하지요."
유비는 어머니를 방안으로 모셔다 ,
자기네 세 사람이 결의형제를 맺기로 약조한 사실을 알려드렸다.
그러자 어머니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관운장과 장비의 손을 좌우에 하나씩 붙잡고
목메인 음성으로 이렇게 말했다.
"천하의 영웅호걸인 두 분께서
내 아들 비와 형제의 의를 맺고 천하를 평정하겠다고 하니,
이 늙은 몸은 고대 죽어도 유한이 없도록 기쁘오이다.
우리 집안은 한나라 종실의 후예로서
이 늙은 것이 미거한 비와 더불어 산중에서 돗자리나 짜 먹으면서 목숨을 이어 온 것은,
한나라 종실을 다시 일으켜 어지러운 세상을 올바로 잡아 보려는 큰 뜻이 있었기 때문이었소.
그런데 비가 이제 뜻을 같이하는 영웅호걸 두 분을 만났으니,
세 사람의 뜻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나 무엇이 다르겠소
합하면 천하를 얻을 수 있고,
헤어지면 초야에서 썩어 버릴 영웅호걸들이 이제 생사의 의를 맺는다니,
이 늙은이는 여러분이 다스릴 천하가 눈에 보이는 것만 같구려 ! "
평소에는 말이 없던 어머니였건만,
이때만은 감격에 넘친 어조로 장강유수와 같은 열변을 토하였다.
(아 ! 그 아들에 그 어머니시구나 !)
관운장과 장비는 어머니의 의미심장한 설화에 새삼 탄복해 마지않았다.
유비도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어머니 !
그러면 우리들은 어머니의 허락을 받아 형제의 의(義)를 맺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중대한 맹세를 하려면 정중한 의식(儀式)이 필요하니,
내일 아침에 우리 복숭아 밭에서
천지신명께 약속드리는 의맹(義盟)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냐 !
그런 준비에 대해서는 이미 내가 생각해 둔 바가 있으니
걱정말고 세 사람은 천하 대사나 상의하여라 ! "
어머니는 그 한마디를 남기고 밖으로 나가자,
관우와 장비는 제각기 유비를 쳐다보며,
"유 공의 어머니는 천하에 두 분도 있기 어려운 어머님이시구려 !
우리도 이제부터는 그 어른을 어머님으로 모시게 된 것이 무한한 영광이오"하고
말하였다.
곧이어 어떻게 마련한 것인지,
어머니는 세 사람을 위한 술상을 방안으로 들여놓았다.
유비가 어머니게 물었다.
"우리 집에 무슨 술이...? "
"이럴 때가 언젠가는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되어 준비한 것이 있단다.
걱정말고 두 분께 대접하도록 하거라.
그리고 사내 대장부는 큰뜻을 품고 일어서야 할 때,
떨치고 일어서지 않으면 안 되는 법이다. 어미의 말을 명심해 주기 바란다."
이튼날 아침,
제철을 만나 아름다운 꽃을 함빡 피우고 있는 유비의 집 뒷편에 있는 복숭아 밭에는
유비의 어머니와 동네 사람들이 서로 협력하여 제단을 만들고
술과 고기와 과일들을 가지고 몰려왔다.
그리하여 세 사람은
오우(烏牛),백마(白馬)등 갖은 제물을 차려 놓은 제단 앞에 나란히 서서,
일제히 분행재배를 하고 다음과 같은 맹세의 제문을 각각 읽어내렸다.
"저희들 세 사람은 비록 성이 다르오나,
이미 형제가 되기로 의를 맺어 오늘 부터는 동심협력하여 서로 곤람함을 구해 주고,
위태로움을 붙들어 주며, 위로는 국가에 보답하고, 아래로는 백성들을 편안케 하되,
동년 동월 동일에 나아가기를 원하지 않으며, 다만 동년 동월 동일에 죽기를 원하오니,
천지신명께서는 이 세 사람의 마음을 살피시사,
의리를 배반하고 은혜를 잊삽거든 하늘과 사람이 일체가 되어 그를 죽여 주소서."
이것은 어젯밤 관운장이 밤을 새워 가며 심혈을 기울여 작성한,
천지신명께 올리는 의맹 결의문(義盟 結義文)이었다.
제단 앞에서 결의의 맹세가 끝나자,
이번에는 세 사람이 늙은 어머니에게 아들로서의 큰절을 올렸다.
어머니는 천하의 영웅호걸들을 아들로 삼게 된 것을 크게 기뻐하며
주연을 성대히 베풀었다.
장비를 위시하여 세 사람은 통음(痛飮)을 해가면서 포부를 크게 나누었다.
그 자리에서 관운장은 술을 마셔가며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이제 형제의 의를 맺었으니,
형과 아우의 서열이 분명해야 하겠소.
단순히 나이로만 따진다면 내가 가장 맏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장차 나라를 이룩하려면 현명한 군주(君主)를 미리 모셔 놓아야 할 것이오.
그런 의미로 본다면 단순히 나이로만 서열을 가릴 수도 없는 일이오.
유 공은 당당한 한나라 종실의 후손이니,
이제부터는 유비 현덕 공을
군주를 겸한 장형(長兄)으로 모시기로 합시다."
"옳은 말씀이오 !
나는 관 공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이오 ! "
무슨 일이나 즉석에서 결정하기를 좋아하는 장비가 손뼉을 치면서 찬성한다.
그러나 인품이 겸손한 유비는 손을 내저으며 말한다.
"내가 한나라 종실의 후손인 것만은 틀림이 없으나,
나는 오랫동안 초야에 묻혀서 돗자리나 짜 먹던 위인이오.
따라서 나 같은 사람이 우리 삼형제의 맏이가 된다는 것은
좀더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 아닐까 하오."
"천만의 말씀 !
우리 두 동생이 형을 도와 드리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오 ?
장차 국가를 이룩하려는 우리들이니까,
서열과 체통(體統)만은 바로 세워가도록 합시다.
그런 의미에서 유 형은 장형이 되고, 관우형은 중형이 되고,
나는 두 형을 따르는 아우가 되어야 하겠소 ."
장비의 말이었다.
"장 공 !
그게 옳바른 말씀이오 ...
그럼 지금부터 나는 유비 공을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 "
관운장이 최후의 선언을 내렸다.
"두 분께서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나는 아우님들이 도와 주실 것을 믿고,
나자신이 오늘부터 군주의 덕(德)을 쌓도록 명심하고 노력하겠소이다."
이리하여 삼형제의 서열은 유비, 관우, 장비의 순서로 결정되었다.
"자, 두 형님 !
오늘부터 천하는 우리 삼형제의 것이오 !
그런 의미에서 다같이 축배를 듭시다 ! "
장비가 술잔을 높이 들며 크게 떠들자,
유비와 관우도 술잔을 흔쾌히 들었다.
이리하여 후세에도 길이 남는 <도원 결의>가 굳게 맺어졌던 것이다.
11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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