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46)
전국옥새(傳國玉璽)
원소를 비롯한 제후들은 잿더미가 되어 버린 낙양성 내에 진을 치고
동탁을 공격할 기회를 다시 노리고 있었다.
장사 태수 손견(長沙 太守 孫堅)은
궁중의 불을 끈 뒤에 건장전(建章殿) 자리에 장막을 치고,
종묘(宗廟)가 있던 자리에는 조그만 전각(殿閣)을 짓게 하고
한나라 선왕들의 위패(位牌)를 모시도록 하였다.
그렇게 한 뒤,
제후들과 함께 종묘에 제사를 지내고 나니 날은 이미 저물었다.
손견은 고개를 들어 잿더미가 되어버린 궁전을 천천히 둘러보며
쓸쓸한 감회에 젖었다.
불과 며칠 전만 하더라도 호화롭던 궁전이 지금은 폐허가 되어 버렸으니,
영화롭던 한 시절의 종말을 보는 것 같아,
손견의 감회는 어느덧 입에서는 탄식이 되어 저절로 흘러 나왔다.
"아아,
낙양은 한순간에 잿더미가 되어 버리고,
백성들은 뿔뿔히 흩어져 도탄에 빠져버렸으니
장차 이 나라를 어찌했으면 좋단 말인가 !"
마침 그때 손견의 군사 하나가 남쪽을 가르키며,
"장군님 !
저 우물 속에서 이상한 광채가 나오고 있는데,
그게 무엇일까요 ?"하고 물었다.
손견이 그와 함께 우물에 가서 그 속을 들여다 보니,
과연 우물 속에서는 오색 광채가 이상하게도 번쩍거리는 것이었다.
"음... 저게 무얼까 ?
횃불을 밝혀서우물 속을 조사해 보라 !"
군사들이 횃불을 들고 와서 우물 속을 살펴보니
우물 속에 궁녀의 시체가 하나 떠 있었는데,
그 궁녀의 목에 걸린 비단 주머니에서는 이상한 광채가 나오고 있었다.
그리하여 우물 속으로 들어간 병사가 꺼내온 비단 주머니를 풀어 보니,
그 속에는 주홍빛 상자가 들어 있었고 그 상자 속에서
천자의 옥새(玉璽)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
그리고 그 옥새에는,
수명우천(受命于天)
기수영창(旣壽永昌)이라는
여덟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정보(程普) !
이 글은 무엇을 뜻하는가 ?"
손견은 고사(故事)의 지식이 풍부한 정보에게 물었다.
정보는 옥새를 세밀하게 감상해 보고 이렇게 대답한다.
"이 옥새로 말하면
사백여 년전인 진시황(秦始皇) 때 만든 것이온데,
이사(李斯)라는 사람이 전문 여덟 자를 새긴 것이옵니다.
그런데 진시황 이십팔년에 진시황이 동정호(洞庭湖)를 건너다가
심한 풍랑을 만나 이 옥새를 물에 던졌더니,
풍랑이 잦아들어서 호수를 무사히 건넜다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이후로는
누구든지 이 옥새를 손에 넣는 사람은 반드시 나라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이 옥새를 <전국옥새(傳國玉璽)>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오늘날 주공께서 이 옥새를 손에 넣게 되신 것은 이만저만한 경사가 아니오니
주공께서는 여기 이러고 계실 것이 아니라,
곧 강동(江東)으로 회군하셔서 큰 일을 도모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하면서
옥새를 손견에게 전하는데,
정보가 애기한 것은 손견으로서는 참으로 놀라운 말이었다.
옥새를 건네 받은 손견은 워낙 야심이 큰 사람인지라,
그는 그곳에 있던 부하들을 보고 이렇게 경고하였다.
"오늘밤 이 일에 대해서는
누구든지 일체 입을 열지 마라 !"
이튼날 손견은 군사를 거느리고 강동으로 돌아가려고
원소에게 작별인사를 고하러 갔다.
"본인은 이즈음 건강이 좋지 못해
당분간 본국으로 돌아가 쉴 생각이오."
원소는 손견의 이 말을 듣자,
소리를 크게 내어 웃는다.
"하하하하,
손 장군이 몸이 불편하다구요 ?"
"아니,
맹주께서는 내가 몸이 불편하다는데 웃기는 왜 웃으시오 ?"
"손 장군이 본국으로 돌아가려는 솔직한 이유는 건강문제 때문이 아니라,
어제 옥새를 얻었기 때문이 아니오 ?"
손견은 그 소리를 듣고
속으론 크게 놀라면서도 시치미를 딱 떼었다.
"옥새라니요 ?
그게 무슨 말씀이오 ?"
그러자 원소는 노기를 띠며 꾸짖는다.
"손 장군 ! 나는 모든 비밀을 다 알고 있소.
건장전 우물 속에서 옥새를 얻었거든,
그것을 맹주인 나에게 응당 가져올 일이지,
감쪽같이 숨기고 본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짓이오 ?"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저는 영문을 모르겠소이다."
"손 장군이 그렇게까지 시치미를 뗀다면
내가 증인을 불러오리다."
원소는 곧 부하를 시켜서,
간밤에 옥새의 비밀을 알려 준 손견의 부하를 불러오게 하였다.
"저 병사는 손 장군의 부하로서 어젯밤에 우물을 조사했던 사람인데,
그래도 나를 속일 작정인가 ?"
손견은 밀고한 놈을 보고 기가 막혔다.
그리하여 칼을 뽑아 들 모양을 보이자,
원소가 미리 준비해 놓은 부하들에게 명령한다.
"손 장군을 호위해 온 병사들을 경계하라 !"
순간,
손견은 칼을 뽑아 원소를 겨냥했다.
그러자 원소를 호위하고 있던 안량(顔良), 문추(文醜) 등 두 장수가
손에 칼집을 붙잡으며 , 금방이라도칼을 뽑아들 듯,
손견 앞으로 다가선다.
손견의 편에서도 정보, 황개, 한당 등
맹장들이 싸울 태세를 갖춘다.
크게 놀란 사람은 동석했던 제후들이었다.
"손견 장군이 이처럼 결백을 주장하는 것을 보면
옥새 문제는 사실이 아닌 듯하오니 맹주께서는 노여움을 거두시는 것이
좋을 것 같소이다."
원소는 제후들의 충고에
노기가 누그러지며 이렇게 따져 물었다.
"그러면 옥새를 갖지 않았다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하려는가 ?"
"나도 한나라의 신하인데,
내가 어찌 옥새를 가지고도 나라의 모반을 꾀하리오.
천지신명께 맹세컨데 그런 일은 결단코 없소 !"
원소는 그 말을 듣고서야
자신이 준비했던 병사들에게 경계를 풀라고 명했다.
그러나 이튼날 소식을 들어보니,
손견은 간밤에 군사를 거느리고 낙양을 떠나 강동으로 돌아가 버렸다는 것이 아닌가 ?
"음... 그
놈이 암만해도 의심스러우니,
형주 자사 유포(荊州 刺史 劉表)에게 곧 사람을 보내어
도중에서 손견을 체포하도록 하라 !"
원소는 기어코 손견을 의심하고
그의 체포령을 내리고야 말았다.
47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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