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223)
위기의 감로사 맞선
태부인과 유비의 갈등과 고민의 밤은 가고, 아침이 밝았다.
태부인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딸의 머리를 손수 빗겨주며,
정략(政略) 때문에 방년 18 세의 꽃다운 딸을 쉰이 넘은
유비에게 보내야 할 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운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그러나 어제와는 달리 모녀간의 대화는 한참 동안 없었다.
"마차는 준비되었느냐 ?"
태부인이 정막을 깨고 시녀에게 묻자,
곧바로 준비가 되었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태후는 거울 앞에 놓였던 옥피리를 딸에게 건네주며 말한다.
"네가 오늘 감로사에서,
유비를 장막 뒤에서 살펴 보다가 마음에 들게 되면 이 피리를 불거라.
네 아버지가 남기신 것이다.
아버지가 전사한 후,
강동이 남에 손에 넘어갔을 때 집안의 물건은 거의 사라졌는데,
이것 만은 남아 있었단다.
책이가(손책을 지칭) 이걸 지니고
강북에서 강남까지 전쟁터를 누비며 겨우 강동을 되찾았는데,
얼마 안되서 안타깝게도 우리 곁을 떠나게 되었다.
그 후 이 어미는 다시,
강동의 터를 잡은 곳에서 이 피리를 불 때마다,
네 아버지와 큰오라비가 옆에 있는 것 같았단다."
태부인의 이 말은 애절하기 까지 하였다.
이런 모후의 느낌을 알고 있는 상향 역시 그윽한 눈망울로 모후를 쳐다 보았다.
모후의 눈에서 구슬같은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상향은 집안의 역사와 아픔이 서린 옥피리를 모후에게 건네 받아 자신의 품에 간직하였다.
한편,
유비가 강동의 태부인과 손권에게 선을 보이기로 한 감로사에는
이른 아침부터 장군 가화가 이끄는 삼백 명의 정예 도부수들이
절을 철통같이 에워싸고 있었다.
다음날 유비는 감로사로 가기 위해 객관을 나섰다.
그리하여 도열한 호위 군사 앞으로 나오는데,
갑자기 공중에서 까마귀 우는 소리가 들리더니,
까마귀의 똥이 그의 앞에 떨어지는 것이었다.
이에 손건이 놀라며 말한다.
"주공, 불길한 징조입니다.
오늘 감로사에 가시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나 유비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다.
"으흠,
이런 정도가 어찌 날 막겠나 ?
걱정말고 가세."
유비는 손건에게 이렇게 말한 뒤에
장군 조운에게 말한다.
"자룡 ?
호위병 몇 명만 데려가고 나머지는 쉬게하게."
조자룡은 유비의 명을 듣고, 걱정이 가득한 얼굴을 해보였으나,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수 명의 호위병사들에게 명한다.
"가자 !"
유비 일행이 감로사 입구에 도착하자,
손권이 그의 측근 대신과 호위병을 거느리고 나와 있었다.
유비는 말에서 내려 손권의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손권이 먼저 말을 한다.
"황숙께 인사올립니다."
"오후께 인사 올립니다."
"가시죠."
손권이 유비를 안내하자
유비는 감로사에 오르는 계단을 성큼성큼 오르기 시작하였다.
유비가 계단으로 오르는 옆모습을 보면서, 손권은 속으로 안심하였다.
(유황숙이 영웅이라하더니,
과연 풍모가 범인과 다르구나 ! ...)
손권은 유비의 당당한 First Impressions(첫인상) 에서
영웅의 면모를 느낀 것이었다.
유비가 감로사 내실 안으로 들어오자,
장막 뒤에서 상향이 유비의 입장하는 모습을 살펴보았다.
내실 중앙의 태부인이 안으로 들어서는 유비를 선채로 맞이하였다.
유비가 태부인을 보자, 두 손을 모아 올려 허리를 깊숙히 굽히며 인사한다.
"유비가 태부인께 인사올립니다."
태부인은 유비가 고개를 쳐들자,
웃음을 웃으며,
"황숙,
장소의 말로는 황숙이 인물이 출중하고 인품이 뛰어나다고 했는데,
역시나 틀린 말이 아니었군요."하고,
자신의 속마음까지 드러내 보이며 화답하였다.
"과찬의 말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유비가 화답하였다.
"앉으세요."
"앉으십시오."
태부인과 유비가 서로 배려하는 말이 오간 뒤에
태부인이 장중을 돌아보며 말한다.
"다들 앉으세요."
"예 ! 태부인"
손권을 비롯한 장소등 미리 입장해 있던 동오의 관료들이 자리를 잡자,
유비도 자리에 앉았다.
"술을 올려라."
술이 한 잔씩 따라지자 태부인이 유비를 건너다 보며 말한다.
"자, 드시지요."
"감사합니다. 오후,
드시지요."
유비는 태부인께 답례를 하고,
손권을 향해 잔을 들어 보였다.
술이 한 순배 돌자,
장중의 등등한 살기를 느낀 조운이 앉아있는 유비의 뒤로 황급이 입시하며 말한다.
"오후,
어찌 맞선을 뵈는 자리에 복병이 있는 것입니까 ?"
이 말을 듣고,
유비는 태연하게 앉아 있었고, 태부인의 눈꼬리는 꿈틀거렸다.
그러나 아무 것도 모르는 손권은,
"복병이라니 ?
무슨 말이오 ?"하고,
오히려 되묻는 것이었다.
그러자 조운이,
"저는 귀가 밝아,
먼 곳의 화살 멕이는 소리조차 놓치지 않소,
바로 뒤엣 소리를 못 들을 리가 없지요 !"하고,
외치 듯이 말하며 청운검을 뽑아 ,
유비의 뒤쪽의 격자문(格子門 : 문살을 바둑판 모양으로 일정하게 짠 문)
가운데를 세차게 갈라보였다.
"챠, 앙 ~ !..."
순식간에 문살이 가로 갈라지며
그 뒤에서 장중의 동태를 살피고 있던 무장한 동오의 도부수들이 드러나 보였다.
이런 소란 속에서도, 유비가 그떡도 하지 아니하고 조운에게 명한다.
"자룡 !
어찌 태부인 앞에서 칼을 휘두르는가 ?
물러가게 !"
자룡이 명을 받고,
장중을 한번 돌아 본 뒤에 칼을 거두며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물러간다.
물러나는 것은 자룡 뿐 만이 아니었다.
장중을 에워싸고 있던 도부수들도 스스로 물러나기는 마찬가지였다.
태부인은 도부수들이 동원 된 것에 대해 할 말을 잃었고,
손권도 이것에 대해 유비에게 변명을 하거나 입시해 있는 여몽에게 묻거나 추궁하지 않았다.
다만,
이런 위기의 상황에서 유비의 처신만을 눈여겨 볼 뿐이었다.
그것은 장막 뒤에서 유비의 언행을 유심히 지켜 보던
상향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유비가 아수라장이 된 내실 가운데로 나와,
태부인께 고한다.
"태부인,
저를 죽이시려면 지금 죽이십시오. "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
"저 때문에 이곳에 복병을 숨겨 두신 것이 아닙니까 ? "
태부인은 대답 대신 아들 손권에게 눈길을 보냈다.
그러면서 아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강동의 주인이라는 자가,
어찌 손님을 이렇게 대하는가 !"
모태후의 아들에 대한 힐난은 날카로웠다.
그러나 손권 역시 당대의 영웅이었다.
그는 놀라거나 회피하지 않고,
"고정하십시오.
소자는 몰랐습니다.
누구의 짓인지 밝혀, 벌하겠습니다."하고,
모태후와 유비가 들으란 듯이 말한 뒤에, 장군 가화를 부른다.
"가화 ?"
"예, 주공 !"
장군 가화가 앞으로 나와 고개를 숙인다.
"누가 이런 짓을 시켰나 ?"
손권의 질책은 정중하나 무거웠다.
"엇, 그건...."
가화가 말을 잇지 못하자,
여몽이 대신 나선다.
"주공 ! 접니다."
여몽은 두 손을 올려 고개를 숙이고 죄를 자청하였다.
"여몽, 네가 어찌 감히...
물러가라 !"
그러나 여몽은 물러가지 아니하고
이렇게 아뢰는 것이었다.
"주공...
유비는 형주를 가로 채,
우리 병사들의 죽음을 헛되게 했습니다.
오늘, 죽은 병사들을 대신해 복수를 할 겁니다."
여몽은 말이 끝나자 마자,
단발마의 외침을 함과 동시에 칼을 뽑아 유비를 향했다.
"시류륭 ~...
챵 !"
유비를 향하던 여몽의 칼날이 순간,
번개같이 달려든 조자룡의 청운검에 반쯤 잘려나갔다.
"엇 ?"
여몽을 비롯해 모두가 놀라는 순간,
여몽을 향한 손권의 질책이 쏟아진다.
"무엄하다 !
저 놈이 미쳤구나.
여봐라 ! 저 놈을 끌고가 목을 베어라 !"
"옛 !"
손권의 호위 병사들이 여몽에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꼼짝 없이 죽게 된 여몽이 놀라며,
"주공 !"하고,
손권을 애타는 소리로 불렀다
그 순간,
유비가 큰 소리로 외친다.
"멈추시오 !"
모두가 유비의 외침에 놀라며 그를 주시하고 있을 때,
유비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손권을 향해,
"오후,
경사스런 날이니 피는 뭍히지 마십시오.
이해가 됩니다.
여 장군 뿐만 아니라,
아마 강동의 모든 장수들이 절 원망하겠지요.
제가 형주를 취한 것은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어쩔 수가 없었지요.
제 몸에는 한 왕실의 피가 흐르고 있으니,
조조를 제거하고 한나라를 부흥시키는데, 일조하는 신념으로 살아왔습니다.
허나 가진 것이 없어, 부끄럽지만 형주를 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와중에 상향은 장막 깊숙한 곳에서 나와,
유비의 모습과 음성을 더욱 가까이 듣기 위해 좀 더 앞으로 나왔다.
유비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 솔직히 말해,
얼마 되지도 않는 병사들을 이끌고 처음 형주로 들어왔을 때,
양심의 가책을 느껴, 저 자신을 탓했습니다.
평생을 떳떳하게 살았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았는데,
어찌 강동 병사들의 피가 맺힌 땅을 차지할 수 있겠는가,
자괴감이 들었지요..."
"허나,
지금 북방에서 고통과 치욕을 당하는 천자를 생각해,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형주는 중원에서 가까운 곳이니 강동에서 날 원망하더라도 형주를 차지하자고...
난 밤마다 군사들을 이끌고 허도로 달려가 천자를 구하는 꿈을 꿉니다.
나 유비가 이 자리에서 하늘에 대고 맹세하겠습니다.
<천하의 땅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고, 한나라에 속한 것이니,
조조를 막는 것이 급선무이고, 천자를 구하는 것이 성공한다면,
이 몸은 관직을 탐하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가 운둔할 것입니다.>"
태부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포부가 대단하군요."
유비가 태부인께 예를 표해 보인 뒤에,
"태부인,
제 나이 벌써 쉰을 넘겼습니다.
전장을 누빌 날도 얼마 안 남았지요.
여기 계신 분들도 한나라의 충신들이니,
여러분들께 부탁드리겠습니다."하고,
말하며 장중을 휘돌아 예를 표해 보인다.
이어서,
"부디 절 도와주십시오"하고,
말하였다.
장소, 손권, 태부인,
그리고 장막 뒤에 선 상향이
유비의 웅지에 할 말을 잊고 있었다.
시종녀가 상향에게 나지막히 말한다.
"아가씨, 보세요.
유황숙이 그리 늙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러자 상향이 눈을 깜박이며,
고개를 그떡이 듯 말 듯, 해보인다.
장중에선 유비의 말이 이어진다.
"만약,
제 말이 거짓으로 느껴지신 다면..."
유비는 여기까지 말을 하고 조자룡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그의 청운검을 뽑아 들었다.
"엇 ?"
조자룡이 흠칫 놀랐으나 주군의 행동을 제지할 수는 없었다.
유비는 검을 들고, 여몽 앞으로 갔다.
그리고 검을 여몽에게 건네주며,
"그대가 내 목을 치시오."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
잠시 머물던 여몽이 날카로운 눈 빛으로 칼자루를 받아 쥐었다.
"주공 !"
조자룡이 그 광경을 보고,
나설 듯이 몸을 움직이며 유비를 제지했다.
그러나 유비는 아랑 곳이 태부인 앞으로 돌아서며,
"오늘 흘린 피로,
강동의 병사들에게 사죄하겠습니다."하고,
말하며 장중에 꿇어 앉는 것이었다.
태부인과 손권이
아무런 말도 없이 유비를 지켜보는 가운데 적막이 흘렀다.
이윽고,
절호의 기회를 잡은 여몽이 칼을 가지고 유비의 옆으로 다가섰다.
조자룡이 그 모습을 보고,
무기 없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긴박함이 흐르는 가운데,
여몽이 칼을 힘차게 치켜들며 소리쳤다.
"에, 잇 !"
그야 말로 여몽의 검이 내리치는 순간 유비의 목이 달아 날 판이었다.
그 절체 절명의 순간,
장막 뒤에선 난데없는 피리 소리가 흘러나왔다.
"필리리~ 필리리 ~ !..."
"응 ?"
여몽이 놀라며 손을 멈췄고,
손권은 물론, 태부인과 장소도,
난데 없는 피리 소리에 놀라며 자신들의 귀를 의심하였다.
움찔했던 여몽이 다시 칼을 내리치려 하자.
조자룡이 번개같이 달려들어 여몽의 칼 든 손을 걷어찼다.
"엇 !"
여몽의 놓친 칼은 허공으로 떠올랐고,
그것은 곧 조자룡 손에 들어갔다.
자룡이 청운검을 칼집에 꼿아 넣으며 여몽을 노려 보았다.
이런 소란의 와중에 꿇어 앉은 채로 눈을 감고 있던 유비가 눈을 떠 손권을 바라보았다.
손권이 모태후에게 시선을 보내며 말한다.
"어머니 !..."
손권의 말 뜻은
<유비의 영웅의 면모>를 어떻게 보았냐는 의미였다.
"으응 ?..."
모태후의 대답은 만족,
<대만족>의 의미가 뭍어있었다.
"필리리 ~ 필리리 ! !..."
그때 까지도 피리 소리는 계속해 들려오고 있었다.
손권이 결정어린 어조로 명한다.
"여몽, 물러가라 !"
여몽은 대답조차 하지 못하고,
유비를 처치하지 못한 불만만 표해 보이며 물러갔다.
손권은 여몽이 물러가자 장중에 꿇어 앉은 유비에게 손짓을 하며 말한다.
"황숙,
어서 일어나 자리에 앉으시지요."
조자룡이 유비에게 다가가서 그의 팔을 붙잡아 일으킨다.
그 모습을 태부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이렇게 감탄하였다.
(오오 !...
과연 유비는 천하의 영웅이구나 !...)
224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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